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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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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4 27.1-26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

2025년 7월 2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예전에 저희 어머니는 차에 타면 반드시 기도를 하고 차를 출발하셨습니다. 제가 20대가 되어 운전을 배우고 차를 운전하려고 하면 꼭 물어보셨습니다. 너 기도했니?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해야 했던 것일까요? 사고 나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사고가 안 나고 기도 안 하면 사고가 나나요? 사실 기도 여부는 사고의 유무에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성도라고 해서 병이나 부도나 사기 등의 험한 일이 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과 성도가 똑같이 힘든 일을 경험해도 과정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바울은 죄수로 로마까지 호송되던 중, ‘미친 바람’이라는 뜻의 유라굴로라는 무서운 폭풍을 만났습니다. 이 폭풍 앞에서 배 안에 있던 사람들과 바울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가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1. 세상 사람은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첫 번째로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세상 사람은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바울은 유대의 법정에서 로마 사람으로서 로마의 황제 앞에서 재판받겠다고 주장을 했고, 지금 로마의 백부장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로마까지 바울을 배로 이송하기로 합니다.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아드라뭇데노는 지명으로, 이곳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를 거쳐 로마까지 가는 여정입니다. 지금이야 배로 이동할 때 걱정이 없지만 고대의 돛단배로 이것은 아주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로마까지 거리가 약 3,500킬로였습니다. 순풍을 만나면 6주, 반대로 역풍이 불면 6개월까지도 걸렸다고 합니다. 게다 이 여행이 아주 어려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가을에는 날씨 변화가 심했고 또한 날씨가 좋지 않은 겨울에는 3~4개월간 이동을 멈추고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본문은 벌써 겨울이 되고 있었습니다. 7절입니다.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


초겨울 역풍을 뚫고 겨우 옆 도시까지 갔는데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금식하는 절기인 유대인들의 대속죄는 9월에서 10월로 겨울 초입이라 항해가 위태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11절에 백부장은 어떻게 결정하나요?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백부장은 로마에 가서 바울과 죄수들을 넘겨주면 책임에서 벗어나니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선장도 사람을 실어 나르고 돈을 벌고 싶어 하고 선주 역시 배를 띄워야 돈을 버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 합니다. 이 세 명의 욕심이 얽혀 교만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기에 남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바울은 가면 안 된다고 했고 선장과 선주는 가도 된다고 했는데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게다 마침 이 결정을 호의적으로 돕는 듯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13절 말씀입니다.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 항해하더니


역풍이 계속 불었으면 머뭇거렸을 텐데 순한 남풍이 불자 닻을 올리고 출발하게 됩니다. 인생에는 바로 정정할 수 있는 가벼운 결정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입니다. 그것이 안전해 보이고 정도 같아 보이기 때문이게 백부장도 선장과 선주의 의견에 힘을 실은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경험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선장과 선주도 바다에 대해 전문가인 것 같았지만 폭풍은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인공위성으로 사진도 찍고 슈퍼 컴퓨터도 돌리는 최근에도 예측률이 온전하지 않은데 고대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좋다고 얘기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상황이 받쳐줘도 인간이 절대 예측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 폭풍이 찾아오면 인간은 자기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14절에 이들은 예측하지 못한 폭풍을 만납니다.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얼마나 회오리가 심하고 바람이 강력하게 부는지 바람을 미쳤다고 표현합니다. 유라굴로는 원래 ‘북동풍’이라는 뜻입니다. 지중해에 큰 크레타 섬에 바람이 불다가 크레타 산맥에 부딪혀서 돌풍이 되어 옆의 바다로 몰아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 평탄하기를 기대합니다. 감당치 못할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그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예측치 못한 유라굴로가 인생에 닥쳤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18절과 19절입니다.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풍랑을 만나 침몰하지 않으려면 배를 가볍게 해야 합니다. 이렇듯 위기를 만나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로마가 커지고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지중해의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물건들을 수입했습니다. 많은 짐을 옮겨서 돈을 벌려고 했던 애초의 항해 목적도 광풍 앞에서 소용없어졌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려야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안타깝게도 영원한 생명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천국과 지옥을 알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안다면 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릴 위기에 가장 중요한 것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자 어떻게 되나요? 20절입니다.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비바람뿐 아니라 해도 달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될지를 알지 못하는 깜깜한 망망대해입니다. 이런 때 세상 사람은 좌절합니다. 매일 뉴스에 이런 일이 소개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손가락질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지면 똑같이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1절 상반절입니다.


[21a]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


불안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는 고통에 처하면 입맛이 없고 소화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준비를 아무리 많이 해 보아도 좋은 결과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면 예측하지 못했던 폭풍우가 임할 때 완전히 파괴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성도들도 분명히 폭풍을 만나게 됩니다. 폭풍을 만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폭풍을 만난다고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인생에 폭풍을 허락하시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2. 성도는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폭풍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인가요? 성도는 믿음이 성장합니다. 9절 하반절부터 10절 말씀입니다.


[9b] …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화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떠나기 전에도 하나님이 바울에게 감동으로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보고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바울의 말을 백부장이 듣지 않았고, 지금 폭풍우를 경험한 뒤에야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22절입니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은 어떻게 이것을 알게 된 것이죠? 하나님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23절과 24절입니다.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물론 우리에게는 천사가 나타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이 땅에서 어떤 위기가 있어도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시며 예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요? 우리가 믿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폭풍을 만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바울은 폭풍 속에서도 그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25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여러분이 아는 성경 내용들이 지식이 아니라 믿음인지 언제 드러나나요? 폭풍우를 만날 때입니다. 처음부터 믿음이 주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처음 사귄 사람을 단번에 다 알 수 없듯 하나님도 단계별로 알아가며 믿음이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유라굴로는 바울의 첫 폭풍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5절을 보면


고후 11:25 …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바울은 여러 번의 폭풍우를 지나며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 사명을 이루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를 알아가면서 믿음이 자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의 폭풍을 모두 막아주시지 않고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폭풍우를 경험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지날 때였습니다. 갈릴리는 원래 바다가 아니라 한쪽 끝에서 반대 쪽 끝이 보이는 호수인데 왜 성경은 갈릴리를 종종 바다라고 하나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생의 바다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심으로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부터 27절입니다.


마 8:26-27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고 따랐고 기적도 많이 봤지만 폭풍우 앞에서는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며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작다’고 나무라신 것은 무슨 믿음인가요? 예수님이 병자를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말로 다스리십니다. 병을 치료하는 사람, 귀신을 쫓는 사람은 있지만 자연을 다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신 창조주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27절을 보시면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이분이 도대체 누구셔? 뭐야? 이것은 믿음이 자란 것은 아니고 기적을 경험하고 그저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 한 번의 폭풍우를 경험했어야 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2절부터 33절을 보시면


마 14:32-33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이번에는 예수님이 말로 꾸짖지도 않으셨고 배에 발을 얹으셨더니 바람이 잔잔케 되고 폭풍우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일부러 폭풍을 보내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폭풍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을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도 폭풍우가 필요합니다. 폭풍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다 스스로가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정으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자기 교만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내 결정으로 쓴 맛을 맛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교만이 폭풍을 통해 깨진 다음에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왜 인생에 폭풍을 보내주시는지 시편 107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먼저 25절부터 27절을 보시면


시 107:25-29, 31 [25]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왜 인간을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리고 왜 영혼을 녹아버리게 만드시나요? 영혼 안에 교만이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유라굴로를 경험하는 시기는 다 다르지만 만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틀거리고 혼돈 속에 빠지면서 ‘내가 눈으로 판단한 결정이 온전하지 못했고 무지했구나’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여기까지 되어야 그다음 28절의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진짜 기도는 내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포기하여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인생을 인도해 주세요’라는 고백입니다. 진짜 기도는 영혼이 다 부서지고 녹아버리고 내 지각으로는 도저히 판단이 불가능함을 고백하며 제발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행위입니다. 그 믿음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은 광풍을 잠잠케 해 주시며 31절의 결과를 주십니다.


[3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우리가 내린 선택들에도 그 배후에는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돌아보면 고통스러웠지만 여정을 마치게 하신 하나님이 감사해서 찬양하게 됩니다.


저도 수없이 많은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첫 번째 폭풍은 제가 20대 때 만난 저희 아버지 사업의 부도였습니다. 아버지 감옥 가시고 집 차압당하고 15만 원짜리 월세 지하방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랑 살던 시절은 제 기복주의가 완전 박살났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쁜 일을 막아주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그 기복주의가 박살나지 않았으면 저는 기도의 분량만큼 좋은 일이 온다고 설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폭풍 덕분에 제가 정한 계획을 내려놓고 소명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250원짜리 마을버스를 못 탈 정도로 돈이 없었는데 그때의 몸부림을 통해 돈이 아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지시며 주인이 되심을 알고 은혜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배울 것을 다 배운 줄 알았는데 두 번째 폭풍은 미국 유학 때 불어왔습니다. 8년 내내 돈이 없었고 8년 내내 무능하고 온 가족이 아프고 매일 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통해 제가 얼마나 많은 율법으로 나를 옭아매고 다른 사람을 판단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저한테 짐을 주곤 했습니다. ‘너 이거밖에 못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겠어? 그 정도 기도로 하나님이 쓰시겠어? 이러면 하나님이 싫어하실 거야.’ 그런데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는 이미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제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바보 같고 실패하고 낙심하고 한심한 저라도 늘 사랑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는 음성 덕에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8년 동안 화내고 소리 지르고 울고 하나님께 대들다가 영혼이 박살나고 무너졌더니 이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년 중 거의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마음대로 안 돼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성숙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짧았지만 가장 강렬했던 폭풍은 귀국 후에 남의 교회 지하실에서 해도 별도 없는 망망대해 같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목회하고 싶다던 저의 기만을 벗겨내시고 진짜는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자기 사랑을 보게 하셨습니다. 큰 목회하고 싶던 마음도 내려놓고, 끝없는 불안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심도 경험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기적처럼 교회를 2주 만에 시작하게 하셨고 갑자기 몇 억을 주셔서 이전했고 결국 이 장소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큼직한 세 번의 폭풍 말고 작은 비바람은 셀 수도 없습니다.


이 폭풍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기복적이고 율법적으로, 자신도 용납하지 못하니까 남도 용납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존하지 못하니까 돈을 무서워하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고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폭풍우를 만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여러분을 변화시킨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폭풍우를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는 성장하고 변화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의 경배를 올려드릴 수 있게 됩니다.


폭풍을 아직 만나지 않았다면 미리 두려워하시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지금 폭풍 가운데 있다면 이 과정을 믿음으로 인내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해 달라고 매일을 잘 버티시면 됩니다. 이 폭풍우를 통해 바울과 같은 믿음의 반응을 하는 하늘사랑교회 성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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