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설교문

공개·회원 1명

주제설교 009 고난 03 욥 42.1-6 고난의 신비

2025년 9월 2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기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인기없는 책 중 하나입니다. 욥기 1장의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중간에 나오는 긴 논쟁을 자세히 읽는 사람은 아주 드물고 모두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욥기가 왜 인기가 없고 어려울까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욥이 잘못을 해서 당한 고난이 아니라 욥과 상관없이 벌어진 고난이기에 우리는 이를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또한 욥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욥기 38장부터 41장 또한 동문서답 같아서 고난에 대한 답이 되기보다는 의문만 증폭시킬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기가 꼭 성경에 존재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도에게 고난은 필연적이며, 고난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모른 척 묻어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고난에 대해 배우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신비에 속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욥의 고난은 사실 욥의 행동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욥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한 개인이 자신이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만을 경외한다고 착각할 수는 있지만, 성경이 이렇게 평가했다면 이는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즉 욥의 고난은 그의 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진짜 이유는 1장 9절과 11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1:9-11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이 고난의 이유를 알았다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탄이 이렇게 이야기했어도 하나님이 거부하셨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왜 욥과는 관계없이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 벌어진 영적 공방으로 죄 없는 욥이 고난을 당해야 하나요?


사실 욥기가 끝날 때까지 욥은 자신에게 임했던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도 고난이 닥치면 이유를 알고자 하지만 알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하나님은 고난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욥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욥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6절입니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잘못한 것도 없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억울하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네 장에 걸친 그 답은 고난과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주를 만들고 세상을 운행하고 계신지, 인간은 알지 못하는 신비와 지혜로 자연 세계를 통치하시는지를 이야기 하셨는데 갑자기 욥이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왜인가요? 욥은 하나님의 영역인 신비를 자기 생각으로 알려고 했던 마음 자체가 교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동급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고 고난도 바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계시로 알게 해 주시는 경우가 있지만 알려주신 일부분만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 전체에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 하나님 나라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난의 이유를 알아야만 받아들이겠다고 떼쓰는 태도 자체가 교만입니다.


신비는 노력으로 아는 영역이 아닌 영적인 것입니다. 이 신비가 드러나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비에 속한 영역을 세상의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하다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합니다. 한 예로 천국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는 집집마다 전자레인지가 있어서 항상 물고기와 빵이 나온다거나, 예수님이 이 땅의 직업을 살려서 목수로서 100층 짜리 집을 짓고 계신다는 식입니다.


빵이 너무 퍽퍽해서 삼킬 수 없을 때 곁들여 먹는 소금에 절인 멸치젓을 영원토록 드시고 싶은가요?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벽돌 쌓고 서까래를 올리고 계실까요? 신비의 세계를 인간의 제한된 생각으로 접근하려고 하니까 이런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신비는 신비로 놔두어야 하고, 혹시 하나님이 계시로 알려주시면 살짝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데 이렇다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고 죄악입니다. 고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 42장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질책하십니다.


욥기 전체는 고난을 인간적인 수준에서 설명하고자 한 욥의 친구들의 해석입니다. 엘리바스는 고난을 인과응보라고 말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망하고 죄 없는 자는 축복을 받는다는 인간적인 사상으로 욥을 보니 ‘너는 죄가 있어서 벌을 받았다’고 결론지은 것입니다.


빌닷은 신앙의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함께하시지 않고 의인과만 함께하시는 분이시니 ‘네게 고난이 임한 것은 네가 악인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소발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의 크기는 죄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말합니다. 욥이 고난을 심하게 당했으니 ‘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죄가 엄청날 것이다’라고 넘겨짚습니다.


마지막으로 엘리후는 이 세 친구들을 다 비난하고는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징계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신비입니다.


우리가 말로 설명하고자 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자체가 잘못된 태도입니다. 신비는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욥은 신비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어떻게 고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어떻게 고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1.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vv.1-3


첫 번째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기 38장부터 41장까지 하나님이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맞습니다 하나님은 계획한 대로 다 이루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네 장을 정리해 보면 세 가지 정도입니다. 첫 째로 하나님은 인간은 불가능한 창조를 하십니다. 38장 4절을 보시면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어떤 인간이 창조에 동참하거나 이해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신비한 창조의 능력으로 세상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세포가 분열되어 생물이 되고 그 동물이 진화되다가 지적인 존재가 되고 시간이 지나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식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39장 1절에


39:1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물론 지금은 자연 다큐멘터리 덕분에 많이 알게 되긴 했습니다만 옛날에는 산 염소가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새끼를 배고 암사슴이 바위틈을 뛰어다니다가 새끼를 낳는 것을 알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또한 하나님은 인간은 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심을 이 예로 말씀하십니다. 41장 1절과 2절을 보시면


41:1-2 [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2]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성경에는 영적 괴물들의 이름이 두 가지가 나오는데 하나는 광야에 사는 베헤못이고 또 하나는 바닷 속에 사는 용인 리워야단입니다. 고대에는 보지는 못했지만 광야와 바다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의 상상한 괴물들을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분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와 권능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한낱 개미에게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 줄 수 없듯, 두 살 꼬마에게 엄마아빠의 계획과 생각을 다 말해 주지 않듯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셔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우리 수준에 따라 조금씩 필요한 부분만 알려주시며 인도해 나가십니다.


사실 고난의 신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원리 자체가 바로 고난이라는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도 신비이며 비밀입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을 보시면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비밀은 secret이 아니라 mystery 즉 신비라고 번역해야 맞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식이 신비로 감추어져서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3년이나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그 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십자가 앞에서 도망가고 베드로는 심지어는 예수님을 꾸짖고 저항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수준입니다. 그 신비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골로새서 2장 2절입니다.


골 2:2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리스도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신비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 구원의 신비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1절은 뭐라고 이야기하나요?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 인생에 고난이 신비로 임할 때 거기서 구원이 일어납니다. 고난의 때에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고난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제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에 행하시는 일로 인해 구원의 결과가 아름답게 나타날 것을 제가 믿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실 때 이 놀라운 신비를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어떻게 고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2. 하나님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vv.4-5


두 번째로 어떻게 고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하나님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이 욥이 하나님께 뭐라고 고백하나요?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제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하나님께 물어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께 자기 인생이 왜 험난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욥이 고통할 때 가장 열망했던 것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거였습니다. 욥기 9장 11절에 보시면


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오셔서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믿을 수 있겠는데, 뭔가 옆에 계시는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왜 고난인가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아서 고난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 기도하라고 하지만 고난 속에서 기도가 더 힘들어집니다.


구약에서 고난을 겪었던 사람들도 동일한 것을 열망했습니다. 엘리야도 완전히 절망해서 죽기를 바랬을 때 열왕기상 19장 4절은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왕상 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 일은 그가 엄청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인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합과 그에게 속한 모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3년 반이나 비가 안 오던 땅에 비를 내리고, 그 영광과 승리의 기쁨으로 비 가운데 달렸던 엘리야인데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낙심이 되었습니다. 자기 덕분에 온 국민이 하나님께 돌아올 줄 알았는데 권력자의 칼 앞에 낙심한 것입니다. 기적을 베풀어도 변화가 없어서 죽고자 할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떡과 물을 먹이시고 만나주십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1절입니다.


왕상 19: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엘리야를 두고 지나가 버리십니다. 구약의 가장 의인이며 가장 탁월한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인간 앞에 직접 나타나실 수 없어서 그냥 지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마가복음 6장 48절을 보시면


막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은 일부러 구약의 하나님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시고자 고통하는 제자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놀라서 예수님이 삐져서 그냥 가려고 했다는 설명은 구약을 모르는 무식한 해석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엘리야도 욥도 지나칠 수밖에 없으셨고, 여기서 예수님은 똑같은 장면을 연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리지 않으시고 지나가려고 흉내만 내신 다음에, ‘내가 바로 너희들이 구약에서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그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욥도 아무리 열망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해결하신 뒤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셨기에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는 옆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로서 옆에서 계속 얘기해 주셨는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셨기 에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없었지만 죄가 해결되어 성령이 보혜사로 오신 것입니다. 그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요?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시면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을 아무거나 알려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 즉 성경 말씀에 기록된 모든 것, 구원의 놀라운 복음을 기억나게 하고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26절 보시면 성령을 이렇게도 부릅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진리의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언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고난의 이유는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고난의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오래 고통스러웠습니다.


2,30년이 지난 뒤에 돌아보니 그 일부분이 해석되는 것도 있고 여전히 궁금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모르는 거는 모르는 채로 놔두고, 꼭 알아야 되는 것이면 알게 될 것이고, 알 필요 없는 것은 영원히 모른 채 있어도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성령님으로 인해 진리를 받아들여 예수를 더 깊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예수를 진짜 믿게 되면 우리가 그렇게 궁금하고 알아야 될 것 같던 것들이 희미해질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만나자 자기 고난이 희미해지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사라졌듯이 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만나고 예수를 진짜 만나 그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을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이나 내 욕심으로 채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회 조회

© 2023 이 홈페이지의 모든 권리는 하늘사랑교회에 귀속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