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52 행 25.1-27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쉬운 조건
2025년 7월 13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사도행전 24장부터 26장에는 바울의 재판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24장에서 로마 총독 벨릭스한테 재판을 받았는데 25장에서 새로운 총독 베스도가 부임하면서 또 다른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계속 고소하고 기회를 봐서 바울을 죽이려 하고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을 계속 변론합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왜 같은 내용을 반복 기록했는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사도행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가장 선봉에 있었으며, 이를 싫어하고 방해한 사람들의 공격의 배후에는 사실 마귀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들을 다 하나님 나라의 방해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사용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쉬운 조건은 무엇인가요?
1. 자기 확신으로 말미암은 분열의 씨앗입니다. vv.1-5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쉬운 조건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자기 확신으로 말미암는 분열의 씨앗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이전 총독 벨릭스가 로마로 돌아가고 새로운 부임한 베스도는 유대에서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에 가서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고자 한 것입니다. 새 총독을 보자마자 종교 지도자들이 무엇을 요청하나요? 2절과 3절입니다.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재판을 통해 결과를 내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현재 가이사라라는 견고한 성에 있기 에 바울을 죽일 수가 없으니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내어 길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이전에 성전에서도,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라로 이송 중에도 바울을 죽이려고 시도하다 실패했지만 멈추지 않습니다.
이들은 왜 누군가를 죽이려는 열망에 사로잡혔나요? 자기 확신으로 인한 교만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확신했고 그 외에 다른 모든 것은 거짓이며 비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종교적, 인종적, 또 개인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마귀의 영향력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데 사용됩니다.
살다 보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하고 싫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그를 죽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심각한 내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도 이 유대인 못지 않은 강력한 확신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정반대의 자리에 서게 되었나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결과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기보다 우리도 은혜가 아니고는 마귀적 영향력에 노출되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26장 59절을 보시면 마귀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서도 살해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마 26: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예수님을 죽였던 자들마저도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 이 일을 행한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자들을 심판하며 특별히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근원에는 무서운 영적 죄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죄의 근원이 무엇인가요?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해서 내가 생각하는 선을 이루려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도 많은 영역에서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판단을 항상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기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방을 없애버리려고 하는데,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 노릇한다고 표현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죄악에 넘어갔기 때문에 그 이후 모든 인간들은 내 생각을 관철시켜서 하나님 자리에 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죄악의 근원에 마귀가 강력하게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일들은 결국 나랑 다른 사람을 없애버리려는 무서운 영향력이 학살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만 남기겠다는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유대인 6백만, 폴란드인 소련인 장애인 집시 4-5백만을 죽였습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또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없애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에서 발현되어 최소 수백만에서 많게는 2천만 명까지 죽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킬링 필드라는 무서운 역사가 있습니다. 크메르 정권이 캄보디아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공산화에 방해되는 지식인, 공무원, 화이트 칼라, 노인, 장애인 등 300만 명을 죽였는데 이는 당시 인구의 4분의 1이었다라고 합니다.
이 모든 근원에 나와 다른 자들을 없앰으로 내 힘을 과시하고 나와 같은 자들만 남기겠다는 죄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죄악을 사용해 서로를 파괴하고 무너뜨리게 합니다.
한국은 어떤 다른 나라보다 갈등의 씨앗이 확산되기 알맞은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갈려 있고 공산당과 민주주의로 정치 체계가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미 고통하고 있는 땅에 마귀는 세대 간, 남녀 간, 빈부 간 격차를 이용해 더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키려고 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마귀가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영역이 바로 사람들을 분열케 만드는 것입니다.
좋아요를 표시하는 순간 SNS는 여러분의 마음에 맞는 영상만을 보여주고, 우리의 취향은 더욱 강화되고, 편향된 콘텐츠를 소비하며, 분열은 심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도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복음을 위해 모인 자들에게 불순물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위해 모였다는 사람들이 정치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화합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마귀의 강력한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여러분이 민주당을 지지하던 국민의 힘을 지지하던 아무것도 추종하지 않던 관계없습니다. 각자의 기질과 경향에 따라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다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인데 내 정치적 신념을 위해 예수와 기독교를 이용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 노회에도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파가 나뉘었는데 얼마나 분열이 심한지 식사 시간에도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따로 앉으시고 목장을 짤 때도 당별로 짜야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웃고 넘어갈 남의 교회 문제가 아닙니다.
이 중에 커피 좋아하는 분과 차 좋아하는 분이 있지만 상대방이 커피 안 좋아한다고 없애버리고 싶으신가요? 왜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강력한 미움과 분열의 씨앗을 가지게 될까요? 이런 마음은 교회 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희는 장로교인데, 우리 말고도 침례교, 성결교, 감리교 등 많은 교파가 있습니다. 교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너무 다르니 교파가 나뉜 것은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면 저랑 가장 반대편에 있는 교파는 아마 순복음일텐데, 제가 순복음에 가서 설교하면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복음이 이단은 아닙니다. 우리와는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또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교파가 아니라 같은 장로교 안에도 수없이 많은 교단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예수교 장로회 합동으로, 만 천 개의 교회가 있는 한국에서 제일 큰 장로교 교단입니다. 이 외에도 천 개 이상의 교회가 모여 있는 교단이 합동, 백석, 통합, 개혁, 고신, 기장, 대신, 합신 등 8개가 넘고, 국가에서 5년마다 하는 통계 조사표에 보면 장로교 교단의 개수가 340개입니다.
큰 교단들이 나눠진 것은 역사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합동해서 통합이 나눠진 것은 WCC라는 세계 기독교 협의회 가입 여부였습니다. WCC는 모든 것을 통합하자는 주의라서 예배 중에 무당이 와서 굿을 하는데 합동은 동의할 수 없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합동이 통합보다 더 보수적입니다. 고신이 나눠진 것도 일제 치하가 끝나고 신사 참배한 교회와는 연합할 수 없다고 해서 분열한 것이니 그 또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장로교 내에 교단이 300개나 넘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분열된 이유를 찾아보니 첫 번째 리더십 갈등입니다. 교회가 500개, 천 개 있는 곳에서 총회장 하기는 쉽지 않지만 10개 있는 데서는 총회장 하기가 쉬워서 분리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돈 문제로 남의 밑에서는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지만 자신이 교단을 만들고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려고 분리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치적 입장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체감한 적이 없지만 경상도와 전라도는 연합할 수 없다고 해서 경상도에만 존재하는 교단, 전라도에만 존재하는 교단이 있습니다.
예수 믿겠다고 모였는데 대장하려고, 돈 쓰려고, 지역이 다르다고 연합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비단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개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분열된 이유들을 모아보면 교단이 분열된 이유와 같습니다. 가정에서 싸우는 제일 중요한 이유는 “왜 내 말 안 들어”이며, 또한 돈과 정치적 입장 때문에도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왕 노릇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아내는 남편을 주님께 하듯 복종하고 남편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 아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갈등의 본질에는 다 죄성의 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 싶으신가요? 여러분을 통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여러분 안에 있는 무서운 분열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배우자든 자식이든 근원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움직일 수 없는 갓난아이를 보면 사랑이 샘 솟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너무너무 예쁩니다. 저 역시도 그러했지만 제 안에 샘솟는 사랑이 없다는 것은 아이가 세 살 때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자 큰 아이가 말 안 듣고 고집부리고 아기처럼 행동하고 전체적으로 퇴행했는데 제일 큰 문제는 ‘이미 늦었어’였습니다.
세 살이라 아직 서투니까 차 문을 열고, 불을 켜는 등의 일을 자연스럽게 제가 했는데 이 고집의 시기에는 제가 무슨 행동 하나만 하면, 자기가 하려고 했다고 울고 떼를 썼습니다. 너가 하라고 다시 문을 닫고, 불을 꺼 줘도 ‘이미 늦었다’고 한 시간씩 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영적이라는 생각을 한 사건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제가 피아노를 치며 찬양만 하려고, 찬송가를 가져가고, 다리에 매달리고, 찬양하지마 찬양하지마 소리지르며 울기도 했습니다. 발로 아이를 밀어내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면 우스운 상황 같지만 그때는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때였습니다. 아내는 너무 아파서 온몸에 진물이 흘러 피부 껍데기가 벗겨지고 밤새 잠을 못 자고 저도 학교도 못 가고 집에 와서 애 보고 밥하고 기도하느라 삶이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까지 발작하듯이 매일 울어대니 나중에는 이 아이가 우리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만 없으면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을 텐데 하며 미움과 분노가 커져 갔습니다. 사실 서로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아내도 그런 생각에 동감을 하고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희는 TV도 없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간이 주말의 휴식이었습니다. Planet Earth라고 곤충부터 아프리카 동물들 남극 등 방대한 자연을 보여주는 비디오였는데 그 날의 주제는 바다였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나오다가 범고래가 나왔습니다.
범고래들이 수십 미터짜리 향유 고래를 사냥하는데 20m나되는 엄마 고래를 건드리지는 못하니까 7-8m 되는 새끼를 목표물로 잡습니다. 그런데 사냥 수법이 무엇인가 보니 범고래 대여섯 마리가 엄마와 새끼 사이에 들어가서 분열시킵니다. 엄마가 새끼를 보호하려고 옆에 붙어 보지만 서너 마리씩 돌아가며 계속 방해하니까 결국 한참 뒤에 새끼랑 엄마가 떨어지게 되고 새끼 혼자 남게 됐을 때 범고래들이 달려들어서 잡아먹었습니다.
바다에 피가 흥건한 장면을 보면서 마귀가 이렇게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죽이는구나, 마귀가 우리 가정에도 아이를 떨어지고 연약하게 만들어서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나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똑같이 느껴서 그 날 엄청 울며 회개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이지 않는 마귀가 세상과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법입니다. 분열의 이유는 사실 사소한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근원적으로 남에게 복종하거나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가정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싸워야 할 대상은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싸워야 할 대상은 여러분 안에 있는 이기적인 자기 확신으로 인한 무서운 죄성입니다. 내 마음에 들어야 사랑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어야 사랑하고, 내 마음에 들어야지만 잘해주는 무서운 죄성이 여러분의 영적 싸움의 대상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죄악을 인정하고 무릎 꿇지 못하면 여러분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다짐해도 절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 받을 수 없습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과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마귀는 잘못된 이기적 확신을 가진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어 제거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 사람이 악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전에 여러분 안에 있는 좁고 이기적인 본질을 직면하셔야 합니다.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의 무서운 죄악으로부터 여러분을 자유케 해주셔야 여러분의 인생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확정하는 도구로 사용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기 쉬운 조건은 무엇인가요?
2. 세상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허물입니다. vv.6-27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에 방해하기 쉬운 조건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허물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하여 판결 받게 하려고 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7절입니다.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거짓으로 고소했으니 바울에게 중대한 혐의를 부여할 증거가 없습니다. 혐의가 없고 불법이 없으니까 바울 자신도 담대하게 무죄를 증명합니다. 10절 하반절과 11절 상반절을 보시면
[10b] …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a]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
자기 생명을 내놓고 무죄를 증명합니다. 흠과 허물이 있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총독도 들어보니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절과 19절입니다.
[18]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19]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예수가 죽었는데 살았다고 주장한다는 것만이 문제라고 결론 내립니다. 그래서 베스도의 판결이 무엇인가요? 25절입니다.
[25]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유대인들이 왜 가이사라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3절입니다.
[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바울이 이것을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황제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 였습니다. 그래서 10절 상반절과 11절 하반절을 보시면
[10a]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 [11b] …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결국 바울의 호소대로 가이사 황제에게 가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사람들의 고소대로 흠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하나님 나라를 변호하며 복음을 위한 사역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장관 세운다고 나라에서 청문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문회를 보면 일반 사람들은 저지르기 힘든 일들을 많이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논문 표절 하셨나요? 대부분의 분들은 논문을 쓰지 않기 때문에 표절을 할 일이 없습니다. 논문 쓰기까지 지적인 열망과 수많은 과정을 밟아야 되는데 그 일을 감수하기로 해놓고 표절을 하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저도 석박사 논문 썼지만 세 단어 이상 남의 말을 가져오면 따옴표를 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게다가 횡령, 세금 포탈, 음주운전, 불법 후원금, 땅 투기, 갑질 등 일반 사람들도 하지 않는 더러운 인생을 살아놓고 장관 하겠다고 대통령 하겠다고 나옵니다. 예전에는 이들이 철면피이고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모 당에서 청문회에서 개인이나 가족의 사생활을 비공개로 돌려서 개인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비리를 감추자는 청문회 개정법을 발의한 것을 보며 그들도 이런 문제들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불법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도한 세상적 욕심입니다. 세상적 욕심이 많아서 불법을 저지른 것입니다. 왜 논문 표절하나요? 정상적인 과정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논문 발표하고 박사는 되고 싶어서 남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왜 횡령하나요? 왜 거짓말하나요? 욕심이 많아서 하는 일들입니다. 결국 욕심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부끄럽고 악한 짓을 많이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욕심과 싸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가 많은 청년들을 만났지만 젊어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는 사람 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강렬한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 진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 만나보면 그런 얘기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안에 있는 죄와 싸우고 말씀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애쓸 뿐입니다. 우리 안에 세상적 욕심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사용 받을 수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본 사람,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세상적 영광을 얻었나요? 열 두 제자 가운데 11명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시몬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순교했고, 야고보와 마테는 칼에 맞아 순교했고, 빌립과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맛디아는 돌에 맞아 순교했고, 바돌로매는 피부가 다 벗겨진 다음 목이 잘려서 순교했고, 도마는 칼창에 찔려서 순교했고, 다데오는 도끼에 맞아 죽었습니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사도 요한은 90이 넘어 밧모 섬에 갇혀서 채석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자들이 노력해서 세상의 욕심을 버릴 수 있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의 화려하고 멋진 영광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욕심과 싸울 수 없습니다. 욕심이 곧 나 자신입니다. 학문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욕심을 가진 것 그 사람의 본질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싸울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욕심의 근원인 욕망을 버리려면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맛보아야 합니다. 정말 좋은 것을 본 사람은 좋지 않은 걸 쉽게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고자 하신다면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세상의 하찮은 것에 매이지 않게 은혜를 주세요’ 기도하십시오. 하찮은 것을 쫓다 부끄럽고 추한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며 아름다운 결국에 이르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