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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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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And by common confession great is the mystery of godliness: He who was revealed in the flesh, Was vindicated in the Spirit, Beheld by angels, Proclaimed among the nations, Believed on in the world, Taken up in glory.”

     

왜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감독과 집사의 직분은 교회를 섬기는 일인데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성도들이 섬길 교회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우리는 그의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섬기는 일은 예수님의 몸을 섬기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는 높고 귀한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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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Deacons likewise [must be] men of dignity, not double-tongued, or addicted to much wine or fond of sordid gain,”

     

교회를 섬기는 대표적인 직분인 집사는 ‘섬기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때 집사는 철저한 기준에 부합한 소수의 사람들만을 세워서 성도들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집사는 섬김의 직분이기 보다는 나이든 성도의 호칭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섬겨야 할 사람들이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분을 맡은 자는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교회를 섬기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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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3: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If anyone sets his heart on being an overseer, he desires a noble task.”


초대 교회 때의 감독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나 장로의 직분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세를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분이 생기게 되지만 이 직분으로 예수님의 섬김을 교회 공동체에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삶을 요구하시지만 특별히 교회를 섬기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을 더욱 더 요구하십니다. 진정한 섬김은 자신을 높이고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는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자기를 부인한 자들이 교회를 섬기게 될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적용질문: “당신은 십자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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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But [women] shall be preserved through the bearing of children if they continue in faith and love and sanctity with self-restraint.”

     

하와 이래 모든 여자는 출산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통해 그들을 죄가 가져온 고통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고통은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이미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의 열매를 보이고 있는 성도라고 하더라도 인생의 고통을 통해서 구원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삶에서 경험되는 모든 고통은 예수님만을 갈망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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