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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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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 09 8장 성전의 역할

2026년 2월 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성전이 드디어 완공되었습니다. 7년여 성전 공사 후 봉헌식을 바로 하지 않고 13년 동안 솔로몬 왕궁을 완공한 뒤 봉헌식을 한 이유는 성전 또한 솔로몬 왕궁의 일부였기 때문에 전체 구역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구약은 성전을 통해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열왕기상 8장만 하더라도 60절이 훨씬 넘지만 이 많은 이야기를 통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며 또한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게 된 우리 또한 성전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특별히 봉헌식은 성전의 역할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vv.6-11


그렇다면 성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첫 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성전 건물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성소는 가로 세로 높이 9m의 정육면체이며 내부는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으로 발라져 있습니다. 또 이 지성소 안에는 커다란 두 천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본문은 왜 천사를 그룹들(cherubim)이라고 부르나요? 천사는 한자로 ‘하늘의 사자’ 즉 ‘메시지를 전하는 전달자 혹은 대행자’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천사들은 하나님을 호위하고 보좌하는 특별한 천사들이며, 두 날개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고, 두 날개로는 더러움을 상징하는 발을 가립니다. 그룹들의 여섯 날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거룩함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천사를 지성소 안에 꽉 차게 거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다음 절을 보면


[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언약궤의 뚜껑은 속죄소 혹은 시은좌라고 불립니다. 베풀 시, 은혜 은, 은혜를 베푸는 장소 곧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장소입니다. 대제사장이 어린 양의 피를 이 곳에 뿌리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인간과 만나시며 그룹들은 하나님을 보좌하고 인간과의 사이에 서 있습니다. 즉 지성소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심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입니다. 10, 11절입니다.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구름은 인간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직접 보지 못하도록 영광을 감추는 커튼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10절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11절에는 영광이 가득하다고 표현합니다. 신약 성경에도 항상 구름이 하나님의 영광의 다른 표현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을 보시면


계 1:7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타고’는 운송 수단처럼 탄다는 뜻이 아니라 영어 번역은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즉 예수님이 영광의 상징인 구름과 함께 오심으로 예수님이 곧 영광스러운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을 이 땅에 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영광’이란 그 본질의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지혜롭고 온전하고 사랑과 긍휼과 인자가 많은 아름다움입니다. 이 찬란함을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이 영광이었습니다. 보여주시고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22절 상반절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 17:22a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자가 되게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 가르쳐 주시고 참된 영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요 17:22b …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사람들은 흔히 축구에서 골을 넣고, 미스코리아가 되고, 일류 대학에 입학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축구하고, 예쁘고, 공부 잘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유일한 길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두 번 있는데 창조와 십자가입니다. 창조 때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 완벽하심, 구원 계획으로써 창조의 핵심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긍휼, 사랑, 희생, 공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그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처럼 세상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욕심 때문에 희생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흉내 내는 것으로는 영광이 드러나지 않기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그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고 흠이 없이 거룩한 예수 닮은 자가 됩니다. 성령이 다스리셔서 우리 본질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시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내용은 아홉 가지인데 사실 단수입니다. 즉 성령이 충만하면 아홉 열매가 골고루 맺혀지는 것입니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헬라어 성경에는 성령의 열매가 세 가지씩 끊어서 쉼표로 묶여 있습니다. 사랑, 희락, 화평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로 얻어지는 결과물이고,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충성, 온유, 절제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특성들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받음으로 내적 사랑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자만이 영혼 안에 있는 깊은 갈망에서 벗어나 견고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온전한 관계를 누리면 채워지는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쾌락과는 다르게, 텅 빈 영혼에 채워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충만함에서 오는 만족입니다. 그래서 환란 당할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희락으로 가득 찼을 때에 우리는 두려움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완벽하게 내 삶을 통제하신다는 믿음으로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그 다음 세트인 인내, 자비, 양선은 다른 사람을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대하는 태도입니다. 인내는 참는 것이 아닙니다. 참다가 밖으로 폭발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안으로 폭발하면 우울증으로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인내의 다른 말은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개입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인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준과 욕망으로 남을 재단하기에 조급하고 화가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를 다스려 하나님의 시각이 생기면 때를 믿고 인내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비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긍휼이며,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격 없는 자에게 선한 행위까지 더하는 것이 양선입니다. 성령이 일하시면 가능합니다.


마지막 충성, 온유, 절제는 자신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게 되면 나타나는 열매들입니다. 옛사람의 힘은 인간의 계획과 의지보다 훨씬 강해서 너무나 어려운 싸움입니다. 충성은 sincerity로 성실 혹은 진심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데 말에 대한 통제를 뜻합니다. 우리는 말하고 후회하는 적이 너무 많지만 성령이 다스리시면 말과 본질을 일치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해야 할 말만 하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지 않는 힘이 바로 충성입니다. 온유의 한 가지 뜻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상태이며,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욕망을 통제하는 힘입니다. 욕망 중에서도 분노를 통제하는 힘인데 아무도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없지만 성령의 도움으로는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절제는 쾌락을 통제하는 힘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사로잡히셨기에 세상에서 무엇을 이룸으로써 기뻐하지 않으셨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화평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미련한 제자들을 인내하시며 그들이 언젠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을 소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긍휼과 자비로 그들을 바라보셨고 자격 없는 자들에게 양선을 베풀어 그들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쓸데없는 말씀을 하나도 하시지 않았고 꼭 하셔야 할 말씀만 하셨으며 사사로운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에만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쾌락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자기 자신을 주어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제 안에도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는 인생 살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이와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인간의 사랑을 얻고자 몸부림칩니다. 그 어떤 SNS로도 기쁨과 만족이 없고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인생에서 늘 두려워서 괴로워합니다. 또한 인내가 없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불평불만만 생기고 자비와 양선은커녕 남을 탓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또 입만 열면 거짓말을 내뱉고 화내고 욕망대로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나는 평균은 된다고 자부하신다면 그 곳에서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었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이 부르신 아름다운 목적을 이루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성전의 목적을 이루는 인생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 기도의 정점은 바로 사도행전의 스데반 집사님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행 7:59-60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돌로 찍어 죽임을 당하는 자리에서 인간은 누구나 보복과 저주의 말을 내뱉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죽어갔고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령 충만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vv.12-53


두 번째로 성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중보 기도하는 것입니다. 8장에 가장 많은 내용을 차지하는 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이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기도할 것이니 그 기도를 들어달라는 간구입니다. 백성들은 언제 기도할까요? 첫 번째로


[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인생을 살다가 불의를 경험합니다. 악인은 성행하고 의로운 자들이 핍박받을 때 기도하면 들어달라는 기도입니다.


[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두 번째로는 범죄하였을 때 죄악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세 번째로는 인생에서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고난과 재앙도 하나님 손에 의탁합니다.


[41] …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네 번째로는 이방인의 기도라도 성전을 향해 있다면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46] …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마지막으로 회개하면 응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생각했던 때에는 기도해도 응답이 기대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성전에 계신다고 하셨으니 기도하면 빨리 들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임을 알려줍니다. 즉 우리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명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방금 같이 읽은 것처럼, 세상이 불의할 때, 우리가 범죄했을 때, 고난 중에, 죄를 깨달을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전으로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며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저희 집이 망했을 때 저는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 잘 믿는 집을 망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외면이라고 생각해서 교회를 나가기는 했지만 1년 넘게 기도도 하지 않고 설교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1년을 지나며 영혼이 망가진 결과로 대학교 4학년 때 쓰러져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식물인간이 된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쁜 일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걸어가면서 기도해도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물론 기도했다고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아뢸 수 있습니다. 성전으로서의 사명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 삼으신 아름다운 목적을 성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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