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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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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강해 10 3.5-9 우연, 점술, 부림절

2025년 10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장우현 목사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지난 몇 달에 걸쳐서 에스더 6장을 자세히 봤는데요,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6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의 핵심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가장 좋은 때에, 삶에 우연한 상황들과 말씀으로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구원과 심판이란, 세상을 영광스럽게 여기던 나의 옛자아가 심판 받고, 오직 하나님만을 영광스럽게 여기게 되는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 6장은 하나님 섭리의 목적과, 시기와 방법이 다 나온 성경에서도 보기 드문 보석 같은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에스더가 기록된 중요한 목적은요, 그런 하나님의 섭리로 귀환한 백성들이 지키던 부림절의 기원을 기억하고 감사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에 이 에스더서가 읽혀졌습니다.


그런데 이 부림절에서 히브리어 부림의 의미는 제비뽑기입니다. 그래서 이 부림절을 쉽게 번역하면 '제비뽑기날'입니다. 에스더의 희생과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그 거룩한 날을 왜 하나님의 날이나 구원의 날이라고 하지 않고 제비뽑기날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일까요?


에스더 3장에서 하만은 유대인들을 멸망시키기 좋은 날을 얻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하는 점을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를 통해 오히려 하만과 그 무리가 멸망의 심판을 받는 역전의 날이 됐기 때문에 그 날을 제비뽑기날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제비뽑기도 잘 생각해보면요, 여러개의 제비 중에 무작위로 하나를 뽑아서 운 좋은 날을 정한다는 건데요, 결국 우연히 특정 제비가 뽑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비뽑기 뿐 아니라 점술이라는 것 자체가 인생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나에게 나쁘게 작용하지 않고 운이 좋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제비뽑기 같은 우연한 결과가 나오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그 운세를 통제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 우연과 관련이 깊습니다.


저보다 인생 경험이 많으신 성도님들이 더 잘 아시겠지만, 아무리 내가 노력하고, 계획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며 신중히 결정하더라도, 갑작스럽고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그 결과를 나에게 좋게 하려고 그 운세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바로 점술인거에요.


결국 그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의 운세를 통제하려는 점술과,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섭리하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그 우연히 뽑히는 제비뽑기라는 의미의 부림절은 이 우연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에스더서에서 6장 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 속에서 우연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그렇게나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6장을 통해 우연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살펴본 이후에, 우연과, 3장에서 하만이 본 점술과, 부림절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야,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를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며 통제하려는 죄인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고, 우연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그 관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연과 점술과 부림절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1. 통제의 욕구로부터의 구원입니다.(5-7)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3장에서 하만이 이 점을 본 이유는 유다인들을 전멸시키기에 좋은 날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만이 유다인들을 전멸시키려는 이유는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아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만은 왜 모르개만이 아니라 한 민족을 전멸시키고 싶을 정도로 필요 이상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까요?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영광을 얻길 원했는데, 그 수준이 한 명도 빠짐이 없이 완벽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와 같은 이유로 그걸 거부할 가능성이 있는 민족 전체를 제거해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황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만은 이 유다인들이 믿는 하나님이 자신의 민족을 전멸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그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대로 이루어진다면 자신이 그렇게 완벽하게 쌓아올렸다고 생각되었던 영광이 곧 안개처럼 사라질 허황된 것이 되어버리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자신의 민족을 전멸시키겠다고 하신 하나님과 그 약속마저도 통제해서 자신의 완벽하고 영원한 영광을 방해하려는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만이 자기 뜻을 이루려는 완벽주의적인 통제의 욕구가 필요이상의 분노와 하나님마저 통제하려는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제국의 2인자라고 할지라도 제국 전체에 사는 한 민족을 말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인자인 왕이 허락을 안할 가능성도 있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유대인들이 반란이 일으켜서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구요. 통제할 수 없이 우연히 일어날 수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사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국가 통제력이 강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완벽하게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쉽지 않은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마저도 그런 영역을 보고 ‘아 그건 신의 영역이야’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의 영역까지 통제하려는 시도가 바로 점술입니다. 이 점술이 정말 신기한게요, 그 불확실하고 우연히 벌어지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우연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하만이 했던 제비뽑기도 우연히 어떤 제비가 뽑힌거구요, 그렇게 뽑힌 그 날에 예측하지 못한 어떤 일이 우연히 일어날지라도 나에게 운이 좋은 날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 때문에 한국의 무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칼이 싸우는 용도가 아니죠. 무당이 그 신령하다고 하는 칼을 바닥에 던져서 우연히 가리키는 방향으로 점을 쳤습니다. 더 과거에는 조개껍데기나 뼈에 글씨를 쓰고 불에 구우면 우연히 깨지는 모양으로 점을 봤구요, 명절에 하는 윳놀이의 그 우연한 결과로 윳점이라는 것도 봤습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이 우연 속에서 신이 섭리하신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특별히 뛰어났던 사람들이 점쟁이, 무당, 역술인, 아니면 국가 공인 점술인인 관상감이라는 직책을 맡은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날씨를 통제하려고 하거나, 권력을 얻거나 강화하기 위해 어떤 예측이 어려운 선택을 하려고 하거나, 나에게 유익이 되거나 해가 되는 사람을 가려내려거나, 조금이라도 운세가 좋은 날을 얻어내려고 하는, 이 통제의 욕구가 끝까지 가서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까지 통제하려는 것이 점술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어찌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우연한 상황을 통해 섭리하시며 그 뜻을 이루시고, 그 신의 영역까지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구를 뛰어넘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 신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정말 신기한게요,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도구로 우림과 둠밈이라는 제비뽑기 방식의 돌이 있었구요, 그게 제사장의 옷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돌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서 우연히 나오는 결과를 보고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지, 멈추라 하시는지를 알아봤던 것입니다.


결국 점술이 이런 하나님까지 통제해서 하나님의 뜻을 꺾고, 자기 뜻을 이루려는 반역적인 시도이기 때문에 점을 보는 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요, 그렇게 통제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원하는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필요 이상의 분노가 쌓이거나 우울해지면서 감정 기복이 심하구요, 그런 사람일수록 점술에 쉽게 빠져들면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아니 평소에 점술 같은거 미신이라고 거들떠 보지 않던 사람도요,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대로 일이 안풀리면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운세를 보거나, 부적을 지닌다거나, 아니면 운을 좋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의 물건을 지니거나, 어떤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날두라는 축구 선수는 경기장에 입장할 때 오른발로 먼저 밟고 들어가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합니다. 메시라는 선수는 항상 왼쪽 축구화부터 신는다고 합니다. 푸이그라는 야구선수는 경기에 나설 때 방망이를 혀로 핥아야 홈런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선수는 경기 전에 치킨을 먹어야 더 잘 쳐진다고 생각해서 별명이 치킨맨이래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운을 좋게하기 위한 행동들을 점술이라고 하지 않고 집중력을 높이는 루틴이라고 표현하거나 징크스를 없애는 행동이라고 현대식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징크스라는 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행운과 불행을 통제하는 점을 치는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렇게 문명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점을 보러 점집에 가지 않더라도, 그렇게 점술에 의존해 하나님마저도 통제하려는 통제의 욕구를 발산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가까운 관계인 배우자나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때 모두에게 지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나타났던 문제가 아내는 남편을 다스리려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려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를 받는게 아니라 내가 상대방과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 통제의 욕구라는 죄의 근원을 보여주는거에요.


그런데 통제의 욕구가 강력한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만 힘들 것 같지만, 그 사람도 고통스럽습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사람도, 상황도, 인생도, 하나님도 통제가 되지 않으니까 분노와 우울과 실패감과, 자꾸 자기 통제에서 벗어나는 상황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깊이 잠겨있거든요. 그 아우라가 항상 자신과 이웃을 뒤덮습니다.


사실 이 하만도 제국의 2인자로써 엄청 기세 등등하고, 돈도 많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사는 것 같으니까 행복할 것 같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삶의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서 보면요, 그냥 소박하게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감사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성도들까지도, 이 하만과 같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하나님마저 통제하려는 주술적이고 반역적인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희를 그 자리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날을 부림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에스더서가요, 단순히 하만이라는 나쁜 사람이 심판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하는게 아닙니다. 결국 저희 안에 있는 하만이 심판을 받아서 신의 영역까지 통제하려던 욕구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그 욕구와 두려움으로 인해 지옥 같은 삶을 살던 나와 이웃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연과, 점술과, 부림절을 통해 하나님이 저희에게 보여주시려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야말로 이렇게 신의 영역을 통제하는 것을 원해서 그렇게 사람들의 관상이나 손금을 봐주는 사람이 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정말 와닿습니다.


제가 중고등 학생 때부터 손금과 관상에 관심이 있었고, 군대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군생활 중에 전역하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말년에 여유가 생겼을 때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더 이상 손금이나 관상을 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군대 전역을 하고 나면 다음해부터 일년에 2박 3일씩 4년간 예비군 훈련을 받습니다. 대학 다니면 하루로 끝나는데, 제가 전역하고 도서관 다니면서 공부하느라 휴학중이었거든요. 그래서 2박 3일짜리 예비군 훈련에 갔더니 저에게 점을 봤던 선임이 저를 기억하고 쟤 손금 잘 보는 애다! 그런거에요.


그래가지고 2박 3일동안 예비군 훈련에서도 손금이랑 관상을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독특하게 목숨 걸고 점을 보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자기 이혼하려고 하는데 재혼할 수 있냐고, 재혼하면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냐고.


저는 그 때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라 그 분이 얼마나 마음이 심각하고 어려운 상태인지 공감을 못했었는데요, 이제 결혼 10년차 정도 되니까 그 때 그 분이 왜 그렇게나 저에게 점을 보면서까지 이혼을 고민 했는지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이혼은 하고 싶은데, 과연 자기가 더 좋은 사람은 만날 수 있는지, 아니, 결혼은 다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던거에요. 그런데 그 분이 꽤 높은 선임이라 줄 서 있던 사람들 다 밀치고 와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해병대는 전역하고 나서도 이게 기수가 살아 있거든요.


그래서 손금을 봤더니 인생에 중요한 만남이 세 번이나 있었고,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이 최고라는게 보였어요. 그래서 이혼해도 된다고,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여자가 최고니까 결혼을 하되 세 번째 여자가 생겨서 좋아보여도 절대로 바람피지 말라고 얘기해줬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직 이혼도 안했는데 두 번째 여자를 만나서 되게 잘 맞아서 관계가 좋게 진행중이었나봐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기뻐서 펄쩍펄쩍 뛰더니 이건 복채를 주지 않으면 운이 달아난다고 하면서 저에게 막 돈을 쥐어주는거에요.


그래서 저는 돈 받을려고 이런거 하는거 아니라고 했는데도, 그러면 액운이 낀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고 하면서 막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고 2박 3일 내내 누구랑 계속 통화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문이 또 나서 관심 없던 사람들도 막 줄서고. 훈련 받다가 잠깐 짬만 나면 불러가지고 손금 보고...


그런데 그 분, 결국 자기가 원하는건 정말 강렬한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아니 예비군 훈련에서 만난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냥 취미로 점보는 사람 말에 휘둘리는거에요. 그리고 그 말을 믿고 자기 와 아내의 인생을 원해는대로 통제려는거죠. 자기 미래에 확신이 생기니까 그 때 아내에게 얼마나 함부로 했을까요? 아마 이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그 때는 몰랐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저의 말을 듣고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 통제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정치인들이 자기 앞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점술가를 만나서 그 말을 다 듣잖아요? 그래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게 그 정치인이나 사업가 같지만, 사실 진짜 그걸 통제하는 사람은 그 뒤에 있는 점술인들입니다. 그래서 그 점술인들이 그렇게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는거에요. 그런데 제가 그 짓을 하고 있었던거에요. 이 점술로 사람들 인생을 자기 원하는대로 하도록 부추기고, 저도 사람들 인생을 원하는대로 통제하고.


이 일이 벌써 20여년 된 일인데요, 기억에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 믿고 나서 성경을 보니까, 이게 돌 맞아 죽을 일이더라구요. 그래서 와 점 보다가 돌 맞아 죽어야 했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이렇게 말씀으로 바른 길로 인도하는 목회자로 역전 시켜주셨구나 하고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죄가 들어온 이후에 사람들은요, 자기 인생도 자기가 통제하고, 이웃의 인생도 자기가 통제하려는 욕구를 충족하기위해 살게 됐습니다. 그걸 위해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인 우연의 영역마저도 운의 영역으로 치부하면서 마귀적이고 주술적인 방법으로 통제하려고 하며 사는 것입니다.


저희 역시도 꼭 점집에 가지 않아도, 운세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아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역까지 통제하며, 내 욕구를 만족시키려하며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나와 이웃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바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구원해주셨다는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날이 바로 부림절이구요, 지금 저희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은혜를 기억하는 매일매일이 부림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항상 잊지 않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연과 점술과 부림절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2. 우상숭배로부터의 구원입니다.(5-7)


하만은 점술로 좋은 날짜를 받은 후에 바로 왕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8절입니다.


[8]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유다인들이 제국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며 왕과 나라를 걱정하면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크게 과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왕과 나라가 아닙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사실 이렇게 강력한 통제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가진 것을 잃을 것에 대해 그 통제의 욕구와 같은 강도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보다 자기 욕구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을 더 두려워하는거에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요.


그래서 지금 이 하만도 그렇게 신의 영역까지 통제하려고 점술을 통해 좋은 날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안 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보니까, 왕에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그만큼 크게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거에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자기 뜻을 이룰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만은 큰 돈을 왕에게 주면서까지 그 가능성을 높여줄 제 1인자의 권력마저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결국 하만이 이렇게 돈과 권력에 의존하는 모습 역시도 자기의 욕망, 자기가 원하는 일, 자기 뜻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바로 가능성입니다. 지금 하만은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인 확률을 통제하기 위해 점을 봤는데요, 마찬가지로 그 가능성을 통제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돈으로 권력마저 움켜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점술과 우상숭배는 같은 것입니다.


저희는 똑똑하고, 일 잘하고, 돈 많고 큰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점술인들에게 크게 의존되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욕망이 큰 만큼 큰 두려움이 있구요, 그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 점술 뿐 아니라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숭배에 자신의 인격까지 버리면서 더욱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항상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저렇게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렇게나 더 가지려고 욕심내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싸우고,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저렇게나 싫어하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무속신앙에 의존하지? 이 욕망과 두려움으로 인해 우상숭배를 하는 삶이 사실 영혼이 마귀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주술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점술이라고 하면 점집에 가거나 인터넷 사주팔자를 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 돈, 권력, 성공 같은 것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섭리를 거슬러서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 사로잡힌 주술적인 삶입니다.


결국 그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그토록 이루길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걸 하지 못하거나, 갖지 못하거나, 가진 것을 잃었을 때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한데요, 그게 사람의 능력과 지혜와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섭리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부림절입니다.


특히 이 하만과 같이 주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삶을 추종하다가 그 세상의 포로된 삶을 살던 백성들을 위해 우연한 방법과 말씀으로 구원해주신 날을 구원의 날, 하나님의 날이라고 안부르고, 부림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게 마치 제가 점보던 사람에서 목사 됐잖아요. 그래서 그 구원 받은 날을 하나님의 날, 구원의 날이 아니라 '아 그 점보다가 구원 받은 날. 그날을 점보던 날이라고 부르자.'라고 하면서 그 수치스러운 우상을 영광이라며 쫓던 수치스러운 나를 참된 영광을 쫓는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역전시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역설적인 이름인거에요.


이것이 바로 우연과, 점술과, 부림절의 관계입니다. 에스더서 말씀은 이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빛과 같습니다. 그 빛으로 어두웠던 저희 영혼과 눈을 밝혀서 욕망과 두려움으로 말미암는 주술적 삶을 직시하고, 내가 숭배하던 우상을 발견해 회개하며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섭리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이렇게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와 말씀을 통해 주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구요, 지금도 여전히 감추어졌던 우상들에서 벗어나고 있는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스토리가 참 많은데요, 우리 고등학생 친구들이 수능이 얼마 안남았으니까, 제가 수능보던 때 이야기를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의 도박으로 인해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가 가족 단위의 장남이고, 저도 장남이거든요.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무너진 저희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져서 부모님 빚 다 갚아드리고, 또 집 한 채 장만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구요, 또 저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꿈이자 장래희망이 됐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목표하는 대학이 있었구요, 친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축구하러 운동장 나갔는데, 저는 교실에서 책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초등학생 아이 때부터 집안을 일으키고 누구를 도우려면 월급만 가지고는 안될 것 같아서 사업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인맥이 좋아야 하고, 인맥이 좋으려면 학벌도 좋아야 하고, 좋은 학교에서 경영학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그런 이미지를 가진 학교가 연세대였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얼마나 원했었냐면요, 고등학생 때 돈 있는 친구 부모님들이 자기네 고액 과외 하고 있는데, 저도 같이 하면 학업 분위기도 좋을 것 같고, 같이 서울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요, 돈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어요. 제 목표가 그게 아니었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자기 출신 대학에서 힘이 좀 있으신데, 수시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갈 곳이 따로 있습니다라고 거절했어요. 그리고 친한 친구가 성균관대 수시 논술 보러 가는데 같이 가서 보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요, 저는 준비도 안하고, 그냥 적당히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쓰고 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합격 했고 저는 떨어졌죠.


그정도로 제가 원하는 대학이 굉장히 뚜렸했어요. 그런데 제가 1학년 말부터 게임에 빠지게 되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수능 때 제가 제일 자신 있던 언어영역이 마침 어렵게 나오면서 원하는 대학에 넣을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물론 진짜 실력 있는 친구들은 어려웠어도 다 됐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몇몇 친구들은 재수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집안 형편을 일으키려는 꿈을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달려왔는데, 재수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재수 얘기도 안했습니다. 결국 같이 공부하던 다른 친구들은 재수해서 원하는 곳을 다 갔죠.


그래서 저는 제가 가려던 연세대 신촌캠퍼스는 못가고, 원주캠퍼스에 지원을 해서 다니게 됐는데요, 모든게 만족스럽지 않은거에요. 다들 날씨 좋으면 술 마시고, 날씨 안좋다고 술 마시고, 학기 시작했다고 마시고, 끝났다고 마시고, 시험 보기 전에 마셔야 된다고 마시고 시험 끝났다고 마시고. 좋은 인맥을 만드는 건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몸이 약해서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런 모습들에 강한 정죄감이 들어서 저는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기숙사와 도서관에서만 1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못다니겠어서 휴학을 했는데요, 그 때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 침대에만 누워서 몇 달을 지냈습니다. 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는 두려움과 우울감이 뒤늦게 터진거죠.


그러니까 부모님이 걱정 하셔서 빚을 내셔서 중국에 한 달 배낭여행을 보내주셨는데요, 좋은 경험이었지만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때 해병대에 지원을 했습니다. 이런 나를 이겨보려구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 될 때 나누겠지만, 해병대 생활도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만 두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역하고 1년을 더 휴학 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 하다가 복학했는데, 여전히 제 자신이 못마땅스러운거에요. 그런데 그 때 무역으로 중국이 뜨고 있어서 중국어나 더 배워보자고 연변과기대에 교환학생을 갔다가 하나님을 믿게 됐는데요, 그 때 모든 것이 역전된 것입니다.


정말 신기한게요, 제가 좋은 꿈을 갖고 있었잖아요. 가정을 일으키고, 효도하고, 남을 돕고. 게다가 다른 친구들은 잘 찾지도 못하는 꿈을 어렸을 때부터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이 정말 컸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에 매이면, 우상숭배이며 죄라는 것을 하나님을 믿으며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어느 동네 출신이냐,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 집안이 어떻느냐, 돈이 많냐 적냐가 아니라, 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게다가요, 제가 믿고 싶어서 믿은게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믿음 뿐 아니라 십자가 길을 따라 살고자 하는 그 열정마저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 강력한 감사와 은혜가 저를 억누르던 우상들을 깨뜨리는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십자가 은혜가 구원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 때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요, 너무나 행복합니다. 제가 관상이나 손금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종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 외삼촌도 집에 무당집을 차렸었고, 이모가 접신하는 것도 봤고, 제 어머니도 이쪽으로 감각이 있으세요. 그래서 그런지 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영적 원리들을 찾고, 나에게 철저하게 적용하고, 사람들에게 그걸로 도움을 주는게 너무나 기쁘고, 저에게 딱 맞습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하게 그 성경 연구가 정말 쉽지 않아서 방황하고 있을 때 김일승 목사님과 하늘사랑교회를 만나게 해주셔서 말씀을 제대로 배우게 해주셨구요, 10여년간 초등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실력을 연마하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제 아이들이 많아서 학원을 보낼 형편이 어려우니까 집에서 직접 문제집을 사서 인터넷 강의를 통해 가르치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영어 문제집을 샀는데, 영어 단어를 짝단어로 배우는거에요. 예를 들어 big의 반댓말은 small이라고 반댓말 짝단어로 배우기도 하고, warm spring이나 hot summer 같이 함께 쓰이는 단어로도 짝을 지어서 그림으로 공부하니까 애들이 재미있어도 하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거에요. 제가 공부할 때는 그런 책이 없었거든요. 그냥 책에 씌인 순서대로 좔좔 외우는거죠.


그런데 그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교회 아이들도 영광과 수치, 온유함과 완고함, 순종과 불순종 같이 짝단어를 묶어서요, 복음적인 성경 스토리 안에서 그걸 가르쳐주니까 애들도 재미있어하고, 저도 준비하는 과정이나 가르치는거나 너무나 좋은거에요. 마치 영어라고 하는 다른 언어를 이해하려면 단어라는 기본부터 배워야 하듯이 이 아이들이 커서 성경을 바르게 묵상하려면 이 복음적인 단어 공부가 정말 도움이 되겠더라구요.


그런데 이건 아이들이 지금당장 막 기도를 쏼라쏼라 하거나, 말씀을 막 달달 외우는 것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합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게 됐을 때 그 효과가 날 수 있는거에요.


그런데 저는 이제, 당장에 성과가 안나와도 괜찮은거에요. 이게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과 그 나라와 다음세대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니까, 당장에 어떤 성과를 지 못해도,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더라도 괜찮아진 것입니다.


그 학벌과 돈과 명예와 남들의 시선과 평가라는 우상숭배로부터 구원을 얻으니까,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한거에요. 우리 중학생 친구들, 그렇다고 해서 뭐, 공부 안하고 게임만 해도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더라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그 은사를 갈고 닦기 위해 공부든, 기술이든 즐겁게 최선을 다 하면, 우상숭배서 벗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참 자유와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학생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 역시 어떤 우상숭배에 사로잡혀 마귀를 섬기는 주술적인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그곳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저희 삶의 우연한 일들을 통해 섭리하고 계시고, 이렇게 말씀으로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그 은혜를 기억하는 부림절인 것입니다.


오늘 이 우연과, 점술과, 부림절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셔서 저희를 통제의 욕구와 우상숭배로부터 구원해주신 은혜의 날들을 기억하시고, 오늘을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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