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26 21.1-16 파멸로 인도하는 탐욕
2026년 8월 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탐욕과 욕심 두 단어는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음식 욕심이 있어"라고 말하지만 "음식에 탐욕이 있어"라고는 표현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망하게 된 경우의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뉘앙스만 보아도 탐욕이 욕심보다 훨씬 강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탐욕은 실제적인 행동으로까지 연결되고 또한 통제하지 못할 경우 자신과 주변 사람들까지 파괴합니다. 본문의 아합은 욕심보다는 탐욕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성경은 왜 다른 사람들을 파괴하고 탐욕에 사로잡힌 아합에 대해 이렇게 길게 묘사하고 있나요?
아합이 보이는 탐욕이 우리 안에서도 자주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성도나 심지어 목사 중에도 탐욕이 통제되지 않을 때, 자신과 주변인을 파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성경은 성도 안에 있는 탐욕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 어떻게 파괴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고 아합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 사람이 아닌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탐욕은 어떻게 파멸로 인도하나요?
1.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게 합니다. vv.1-10
그렇다면 탐욕은 어떻게 파멸로 인도하나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게 합니다. 본문 1절에 반대되는 두 가지 장소가 나옵니다.
[1] …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의 왕궁은 사마리아 성의 왕궁이 아니라, 사마리아 성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이스르엘 평야에 있는 별장을 말합니다. 이것은 왕의 쾌락과 사치의 별장입니다. 하나가 있는데 또 다른 것을 누리고자 한다는 것은 욕망이 제어되지 않고 자꾸 확장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아합의 별장과 전혀 반대되는 장소인 나봇의 포도원은 그 이름에 중요한 영적 단서가 있습니다. 이스르엘은 풍요로운 평원으로 '하나님이 씨를 뿌리시다'라는 뜻이며 나봇은 '열매'입니다. 즉 이스르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은 '하나님이 씨 뿌리신 곳에 난 열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합이 눈앞에 있는 포도밭을 탐내어 2절에 거래를 요청합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포도원을 탐낸 이유는 가까워서입니다. 그냥 빼앗은 것은 아니고 체면이 있었는지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돈이 좋다면 돈을 주겠다고 하니 세상적 입장에서는 괜찮아 보이는 거래입니다. 그러나 나봇이 거절합니다. 3절에 이유가 무엇인가요?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왕을 위시로 많은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난 것처럼 보였기에 아합은 상대가 당연히 거래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타락한 이스라엘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봇이 땅을 팔지 않으려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입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도 땅을 사고팔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는 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노력해서 얻거나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며, 그것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약 사람들은 이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아무도 안 지켰습니다. 특히 세속화된 북이스라엘에서 율법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지식하고 따분하고 손해 보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합도 당연히 돈으로 거래를 제안했는데 나봇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아합과 나봇의 세계관이 충돌합니다. 어떤 선택의 근원에는 각자의 세계관이 있습니다. 아합의 세계관은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의 논리이지만 나봇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셨으면 안 돼"라는 세계관으로 하나님 뜻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손해를 보고 위협을 당하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아마 큰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전에 수십만의 아람 군대를 하나님이 물리치신 것, 엘리야가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내리게 한 기적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계신지는 알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4a] …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
한글 성경은 근심하고 답답하다고 했지만 영어로는 'depressed and angry'입니다. 마음대로 하지 못해서 좌절하고 화가 나는 것은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20: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
하나님이 "내 명령을 안 듣고 저 아람 왕을 살려줬으니 넌 죽을 거야"라고 하셨더니 회개하기는커녕 화를 냅니다. 하나님이나 나봇이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을 성숙하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삐지고 토라집니다. 4절 하반절에
[4b] …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보통 어린 아이들이 "밥 안 먹어" 화내고 방문 닫고 들어갑니다. 아마 부모가 진짜 밥을 굶기는 집이라면 아이도 그렇게 하지 못할 텐데 부모가 백기를 들 것을 아니까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이 와서 안부를 살피자 이세벨에게 거짓말을 보태 고자질을 합니다.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나봇이 포도원을 팔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 율법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쏙 빼고 나봇을 나쁜 사람으로 매도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별장 앞에 있는 포도원을 더 갖지 못해 삐지고 굶는 아합이 바로 모든 인간을 대표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며 살아갑니다. 겉으로 선을 못 넘으면 생각으로라도 넘습니다. 생각으로도 못 넘고 자기 안에 분노가 계속 쌓이면 우울증이 됩니다. 그래서 우울증을 '분노 억제증'이라고도 부릅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 모든 인간을 이렇게 부릅니다.
롬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인간은 사실 똑같습니다. 사실 아합은 하나님이 계속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도 거부하다가 멸망으로 가는 대표적 탐욕적인 인간의 모형일 뿐, 우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만 끝까지 모르는 일입니다. 은혜가 우리를 붙들어 가도록 겸손하게 하나님 은혜 앞에 몸부림 쳐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으로는 의를 얻을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율법으로 정해 놓으신 기준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세한 조항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어라, 먹지 말라, 안식일에는 어떻게 해라, 하지 말라..."는 조항이 613개나 됩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줄인 것이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도 줄여보면 두 개입니다. 1부터 4계명까지를 ‘하나님과의 관계의 계명’ 5부터 10계명까지를 ‘인간관계의 계명’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곧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실제로 율법이라는 선은 다른 말로 "사랑의 기준을 지키라"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다른 율법을 안 주셨습니다. 사랑하라 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욕심이 없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욕심이 있는데 문제는 욕심이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자꾸 선을 넘게 됩니다.
하나님이 "넘으면 안 돼" 라고 하신 사랑의 선을 넘으면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통제를 잃어버리고 선을 넘어가게 되면 자기와 다른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선을 넘어간 상태를 성경 ‘불의'라고 부르고 선을 완벽하게 지킬 때의 상태를 '의'라고 부릅니다.
의로우려면 완벽한 사랑의 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늘 욕심이 있고, 그래서 불의합니다.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완벽한 사랑을 보이신 예수의 사랑을 덧입어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의해 의로운 존재가 되었기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여전히 내 욕심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공존합니다.
아합은 하나님이 계신 것도 알고 하나님이 무서우신 분이라는 것도 알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형태와 지식은 있었는데 그것이 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믿음으로 발휘되지 못하면 결국 탐욕이 그를 삼켜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탐욕이 우리를 어떻게 집어삼킬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작은 욕심이야 누구나 있지만 그것이 선을 넘으면서 파괴적인 결과를 미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렇다면 욕심과 탐욕을 어떻게 분간하나요? 질문을 던져보시면 압니다.
욕심은 생각날 때도 있지만 또 사라집니다. 그러나 탐욕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을 넘고 싶고 자꾸 상상하고 유혹을 받으면 실제로 선을 넘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은 구약과 같은 율법을 기준으로 삼으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기준은 있습니다. "교회 몇 년 쉬어볼까?" "성경 좀 안 읽으면 어때? "가정을 뭐 꼭 지켜야 돼?" 이런 생각들은 선을 넘은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뜻대로 안 될 때 좌절하고 분노하는가입니다. 원하는 것을 못 하게 되었다고 분노가 조절이 안 된다면 여러분 안의 탐욕이 욕심을 넘어선 상태로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과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내는가입니다. 아합의 거짓말도 "나봇이 날 죽이려고 했다"라는 식의 전혀 엉뚱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야 해서 팔고 싶어도 못 팝니다" 이런 의미였는데 "그놈이 안 판다고 했어"라며 자기에게 유리하게 살짝 비트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욕심이 있지만 위의 질문들에 대한 진단이 욕심을 넘은 탐욕이라면 기도하고 하나님께 엎드리셔야 합니다.
탐욕은 어떻게 파멸로 인도하나요?
2. 악한 수단으로 타인을 파괴하게 합니다. vv.7-16
두 번째로 탐욕은 어떻게 파멸로 인도하나요? 악한 수단으로 타인을 파괴하게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사실 한 세트입니다. 부부로 살다 보면 비슷해집니다. 아합이 여리고 유약해 보이지만 사실 외적으로 표출된 욕망의 화신인 이세벨을 거느리고 있는 것입니다. 밥 안 먹고 시위를 하는 것도 이세벨에게 대신 일을 시키는 유도입니다. 7절 상반절에 이세벨이 등판합니다.
[7a]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네가 그러고도 왕이야?" 그리고 하반절에 이어갑니다.
[7b] …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어떤 사람은 악한 생각을 실행할 능력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먼저 장로들을 동원합니다.
[8]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장로 제도는 왕의 통치가 작은 마을까지 다 미치지 못하니 각 지역의 종교적, 관습적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입니다. 이세벨이 사용한 다른 도구는 금식입니다. 9절에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
금식 역시 심각한 죄의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하게 긍휼을 구하라는 의도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수단은 하나님이 주신 엄중한 율법입니다. 10절에
[10]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이세벨이 사용한 방법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좋은 도구들입니다. 장로들을 통해 백성을 다스리고, 금식을 통해 죄를 회개하고, 엄중한 율법으로 선을 넘지 않고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지 못하게 주신 이 제도들을 사용해 나봇을 죽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지시에 따랐고 결국 나봇이 죽게 됩니다. 13절입니다.
[13] … 무리가 나봇을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아합은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이세벨이 뺏은 것이 아니라, 둘이 세트가 되어 만든 탐욕으로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낸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좋은 종교적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지금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 카펫 색깔을 두고 싸우다가 빨강파, 파팡파로 교회가 쪼개졌다는 일화가 신학교 교재에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써놓은 줄 알았는데 목사가 되어 많은 교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나쁜 것으로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교회에 술집을 만들자는 의견 등으로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각자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서로를 재단하고 비판하다 교회가 깨지고 망가집니다. 모두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많이 주셨는데 탐욕에 사로잡히면 그 좋은 것마저 남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한 사람을 죽인 뒤 포도밭을 뺏으려고 내려가는 이 모습이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인데 이 아합을 잘 설명하는 구절이 시편에 있습니다. 10편 3절입니다.
시 10:3 …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탐욕 좀 부렸다고 그것이 여호와에 대한 배반이 되나요? 그렇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골 3:5 …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욕의 본질 자체가 바로 우상 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하나님 말고 다른 힘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눈에 안 보이고 영적이며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을 하고도 자기도 모른 채 그 힘에 사로잡혀 끌려가는 것입니다.
혹시 탐욕이 여러분을 주관하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도 여러분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 능력, 건강, 일할 수 있는 힘, 돈, 지위 등 좋은 것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내 미래를 보장하고 내 명예를 위하고 내 쾌락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면 아합만큼 찌질하고 악한 모습이 아니어도 여러분 역시 이미 탐욕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세상에서 바람피우는 사람들은 다 시간 되고 체력 되고 돈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쾌락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탐욕이 여러분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면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무엇을 하시나요? 성경을 더 보고 기도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어떻게 즐거울지만을 생각하시나요? "올해는 해외를 네 번밖에 못 갔는데 내년에는 6번으로 늘려야지" 생각하고 계신다면, 탐욕이 여러분을 이미 집어삼킨 상태일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요? 우리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기에 하나님이 몇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첫째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처럼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하나님, 탐욕이 저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십자가에 나아갑니다. 불쌍히 여겨주세요" 기도해야 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두 번째로는 여러분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돈을 왜 마음대로 쓰시나요? 여러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학하는 동안 몇만 원이 넘어가는 돈은 마음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10만 원쯤 넘는 돈을 내 마음대로 썼다가 하나님이 그 다음 돈을 안 주실까 봐, 사도 되나요? 안 사야 되나요? 매번 기도했습니다. 그 돈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월급이 들어오니까 내 돈이라는 마음이 많이 들긴 하지만 요즘도 큰 돈을 쓸때는 기도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살텐데 갈라디아서는 내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
여러분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욕망이 주인이 되면 망하는 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자꾸 기억하시며 주인의 말씀을 듣고자 몸부림쳐야 합니다.
세 번째 방법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구절 바로 다음의 25절에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제가 옛날부터 영어 번역을 좋아했는데, 'keep in step with' 쉽게 말하면 성령과 발을 맞춘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이 길이 맞나요? 내 욕망을 위한 길은 아닌가요? 가르쳐 주세요"라고 듣고자 하면, 하나님이 한 걸음씩 가르쳐 주시며 인도해 나가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여러분의 욕망보다 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기쁨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맛있는 거 먹으면 좋고, 좋아하는 거 사면 좋지만 그런 기쁨은 공허해서 끊임없이 목마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을 행한 기쁨은 영혼을 가득 채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입니다.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일들을 맛보기 시작하면, 하찮은 것을 쫓는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침 이번 주에 저희가 3년 전 부활절 헌금 1,800만 원으로 내시경과 시뮬레이터를 사서 보냈던 캄보디아 김경중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제 제자였던 이 친구는 내시경 의사였는데 왜 네 명의 딸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갔는지 아직도 의아해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여름에 제주도에서 세계 기독 의료인 대회가 열렸고, 누군가가 전액을 후원해 주셔서 캄보이아에서 함께 일하는 33명의 레지던트와 인턴들을 데리고 참여했다고 합니다.
해외에 가는 기회이니 예수 안 믿는 친구들도 오겠다고 하고 초심자 5명도 와서 모두 세계 기독 의료인 대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자기가 초반에 캄보디아어도 못해서 사영리를 더듬더듬 외워서 전했는데 아이들이 예수 믿겠다고 하고, 모임에 나오면서 리더가 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일하시는 기적이 너무 흥분되고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영리와 일상생활 언어로는 성경을 가르치지 못해서 요즘 한계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쁜 의사이자 교수이자 네 아이의 아빠로서 엄청 바쁜 일상에서 잠을 줄여가며 밤마다 코딩을 배우기 시작해서 캄보디아어와 성경을 통역하고 번역하는 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잠을 안 자고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교사도 선교사지만 더 대단한 것은 이 와이프입니다. 이 분은 사실 선교사랑 결혼한 것이 아니라 의사랑 결혼했는데 어느 날 캄보디아 간다고 하자 따라간 것입니다. 이번에도 같이 나올 수 있었는데 자기는 캄보디아가 좋고 학교에서 반짝반짝하는 아이들에게 노래와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굳이 한국에 갈 이유가 없다고 해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봐도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오히려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캄보디아의 영혼을 만나게 해 주셨다는 것이 기뻐서, 여기에 놓고 간 것들이 희생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다 선교사가 될 수는 없지만 내 알량한 탐욕을 채우고자 살아가는 부끄러운 모습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 욕망만 채우는 저질적인 아합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좋은 기회와 재능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도록, 탐욕에서 벗어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