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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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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 02 2.1-18 구속사가 약속하는 것

2026년 9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구속사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미리 보여 주신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가’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순복음교회 등에서는 구약의 아브라함이 부자가 되었으니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속사적인 관점이 아니라 기복적인 관점입니다. 또 많은 사람은 구약의 명령들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적 관점입니다.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보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욕망과 자기 의 때문에 성경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왜곡해서 보면 성경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답을 주는 듯이 보입니다. 구약에 “이렇게 하면 복을 받고, 이렇게 하면 저주 받는다”는 내용이 얼마나 많나요? 인간의 본질과 말씀이 맞아떨어져 보이면서 사람들은 성경을 복을 받거나 저주를 피하기 위한 도구로 보게 됩니다.그러나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 1,600년에 걸쳐 40명의 저자를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대부분 서로 알지도 못했고,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록해 놓고 보니 누군가가 지휘한 것처럼 일관되게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래프로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상호 참조 시각화’ 그래프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를 나열한 뒤 성경의 각 장이 연관되어 있는 부분끼리를 선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작은 무지개가 수만 개 나열된 형상입니다. 성경에는 약 3만 1천 절이 있는데 이 말씀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연결해 보았더니 약 6만 3천 곳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창세기 안에 요한계시록이 있고, 마태복음 안에 구약이 담겨 있습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1,600년 동안 기록한 말씀이 구원에 관하여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성경에 일관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구속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나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나요?

1.우리가 죽음을 벗어나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vv.1-6, 11, 15-18

     

우리가 죽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

     

구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보여 주는 밑그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즘도 누군가를 회오리바람으로 하늘에 올리시나요? 아닙니다. 이것은 앞으로 벌어질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실제로 11절에서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11] ...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왜 엘리야만 이런 특별한 일을 경험했을까요? 엘리야가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제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도 이 일이 일어날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

     

벧엘에 있는 제자들뿐 아니라 여리고 제자들도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사만 데리고 가라고 허락하셨기 때문에 엘리사만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16절에 보면 제자들은 이 일을 믿지 못합니다.

     

[16] ...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

     

이들은 인간은 하늘에 죽지 않고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엘리야의 시체를 찾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엘리사가 말렸지만, 강청하자 결국 찾아보라고 허락합니다. 제자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들림을 받는다고 들었어도 하나님께서 그 시체를 다른 곳에 놓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절대 육신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이 누구와 똑같나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죽임을 당하고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 일이 일어나서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우리가 천사를 만났다”라고 이야기하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누가복음 11장 24절에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허탄하다’는 ‘어처구니없다,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왜 이 일이 기록되였나요? 앞으로 엘리야 사건과 같은 일이 있을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9절입니다.

     

행 1:9 … 그들이 보는데 (예수께서)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불말과 불수레는 아니었지만 구름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성경의 구름은 단순히 하늘에 보이는 구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찬란해서 인간이 눈을 뜨고 볼 수 없기에 영광을 가리는 휘장처럼 임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로 올라가셨고 성경에 의하면 500여 명이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왜 이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 주나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의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가 무엇인가요? 과일나무를 키우는데 첫 번째 열매가 맺히면 뒤이어 나머지 열매도 맺힐 것을 알게 됩니다. 사과 하나가 열리면 이제 다른 사과가 많이 나는 것이 이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부터 그림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정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열매가 되셨고, 이제 우리가 그 뒤를 따라 나머지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건은 구약의 그림입니다. 구약의 이런 사건을 ‘예표’라고 하고 영어로는 ‘타입(type)’이라고 합니다. 그림으로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모형의 실체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형이 이루어진 실체는 우리에게 약속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보여주신 대로 예수님께서 똑같은 일을 이루셨으므로, 우리에게도 그 안에 담긴 약속대로 죽음에서 부활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약속이 성취된 모습을 요한계시록 20장 6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

     

여기에는 둘째 부활이나 첫째 사망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지만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을 통해 첫째, 둘째의 부활이 있고 첫째, 둘째 사망이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망’은 누구나 경험하는 육체적인 죽음이고,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되는 영원한 죽음, 영적인 죽음입니다. 반대로 첫째 부활은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우리 안에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죽게 되겠지만(첫째 사망)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통해 영적으로 살아났기에(첫째 부활) 둘째 사망과 관계가 없습니다. 둘째 부활은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 모든 죽은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일이 온다는 시간의 연속성에 관한 인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밤에 “자면 내일이 또 와. 내일도 장난감은 그대로 있을 거야. 내일 또 놀자.” 알려주면 그제야 잠이 듭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누구나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두려움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이라 많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셨나요? 예수님께서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음을 이겨낼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면 이 땅 내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죽음은 마치 잠과 같습니다. 내일이 올 것을 믿는 사람은 안전하게 잠을 잡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심을 믿고, 첫째 부활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마치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듯, 죽음을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함을 믿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통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부활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나요?

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vv.7-9, 12-14

     

두 번째로, 구속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나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8]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납니다. 엘리야는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엘리사만 데리고 함께 요단강을 건넙니다. 요단강은 큰 강은 아니지만 깊은 곳은 유속이 빠르기 때문에 걸어서 건너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겉옷으로 물을 치자 물이 갈라지고 그곳이 마른 땅이 됩니다.

     

물이 흐르던 곳에서 물이 사라지면 땅이 어떨까요? 상식적으로는 진흙 바닥이 연상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른 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엘리사도 똑같은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전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요구합니다. 9절입니다.

     

[9] …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엘리야보다 두 배 더 쎈 사람” 되게 해 달라는 요구로 오해합니다. 그나 성경에서 두 배의 몫을 요구하는 것은 항상 장자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보다 두 배 더 강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적인 권위가 나에게 이어져 내가 당신의 역할을 잘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자에 관한 특별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나눌 때 장자는 다른 형제보다 두 배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 중 ‘장자의 권한’은 히브리어로 ‘피 쉐나임’이라고 합니다. ‘두 배의 몫’은 당연히 장자를 뜻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왜 엘리야의 장자권을 요청했을까요?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는 너무나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가득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 어려운 시대였기에 선지자의 강력한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제가 그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저를 통해 계속해서 보여 주게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칠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14절입니다.

     

[14] ... 엘리사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여기의 ‘마른 땅’은 특별한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야바샤’라는 번역한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9절부터 등장합니다.

     

창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뭍’이 바로 ‘야바샤’입니다.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생명이 살 수 없었던 곳에 하나님께서 물을 물러가게 하시고 육지를 만드셨습니다. 이 육지를 꼭 ‘마른 땅’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마른 땅에 하나님은 동물을 만드시고 특별히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에 똑같은 사건이 모세에게도 일어납니다.

     

출 14: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고, 앞에는 바다가 가득합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람을 통해 물을 갈라지게 하신 뒤에 땅을 완전히 마르게 하십니다. 이 마른 땅은 구원이고, 생명이고, 회복이며, 안식입니다.

     

여호수아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요단강 앞에 섭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여호수아 3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수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도 땅을 마르게 하신 뒤에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가게 하십니다. 성경은 같은 상황을 한 번이 아니라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도록 일부러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어떤 확신인가요?

     

물은 곧 심판, 혼돈, 저주, 죽음입니다. 물이 가득 차서 사람이 모두 죽는 일이 구약 어디에 있었나요? 노아의 시대입니다. 또한 물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바다에 리워야단이라는 무서운 용이 배를 집어삼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위협과 혼돈이 가득한 바다 가운데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계속 마른 땅이 나타나면서 구원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가르시고, 모세가 물을 가르고, 여호수아가 물을 가르고, 엘리야가 물을 가르며, 엘리사가 물을 가릅니다. 그리고 그곳이 마른 땅이 되게 하십니다.

     

구약은 모형입니다. 그런데 왜 모형이 반복되나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나타나 마귀와 같은 애굽의 바로에게 묶여 있던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의 물에서 건져 구원했습니다. 놀라운 구원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그 역할을 끝내고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이 여호수아에게 넘어갑니다. “인간은 죽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세워 이 사역을 계속 이어 나가시는구나.” 보여주십니다.

     

또 어두운 시대에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아합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바알을 섬겼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놀라운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건너갈 수 없는 강을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사역이 끝나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면 안 되기 때문에 엘리사가 그 역할을 이어갑니다.

     

인간 구원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쉽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게 하나요? “모세와 여호수아 같고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존재, 한 세대나 두 세대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를 마른 땅으로 인도할 분이 오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4장 32절 33절에서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마 14:32-33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갈릴리에서 풍랑이 일었습니다. 갈릴리는 원래 바다가 아니라 반대편 끝이 보이는 호수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이 이를 바다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다가 이 세상을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럽고 불안하며, 통제할 수 없고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제자들 대부분이 어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립니다.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나요?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보여 주신 것처럼, 한 세대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 인생의 바람을 잠재우시고 풍랑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실 분이 오셨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풍랑 가운데 두려워하던 자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을 육지로 마른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꼭 풍랑을 지나가야 하나요? 그냥 편히 살면 좋은 것 아닌가요? 풍랑을 지나간 제자들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른 땅에 도착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 번째 폭풍 사건 이후입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을 때 제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했나요?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경험하고 나자 그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제자들의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제 인생에도 풍랑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20대 초반에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가셨을 때, 제 인생이 모두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제 영혼을 잠식해서 건강이 완전히 망가지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유일한 소망이 죽음이었습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고 불안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들을 지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시나요? 앞으로는 더 이상 풍랑이 없습니다. 계시록 4장 6절입니다.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

     

바다인데 왜 유리 바다라고 할까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바다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유리처럼 평평해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바다입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는 어떠한 혼란도 죽음도 저주도 없습니다. 유리 바다는 천국은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완전히 통제된 곳이라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지금 요동하는 풍랑이 이는 바다와 하늘 나라의 유리 바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요동하는 풍랑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풍랑이 매일 오지는 않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요트나 타며 즐겨야겠다.”라고 출발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다가 요동칩니다. 죽을 것 같아서 몸부림을 치다 보면 또 바람이 사라집니다. 그 과정이 자주 일어난다면 그곳에서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내가 어떻게 헤쳐 나갈까?” 머리 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수께서 내 인생을 다스리고 계신 줄 믿습니다. 무섭고 두렵게 하는 이 바다를 잠잠하게 하셔서 마른 땅으로 만드시고, 저를 그 가운데로 인도하실 분임을 믿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풍랑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생 자체가 풍랑이고, 세상이 풍랑이고, 마음이 풍랑입니다. 내 영혼에서 풍랑이 부는데 어떻게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안정을 줄 수 있을까요?

     

저도 2,30대를 지나며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늘 돈이 없었고 능력이 모자랐습니다. 그 비참한 과정을 지나가는 동안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빠져 죽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 건져 올리셨습니다. 길이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길을 내셨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예수님께서 “괜찮다.” 하시며 저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렇게 도착해 보니 마른 땅이었습니다.

     

하늘사랑교회가 저에게는 마른 땅입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 목회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만나는 것이 매주 기대됩니다. 물론 모두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이 너무 좋습니다. 이곳도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좋을까요?

     

과거를 돌아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교회에 오면서 찬송가를 틀었습니다. 우연히 틀었는데 20대 때 매일 듣던 옹기장이 찬송가 메들리였습니다. 찬양이 시작되는데 제 20대 때의 어두움이 느껴졌습니다. 매일 울고 매일 죽고 싶던 소망이 없었던 20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은혜의 자리까지 인도하셨을까?” 생각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과거에 그 찬양을 들을 때 제 인생은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마른 땅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런 구원과 안식을 경험하게 하시다니,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의 구원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 풍랑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나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분이 있나요? 예수님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반드시 마른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이 땅에서 큰 은혜를 맛보고, 나중에 유리 바다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함께 찬양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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