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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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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 05 왕하 4.1-7, 38-44 엘리사의 기적 속의 예수님

2026년 10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성경에는 기적이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기적을 오해해서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믿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내가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다.” 등의 주장들이 교회 역사 내내 많은 사람을 속였고, 또 많이들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아주 명확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열왕기하 4장의 다섯 가지 기적 중 세 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구약의 기적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으며 그래서 이것을 그림자입니다. 진짜가 오기 전에 그림자로 “이런 것이 앞으로 온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기적은 어떠한가요? 특별히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구약에서 보여 준 메시아의 그림자를 참 메시아 예수님께서 본인이 증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실체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아’입니다. 즉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인 메시아(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려 주었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기적을 보니 그분이 메시아(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어, 그것을 합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기적은 복음서에서 끝나지 않고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 승천 이후 다시 오실 때까지 진행되는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의 목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임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 필요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임재가 필요할 때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어나는 기적을 해석하는 바른 방식입니다. 지금 시대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라는 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안에서도 내용이 몇 가지로 나뉩니다.

     

첫 째는 불신자들을 구원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강력하게 나타날 때는 마귀의 통치를 받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적국의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듯이 어둠에 있던 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한국에 1960년대와 70년대에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저희 가정도 이 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실 뻔한 할아버지가 어느 날 기도를 받고 나으시면서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가 보다.”라고 생각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통치의 목적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이 너무 미성숙해서 말씀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도움닫기 역할로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초신자들의 기도는 자주 이루어집니다. 잃어버린 지갑도 찾고 감기도 낫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생각하면서 교회를 떠나지 않게 도와주십니다.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기록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특별한 현상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잘 응답된다면 교만할 이유도,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준이기에 여러분은 기적이 아닌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구원 계획을 위한 섭리적 개입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인과 많은 사람을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이 있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개입해 오십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가 로마에서까지 복음을 전하고 신약의 여러 성경책들을 쓰도록 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떠나갔는데 툴툴 털고 일어납니다. 또한 수없이 매를 맞고 배가 파손되어도 불사신처럼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 개인적 필요를 위한 기도에는 하나님은 기적으로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적의 목적이 명확합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기록된 것입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1.예수님이 죄의 종된 자들을 구속하실 것을 모형합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예수님께서 죄의 종이 된 자들을 구속하실 것을 모형합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얼마나 비극적인가요? 남편이 죽었는데 아이들까지 빼앗길 처지입니다. 빚을 갚을 상황이 아닙니다. 파산입니다. 과부가 되었고 아이들도 빼앗기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심정으로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는 여인에게 엘리사가 2절에 이야기합니다.

     

[2] ...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그러자 엘리사는 이웃에게서 그릇을 빌려서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한 그릇 남은 기름을 어떻게 버리나요? 그러나 지금은 절박한 상항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순종합니다. 영적인 절박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명령에 순종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절박함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마땅하고 필요한 과정입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어떻게 가난이 복인가요? 이 가난은 남과 비교해서 조금 없는 수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거지’라고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생존 능력이 없습니다.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여인도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반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절박했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5절에 어떻게 되었나요?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a] 그릇에 다 찬지라 …

     

이것을 보고 “우리 집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앞으로 메시아가 하실 일의 모형입니다. 기름을 계속 주시는 모형이 아니라, 빚진 자를 구원하는 모형입니다.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집에 포도주가 있었다면 포도주 통을 빌렸을 수도 있습니다. 도구는 상관없습니다. 도구는 나중에 알려 주실 것입니다. 이어서 6절 하반절입니다.

     

[6b] …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이제야 살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랬더니 7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기름을 파는 것은 ‘구속’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한자로 ‘구원할 구’에 ‘값을 치를 속’, 즉 말 그대로 값을 치러 살리는 것입니다. 왜 값을 치르나요? 노예로 팔려가면 그냥은 돌아올 수 없습니다. 고대에 누구에게 노예가 되었다면 많은 값을 치르고 다시 그를 데려와야 했습니다.

     

영어 redemption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사 redeem에서 ‘re’는 ‘다시’라는 뜻이고, ‘emere’는 라틴어로 ‘사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사 오다’가 ‘구속’입니다. 우리는 ‘구원, 구속’을 동일하게 사용하지만, 빚을 져서 노예 된 자를 값을 치르고 다시 사 와 노예 상태에서 해방한다는 뜻의 ‘구속’은 구원의 과정을 훨씬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레위기 25장 47, 48절을 보면 이 과정이 고엘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레 25:47-48 [47] 만일 …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므로 그가 너와 함께 있는 거류민… 에게 팔리면 [48] 그가 팔린 후에 그에게는 속량 받을 권리가 있나니 …

     

속량도 같은 의미입니다. 누군가가 빚을 져서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예 상태로 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가까운 친족이 팔려 가면 네가 대신 사 와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를 구속자, 영어로는 redeemer라고 부릅니다. 이는 히브리어 ‘고엘’에서 왔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오실 redeemer이신 예수님을 구약에서 그림으로 한번 보여 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구속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그림자이며 모형입니다. 그는 노예로 팔릴 뻔한 아이들을 기름을 팔아서 값을 치름으로 사 왔습니다. 그러나 실체이신 예수님은 기름을 팔지 않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값을 치르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육체적인 빚이 청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요? 죄와 사망의 노예 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해방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와 사망의 노예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가장 비참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상태입니다. 이것이 보아보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엇을 보여주셨나요? 모든 장님이 눈을 떴나요? 모든 귀머거리가 다 듣게 되었나요?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었는데도 자기 상황을 모르는 진짜 눈먼 자와 귀머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실체에 의해 해방되나요? 영원한 영적인 자유와 의롭다 하심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무엇이라고 하나요?

     

고전 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돈을 내고 노예를 사 왔다면 노예는 주인의 소유이듯 우리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구약이 미리 알려 준 것입니다. 이 여인이 기름을 판 값을 치러서 아이들이 노예 상태에서 구원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평생 경험한 가장 큰 기쁨이지 않았을까요?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빚이 해결되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바로 그 태도로 인생을 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가장 감사할까요?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깨달은 자가 풀려났을 때 감사합니다. 자신이 노예였는 줄도 모르는 채 “이제 당신은 풀려났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감사할까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들이 죄와 사망의 깊이와 고통을 맛보는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죄의 결과로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두려운 지 경험합니다. 그것을 경험할수록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자리에서 나를 구원하셨구나.” 인정하며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속의 은혜로 인해 여러분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2. 예수님이 죄의 독으로부터 치유하심을 모형합니다.

     

두 번째로,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예수님께서 죄의 독으로부터 치유하심을 모형합니다. 38절입니다.

     

[38]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니 제자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밥을 하는데 흉년이다 보니 평소 먹던 음식이 아니라, 들의 열매나 나물을 캐 와서 국을 끓입니다. 39절입니다.

     

[39]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 들호박을 따서…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 들호박은 지금도 광야 지대에 있는 콜로신스의 열매 혹은 ‘소돔의 사과’라고 합니다. 호박이나 수박처럼 생긴 이 안에는 독성이 있어서 맛이 엄청 쓰며 다량 섭취할 경우 위장에서부터 장애가 나타나고, 신경이 마비되며 설사를 하다가 심하면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쓴 맛이 나자 바로 발견합니다. 40절입니다.

     

[40] ... 무리가 국을 먹다가 그들이 외쳐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왜 독이 아니라 굳이 죽음의 독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죄가 가져온 무섭고 파괴적인 결과를 보여 주고자 한 것입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여기에서는 육체적인 죽음이고, 성경에서는 죄가 사망을 가져오는 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41절에 문제를 해결합니다.

     

[41]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이르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지니라

     

이것은 곡식을 빻은 가루로 밀가루라고 번역해도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에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소금도 됩니다. 그런데 국에 밀가루를 넣으면 수제비가 되듯 먹을 수 있는 것을 넣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 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 후 사람들에게 먹게 하니 독이 사라져서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무슨 그림인가요? 예수님께서 죄가 만들어 내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살려 주신다는 그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마가복음 16장 17절과 18절입니다.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

     

이런 말씀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 때문에 역사상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직도 미국에는 예배 시간에 뱀이 들어 있는 상자에 손을 넣어서 뱀을 만지고도 죽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증명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5, 60년대부터 시작되어 이 말씀을 따라하다가 여러 목사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실제 뱀을 만지거나 독을 먹어도 산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뱀은 마귀입니다. 모든 인간은 옛 뱀이라 불리는 마귀에게 물린 자들이며, 영혼에는 죄로 인한 독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민수기 21장 5절에 자세히 써 있습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셨는데, 독이 가득한 인간들은 자기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원망과 불평과 분노를 쏟아 냅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에 독이 가득하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튀어나오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죄의 결과입니다.

     

죄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영적인 공허함입니다. 생명이 고갈된 상태입니다. 영혼은 늘 목마릅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욕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내 욕망이 충족되는 경우는 점점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 때는 먹고 자면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자기만 하면 행복한가요? “내 집은 왜 이렇게 좁을까? 왜 나는 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야 할까? 지하철 사람들은 왜 시끄러울까?” 욕망이 끝이 없습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은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광야에서는 내 마음대로 안 되므로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을 깨물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하고 용서하는 말을 자주 하시나요? 애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안 됩니다. 그러나 욕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는 말은 끊임없이 합니다. 이것이 독이 가득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래서 이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십니다. 민수기 21장 6절입니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영어로는 ‘fiery serpent’라고 번역하는데, 원래 불뱀이라는 뱀은 없습니다. 이는 아마 방울뱀이나 코브라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왜 불뱀이라고 불렀나요? 물리면 몇 초 안에 몸이 40도가 넘게 뜨거워지다가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독 때문에 몸이 불타듯이 뜨거워진다고 해서 불뱀이라고 불렀습니다. 하필 왜 뱀인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뱀 새끼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귀의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원죄라는 것이 바로 인간 안에 독을 뿜어내게 만드는 무서운 영향력입니다. 그런데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민수기 21장 9절입니다.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놋뱀을 만들어 달아 그것을 보기만 하면 사는 것도 물론 모형입니다. 오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되실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4절에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놋뱀이 서 있던 자리에 예수님께서 매달려 서신 것입니다. 누구처럼인가요? 우리처럼입니다. 이 자리에 원래 죄인이 매달려야 합니다. 죄인 중에 가장 악독한 죄인, 뱀 같은 우리가 매달려야 할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매달리셔서 우리를 살게 하셨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잘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뱀처럼 남을 깨물고, 욕하고, 미워하고, 불평하고, 짜증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자리에 내 욕망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너무 중요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져야 하며, 내 옆에 있는 존재가 나의 욕망을 위해 존재해야 하므로 끊임없이 뱀독같이 남을 깨무는 것입니다. 게다 우리는 주로 가까운 사람을 깨뭅니다. 집에서 깨물린 생각을 하면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몸이 뜨거워지지 않나요? 독이 흘러서 그렇습니다. 깨물린 사람도 독이 가득해지고 또 깨물고 싶어 집니다.

     

우리도 모두 영혼 안에 깨물린 상처들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깨물린 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영혼의 상처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이렇게 가까운 관계로 만나게 하셨나요? 우리 안에 있는 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 폭로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목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면 불행은 점점 커지게 됩니다. 왜인가요? 행복이란 나의 욕망이 구체적이고 자극적으로 만족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불행해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간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사랑을 느낄 때 행복을 느끼기에 결혼에 대한 욕망도 구체적이고 강렬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결혼을 통해서도 우리가 뱀 같은 자임을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물론 조금 예쁜 꽃뱀도 있고, 더 사납게 생긴 놈도 있지만 뱀은 다 뱀입니다. 물려 보면 똑같이 아픕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은 자들은 어떻게 되나요? 뱀독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살려주세요 예수님, 제가 저 자리에 매달려 죽을 죄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바라본 자만 살게 되는 그 놀라운 은혜를 구약에서는 그림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3.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심을 모형합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사의 기적은 무엇을 모형하나요?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심을 모형합니다. 42절입니다.

     

[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제자들이 남자만 백 명 넘게 모였고 먹을 것이 보리떡 스무 개밖에 없는데 엘리사가 나눠주라고 합니다. 43절입니다.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44절에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신약에 정확하게 똑같은 일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병이어만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떡으로 두 번 많은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아주 거칠고 목이 막히는 종류입니다. 물고기는 참치 같은 배부른 반찬이 아니라 보리떡을 넘기기 힘들어서 작은 멸치 등을 소금에 절여 조금씩 같이 먹은 것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숫자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보리떡이 5개인데 5천 명이 먹고 12바구니가 남습니다. 칠병이어는 떡이 7개인데 4천 명이 먹고 7광주리가 남습니다. 오병이어에는 5가 반복되고 12가 나옵니다. 칠병이어에는 7이 반복되고 4가 나옵니다. 성경은 숫자에 의미를 담아서 표현합니다.

     

5는 구약의 모세오경을 이야기하는 유대인의 숫자입니다. 12는 구약의 열두 지파입니다. 오병이어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신다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만 먹이는 메시아가 아니시기에 이를 한번 더 행하십니다.

     

그래서 칠병이어는 일부러 유대가 아닌 벳새다라는 이방 땅에서 이방 사람들을 모아 떡을 먹이십니다. 7은 가나안의 일곱 이방 족속입니다. 7이 완전수라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숫자 4는 동서남북 모두를 뜻하는 숫자입니다. 7개의 떡으로 4천 명을 먹이고 7광주리가 나온 것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 이방인들의 생명의 주가 되신다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엘리사가 행한 기적의 실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 믿으면 배부르겠구나.” 오해한 사람들은 이후에 예수님이 먹을 것을 더 주시지 않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답하면서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물질적인 떡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후에 참치도 주시고 집도 주시길 바랬는데 주시지 않으니 그냥 다 떠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나요?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영생하는 생명의 떡이심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육적인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욕구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고 끝이 없나요? 20대 때는 결혼하고 직업만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혼하고 직업을 가진 30대에는 승진, 경쟁 혹은 육아로 다른 욕망이 튀어나옵니다. 그 이후에도 나이가 들수록 또 다른 욕망들이 찾아옵니다.

     

영혼 안에서 죄가 만들어 내는 공허로 우리는 계속 목마릅니다. 성경은 그래서 우리에게 자꾸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먹으라고 초대합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먹나요?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먹고 묵상하며, 그것으로 힘을 얻어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 가지 기적을 보았습니다. 과부가 기름을 얻은 기적, 독이 든 국이 해결된 기적, 보리떡 스무 개로 많은 사람이 먹은 기적은 모두 인간의 절대적인 위기입니다. 돈이 없어서 빚에 팔려 노예가 되었고, 독으로 죽게 되었고, 배고파서 살 수 없는 인간의 절대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무엇을 모형했나요? 모두 해결해 주었습니다. 기름도 채워 주고, 독을 해결하고, 사람들을 배불립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보혈로 죗값을 지불하셔서 우리가 자유를 얻고, 십자가로 죄의 독이 해결되며, 오병이어의 사건처럼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무엇인가요? 구속의 은혜, 치유의 은혜, 공급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노예 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독을 내뿜으며 나도 죽고 남도 죽이던 자가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마땅한 반응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독에 빠져 남을 물고 미워하던 자가 점점 치유되어 독이 해결되고 나면 이제 하나님과 남을 위해 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5에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합니다.

     

본문은 구약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빚을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 독을 십자가로 해독하셨고, 예수님 자신을 내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이렇게 예수님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도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보고 믿고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시며 힘을 내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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