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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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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 28 22.1-53 탐욕스러운 자가 받게 되는 심판

2026년 8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몇주째 아합 이야기를 보았지만, 아합의 모든 문제의 시작은 탐욕입니다. 그런데 이 탐욕의 시작은 영적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의 영혼이 공허해져서 그 공허를 채우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영적 반응이 탐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합 이야기는 과거의 한 못된 왕을 역사적으로 보여 주는 기록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죄악의 영향력이 무서운 탐욕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결국 자기와 주변을 파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는 무서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탐욕을 부린 자는 결국 탐욕으로 망하게 됩니다. 3절입니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3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람 왕이 쳐들어왔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으로 이스라엘은 무사했습니다. 그때 아람 왕은 빼앗았던 성읍들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길르앗 라못이라는 중요한 전략적 성읍을 돌려받지 못하자 반드시 빼앗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혼자였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텐데 마침 남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은 상태라 동행을 요청합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4a]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남유다 왕은 왜 아합과 동맹을 맺었나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늘 전쟁 상태였는데 아합의 딸과 여호사밧의 아들이 혼인을 맺었습니다. 북쪽의 아람 군대가 워낙 강력한데, 이스라엘이 남유다와도 싸우며 양쪽에서 전쟁을 벌이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 같아서 남쪽과 평화를 맺고 함께 북쪽을 막자는 마음으로 자기 딸을 시집보낸 것입니다. 그때부터 동맹이 맺어졌고, 이전과는 다른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4절 하반절에서 여호사밧은 이 요청에 승낙합니다.


[4b] …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여호사밧은 성경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으로 등장하지만 이것은 사실 잘못된 연합입니다. 아합은 군사적인 야망으로 연합하기를 원했고, 남유다의 여호사밧도 정략 결혼으로 힘을 합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잘못된 만남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탐욕스러운 자를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탐욕스러운 자는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나요?


탐욕스러운 자는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나요?

1. 진리보다 거짓을 사랑함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진리보다 거짓을 사랑함으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기 때문에, 지금 잘못된 연합을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요청합니다. 5절입니다.


[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아합과의 연합에 대해 먼저 묻지 않은 점은 의아하지만 아무튼 이것만 해도 중요합니다. 여호사밧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이야기에 별것 아닌 조연처럼 등장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을 통해서도 아합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보여 주십니다. 이에 아합이 6절 상반절에 선지자들을 부릅니다.


[6a]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한두 명으로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 사백 명이나 모은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답을 합니다. 6절입니다.


[6b] …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일까요? 아합의 비위를 맞추고, 아합을 기쁘게 함으로 얻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누구를 위한 뜻인가요? 자기와 아합을 위한 뜻입니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대장 노릇을 하는 시드기야라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11절에


[11]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말만으로는 확신이 없어 보일까봐 뿔 모형을 만들어 와서, 이 뿔로 진멸하듯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설파합니다. 성경에서 뿔은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와 강력함을 상징합니다. 그 뿔로 아람 군대를 무찌르겠다고 시각적으로 설득한 것입니다.


일이 잘되고 있는 것 같은데 여호사밧은 다른 선지자를 요청합니다. 지금 아합과 동맹을 맺고는 있지만, 성경이 그를 하나님을 경외했던 세 명의 왕에 표함한 것을 보면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지는 못해도 이들의 거짓말에 대해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7절입니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그런 선지자가 있었지만 이는 아합이 미워하는 자였습니다. 8절입니다.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


아합처럼 탐욕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교회, 가정, 직장, 어디에서든 내가 원하는 말 해 주는 사람만 좋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사람은 미워하고 그에 대해 분노합니다. 탐욕이 가득해서입니다.


정치인 가운데에는 대표적으로 트럼프가 있습니다. 트럼프 주위에는 “트럼프가 하는 모든 일이 100%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탐욕이 가득해서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작년 한 해에만 주식과 코인 투자로 1조 원을 벌었다고 합니다. 대통령을 하면서 자기 욕심은 다 챙깁니다.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신문사이든 기자이든 정치인이든 다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합니다. 아합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합이 좋은 말만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사신도 13절에서 미가야에게 할 말을 알려줍니다.


[13]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그런데 미가야는 아합의 미움을 살 만한 행동을 합니다. 14절입니다.


[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탐욕으로 가득한 아합은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없어서가 아니라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있다면 마치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두뇌 안에서 자아가 형성되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탐구해 나가는 변화의 절정기에 있기에 어떤 말도 거부하면서 무엇이 진짜 나인지를 찾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듣기를 거부한다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가야는 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17절입니다.


[17]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양들은 두려움이 너무 많아서 조금 큰 소리만 나도 아무데로나 도망가 버립니다. 목자 없는 양은 금새 짐승의 먹이가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잃어버리고 도망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인 환상도 이야기합니다. 20절부터 22절 상반절입니다.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a]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 그대로를 환상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나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22절 하반절입니다.


[22b]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미래가 모두 알려졌습니다. 미가야는 예언과 환상을 통해 본 모든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인간은 늘 미래를 알고 싶어 합니다. 70세에 죽는다는 것을 알면, 죽기 전날까지 돈을 모두 써서 0원으로 만들면 되지만, 그런 줄 알고 돈을 다 썼는데 90세까지 살면 낭패입니다.


혹은 내년에 암에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저 살던대로 살고, 술먹고 담배피며 그 날을 맞을 사람이 있나요?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운동할지, 어떻게 건강할지를 고민하고 애쓰며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24절에 오히려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24]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시드기야가 거짓말로 연극이라고 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시드기야도 지금 거짓말하는 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그 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진짜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의 교주들도 “내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에 사로잡혀서 진짜로 믿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힘입니다.


자기가 보고 알고 믿는 것과 전혀 반대되는 말이기 때문에 뺨을 때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있는데 네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27절에 어떤 결론이 나나요?


[27]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하나님께서 미래를 알려 주셨는데 아합은 듣지 않습니다. 탐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늘 거짓에 이끌립니다. 거짓은 달콤하고 가짜 평안과 가짜 미래를 약속합니다. 우리의 본질은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를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우리의 영적인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성경에 전부 기록해 좋으셨습니다. 죄인은 반드시 심판받는 다는 것,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죄악과 무서운 탐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그 나라를 완성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이는 세상은 어떻게 되나요? 사라질 것입니다. 네팔에서 빙하가 무너진 것 같은 자연재해는 점점 심해질 것이고, 인간이 막아낼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입니다. 지구가 그만큼 망가졌고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두려움에 떨기만 할 일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지구의 멸망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예비하고 있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기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인생 가운데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개입하신다고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궁극적으로 하시나요?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셔서 하나님 나라에 데려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아합처럼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땅이 영원할 것처럼 살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우리는 이곳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나요? 아합과 같은 탐욕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를 믿는 자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제가 예전에 만났던 한 선교사님도 그러셨습니다. 그 분은 텍사스에서 엄청 돈을 많이 벌어서 커다란 목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젊어서부터 돈을 벌어 수십만 평의 땅을 사서 말을 타고 다니는 게 꿈이었고 결국에 그것을 이루었지만 막상 꿈을 이루어 보니 허무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사라질텐데, 이것 말고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을 텐데” 생각하다가 목장과 집을 모두 선교 단체에 기부하고 선교사로 나가셨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치 이곳에서 200세, 300세까지 살 것처럼 착각하고 집착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탐욕이 지배하면 우리는 점점 이 땅에 집착하게 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욕망을 만족시켜 줄 말만 듣고, 성경 말씀은 쳐 내기 시작합니다. 심판과 재림과 회개에 대한 권고도 하나도 듣지 않습니다. 탐욕이 얼마나 여러분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다음 질문을 해 보시면 됩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말만 듣고 싶어 하는가?”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미운가?” 자신에게 탐욕이 있는지 자기는 잘 모릅니다. 아합도 “나는 탐욕 때문에 이 일을 한다.”라고는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은 압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아첨하면 기분이 좋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말을 했을 때 마음이 상한다면, 여러분의 욕망이 건드려졌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배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맞습니다. 제가 아합과 같은 탐욕이 가득한 자입니다.”라고 회개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지만 우리가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로 고난을 통해, 또한 때로는 주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은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탐욕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힘들게 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합을 보라. 진리를 거부하고 거짓을 따라가면 심판당하고 멸망하고 가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된다.”


탐욕스러운 자는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나요?

2. 우연을 가장한 섭리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두 번째로, 탐욕스러운 자는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나요? 우연을 가장한 섭리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미가야의 이야기를 들은 아합은 무서워졌는지 꾀를 냅니다. 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0]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본인은 변장을 할 테니 너는 왕복을 입으라는 상황이 너무 뻔한 수작인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여호사밧이 약간 어리숙합니다. 그런데 31절에 아람 왕도 특별한 명을 내립니다.


[31] 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왕복을 입은 자가 여호사밧이라 당연히 그가 표적이었을 것입니다. 32절입니다.


[32]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무엇이라고 소리를 질렀을까요? “나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오.” 급하니까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사들 속에 숨어 있던 아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34절입니다.


[34]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


‘무심코’는 ‘우연히, 어쩌다가’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활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갑옷 솔기에 맞았습니다. 갑옷을 통으로 만들면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쇠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안쪽을 헝겊으로 꿰맸습니다. 이때 갑옷 조각들 사이의 틈을 솔기라고 합니다. 화살이 우연히 날아와 그 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화살이 심장에 맞았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인데 아합은 저녁까지 전쟁터에서 싸웁니다. 갑옷 틈새로 맞은 화살이 움직일 때마다 피가 울컥울컥 솟구쳐 나왔을 것입니다.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미가야의 예언대로 되는구나. 내가 꼼수를 부리고 숨었지만 결국 예언대로 되는구나. 사백 명은 거짓 선지자였구나.” 저녁때까지 피가 흘러 병거에 가득 고이고 아합은 거기에서 죽게 됩니다. 35절에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나요?


[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하나님께서 일부러 오래 살려 놓으신 것입니다. 칼을 휘두르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이 맞았구나. 맞았구나. 맞았구나.” 생각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38절입니다.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이것은 나봇을 죽였을 때 들은 예언입니다. 개들은 성경에서 가장 부정하고 더러운 존재로, 개들이 피를 핥았다는 것은 그 존재가 개처럼 더럽고 부정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인간 중 가장 더러운 자로 창녀를 말하는데 아합이 죽어서도 가장 비참하고 더럽고 추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려고 일부러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임을 기록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우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연히 어떤 곳에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우연히 교회를 만난 그 모든 우연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만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종종 착각합니다. 그러나 섭리란 “인생에 일어나는 여러 구성 요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대로 개입하여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수십 수백개의 톱니바퀴처럼 세상에는 전쟁, 악인, 의인, 재난, 욕심, 악한 영, 천사, 자연재해, 인간의 자유 의지 등이 얽히고 설켜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이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섭리적으로 개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해 나가십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어떤 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섭리’는 항상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일뿐 아니라 나쁜 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우연이 합쳐져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구원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합이 우연히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우연을 통해 “내가 구원 역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어 가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어떤 섭리인가요? 악인도 목적에 맞게 사용한 뒤에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섭리는 항상 구원을 위한 목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은 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일어난 이 일이 궁극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결론지어질지 모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민감하게 뜨면, 가장 나쁜 일처럼 보이는 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만나서 갈등하고 힘들지만 그 일을 통해 내 죄악이 깨어지고 탐욕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섭리입니다. 건강이 나빠서 힘들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의존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섭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생에 닥치는 많은 일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과 사람에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합처럼 반응합니다.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일과 사람 때문에 우리의 탐욕이 드러나고 깎여 간다면,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이 시각이 없다면 우리는 절대로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보셨나요? 평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도 기도하면 집중해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기에 더 미워집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언제 사라지는 줄 아시나요?


그 미운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낸 영혼을 깎아 내셨음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사이에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게 될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형들을 용서한 과정입니다. 자기를 팔아 버린 형들을 보며 “하나님이 당신들을 통하여 우리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나이다.”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섭리에 관해 오해하는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소한 일에 개입하신다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구원과 관계된 일’에서 문제가 생기는 영역을 통제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병을 주신다거나 꼭 특정 회사에 가야 한다거나 오늘 무슨 메뉴를 먹으라고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연약함과 관계들을 허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때로는 그 자유 안에서 반항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떠나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가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큰 톱니바퀴로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즉 우리의 자유도 하나님의 거대한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셔도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서 우리 인생이 탐욕에서 벗어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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