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강해 08 6.4-9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 2
2025년 8월 17일 주일예배 설교문/ 장우현 목사
[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우연히 어떤 일들이 딱 들어맞았던 신기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 우연이란 어떤 상황이 뜻하지 않게 일어나서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울 때 쓰는 말입니다. 저희는 그럴 때 좋은 일이 생기면 '운이 좋았다'라고 하거나, 반대로 일이 자꾸 꼬이면 '운이 나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운'이라는 말은 우주의 모든 물질이 순환하는 큰 흐름에서부터 삶의 소소한 부분까지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과 흐름을 의미합니다. 종교가 있던 없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우연한 일들 뒤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특별한 힘이나 신의 손길이 있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운이라는 표현은 무신론자들도 자주 쓰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새해가 되면 운세를 찾아보기도 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어디 신통하다는 절이라도 가서 복을 빌기도 합니다. 결국 이 우연과 운이라는 것은 운세나 점술, 미신, 더 나아가 종교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바로 이 '우연'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아주 중요한 통로로 표현합니다. 저희가 보기엔 그저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삶의 우연한 일들을 '그냥 운이 좋았던거지' 하고 넘겨버리거나, 반대로 어떻게 하면 운세를 좋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식으로 미신처럼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섭리를 오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점 치는 자들을 돌로 쳐 죽이고, 점을 보는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끊어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우연'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시는지, 그리고 저희는 그것을 어떻게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함께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그리고 더 깊이 경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여러 책 중에서도 에스더서는 이런 하나님의 섭리 잘 보여주는 책인데요, 특히 오늘 본문인 6장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그 신비하고 놀라운 은혜를 발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 우연을 통해 은혜를 베푸십니다.(4-5)
[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왕은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로 모르드개의 잊혀졌던 공로와 은혜를 기억하고 보상을 하기위해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잠을 자야하는 늦은 시간이었는데요, 그 때 마침 하만이 도착한 것입니다. 여기서 '마침'이라는 말은 신기하게도 우연한 상황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맞물렸다는 표현입니다.
이 에스더서에는요, 오늘 이 일 말고도 그런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와스디 왕후가 폐위될 때 마침 에스더가 가장 아름다운 때이면서도 미혼었고, 그 때 마침 지혜롭고 순종적인 에스더를 알아보고 호의를 베풀어 주는 선한 궁정관리도 있었고, 그 믿음 좋은 에스더가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왕에게 나갔는데 그 때 마침 왕이 은혜를 베풀어주고, 잔치 전날 그 때 마침 왕이 잠이 안구요, 또 많은 책들 가운데 마침 궁중일기를 읽고 싶어졌고 또 그 때 마침 모르드개에 대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더 오래된 일들을 읽을 수도 있었거든요. 이런 신기하고도 우연한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맞물리면서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연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왕과 하만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모르드개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신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가요? 바로 오늘 본문의 앞부분, 지난 시간에 보셨던 내용입니다. 안풀리던 일이 잘 풀리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고, 교만했던 죄를 깨닫고 회개해서 하나님과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주신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우연한 방식으로 섭리하신다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이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생의 어떤 상황과 결과들을 누가 냈는지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이 구원의 결과가 모르드개가 애통해하며 기도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에스더가 희생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섭리를 해주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과 사람들의 협력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이게 지금도 신학적 논쟁이 되기 때문에, 이걸로 교파와 교단이 갈라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믿는 사람들까지도 헷갈리게 굳이 왜 우연을 통해 섭리하실까요? 거기엔 중요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시며 일하시면 죄인들은 오히려 믿음으로 반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항상 은혜 충만하고, 항상 순종하고, 항상 하나님 나라만을 위해 살아가나요? 저도 그러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눈에 보이시면 처음에는 좋을 수 있겠죠, 그런데 10년, 20년, 30년이 되면 오히려 그 거룩하셔서 항상 선하신 하나님이 항상 같이 계신게 부담스럽고, 억눌림과 두려움 속에 살게 되기 쉽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세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아내와 남편, 정말 사랑스러우시죠. 그런데 그렇게 사랑스러운 분이 하루종일 따라다니시며 나의 모든 일상생활을 지켜보고, 생각까지도 알 수 있고, 잘못할 때마다 올바르게 행할 수 있도록 지적을 해주시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한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신가요? 특히나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더 모르니까, 오해가 더 심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척하는 종교인이 되거나,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만을 추종하는 광신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과 순종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시죠. 하나님이 보이든 안보이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인생의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가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연을 통해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연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두 번째 이유는요, 저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하는 일마다 나타나셔서 그게 아니고 이거야! 하고 옳은 길로 인도하신다면,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는 선해 보이겠죠. 하지만 저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어거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자유의지를 통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면,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은 선한 결과들과 악한 결과들을 모두 합력해서 필연적인 구원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 신비한 섭리를 통해 우연과 필연이 충돌하지 않고, 저희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충돌하지 않는 접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연을 통해 섭리하시는 마지막 이유는요, 누가 했는지 모르는 이 우연한 결과로 인해서 저희가 내 노력과 공로와 의를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우연이 없다면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것이 내 능력과 노력이나,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와, 내가 어디 출신이냐에 따라 정해진다고 확고하게 믿고 살 것입니다. 구원마저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우연한 상황이나 만남, 우연한 성공이나 실패를 통해 인생에 예측하지 못하는 스펙타클한 변수들이 생깁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개입하실 틈이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이건 대통령이 와서 도와준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떻게 그 타이밍에 현대 의학도 고칠 수 없는 병이 나을 수 있지?라는 순간이 인생에 찾아올 수 있는 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니까 하나님을 진정 믿는 사람만이 이게 하나님이 하신 거구나, 하나님이 주신 은혜구나 하면서 감사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역시도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저희는 거기에 협력할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저희는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결과가 나오는 가운데 현실은 힘들지만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는 반응으로 참여를 하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든 믿음이든 순종이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저희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그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그 우연을 섭리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아내는 최근에 이렇게 우연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면서 참 신기해하면서 몇 시간씩 며칠 동안이나 나눔을 하게된 경험을 했습니다. 저와 아내가 주일에 예배 끝나고 판교에 있는 처제네 카페에 화분을 전해주기 위해 들렀다가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처제에게 전화가 오더니 지금 라디오에서 예전에 저희 교회에서 사역하셨던 이선영 전도사님이 라디오에 나온다고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라디오를 틀어봤더니 정말 이선영 전도사님이 아이들을 위한 구연동화 같은 라디오 설교를 하고 계시더라구요. 잘 하기도 하셨지만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같이 타고 계셨던 장모님이 이선영 전도사님이 누구셨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검색을 했더니 지금 사역하고 계신 교회에 등록된 사진이 나와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무심코 화면을 올려봤더니 담임목사님이 아내가 청년이었을 때 말씀 묵상과 기도에 대해 정말 열정을 다해서 지도해 주셨던 목사님이신거에요. 아내는 그 목사님 사모님이랑도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서 언니처럼 친하게 지냈었거든요. 그래서 아내는 반가워서 바로 그 목사님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 분도 반가워하시면서 마침 올해 4월에 그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서 얼마 전에 감사 예배르 드렸다는거에요. 그런데 그 교회가 저희 교회랑도 가까운 곳이었고, 김일승 목사님과 친분이 있으신, 개명교회 박태양 목사님의 모교회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또 이선영 전도사님이 늦게 결혼을 하셨는데요, 그 남편 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역을 하고 계셨고, 지금도 같이 사역을 하고 계셨던거에요. 와. 저희는 정말 신기하다, 이런 우연이 있나 하면서, 아내가 청년부 때 그 목사님이랑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내가 잠에서 깨자마자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자기가 청년 때는 그렇게 열심히 교회 봉사 하고, 교회에서 사는 것처럼 지내고, 말씀 공부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 은혜를 잊고 지내고 있는 것 같다는거에요. 물론 지금 유치부를 섬기고 있고,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아이들과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이 하늘사랑교회 유치부가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 안에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기도하지 않는 자신을 깨닫게 됐다는거에요. 그 목사님이 그렇게 지금 삶에 매몰되어 내 유익이나 아이들과 부모님의 당장의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큰 비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때가 기억나니까 지금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내가 주일설교 준비하고 있는 말씀이 딱 이거다. 하나님이 우연을 통해 섭리하셔서, 잊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하시고, 그걸 잊고 교만했던 모습을 회개하게 하신다고. 하나님이 이 때 마침 이런 우연한 상황을 통해 제 아내도 은혜를 주셔서 기도의 올바른 방향을 회복해 주시고, 저에게도 딱 맞는 살아있는 예화를 주신 것 같다고 하면서 신나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말씀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이렇게 라이브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을 함께 발견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대화 하는 것, 정말 귀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것은요, 처음에 처제네 카페에 주러 갔었던 그 화분은요, 그 때 마침 장모님 아파트에서 누가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거였거든요. 그런데 처제가 카페 꾸미는데 정말 세밀해서요 마음에 안들 확률이 더 높았어요. 그런데 사진을 보내보니까 마침 마음에 들었던거에요. 그런데 그 화분 아내가 교회 주차장에서 처제네 차에 그냥 옮겨만 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희 차는 커서 괜찮지만, 처제네 차에 실으면 뒤에 탄 아이들이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침에 교회 가는 길에 우연히 들게 되서 가까우니까 잠깐 들렀다 가자고 아내에게 얘기 해서 간거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마침 제가 피곤했는지 카페 의자에서 2시간을 잤어요. 가족들이 제가 일어날 때까지 놀며 이야기하며 기다렸던거에요. 그래서 사실 평소에는 움직이지 않던 시간대에 차로 이동하게 됐고, 그 때 마침 처제네가 라디오를 틀면서 저희에게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요즘 시대에 차가 아니면 어디서 라디오를 듣겠어요.
어떻게 보면 그냥 우연 몇 개가 겹쳤던 신기했던 날이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좀 지나면 아 그런 날이 있었지 하고 잊혀졌을 수도 있는 평범한 날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아내에게 잊혀졌던 은혜를 기억나게 해주셨다는 것을 발견하고 오늘 말씀이 딱 연결되니까, 그 모든 우연한 상황들과 말씀 가운데서 살아계시고 저희의 삶에 세세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희는 성향상 우연하고 신기한 일들을 통해 잘 안풀리던 일이 풀리고, 막혔던 돈줄이 좀 풀리고, 원하던 성적, 학교, 직장, 성공 같은게 있을 때에나 하나님이 섭리해주셨다고 말하고 또 그걸 가지고 자랑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낳으시니까, 그 때는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 하셨지만 섭리는 하지 않으신다고 하거나, 그게 더 심해지면 신은 죽었다!고 하거나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오해하기 쉬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는 우연을 통해 섭리하시는 이유는 다 저희를 위해서입니다. 우연을 통해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믿는 참 믿음을 주시고, 저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며, 구원의 모든 공로가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쳐 주실 때 저희는 인생의 모든 일들을 은혜로 받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연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매일 경험하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감사와 기쁨을 나누시며 이 땅을 풍성하게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우연을 통해 교만을 드러내십니다.(6-9)
사실 지금 하만이나 왕이나 우연을 통해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동일한 섭리의 순간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의 선택과 인생의 방향이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왕은 자신의 실수와 그 수치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대가도 치르려고 하면서 이전에 교만했던 모습에서 돌이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만이 누군가를 존귀하게 하려면 거의 왕처럼 높이라는 황당한 방법을 제안했는데도 그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하만은 이 똑같은 상황에서 왕이 나 말고 누구를 더 높이겠느냐. 라면서 영혼 중심에 있던 그 교만이 마음 속 생각으로 떠오르게 됐고, 이게 말과 행동으로도 드러나게 됩니다. 7절부터 9절입니다.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왕복을 입고 왕관을 쓰고 왕의 말을 타고 왕의 성을 순회하는 모습...이건 사실 자기가 왕 노릇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누릴꺼 다 누리고, 또 돈으로 왕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데도 만족과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교만의 실체입니다.
이렇게 죄인의 영혼의 깊은 중심에 있는 교만은요, 아무리 숨기고, 아닌척, 겸손한 척 해도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어떤 우연한 상황이 닥치면 생각과 말과 행동과, 분노와 우울과 짜증, 그리고 표정만으로도, 그 교만이라는 보이지 않는 영적 본질이 왕 노릇하려는 모습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1장에서 아하수에로 왕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거절과 큰 수치를 당했는데요, 그 때는 지금 하만과 같이 자신의 교만함을 보지 못하고 왕 노릇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는 교만의 종합세트가 다 드러났습니다.그런데 에스더 1장에서 하나님도 안나오시고,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안나오니까, 하나님의 섭리도 없고, 은혜도 없던 것이 아닙니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지만 미래에 있을 일들을 위해 에스더의 자리를 만들어 주시는 은혜의 섭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왕 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도 하나님의 그 은혜로운 섭리 속에 동일하게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은혜가 베풀어지지 않으니까 자기 교만을 분출하며, 관계의 파괴와 인생의 고통만이 있는 가운데 에스더의 자리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섭리가 똑같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일어났을 때 누군가는 교만에서 돌이키고, 누구는 교만을 쏟아내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 섭리를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지, 아니면 은혜를 잊채로 살도록 그대로 두시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해 주시고, 특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주시고, 함께 거닐며 동행해 주시고, 온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다는 것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 때부터 지금까지 그 은혜를 잊고 교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거부한 모든 사람들이 영원한 심판에 이르도록 그냥 두셔도 됐지만, 더 큰 구원의 목적을 위해 선택된 자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그냥 두시는 것입니다.
이 아하수에로 왕도 보면요, 처음에는 은혜가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 백성들이 구원을 얻고 하만이 심판을 받는데 있어서 권세자로서 올바른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때에는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만약에 이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그 일기를 읽었다면 잊혀졌던 은혜를 기억하고 보상을 하는게 아니라 모르드개를 쥐도새도 모르게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 이거 자기 보상 안해줬다고 모르드개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에게 소문이라도 냈으면 어쩔뻔했어 라고 걍팍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하만도 이 왕과 동일한 섭리의 순간에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은혜가 베풀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만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아말렉 족속이고, 마귀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하만과 그를 따르는 민족들을 통해서는 은혜가 없으면 교만할 뿐이고, 그 교만이 끝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 교만의 끝은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는 영원한 심판 뿐이라는 것을 모형으로 드러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연한 섭리 가운데 은혜가 없어서 이렇게 교만이 드러나는 것이 꼭 마귀나 불신자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도 항상 은혜가 충만하길 바라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죠. 빠지지 않고 내가 열심을 내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항상 은혜가 막 가득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어떤 우연히 벌어지는 것 같은 좋은 상황들이나 나쁜 상황들 속에서 그 교만이 확 드러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좋아보이는 상황이든, 나빠보이는 상황이든요.
저야, 그런 일들이 워낙 많아서 하고 싶은 예화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 예화들을 통해 성도님들이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딱 맞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시간 관계상, 성도님들의 삶에 이 우연한 섭리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좀 구체적으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는 절기헌금을 모두 외부로 흘려보냅니다. 저희가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막 헌금 하라고 설교하지 않아도 우연하게도 교회 규모보다 성도님들이 많은 헌금을 하십니다. 다른 교회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거든요. 이런 교회가 있는 것도 우연한 만남들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들을 기도하며 필요한 곳에 보내면, 우연하게 그곳에서도 그 금액이 필요했던만큼 딱 맞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참 신기하고 감사하죠. 와..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보낸 것이구나.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신기하고 우연한 섭리 가운데 저희가 우리는 절기헌금을 많이 모으고, 우리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다 흘려보낸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저희는 어느새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교만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일인데도 불구하구요. 그래서 그러지 않는 다른 교회를 비난하게 되거나, 나를 자랑하게 되고, 그런 나와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누군가를 보게 되면 분노하거나 그 사람을 폄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저희가 이 우연한 섭리 속에 집중해야 할 것은 저희의 어떤 행위들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혹은 내가 그 사실을 가지고 교만한 모습이 드러났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걍팍하게 왕 노릇하던 것에 대해 회개하는 것이겠죠.
성도 여러분들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저희는 성향상 우연히 좋은 일들이 일어났을 때에만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안좋은 일들이 일어난 것은 숨기거나 남탓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 작은 습관이 어느순간 나를 세속적 신앙인으로 만들고, 안좋아 보이는 일들을 숨기게 만들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는 섭리를 하실 일 없다고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그 오해 가운데 삶의 어려운 상황이 내 힘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로 오래 지속되다보면 하나님이 왜 나와 함께하지 않으시냐고, 왜 나를 이렇게 버려 두시느냐고 하나님께 분노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이런 분들은 십 수년,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오셨기 때문에, 이 복음도 튕겨내고, 목사든, 장로님이든, 권사님이든, 누가 올바른 말을 해줘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게 자신과 하나님과의 수십년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자기의 인생 전체의 신앙을 부정해야 되거든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자녀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하게 되는 신앙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저도 하나님이 좋아보이는 일들, 신기한 일들 진짜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일부러 말하기 부끄럽거나 힘든 일들을 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저의 치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걸 막 즐거워하는 변태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도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더 많이 말씀드려서 신앙의 균형을 잡고, 그런 일들을 나누는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구원의 과정이라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중고등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잘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잘보게 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거라고 생각하면, 잘 못보게 되면 하나님이 안도와주신게 됩니다. 원하는 학교에 갔느냐 못갔느냐로 하나님이 섭리 하셨냐 안하셨냐를 따지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세속주의적인 신앙이 되고, 하나님과 관계 없이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학생으로서, 또 자녀로서, 형, 오빠, 누나, 동생, 누군가의 친구로서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섭리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여러가지 우연한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나게 해주시기도 하고, 교만한 모습을 드러내 회개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 인생에 좋았던 때이나, 힘들었던 때이나, 하나님이 한 순간도 함께하지 않으시는 순간이 없구나 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친구들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장래희망,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되는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일상의 우연한 상황들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적 민감함을 높여주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특히 우연한 상황들을 통해 은혜를 베풀어주시던, 교만을 드러내 주시던 그 두가지 결과를 균형있게 인정하고 받아들일줄 알아야 정말 영적으로 건강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저희의 구원을 위해 일상의 삶 가운데 이 우연의 틈을 통해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