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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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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51 행 24.1-27 거짓된 공격에 대한 성도의 반응

2025년 6월 2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미국에서 예전에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예측할 만하게도 첫 번째는 변호사였고, 두 번째가 중고차 판매상, 세 번째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이 직업들의 특징은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는 점입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이 내용을 알고 있었고, 유학생이 변호사나 정치인을 만날 일은 잘 없으니 중고차 판매상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도 자동차를 살 때 결국 뒤통수를 맞고 고장난 차를 사서 큰 손해를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남을 해하면서까지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 직종 외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매일 거짓말을 합니다. 10대 때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고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약속 시간에 늦거나 전화를 안 받는 등의 사소한 거짓말까지 치면 인간은 평균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거짓말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방어로 처벌이나 비난 등 불리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과장으로 부족함을 감추고 더 괜찮은 존재로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세 번째가 자기 이익인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거짓말에 종교적인 성격이 부여되면 이것은 단순히 거짓말이 아니라 비진리로 둔갑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천만 원을 투자하면 6개월 안에 1억 원으로 돌려주겠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천만 원으로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하면 이것은 거짓말을 넘어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이 가능한 거짓말과 비진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하기 어려운 거짓말과 비진리의 혼재로 인해 성도가 유혹이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본문의 바울도 이런 거짓말로 인해 심각한 공격을 당합니다. 지금 바울은 천부장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의 관저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때 바울을 공격하던 대제사장과 무리들이 찾아와 바울을 고소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더둘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 직접 고발할 수도 있었는데 바울을 법정에 세워 치명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변호사를 대동한 것입니다. 5절 상반절을 보시면


[5a]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더둘로는 일단 바울에 대해 전염병같이 악하다는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뒤 정치적인 누명을 더해 바울이 로마에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려던 것입니다. 바울이 정말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였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소동을 일으켰으면서 거짓으로 바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5절 하반절과 6절에는 거짓말에서 비진리로 더 나아갑니다.


[5b] …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려고 하는데 바로 그 예수를 나사렛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성전을 더럽게 한 적이 없는데 성전을 더럽게 하여 종교적 피해를 입혔다는 비진리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말과 비진리의 공격에 바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통해 우리가 세상의 거짓말과 비진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거짓된 공격에 대해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1. 진실된 증거로 거짓과 싸워야 합니다. vv.10-13, 17-20


거짓된 공격에 대해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첫 번째로 진실된 증거로 거짓과 싸워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총독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엄청 거만한 태도를 보입니다. 자신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총독이 죽이라고 하면 죽여야 하는 권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 바울은 고소에 대해 스스로를 변호하겠다고 일어섭니다. 바울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증거들로 거짓 고소를 반박합니다. 11절에 첫 번째 증거는 시간적 증거입니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더둘로는 바울이 많은 곳에서 정치적 소요를 일으켜 그가 로마에 위험한 정치범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12일 전에 예루살렘에 왔고, 도착하고 7일 만에 유대인들이 때리며 죽이려고 하다, 5일 전에 구금되었습니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에 온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을 조직해 봉기를 일으킬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변호는 12절에 나옵니다. 바로 고소한 사람들의 증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고소를 하려면 증인을 데리고 왔었어야 되는데 자신들이 바울을 때려 죽이려고 했으니까 증인이 없지 않냐고 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사실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을 사도행전 21장 29절과 30절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21:29-30 [29]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


자신들이 오해해서 소동을 일으킨 것인데 이 일이 바울 때문에 일어났다고 고소를 하니까 증인을 세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이 소동을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타적이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17절입니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을 가지고 와서


바울은 지금 오랜 가뭄으로 고통하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소아시아의 개척 교회들이 모은 헌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나 이타적인 목적입니까? 게다가 18절을 보시면


[18]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바울은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에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들의 고발이 모두 거짓임을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13절에서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이 확실한 증거들로 인해 저들의 거짓 고발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되었을까요? 성도도 살다 보면 마귀적인 영향력에 노출되며 거짓말과 비진리의 공격에 노출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도 겪어 보았고 여러분도 누명을 쓰고 억울했던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이 악질절인 상황이나 사람을 만나면 사실을 얘기해서 벗어나라고 가르쳐 주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공격의 배후에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존재합니다. 마귀는 단순히 바울이라른 사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무너뜨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하도록 공격한 것입니다. 바울이 선봉에 서 있으니까 바울에게 모든 공격이 집중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면 마귀는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과 비진리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귀의 거짓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고 믿도록 조종해 왔습니다.


이것은 18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발전한 이후 계속 거세지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전의 서구인들은 성경을 잘 몰라도 하나님이 계시고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보편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와 성경은 진리가 아니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지어낸 소설이나 동화라고 믿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에 물론 비유적인 표현도 있고, 시를 통한 묘사도 있습니다. 한 예로 아가서의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 이야기는, 솔로몬 왕이 사랑한 가난한 목동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솔로몬이 상상으로 쓴 사랑시입니다. 그래서 술람미라는 이름 자체가 솔로몬의 여성형으로, 솔로몬이 자신과 똑같은 여자를 상상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도와 연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가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역사적 사실이 많이 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이 사실이라고 믿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몇백만 명이 탈출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00년도 아니고 3,400년 전, 한국으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마을에 정착한 자들도 아니고 광야를 떠돌며 텐트치고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어떤 증거가 남아 있을까요? 그런데도 증거가 없다고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출애굽 사건이 이집트 기록에 없다고 이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파괴되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누가 기록으로 남겨놨겠습니까? 고고학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이 자연 세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전지함과 전능함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수백 만명을 먹이시기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결국 믿음이 없으면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문제는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비진리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사실이 아니어도 메시지는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성경은 홍길동 전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해 버립니다. 홍길동 전도 허구에다 차별하지 말고 모두 평등하게 잘 살자는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못하도록 만드는 엄청난 공격입니다.


사실 저는 예전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이 한 반에 200명씩 수업을 하고 한 학년에 천 명이 다니는 등 학업을 위해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학년에 150명 정도 입학하는 장신대학교 신대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선교사님으로부터 장신대는 자유주의 신학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이사야서의 저자가 두세 명이라고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사야 전반부와 후반부는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같은 인물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단순히 정치적인 상황을 예측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주실 자유와 평화와 구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신대에서는 그 가르침을 기반으로 더 이상 성경을 바탕으로 설교하지 않고 성경은 하나의 참고서이고 다른 이야기들을 섞어 설교하는 것이 주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총신대에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다른 신학교들도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말고 좋은 책들이 많다면 왜 우리가 매주 말씀을 듣고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이 길이며 빛이라고 믿어야 하나요? 신학자들이 너무 똑똑하다 보니 자기 틀에 갇혀서 이런 악한 결과 거짓말을 확산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똑똑하면 이렇게 가고 반대로 무식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단들의 교리를 보면 가끔 헛웃음이 납니다. 예를 들어 신천지는 전도할 때 얼마든지 거짓말을 섞어도 된다고 하며 아예 모략 전도법이라는 이름도 붙였습니다.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을 포섭하는 것이 핵심이며, 대상이 확실히 넘어왔다고 할 때만 이야기를 합니다. 이 모략 전도법의 근거가 된 말씀이 로마서 3장 7절입니다.


롬 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내가 거짓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참되심이 더 드러나게 되었다면 심판을 안 받는다는 겁니다. 그럴듯한가요? 제 제자 중에도 자기 거짓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상황이면 거짓말을 하겠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절만 떼어 읽으면 안 되고 항상 맥락을 파악해야 합니다. 로마서 3장 8절입니다.

롬 3: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구절에 나오는 악을 행해서 선이 이룬다느니, 거짓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느니 등의 말은 이런 일들이 악한 행위라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괄호 안의 내용을 근거 삼아 거짓말해도 된다는 모략 전도법을 세운 무식한 해석입니다. 이것은 헷갈린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비진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중학생도 알만한 내용에 사람들이 빠져들어 분별을 잃는다는 자체가 마귀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이상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지옥은 없고 죽어도 영이 당장 천국에 가지 않으며 모두 잠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천국에 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사도행전 2장 34절입니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


다윗과같이 신실한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면 천국이 없을 것이고, 죽은 사람들은 땅속에서 잠을 자고 있고 마지막 부활 때 여호와의 증인 14만 4천 명이 일어나며 나머지 사람들은 소멸한다고 합니다. 신천지는 뒷 구절을 안 읽었다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은 같은 절도 무시해서 이상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도행전 2장 34절과 35절을 보시면


행 2:34-35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다윗은 살아있는 동안 하늘에 갔다 온 것도 아닌데도 시편에 나오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메시아가 온 세상을 통치하여 모든 원수들을 무찌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다윗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알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앞부분에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부분을 떼어 천국은 없다는 교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들은 이성으로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암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천국이 있다는 구절이 바로 생각나시나요? 이단들은 하루 서너시간씩, 주 3, 4회 공부하는 훈련 과정을 몇 년씩 반복하고 시험을 봐서 순위를 매기기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외우면 사실이 아닌 것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암기해서 남한테 전하거나 반박당할 때 흔들리지 않을 기본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도분들은 들으면 알 것 같은데 설명하려면 알 듯 말 듯 말이 안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 특별히 신천지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잘 설명하실 수 있나요? 듣는 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꾸 얘기해 보고, 자녀에게 복음을 선명하게 설명하고, 묵상하고 경험한 바를 잘 설명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어딘가 아프다가 잘 치료받았으면 그것을 설명하고 자랑하고 홍보하게 되지 않을까요? 자주 말씀을 접해야 거짓과 비진리와 싸우고 여러분 승리하실 수 있습니다.


거짓된 공격에 대해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2. 담대하게 복음의 본질을 선포해야 합니다. vv.14-16, 21


두 번째로 거짓된 공격에 대해 성도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담대하게 복음의 본질을 선포해야 합니다. 1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14a] …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


바울은 자기가 이단으로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으며, 그들이 이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은 이단이 아니라고 운을 띄우고 있습니다. 14절 중반절을 보시면


[14b] …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


자신은 그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과 14절 하반절에 두 번째 증거로


[14c] …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니 자신과 그들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여졌을까요? 가장 중요한 일이 15절에 나옵니다.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 구절만 봐도을 여호와의 증인이 잘못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고 악인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심판 받게 됩니다. 바울이 부활의 소망을 왜 언급하나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유대인과 전혀 다른 길에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생명을 주는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한 자인가요? 이것 때문에 바울이 심문을 받고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기에 21절은 무엇이라 얘기하나요?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저들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구약을 믿지만,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즉 죽음 가운데 있는 상태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안 믿으면 죽음과 멸망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예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과 4절입니다.


고전 15:3-4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대로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을 이루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메시아가 오시면 놀라운 부활이 있을 것을 여러 곳에서 약속합니다. 시편 16편 10절을 보시면


시 16: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예수님은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죄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인류를 고통케 하던 근원인 죄가 해결되어 우리에게 새 생명이 주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있나요? 고린도전서 6장 14절을 보시면


고전 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으면 우리도 살리신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위협과 공격이 있더라도 부활의 소망이 우리를 견고하게 붙드는 힘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죽은 뒤에만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성령으로 예수 믿는 자를 살리시기에 우리 안에 증거가 나타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입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는 그 증거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있기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성령이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었고, 성령이 있기에 열매가 문득문득 나타나고, 성령이 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결과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부활하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믿음의 근거이며 가장 중요한 근간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입니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바울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비진리를 통해 부활에 대한 성도의 신앙과 믿음을 뒤흔들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 늘 흔들립니다. 우리 모두 나이가 많이 들어서 평안히 죽기를 열망하지만 아무도 예측할 수 없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에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저도 지금은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확실하고 좋은 곳인지 열망하게 되었지만, 예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동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20대 때 만났던 한 초등학생을 통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지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교회를 휘젓고 뛰어다니던 초등학생 대운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원인을 모르게 근무력증에 걸려서 처음에는 다리 힘이 없어서 넘어지다 근육이 점점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더 시간이 지나자 목 근육도 마비가 되어 가누지 못하고 팔다리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도 상태면 짜증을 낼만도 한데 깔깔 웃고, 형이라고 부르고, 휠체어를 밀어 달라고 하고 여전히 밝았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길래 주위에 물어보았더니 근무력증이 폐까지 영향을 미쳐서 숨을 못 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폐를 눌러 주어야만 산다고 해서 제가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무것도 소화를 못 시켜서 액체만 먹으면서 엄마가 하루 종일 폐를 눌러 주고 계셨습니다.


힘들어 보이셔서 제가 대신해서 누르는데 세게 눌렀다가 앙상한 뼈가 부러질 것 같고, 약하게 누르면 내려가지 않아서 힘을 조절하는 데만 식은땀이 나서 애를 먹었습니다. 사실 제가 위로도 하고 기도도 해주려고 갔는데 죽음이 임박한 모습을 보자 너무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대운이가 눈치 챘는지 생글생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나 곧 죽을 건데 걱정하지 마. 나 죽으면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갈 거야. 여기서는 뛰지 못했는데 하늘나라 가면 뛰어놀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나 때문에 우리 가족도 힘들지 않고 울지 않을 거야. 모두 모두 언젠가 올 거잖아.’


사실 그날 아이가 가진 천국에 대한 확고한 소망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그날 써놓은 일기가 있습니다. 그 즈음에 제가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짜증과 불평이 많았던 것 시기였는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꼬마 아이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난 정말 좋은 데 갈 거야. 난 행복해’라고 하는데 저는 돈이 없고 몸이 힘들어서 불평하던 모습을 회개한 기록이 있습니다.


대운이는 그렇게 얼마를 더 살다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어린 아이도 이런 반응을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능력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다 내려놓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죽음 앞에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 소망으로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가며, 소망이 주는 능력으로 세상 사람과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왜 법정에서 소망에 관한 이야기를 했나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에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하고, 총독이 선고를 내려 죽이려 해도 자신은 두렵지 않다는 믿음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 소망으로 이 땅을 담대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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