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50 행 22.22-23.35 위기 중에 임하는 하나님의 도우심
2025년 6월 2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면 하나님이 더 많은 축복을 주실 것 같지만 바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오히려 많은 위기를 맞닥뜨림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데 왜 하나님이 어려움을 막아주시지 않나요? 이것은 하나님이 돕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케 하심으로 성도에게 믿음을 가르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피해가고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지만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본문도 그렇습니다. 12절과 13절에 바울은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긴급한 상황이었습니다.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누군가에게 나쁜 말이나 욕 한 마디만 들어도 마음이 상하고 심지어 간접적으로 온라인 악플만 받아도 마음이 무너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40명이 바울을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심지어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칼을 갈고 있다니 엄청난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위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 성경은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기 중에 하나님은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1. 말씀으로 힘을 주시고 사명을 견고케 하십니다. v.11
그렇다면 위기 중에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첫 번째로 말씀으로 힘을 주시고 사명을 견고케 하십니다. 1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11a]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
하나님이 바울에게 특별히 나타나신 목적이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사도행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특정 인물들과 상황을 통해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설명하는 책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증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행전의 특별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현현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아직 성경이 완성이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히 개입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전에 알고 있던 말씀들이 특별한 상황에서 삶에 적용되어 은혜가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말씀이 살아서 우리 삶에 역사하는 경험입니다.
성경에서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얼마나 자주 나오나요? 그러나 특정 순간에 그 말씀이 우리 영혼을 뚫고 들어와 우리 속에 있는 두려움의 본질을 보여주며 우리가 얼마나 믿음 없이 요동했는지 깨우치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옳구나, 내가 말씀을 믿지 못해 흔들렸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씀과의 조우, 말씀을 통한 은혜가 바로 성도의 인생에 무엇보다 소중한 순간인 것입니다.
사람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줄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절대로 미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영적이고 근원적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통해 말씀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인해 우리가 본질 안에서부터 참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우리에게는 믿음의 조상이지만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 중 하나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였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입니다.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바로 앞 14장에서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아주 용맹한 일을 벌였습니다. 북에서 연합군이 쳐내려와 소돔 지역을 정벌하고 조카 롯을 잡아가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총 318명의 종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연합국에 공격했습니다.
이 연합군은 소돔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많은 도시 국가들을 파괴하여 사람과 재물을 탈취해 가고 있는데 양치던 목동 300여명으로 어떻게 싸울 수 있나요?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카도 구해옵니다.
그 일을 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후에 두려움이 몰려온 것입니다. 큰 군대를 가진 자들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두려워지자 하나님이 ‘내가 너의 방패’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차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만 그 약속을 믿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렵고 불안한 것이 인생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시며,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도록 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고대인의 선례대로 전리품을 취했다면 단번에 부자가 되었겠지만 그는 그것을 다 나눠줍니다. 이것은 은혜가 임했을 때였을 때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서운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상 가운데 요동하지 않고 설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약속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것을 욕망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올곧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보며 끊임없이 ‘갖고 싶다,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욕망으로 불만족과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또한 우리는 두려움에 짓눌리게 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하지 말아야 될 선택을 하고 선택해야 될 것들을 포기합니다. 바울과 아브라함이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음성을 듣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위기입니다. 평안할 때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와닿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두려워 고통할 때 두려워말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누군가 미워서 죽을 것 같은데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깨닫게 하시는 등 영혼 가운데 반대되는 모습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 때나 말씀하시나요?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의 뜻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11절 하반절을 보시면
[11b] …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 사명을 위해 바울의 인생에 계속 개입하셨습니다. 바울은 지금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마치고 나니 목이 잘려 순교합니다. 그 죽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개입하시며 말씀으로 힘을 주시며 바울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도대체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했나요? 바울은 AD 60년 경에 로마에 사로잡혀 2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를 보냅니다. 사도행전 28장 30, 31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28:30-31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감옥에 있었다고 하지만, 집에 연금된 상태로 사람들과 만나 교제도 하고 복음도 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2년을 있다 무죄로 판결을 받아 석방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사도행전은 여기서 끝나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바울이 AD 67년경에 순교 당했기 때문에 이 이 곳에서 풀려난 이후에도 약 5~6년간 복음을 전했을 것이라고 유추가 됩니다.
하나님은 왜 바울을 꼭 로마로 보내고자 하셨나요? 로마는 지금 현존하는 나라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시 문명이라고 알려진 모든 세계가 사실 로마의 소유였습니다. 문명이 아닌 곳은 문자, 도로, 도시도 없고 야만인처럼 살았습니다. 로마가 영토를 확장했던 최고의 확장기에는 북쪽으로는 영국과 독일까지,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즉 로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온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갇혀 있는 2년 동안 옥중 서신을 집필합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교회론, 기독론, 성육신에 관한 신비한 신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간을 통해 바울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기록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행전 처음에 주신 명령이 바울을 통해 완성됨을 사도행전 마지막에 이루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뜻을 위해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이 뜻을 위해 말씀으로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 또한 하나님의 뜻과 관계된 영역 가운데 분명히 개입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울 때마다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인생의 방향에서 여러분의 두려움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망가뜨리거나 목적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개입해 오실 것입니다.
제 인생 가운데도 제가 두려움 속에 잘못된 선택을 할 뻔 했던 순간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임재와 은혜가 경험했던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20대 때는 불안함에 함몰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는 불안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늘 과민성 대장 증상으로 병원도 다니고 약국도 많이 다녔지만 결국 원인은 마음의 불안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이후에 어느 정도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게다가 부목사가 되고 월급을 받는 것이 큰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하나님이 여러 사람을 통해 유학을 가라는 사인을 주셨습니다. 그 때 친구를 보니 전셋집을 정리하며 2억 정도를 마련해서 2년 살 준비를 하던데 저에겐 백 만원의 여윳돈도 없던 시절이라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었습니다.
몇 달을 미루고 미루며 답답하고 불안해 하다가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사람들이 다 가고 혼자 남았는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 선택이 아닙니다. 그저 눈물이 나고, 과거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내가 죽을 죄인인데 나를 구원하셨다는 은혜가 감사하게 되는데 그 날도 그런 마음들로 기도하는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승아 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됐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그 말씀을 듣는데 제가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이사야 45장 3절입니다.
사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고레스에게 주신 이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며 ‘하나님이 뭔가 주시겠구나’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유학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너무 무모한 결정이라, 혹시 제 자녀나 지인이 이렇게 유학을 가겠다고 하면 지금은 말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저는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실제로 그때부터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생판 모르는 분이 300만 원을 주셔서 비행기 티켓을 사고, 어떤 분이 자기 미국에 짐 보내는데 자리가 남으니까 쓰라고 해 주셔서 짐을 보내고, 출국 전에 여기저기서 돈을 주셨고, 유학 하는 7년 내내 하나님이 수백 번의 다양한 까마귀들을 통해 채워주셨습니다.
제가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아마 하늘 사랑 교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개척을 했더라도 지금과 같은 말씀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복음은 유학 기간 동안 깨닫고 이해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은혜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인생이 지금 하나님의 목적과 관계 있는 인생이라면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가 더 선명하고 자주 일어날 것입니다.
위기 중에 하나님은 어떻게 도와주시나요?
2. 세상의 제도와 권세를 통해 보호하십니다. vv.22-35
두 번째로 위기 중에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시나요? 세상의 제도와 권세를 통해 보호하십니다. 24절과 25절 말씀입니다.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 대 [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천부장은 바울을 붙잡아 채찍질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내라고 이야기합니다. 옛날에는 무조건 때리고 고문해서 결과를 알아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풀려나게 됩니다. 바울의 아버지가 로마 시민이라 바울도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부장의 채찍질에서는 일시적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요? 20절과 21절을 보시면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40명이 죽이려는 계획을 바울이 어떻게 혼자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때 하나님이 사용하신 방법이 로마 군대의 강력한 군사력입니다. 천부장이 자기에게 맡겨진 죄수가 죽임을 당하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바울을 보호합니다. 23절과 24절입니다.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보병 200, 기병 70, 창병 200명을 합하면 470명이라 현대의 기준으로 보아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대 전체의 로마 군단의 규모가 5천 명이었습니다. 즉 바울 하나 보호하려고 유대 전체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10분의 1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디에 위치하게 되나요? 35절입니다.
[35] …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하나님이 로마 군대, 세상의 권력과 권세까지도 바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시는 이유는 사실 이 세상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이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이 악하고 무너지고 전쟁도 일어나고 불안정한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을 열면 그 모든 일들도 어쩌면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위해 세상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예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을 보시면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400년이라는 먼 후일의 일을 왜 알려주시나요? 바로 이 세상 나라를 통해 하나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구원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 내려가서 430년을 살게 됩니다.
이들이 구원받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생하게 목격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는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만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구원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지를 한 민족의 그림을 통해 알려주신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형입니다. 애굽의 파라오는 세상의 왕처럼 우리를 지배하는 마귀의 모형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세상에 살며 마귀의 유혹과 핍박으로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파, 마늘, 부추, 고기 향신료를 그리워합니다.
애굽은 왜 이것을 주었을까요? 자극적인 향신료를 먹여 그들을 흥분케 해서 피라미드를 짓고 성전을 건축하고 노예로 삼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사람들을 마귀의 영향력으로 사로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봤던 다큐멘터리에는 20대 여성은 우연히 마약이 들어가는 술을 마시고는 중독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검색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약이 돈이 많이 드니까 마약을 소분해서 숨겨놓은 중개인이 되어서 버는 대로 또 마약을 하다가 결국 잡혀서 1년 반을 감옥에 갔는데 그래서 끊을 수 없어서 결국 보호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약의 부작용으로 계속 환각과 환청이 들립니다. 늘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불, 환풍구, 문 등 모든 것을 뜯어 놓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주는 부추와 마늘과 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귀신에 사로잡혀 있던 자를 예수를 통해 구원하십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십니다. 홍해는 애굽 편에서 보면 바다에 들어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 편에서 보면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옛 사람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홍해를 통해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아 광야를 40년 떠돌게 됩니다. 40년은 인생의 기간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광야 같은 인생을 떠돌며 애굽의 영향을 받은 옛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성령으로 태어난 새 사람만이 광야를 지나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즉 광야 같은 인생에서 우리를 이끌어가며 세상에 유혹받는 옛 사람을 다 죽이시고 결국 새 사람만 하나님 나라에 보내실 것임을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애굽이라는 거대 제국을 사용하셨습니다. 애굽을 연구하는 고대 학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몇 백 년을 살다가 신비하게 탈출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성경은 허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애굽 관리라면 자신들이 재앙을 당하고 아들들이 죽고 홍해가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기록하실 수 있을까요? 아마 있던 기록도 없애려 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와 민족을 통해 ‘세상에 매인 자들을 내가 반드시 구원할 것이다, 죽음과 같은 홍해를 건너 내가 그들을 십자가로 살려내며 광야 인생 가운데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 영원하고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로 너희를 부를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또한 그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곳은 여러분이 마음을 두고 살 곳이 아닙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면 우리는 자꾸 세상에 너무 깊은 관심과 사랑을 두게 됩니다. 이 세상은 계속 요동하기에 자꾸 두려워집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반석이라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 세상은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임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를 한 명씩 부르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믿는 믿음을 배우기 위해 이 땅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동하시나요? 기도하셔야 됩니다. 말씀을 통해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배우게 하셔서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견고함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은 임재와 말씀으로 임하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맛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