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58 행 28.30-31 사도행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
2025년 8월 3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을 공부한 지가 16개월이 되었고, 58번 만에 사도행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두 절밖에 안 되지만 이 안에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31절 다시 보시면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것이 사도행전의 주제이자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 기억해야 할 핵심입니다. 사도행전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드러났나요?
1. 성령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드러났나요? 첫 번째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오셔야 권능이 임하고, 그 권능을 통해 할 일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통치자가 누구인가 확실하게 드러내고 그 통치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의 지배를 받고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우리도 똑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세상적으로 잘 사는 걸 보면 그가 죄와 사망의 노예인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임하셔야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 배후의 영적인 것을 볼 수 있고 능력을 받아야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고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심으로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보여주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 아님은 사도행전 4장 31절에 나와 있습니다.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물론 지금은 열심히 기도했다고 모인 곳이 진동하거나 불꽃이 머리에 내리지는 않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그림으로 보여주심으로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확신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진동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것입니다.
권능으로 성령이 임하셨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즉 성령이 임하여 하신 가장 중요한 결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뿐 아니라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시면 또 어떤 일이 있나요? 사도행전 10장 38절에 의하면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케 하시는 그 놀라운 자유와 구원이 일어납니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거룩한 하나님과 마귀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마귀의 통치와 권세가 쫓겨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마치 썩은 고기가 있는 곳에 파리가 날아들듯이 예수를 믿지 않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마귀에게 매인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거품 물고 쓰러지고 아픈 사람만 마귀의 통치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축사와 병 고침은 예수를 믿지 않고는 마귀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일하신 그대로 제자들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6절을 보시면
5: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제자들도 예수님이 행했던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을 함으로, 성령의 통치가 임하면 병든 자, 마귀에 사로잡힌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이 자유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마귀적인 영향력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매 순간 마귀적인 영향력에 유혹받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병들고 정신적으로 고통하는 것도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나 꼭 마귀가 임했다고 병이 드나요? 아닙니다. 이것도 그림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멀쩡한데 영적으로 눈이 멀어 육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욕심을 부리며 그것을 위해 남을 파괴하고 자신도 고통합니다.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마치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고집합니다. 사랑해야 된다, 용서해야 된다,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중풍병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마귀에 매여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성령이 임해야만 영적 매임에서 자유케 되고 온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임했더니 또 어떤 일이 일어나요? 복음이 전파되고 마귀의 권세가 깨어지며 이 과정 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롭고 싶고 믿음을 갖고 기쁘고 싶어도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한 사람이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그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에 이 축복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성령과 함께하며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을 보시면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스데반을 위시한 일곱 집사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성령 충만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노력의 결과가 아닌, 성령이 임하시자 믿음이라는 외적인 결과로 드러나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하나님 나라를 신뢰하며 그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6장 10절을 보시면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스데반은 믿음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지혜도 충만했습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분별하여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이 충만했더니 스데반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의 능력보다 뛰어난 지혜가 발현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13장 52절에는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또한 내적으로 성령이 충만했더니 그 결과로 기쁨 역시 충만하게 넘쳐흘렀습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성령으로 인해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 위해 성령으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드러났나요?
2. 교회의 확장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시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이 또 다른 방법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두 번째로 교회의 확장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데서 일하십니다. 성령은 영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눈에 보이는 육신을 가지고 육신적인 행위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교회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확장시키십니다.
성령이 임하여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제자들로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신 것처럼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 역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2장 38절부터 41절을 보시면
2:38-41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40]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가 교회를 대표해 복음을 선포했더니 삼천 명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초대교회에 권능을 부어주신 본질은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가 확장입니다. 이렇듯 복음을 전할 때마다 수천 명씩 예수 믿는 일만 있으면 좋은데, 복음의 확산에 또 하나의 꼭 필요한 요소는 세상의 박해입니다. 사도행전 8장 1절과 4절을 보시면
8:1, 4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성경에서 성령 충만하다는 형용을 가장 많이 받은 스데반은 사울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볼 때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성도들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이 막아주시지 않았습니다.
저토록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죽는데 나 같은 사람이 죽는다면 하나님이 막아주실까? 아마도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사도 빼고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은혜 충만하고 기도할 때마다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랑하는 것이 좋아서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이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어야 하기에 하나님은 박해를 통해 이들을 흩으셔서 사방에 복음 전할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와 충돌하기 때문에 박해는 필연적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타났던 박해와 고난을 바울의 예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장 19절에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당한 일을 설명합니다.
14:19-22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아까 스데반의 예처럼, 이렇게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돌에 맞아 죽는데 하나님이 놔두시는 것에 낙심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보적인 신앙의 태도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다가 20대 때에 저희 집에 나쁜 일이 일어나자 하나님 안 믿겠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20절, 21절에 죽다 살아난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
박해와 고난, 또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경험하고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을 죽일 때 사용하는 돌은 조약돌이 아닙니다. 두 손으로 들어야 하는 큰 돌로 사람을 낮은 곳에 세운 뒤에 머리부터 터뜨려 죽이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어나는 순간 몸에 있는 멍이랑 상처랑 멀쩡히 치료되었을까요? 핏자국이 흥건하고 찢기고 쓰리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을 텐데 당장 일어나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런 모습을 하고도 오히려 마음이 상한 제자들을 독려하고 위로합니다. 22절입니다.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기 위해 마귀의 권세가 깨져야 되고 세상의 방해를 뛰어넘으며, 박해 가운데도 하나님이 복음의 권능과 능력을 보이시는 것을 나를 보고 믿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겼으니 내 인생에선 나쁜 일 하나도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신앙입니다.
남보다 극심한 고난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도록 예비하신 과정이구나,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마귀적인 권세가 강력하구나 생각하며, 고난 앞에서 낙심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굳건하게 그들의 믿음을 세워줄 수 있는 이런 역사가 바로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시는 방법입니다.
또한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드러냈나요? 교회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물론 학문적으로도 열정으로도 위대했지만 하나님은 그 한 명만 사용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붙이셔서 동역하게 하셨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11장 25절과 26절의 바나바입니다.
11:25-26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스데반을 죽이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바울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사울을 믿어주고, 고향에 숨어 사는 사울을 데려다 자기가 목회하는 곳에서 함께 성도들을 돌보게 하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1년 만에 그들을 보면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붙이셔서 연합하여 사역하게 하시는 것은 지금도 동일합니다. 한 사람만 열심히 한다고 교회인가요? 각자가 역할을 해 내어 교회 전체가 유기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눈만 잘나도 안 되고 손만 잘나도 안 되고 연합할 때에야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할 때 하나님이 더 놀랍게 역사하시는 일들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 또한 연합 사역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16장 4절과 5절을 보시면
16:4-5 [4]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초보자에 불과한 디모데지만 함께 사역에 동참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일하셔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며 확장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사역의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도 교회를 통해서도 한 가지 목적만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임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권력자와 돈이 우리를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임해서 교회가 할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사실 베드로나 제자들도 정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도 예루살렘 성 앞에서까지 그렇게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짖습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이 귀신을 꾸짖고 쫓으실 때 쓰신 강한 단어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수님이 왕이 되시고 한 자리 차지해야 되는데 죽는다고 하시니까 분노한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땠나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엄마의 치맛바람을 통해 청탁을 합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내가 곧 죽는다고 얘기하시는 순간에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보고 화를 내며 이들과 싸웁니다. 자신들도 같은 부탁을 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이들이 선수를 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이 승천한다고 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때입니까?’ 질문합니다. 로마를 물리치고 권력을 잡게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인간은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치 자체보다도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제 안에 제자들과 같은 마음이 너무 많습니다. 저에게 성령을 주셔서 세상 정치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통치를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이랬던 제자들에게 언제 변화가 나타나나요?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더니 그들이 평생 열망했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고 예수만을 전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38절과 39절에서 뭐라고 설교하나요?
2:38-39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것이 바로 성도가 성령을 받아야 할 이유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우리의 모든 관심이 예수와, 예수를 통해 얻게 될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을 열망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질에 따라 자기가 열망하는 것을 추구하며 그게 전부인 양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고 성령이 필요합니다. 물론 생업으로 맡겨진 사명과 일 열심히 하셔야 하지만 세상 살다 보면 예수를 잊어버리게 되니까 교회를 통해 예수 이야기 듣고 함께 기도하며 성령 충만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가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면 전도하는 것 외에도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2장 44절부터 46절을 보시면
2:44-46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바로 하나님이 새로운 가족을 창조해 나십니다. 육적 가족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과 섬김과 헌신을 맛보고 경험하라고 하나님이 새로운 가족을 주셨기에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으로 서로 떡을 떼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마침 오늘까지 방학이 끝나고 다음 주부터 다시 밥을 해 먹고 목장 나눔을 합니다. 밥을 같이 먹는 것은 식구라는 의미입니다. 천 명이 넘어가는 교회는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또 여기서 안 먹으면 굶어 죽을까봐 밥 먹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일주일 내내 밥을 나눌 수는 없지만 한 번이라도 밥 먹으며 서로를 챙기고 사소한 이야기도 하고 관심도 기울이고 기도를 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의 상황에 있을 때 같이 기도할 사람이 얼마나 필요한가요? 짐을 나누고 같이 울고 같이 웃고 함께하기를 연습하고 배워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사랑 가족으로 만나게 하셔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맛볼 아름다운 하나 됨을 맛보게 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사도행전 15장 7절부터 11절을 보시면
15:7-11 [7] …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 하나님이 …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물론 우리도 주변에 예수 모르고 관심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도하고 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과 삶을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가 언젠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위해 사랑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이 예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는 이유입니다. 헌금을 모아 보내고 매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예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 듣고 복음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은 교회 아니면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와 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성령과 교회를 통해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하셔서 세상 가운데 예수가 통치하시고 예수의 품 안에 와야 너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 샘플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육적 가족 외에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랑과 헌신을 하지 않지만 예수를 통해 교회로 모인 사람들이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사랑하고 헌신하고 섬기는 이 모습을 통해 세상은 예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사랑교회가 앞으로도 이런 교회가 되도록 여러분이 기도하고 헌신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하늘 사랑 교회가 5년 후 10년 후에도 성령이 일하시는 교회,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 여러분 또한 그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성도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