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18 17.1-24 영적 어두움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
2026년 5월 17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북이스라엘에서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시기는 아합 시대였습니다. 왜냐하면 아합뿐 아니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여호와 신앙을 탄압하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국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합은 마치 꼭두각시 같고 ‘나의 남편이 바알이다’라는 뜻을 지닌 이세벨이 이 나라를 바알 숭배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비단 이 때 뿐 아니라 어두움의 시기는 역사 내내 있었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고 무엇을 하십니까? 본문을 통해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1. 기근을 보내십니다. vv.1-3
첫 번째로 하나님은 기근을 보내십니다. 모두가 ‘바알을 섬겨야 축복받고 부자 되고, 바알이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아합을 대적하는 일에 하나님은 군대를 쓰신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엘리야’의 이름 뜻은 ‘나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신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호칭이었기에 히브리어 ‘엘’은 다른 사람들도 흔히 신이라고 찾던 존재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 자기들의 ‘엘’ 즉, ‘하나님’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라는 이름으로 그들과 정면으로 대결했습니다. 1절입니다.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은 1년에 4개월 정도만 우기입니다. 11, 12월에 이른 비, 3, 4월에 늦은 비가 내릴 뿐 나머지는 황량한 광야입니다. 건기에도 식물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일교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뜨거운 기온이 밤에 급격히 떨어지며 아침이 되면 온 땅에 이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기에 맞춰서 농사를 짓습니다. 우기에 식물이 잘 자라면 그 뒤에는 이슬로 조금씩 자라다 수확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비가 잘 내려야 곡식을 거두고 부유하게 되는데 예측이 불가능하니까 바알 신화가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알이 천둥과 비를 관장한다고 믿었고 풍요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숭배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애굽에는 아프리카 중부로부터 비옥한 흙을 머금은 나일강이 흘러오다 정기적으로 범람을 합니다. 평소에는 시내처럼 흐르다가 일정한 시기가 되면 중부의 밀림의 흙들을 모아다 나일 강변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애굽은 사막 지역인데도 비와 관계없이 땅이 흠뻑 물에 젖고 비료를 얻듯 비옥해졌습니다. 하늘의 날씨에 관계 없이 남보다 열심히 일하고 황소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으니까 이집트에서는 황소를 신으로 숭배한 것입니다. 즉 금송아지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상황이 다릅니다. 우기가 대충 11, 12월쯤이라고 예측은 하지만 기후는 예측이 불가합니다. 아무리 비가 간절해도 비가 안 내리면 망하는 것이기에 이들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만들어낸 것이고, 엘리야가 가뭄을 선포한 것은 바알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바알이 지배한다고 믿는 이 세상을 사실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권세가 없으면 아무리 바알이 세상에 비를 주려고 해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바알이 주는 풍요가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가지면서도 건강이든 자녀의 추복이든 눈에 보이는 유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축복을 확인해야만 하나님을 좋게 여긴다는 것은 다른 말로, 삶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저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어떤 일이 잘 되고 아니고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유일한 한 가지는 우리 마음의 본질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한 분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유익을 얻기 워하는 우리도 바알 숭배와 하나님 숭배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전쟁을 선포했는데 그 일이 정말 일어납니다. 온 세상이 가뭄으로 고통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엘리야가 하나님 말씀을 더 선포하며 이제는 돌아오라고 권고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명령을 하십니다. 2절, 3절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대부분 이스라엘은 요단 서편에 있었고, 요단 동편에는 일부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도 없는 외진 곳에 가서 숨으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 영적 기근을 내리신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 백성에게 가장 무서운 심판은 기근이나 병이나 실패나 가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로 말미암는 영적 기근입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깨달아지지 않고 기도해도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아서 기도하지 않게 되고 예배를 기대하지 않는 것, 하나님 경험이 없으니까 나눔도 힘들어지는 상황, 이것이 영적 기근입니다.
물론 육적으로도 풍요하고 영적으로도 풍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육신이 너무 강해서 육적으로 편안하고 모든 관심을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 쏟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자연스럽게 더 맛있는 것, 더 예쁜 것, 더 좋은 차를 누리기만을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때로 하나님 백성의 삶에 이런 기근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육적 기근을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근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찾아 돌이킬 수 있도록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육적인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아님을 예수님이 시험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신 40일은 구약에서 40년간 광야를 떠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예수님이 대신 통과하신다는 그림입니다. 40은 또한 인생의 숫자입니다. 지금이야 8,90세까지 살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40년 정도가 평균 수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셔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내내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추 파, 마늘, 양파 등의 자극을 원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쾌락을 원하니까 하나님의 공급과 은혜를 자꾸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무엇을 시험합니까? 마태복음 4장 3절에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금식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 열정적으로 기도하지도 못하고 깨어 있으면 음식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저도 7일 금식을 하면 그 뒤로, 열흘, 한달, 40일 금식으로 단계별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7일 이상으로는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허기진 상태에서 마귀가 얼마나 잘 꼬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4절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면 평생 떡을 먹지 않아도 되나요? 아닙니다. 말씀이 인간의 육신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자기 욕망과 육적 필요를 위해 사용하시지 않고 하나님 뜻이면 사용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는 실패하지만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이유입니다.
인간은 육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이어트 한다고 굶으면 더 먹고 싶어지듯, 노력하면 할수록 육신은 더 강력하게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그 정도인데 보이지 않는 더 강한 힘, 쾌락과 안정, 인정과 권력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싸워 이기겠습니까?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지배하시는 통치 안에서만 우리는 이 육신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바알 숭배와의 싸움입니다. 바알 숭배는 인간의 육적인 욕망을 멋지게 포장해 놓은 메커니즘입니다. 몰렉 숭배도 있었지만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식을 바쳐서 원하는 것을 받아낸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듭니다.
그러나 바알 숭배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남편 바알과 부인 아세라가 부부 관계를 해서 그 정액이 흘러내리는 것이 비라고 상상했기에 이들은 풍요의 신으로 불렸고 아세라는 유방이 많으면 12개도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부부 관계를 잘 안 하자 가나안의 처녀들을 아세라 신전에 붙잡아놓고 남자들이 소위 예배하러 가서 춤판을 벌이다가 수천 명이 섹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고 부부 관계를 해서 비가 온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거 참 놀라운 발상입니다. 인간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부자 되어서 남보다 높아지는 것입니다. 쾌락은 내가 일상으로 누리는 것보다 고급지고 특이한 경험입니다. 명품을 좋아하다가도 그것이 보편화되면 더 이상 인기가 없어집니다. 모두 들고 다니는 것은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남은 못 가지는 것을 내가 누리는 그 희소성이 쾌락입니다. 또 남자들이 가장 열망하는 강렬한 쾌락 가운데 하나가 많은 여자들과 성관계 맺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여자들은 초경을 마치고 나면 다 신전에 끌려와서 몇 년 동안 성 노예로 살다가 풀려나곤 했습니다.
이 바알 숭배에서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했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바알 숭배는 횡행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는 좋은 자동차가 10대 있고, 코인을 해서 좋은 집에 살고, 멋진 물건을 가졌다는 둥 자기 삶을 광고하며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본격화되고 구체화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여기에 너무나 유혹을 쉽게 받습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코인 투자 비율이 제일 높다고 합니다. 젊은 층은 대부분 코인을 하는데 이것은 실체가 없고 대박을 노리는 것입니다. 또한 주식 투자자 중 레버리지에 투자하는 비율도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레버리지가 무엇이냐면, 일반적으로 주식은 10만 원을 투자해서 20만 원이 되면 10만 원을 얻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레버리지 투자는 몇 배의 보상을 줍니다. 반대로 떨어질 때도 몇 배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강심장만이 투자할 수 있다고 하는 이 레버리지 투자 전 세계 1위가 한국사람입니다. 성실하게 하루어치씩 일하는 것이 아니라 대박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입니다. 작년까지 다들 의사를 숭배하더니 올해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SK와 삼성이 돈을 많이 벌자 또 이 쪽으로 눈이 번쩍 뜨인 것입니다. 삼성이 SK와 같은 비율로 보상을 받으면 1인당 25억씩이라고 하니 전 직원이 데모를 합니다. 회사가 망가지든 말든 나만 돈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남을 파괴시켜 나의 욕망을 채우려고 혈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바알 숭배의 유혹을 받으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사사기 6장 6절입니다.
삿 6: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사사기에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면 주변 민족들이 압박해서 궁핍이 심해지고 그때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우리가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혹받고 있다면 고통과 궁핍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시편 28편 1절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했나요?
시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언제 이런 고백을 해 보셨나요?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은혜가 있다면 영적으로 풍요한 상태입니다. 예배가 기대가 되고 말씀마다 감동이 되고 하나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면 경제적, 육체적 궁핍 속에서도 여러분은 은혜로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도, 찬양도, 말씀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면 육적 풍요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영적 갈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이클이 또 오게 되나요? 육적 풍요가 줄어들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적 갈망을 불러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말씀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무슨 은혜를 베푸실지를 기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요?
2. 그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vv.4-7
두 번째로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십니까?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그릿 시내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4절입니다.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사람들은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공급받은 것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까마귀 한 마리가 물어올 수 있는 고기라고 해 봐야 한 입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물어와야 합니다. 또한 까마귀는 주로 썩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졌습니다. 부정한 존재가 접촉한 모든 것도 다 부정해집니다. 사실 까마귀가 물어온 모든 음식도 다 부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은 까마귀를 사용하셨나요?
첫 번째는 매일 공급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두 번째는 부정하고 더러운 까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공급자 노릇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숭배한다는 것을 대조하고자 일부러 까마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열왕기상 21장 26절을 보십시오.
왕상 21: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부정하다, 부정하지 않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하나님이 구별하셨을 뿐이지 부정하다고 가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증한 것은 손도 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너무 더러워서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 존재를 가증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그렇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부정한 까마귀보다 더 부정하고 더럽고 가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각한 상태를 까마귀들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또 한 가지, 엘리야를 향한 목적도 있습니다.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시냇가에서 머무는데 이 시내의 이름이 ‘그릿’인데 이는 단절이라는 뜻입니다. 요단강 서쪽으로 대부분의 이스라엘 지파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요단강 동쪽 멀리까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특별한 곳으로 엘리야를 보내셔서 먹이셨습니다.
엘리야는 앞으로 엄청난 영적 전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성장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들이 먹이를 날아오는 것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신 것입니까? 엘리야를 나중에 엄청난 영적 전쟁을 넉넉히 감당해 낼 자로 성장시키신 것입니다. 단절된 곳에 시내 앞에 갔는데 엘리야가 거기서 엄청나게 성장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자로 성장합니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한 두 번이 아니라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가 계속 옵니다. 통장에 매달 돈이 들어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되는데 그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죽을 것 같습니다. 그 영적 믿음을 가르치시고자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지금 왕과 왕비가 엘리야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가르치셨으며, 마지막으로 광야의 영성을 가질 수 있도록 특별한 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시내로 부르시지는 않지만 때로는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나 혼자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계속되지는 않고 때가 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또 다른 훈련과 여정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성장과 변화를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때로는 그릿 시내에서 외롭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고민의 상황으로 몰기도 하시고, 그 안에서 은혜를 사모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의 본질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기에 우리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는 말씀이 잘 안 믿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반복적이고 외진 곳을 훈련장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제 믿음이 크게 자란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심을 경험했을 때였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사야 45장 3절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사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하나님이 고레스에게 주셨던 말씀이지만 제가 돈이 없어서 유학을 미루고 거부할 때 받은 말씀입니다. 가진 돈은 두달치 생활비도 안 되었지만 이 말씀으로 큰 은혜를 받고 정말 주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개월간 이 말씀으로 믿음을 다지고 있었는데 유학 떠나기 2주 전쯤 아버지와 예배를 드리는데 아버지께서도 이 말씀으로 매일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 가서 5만 원, 10만 원 까마귀가 주는 것 같은 돈을 받으며 경험했는데 가끔은 까마귀가 떼로 오는 것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언제입니까? 등록금 내기 전. 아무리 환율이 900원대였어도 등록금을 한번에 천만 원씩 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신실하게 주셨습니다.
몇 년 동안 지속되었냐면 미국에서 8년, 이 교회 개척하기까지 2년, 합쳐서 10년 동안이었습니다. 10년 내내 솔직히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만 안 했지 돈이 어디서 오나, 얼마나 오나, 매일 하늘만 바라보며 10년을 산 것입니다. 돈을 받았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돈의 무서운 공포와 그로 인한 찌질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는데 10년, 아니 그 전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부터 치면 20년이 걸렸다는 사실입니다.
은밀하게 숨은 재물을 주어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하나님인 줄 진짜 믿는지 아닌지를 수백 번 동안 시험하시며 그 말씀을 증명해 내셨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채워졌더니 그제야 제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이루십니다.
까마귀가 아니라 굉장히 훌륭하시고 멋진 분들이 자기의 살을 떼어내 보내신 것입니다. 한두 푼도 아닌데 왜 남인 나에게 이렇게 보내시지, 생각한 적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제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일을 이루어나가시는구나 그제서야 믿게 된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셨나요? 지금은 너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감사한 과정임을 확신합니다. 저도 이 과정을 지나지 않았으면 전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하나님 믿으세요 해놓고 정작 나는 믿지 못하니까 두려워서 불안해 하고 다른 우상을 바라보며 몸부림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는 그때가 영적으로 가장 풍요하고 은혜로운 때입니다. 그릿 시내에서 하나님의 공급과 은혜를 맛보심으로 우리 하나님이 말씀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