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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공개·회원 1명

사도행전 강해 48 21.27-40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가 받는 비방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바울이 10년 넘는 기간 동안 선교를 한 뒤에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환영과 감사가 아니라 불안과 불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로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뿔뿔이 흩어진 뒤에 예루살렘 교회에는 이렇다 할 만한 부흥이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박해가 벌어지지 않도록 숨을 죽이며 유대인들과 위험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던 상황에서 바울 때문에 큰 소동이 나자 어떻게든 소동을 잠재우고자 한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에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행세하라고 제안했고, 바울은 복음을 아는 자로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지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주일간의 예식 기간을 가지며 성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성전에 있는 것을 발견한 유대인들이 난동을 일으키며 모든 것이 소용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성경에서 이미 예견된 바입니다. 세상은 천국을 확장하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고 박해하고 비난한다고 마태복음 5장 10절과 11절은 말합니다.


마 5:10-11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의 삶에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 마지막 여덟 번째가 바로 천국을 가진 자는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느 누구보다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한 사람을 통해 교회가 없던 곳에 교회가 생기고 예수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되며 하나님은 그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강력하게 확장된만큼 많은 비난과 공격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어떤 비방을 받나요?

1. 종교의 기초를 뒤흔드는 자라는 비방을 받습니다. vv.27-30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어떤 비방을 받나요? 첫 번째로 종교의 기초를 뒤흔드는 자라는 비방을 받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소아시아에서부터 바울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바울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여러 번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14장 19절입니다.


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바울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이곳까지 찾아와서 바울을 돌로 찍고 죽은 줄 알고 버리고 갔던 자들입니다. 바울을 죽이는 것이 마치 인생의 목적이 된 자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사실 유대인들의 근거지입니다. 초대 교회는 초라해졌고 사도행전 초기의 부흥은 심한 박해로 사라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 있는 유대인들인데 그곳에 바울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들이 무엇을 주장했나요? 28절입니다.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유대인에게 율법과 성전은 그들의 본질입니다. 이들은 생명을 내놓는 마음으로 율법을 대했습니다. 율법을 안 지켜서 나라가 망해 고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안식일을 지키고자 안식일에 적이 쳐들어와도 대항하지 않고 칼에 찔려 죽은 역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성전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기 때문에 더럽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전에서 멀어질수록 더러워지기 때문에 사마리아는 조금 더럽고 이방은 완전 더러운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입구 커다란 돌판에는 여러 언어로 ‘이방인이 이 문을 지나가면 정녕코 죽임을 당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의 오해였습니다. 29절입니다.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바울이 시내에서 에베소 이방인이랑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고는 그가 성전을 더럽혔을까봐 격분한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파괴하려고 했나요? 성전을 없애자고 했나요? 바울은 참된 의미를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나요? 로마서 3장 20절 보시면,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 ‘의’라는 자격을 얻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선 ‘항상’ ‘모든’ 것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불의해서 율법을 지킬 수 없고, 인간은 불의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명에게가 아니라 민족적으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민족적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신 뒤에 율법의 저주로 나라가 망한 비참한 결국을 맞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해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율법을 주셨는데, 반대로, 이제부터 율법을 목숨 걸고 지켜서 다시는 나라가 망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을 갈라디아서 3장 24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학교에 처음 가면 화장실 쓰는 법,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법,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 등 기초적인 것을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초등 교사가 되어, 우리는 무엇을 열심히 함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를 믿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나요? 로마서 10장 4절을 보시면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의 궁극적 목적인 ‘의’를 예수님이 완성하셨기에,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전가 받아 우리도 의롭게 됩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됨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다가 율법을 알게 되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인데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인간과 직접 함께하실 날이 올 것이며,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통로였습니다. 성전이 없으면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을 마련하시고 거기에 희생 제물을 통해 죄 사함받은 자만 하나님께 다가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을 보시면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성전인 예수님이 함께 하나님과 계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과 복을 받게 되어 모형이 필요 없게 되었으니 헐어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21절을 보면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지금은 무엇이 성전인가요? 건물은 영적 예배를 위해 모인 장소에 불과합니다. 강단 위가 부엌보다 더 거룩하지 않습니다. 참 성전이 무엇인지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을 통해 예수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율법, 안식일, 성전, 모든 것이 미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될 진짜 선물을 보여주는 그림이며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6, 17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골 2:16-17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몸’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실체’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였고 그림자가 보여주려고 했던 진짜 실체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림자에 매여 있던 유대인들은 이 복음을 듣고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30절을 보시면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기초를 흔든다고 바울을 비방했지만, 사실 바울은 참된 종교의 기반을 세우고 실체를 가르쳐주고자 했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기본적으로 율법적 자기 가능성을 추구합니다. 유대교뿐 아니라 불교도 수행을 통해 구원을 추구합니다. 이슬람교도 구원받기 위해 하루 다섯 번씩 신실하게 기도하며 다섯 가지 의무를 지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노력해서 구원을 얻어내지 않습니다.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 준비하셨습니다.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님께 문은 내가 열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믿음까지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장님에게 ‘눈을 떠 봐. 아름다운 세상을 봐’라고 말한다고 눈 뜰 수 있나요? 예수님이 왜 장님들의 눈을 뜨게 해 주셨나요? 예수님을 통해 눈 뜬 자만 볼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중생한 자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복주의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과의 거래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오면 보시를 많이 한 사람의 연등은 절에서 제일 가깝고 저렴할수록 멀어집니다. 원래의 불교는 기복 종교가 아니라고 개탄하는 중들도 있지만 그렇게 접근하는 불자들은 거의 없고 모두 복을 받기를 원해서 불교를 믿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종교가 해결못하는 것 또 하나는 바로 영적인 죄의 문제입니다. 영적 공허로 끊임없는 욕망에 시달리는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왜 이렇게 좌충우돌했나요? 한국은 불교와 유교의 기반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고려 때까지 불교가 깊이 영향을 미쳤는데 동시에 사찰과 승려의 영향이 강력해지고 극심한 타락을 가져와서 조선이 시작되면서 이성계가 완전히 갈아엎은 것입니다. 수백 년간 유교가 한국의 종교였지만 불교 역시 민간에서 유지되면서 요상한 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유교나 불교도 근원은 기복이나 율법이 아닙니다. 유교의 근원은 인의예지신으로 이 중에 예는 관계에서 예절을 지켜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조상 숭배를 통해 복 받는 기복 종교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불교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라는 종교였는데 한국에서 북두칠성을 섬기는 칠성각이 생기고 무병장수, 소원성취, 자녀성공, 평안무사를 구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반 위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주일 성수와 복을 검색하면 엄청 많은 설교를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복 받는다고 했더니, 그것을 주일로 탈바꿈하며 엉뚱한 조항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안식일은 왜 주셨나요? 인간은 자기 힘으로 절대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만이 안식을 주신다는 것을 알도록, 메시야가 오시면 죄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을 알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일에 돈 안 쓰면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율법과 기복으로 바꾸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적 영향이 너무 강력했습니다. 저 혼자만 주일 성수의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이제 많은 목사님들이 깨닫게 되었지만 이는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려서 다닌 교회는 합동 신학원 계열 교회였는데 대표는 박윤선 목사님이셨습니다. 1930년대에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 유학을 하셨고, 한국 사람 최초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 주석을 내시는 등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기둥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분이 생명을 다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중 하나도 주일 성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분도 고려 신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주일에 외국 선교사님을 배웅하려고 하다가 주일 예배를 교회가 아닌 배 위에서 드렸다고 교단에서 쫓겨나셨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계신가요? 우리가 복음에 온전히 서지 못하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말씀 묵상을 30일 꾸준히 하다가 하루 쉬는 날 사고가 나면, 하루 빼먹어서 하나님이 화 나셨나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축복과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우리의 잘못된 종교적 기반이 드러나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큰 은혜로 우리와 같은 죄인을 넉넉한 품으로 품어주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은혜의 복음에 세워지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어떤 비방을 받나요?

2.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라는 비방을 받습니다. vv.31-40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어떤 비방을 받나요? 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라는 비방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북쪽에는 안토니아라는 요새가 있었습니다. 성전에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이니까 로마 군대가 주둔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개입하곤 했습니다. 지금 성전에서 소란이 나자 그 군대가 내려온 것입니다. 31절과 32절입니다.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이들이 내려오지 않았으면 아마 바울은 죽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상황을 보자 바울 때문에 소동이 난 것 같으니까 바로 바울을 제압합니다. 33절입니다.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


앞뒤 상황을 묻지도 않고 바울이 어떤 자인지 단정해 버립니다. 38절입니다.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실제로 AD 54년경에 한 애굽 사람이 선지자 행세를 하며 많은 추종자들을 모았습니다. 이들이 단검을 들고 예루살렘에 들어와 봉기를 일으키려다 들켜서 다시 광야로 도망간 일이 있었는데 천부장은 이 소동의 주인공인 바울이 그 사람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천부장의 눈에 바소동을 일으킨 바울은 귀찮은 존재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자는 세상 사람의 눈에 소동을 일으키는 자로 여겨지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기들이 만든 기반 위에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굴러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진짜 믿는 자들은 잘못된 기반과 비진리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제 시대 때도 일본이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것은 불교인이나 유교인들이 아니었습니다. 1911년에 일제는 기독교인들에게 데라우치 총독 암살 누명을 씌워서 기독교 지도자 105인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핍박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전파하고, 일제의 만행과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사람들을 계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남북한 2천만 명 중 기독교 인구는 20만으로 1%로 안 되었지만 3.1운동 33인의 민족 지도자 중 16명이 기독교 지도자였습니다.


이후에도 기독교가 일제 치하에서 거북하게 하니까 일본이 신사 참배, 황성요배, 일장기 존중 등을 강요했습니다. 일본 귀신에게 절하고, 일본의 궁궐을 향해 경배하고, 일장기에 경계하라는 명령에 대항하다 죽임 당한 목사님들, 폐쇄 당한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왜 유독 교회에게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했나요? 교회가 세상을 요동케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도 마귀가 전략을 조금 바꿨을 뿐이지 근원적으로는 비진리로 우리를 유혹하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을 아주 싫어하는 집단은 민주당 의원들입니다. 민주당은 1997년부터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태까지 14번이나 입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독교인들이 반대했습니다. 차별 금지법이 왜 문제인가요? 첫 번째로 성별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도록 합니다. 여자나 남자로 태어났지만 다른 성을 선택하라고 오히려 독려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종교적 표현과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동성애는 죄라고 명확하게 얘기하는데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적극적 동성애자는 1만에서 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0.0002% 혹은 0.0004%입니다. 이번 주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차별 금지법 통과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러자 민주당이 이번 주에 급하게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온라인에 차별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자기네가 검열해서 삭제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발언을 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형사 처벌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악법입니다.


다행히 기독교인들이 많이 반대해서 찬성보다 반대가 많아지자 며칠 만에 바로 취소해 버렸습니다. 앞으로도 민주당은 계속 시도할 것입니다. 미국 민주당이 걸은 길을 보면 한국 상황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때부터 시도했던 성평등의 결과로 모든 공립학교 유치원에서부터 성적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는 교육을 합니다.


교사가 거부하면 해고당하고 직접 교육할 수 없다고 청원하면 특별 강사를 보내서 아이들에게 특별 교육을 실시합니다. 외부 전문가가 유치생, 초등학생에게 1시간만 교육하면 아이들은 스폰지 같이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이 결과로 미국 고등학생 4명 중에 1명은 동성애나 성전환에 빠져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학교에게 이 결정을 말하면 학교는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밖에 의료기관에 연결을 해서 성전환 시켜버립니다. 부모가 반대하면 구금시킵니다. 그래서 오바마 때부터 십몇 년 동안 기독교 홈스쿨링 인구가 2.5배가 증가했습니다. 삼백 만명의 아이들을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악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될 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반대하며 아이들을 잘못된 영향력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세상의 움직임이 있다면 우리는 소동을 끼치는 자가 되어 생명을 걸고 끝까지 싸워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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