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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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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009 고난 02 창 39.1-23 고난 중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

2025년 9월 14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살다가 예측하지 못한 고난이 임하면 믿음이 없던 사람은 완전히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원래 믿음이 있던 사람은 고난을 잘 버틸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견디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입니다.


믿음이 있던 성도조차 고난을 지나면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나 의심하게 되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창세기 39장은 이렇게 믿음 있는 자들조차 흔들리기 쉬운 고난의 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기록된 말씀입니다.


고난 중에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눈에 보는 것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은 영적이라 볼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셔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나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니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고 결론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9장은 하나님이 고난의 때에 영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네 번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이 구절을 이야기합니다. 2절 보시면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


3절에는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


21절에는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


마지막으로 23절에는


[23] …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


요셉은 엄청난 고난을 지나고 있는데 이 상황을 묘사하는 영적인 해석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신다고 합니다. 눈으로 하나님을 확인할 수 없지만 성경은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셉이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이 나쁜 일들조차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고난받는 성도들의 인생 가운데도 동일한 일이 벌어집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며 어떤 일을 하시는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어떤 일을 하시나요?

1.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하게 하십니다. 1절입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야곱에게 사랑받던 아들 요셉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형들에게 인신매매 당해서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먼 나라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형제들끼리는 원래 미움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사랑과 유익을 남과 나누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밉다고 형제를 팔아버리고 죽일 수 있나요? 인신매매로 인해 영원히 아버지를 만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2절은 다음과 같이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2a]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


하나님이 함께하시지만 인생 최악의 일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바입니다. 내가 볼 때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고,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차라리 죽으면 끝일 텐데, 형제들 나를 구덩이에 집어넣고 낄낄대면서 밥을 먹던 장면이 영혼 안에 비수처럼 꽂혀서 견딜 수가 없는데 죽을 수도 없는 고통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성경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합니다. 이것보다 더 이해 안 가는 표현은 2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2b] …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형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는 일마다 어려움 없이 잘 풀리고 다 이루어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학생이 원하던 대학에 가고, 사업하는 사람의 매출이 매달 두 배씩 뛰는 것이 형통이라면, 요셉 역시 구덩이에서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갔어야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단어를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형통하다’는 히브리어는 ‘찰라흐’로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번역되기도 합니다. 사사기 14장 6절을 읽어 드릴테니 이 중에 어떤 단어가 ‘형통하다’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삿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


‘형통하다’가 어디 있나요? ‘강하게 임하다’입니다. 즉 ‘찰라흐’는 강력한 힘이 누군가에게 임해 그 사람을 사로잡아 어떤 일을 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성경적 형통은 하나님의 영이 주로 임하셔서 한 사람을 사로잡아 그가 원래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삼손이 하나님의 힘에 사로잡혀 사자를 찢는 능력을 발휘했듯 요셉에게 동일한 성령이 임하셔서 그가 혼자 힘으로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을 견디며 보디발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형통입니다.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형통케 하시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형통하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들을 내가 수용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 뜻이 성취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것을 이루신 것이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한 가정의 총무로 가정을 섬기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형제들로부터 배신당한 미움과 분노를 쏟아내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또 나중에 총리가 되기 위한 특별한 만남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자리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물론 노예가 되고 또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요셉의 고난을 시편 105편 18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 105: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히브리어를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약간 다른 뜻이 됩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발은 차꼬에 매어 괴롭힘을 당하며 그의 영혼은 쇠사슬에 꿰뚫렸으니”


단순히 육체의 발과 몸이 묶였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쇠꼬챙이로 꿰뚫린 것처럼 고통했으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꼭 필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한테 배신당하고 상처받으면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가족에게서 학교에서 상처 받은 말과 행동은 몇 십 년이 지나도 가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만약 요셉 안에 분노가 가득한 채로 총리가 되었다면 되자마자 보복에 나섰을 것입니다.


나중에 힘을 가져서 나를 무시하던 인간들을 밟아주는 상상만으로도 희열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죄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의 영혼을 쇠사슬로 꿰뚫어서 그의 영혼 안에 있던 오물을 쏟아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요셉이 어떤 사람이 됐나요? 창세기 45장 7절부터 8절입니다.


창 45:7-8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변화된 요셉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완전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끝까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몇 십 년이 흐른 뒤에 야곱이 죽고 나자 ’아버지가 계실 때는 보복을 안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보복하겠구나‘ 하며 아버지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거짓말로 머리를 조아립니다. 본인들 기준에도 자신들은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요셉이 웁니다. 자신은 진짜 용서했는데 형들이 두려움에 매어 살려달라고 하자 요셉은 형들을 붙잡고 당신들의 자손들까지 키우겠다고 약속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해 영혼의 더러운 찌꺼기가 다 쏟아진 사람들은 예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과정이 하나님이 내 인생에 행하셨다는 시각이 바뀌기는 것은 무척 어려운 과정입니다.


물론 형들은 이기적이었고 마음이 좁았고 동생을 미워했지만 동생을 팔아넘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동생을 팔도록 유도하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두 번이나 계시적인 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7장 9절에 두 번째 꿈을 보시면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고대에는 꿈을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똑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이나 꾼다면 하나님이 확실히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창세기 37장 18절부터 2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 37:18-20 [18] …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이 놈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죽이자’가 아닙니다. ‘이 놈은 꿈꾸는 자야. 하나님이 얘한테 꿈을 주셨어. 하나님도 요셉을 편애하는 거야. 죽인 뒤에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 즉 꿈 때문에 죽인 것인데 이 꿈을 누가 꾸게 하셨나요? 하나님이 두 번 꾸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개입하고 인도해 나가십니다. 성령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악령을 통해서도 형통케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나 악령은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가난일 수 있고 때로는 병일 수 있고 때로는 가족일 수 있고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버무리셔서 성도에게 찾아오십니다. 성경에 악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다른 경우는 사무엘상 18장 10절 11절입니다.


삼상 18:10-11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힘 있게 내리매’가 ‘찰라흐’ ‘형통케 하심’입니다.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셔서 사울을 사로잡게 하셨습니다. 왜인가요?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때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다윗을 미워하긴 했지만, 사위이자 나라의 영웅인 그를 죽일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울의 숨겨진 생각이 그를 사로잡아 실제로 행동하는 자리까지 드러나도록 사울에게 악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인가요? 다윗을 위해입니다.


사무엘서 설교 때 매주 말씀드렸듯이 모든 사람 안에는 다윗과 사울이 공존합니다. 사울은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의 모형이고 다윗은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새 사람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다윗과 사울이 왔다 갔다 합니다.


하나님은 악령이든 성령이든 무슨 통로로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기서는 사울로 하여금 다윗을 죽이기까지 미워하도록 만드셔서 다윗이 메시아의 모형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고난의 여정을 친히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가족 안에서 외부에서 나를 찌르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옛 사람은 죽여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다윗과 같은 사람 만나서 한 번도 싸우지도 않고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가까운 관계를 통해 사울과 같은 존재가 다윗처럼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서운 옛사람이 결혼을 통해 깨어지고 사랑이 얼마나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가를 배우며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결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장하면 행복은 결과로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요셉의 인생이 어떠했나요? 노예로 팔려서 옛날과는 다른 삶을 살았지만 지금 형통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에 10절에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많은 목사님들이 이 구절로 특히 청년들에게 유혹을 피하라고 설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누군가가 잘했으니까 너도 열심을 내라는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결심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이 땅에는 아픈 사람도, 뚱뚱한 사람도, 게으른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은 ‘찰라흐’ 즉, 형통이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넘어갔다면 이후의 하나님의 계획에 치명적이기 떄문에 하나님이 막아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내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남을 비난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비난함으로 나는 그렇지 않은 존재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이것도 죄입니다. 여러분이 유혹을 넉넉히 이기고 계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니 감사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 다윗을 통해 성경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 2절부터 4절입니다.


삼하 11:2-4 [2] … 다윗이 …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 더불어 동침하매 …


물론 옥상에서 산책하던 중이었으니 볼 수 있습니다. 또 누군지 궁금할 수 있으니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몇 번의 단계에서도 멈췄어야 하는데 데려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있을 때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이 동굴에서 용변을 보고 있고 찔러 죽일 수 있는 거리였는데도 오히려 부하들을 말렸던 사람입니다.


성욕보다 훨씬 강렬한 욕망인 보복에 대한 욕망, 생존 욕망도 누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끝나고 왕이 되자 통제가 불가능해졌던 것입니다.


요셉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데도 성경은 여전히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하나요? 23절입니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노예로 팔려간 것도 억울하고, 보디발 아내한테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도 억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형통하면 드라마처럼 누명이 풀리고 감옥에서 나와야 되는데.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감옥에 갇힌 것이 하나님의 형통입니다. 갇혀서 영혼이 쇠사슬에 꿰뚫리듯이 옛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보여줄 통치자로 서는 준비가 되어야 하며 바로 그 곳에서 술 따르는 관원장을 만나 바로에게 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니 과거의 어떤 일들이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제 인생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 나는 약하게 태어났을까? 왜 아버지 사업이 망했을까? 영적인 시각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형통케 하신 결과였습니다.


제가 23살에 집이 망하고 44살에 교회를 개척하기까지 20년 동안이 괄호와 같았습니다. 그간의 어려움들은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감사의 제목입니다. 물론 미리 알았더라면 그 중 하나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이끌려 간 자리에서 그것을 경험했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결과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돈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단순히 조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남이 주는 돈으로 먹고 살았으니 다른 말로 하면 거지였습니다. 돈을 받을 때마다 자존심이 박살 나고 나도 일을 해서 대가를 치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너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으로 20년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돈 때문에 상처 입고 가난했던 사람은 돈에 대한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고통 중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 돈에 대해 자유로워졌습니다. 자유로우니까 누군가 어렵다고 하면 쉽게 돈을 줄 수 있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학 중 고통스러웠던 또 다른 영역은 무명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유명하진 않았지만 서울대와 대형 교회 사역이라는 포장지로 저를 꾸미곤 했었습니다. 유학 7년의 무명도 서러웠는데 귀국후 요셉의 감옥 같은 남의 교회 지하실에 살면서 열등감도 증폭했습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사실 같은 것입니다. 열등감이 크면 조금이라도 자신을 드러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멸시합니다. 저는 2,30대 때 큰 교회 목사님들을 보면 은혜와 능력이 많다고 생각했고 개척교회 하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능력이 없으면 저렇게 목회를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봤다면 실패한 멍충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제가 길고 긴 무명의 시간을 지내며 완전히 낮아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금은 다섯 명, 열 명과 함께 10년, 20년 목회하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저라면 못했을 텐데 어떻게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견디셨는지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노회에서 임원을 했습니다. 임원 중 한 목사님이 성도 10명으로 20년 목회하신 분이었습니다. 임원들은 1년에 한 번 수련회를 가는데 첫 해에는 코로나라 가까운 곳으로 갔고 2년 째에는 코로나가 풀려서 해외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이 되자마자 맞은편에 앉아 계신 목사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큰 교회는 노회 행사가 있을 때 교회에서 지원을 해 주지만, 이 분은 교회에서 대줄 수도 없고 월급도 거의 못 받으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그런 여유자금이 없으신 분입니다.


차 안에서 내내 그 분 생각이 나서 집에 오자마자 전화 드려서 임원 수련회 가실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목사님이 ‘아내한테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갑갑해서 집에 도착했는데 못 올라가고 차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제가 대 드릴 테니까 같이 가시자고 했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60살이신데 그때 여권을 처음 만드셨습니다. 두 분이 비행기도 처음 타보시고 해외 너무 좋다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옛날 저라면 상상도 못할 마음이지만 지금은 연약한 분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무척 감사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 분노하던 제 영혼이 많이 잠잠케 되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매일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하나님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그 마음을 박살 내셨습니다. 사실 저는 아내가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인 줄 알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해서 아내가 심하게 아팠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만 하기도 힘든데 아내가 아프니까 화가 났습니다. 미국까지 와서 내가 밥하고 빨래하고 애 보고 있어야 되나 싶은데 아픈 사람한테 화낼 수는 없으니 매일 하나님께 화내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매주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분노하는 마음이 바로 네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가장 무서운 죄악이다.’ 맨날 화내다가 배운 말씀입니다.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제가 완전히 받아들였더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화가 잘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내 뜻대로 안 되면 하나님이 다른 길을 여시겠지 생각합니다. 여러분, 고난이 있었지만 고난의 결과는 아름답습니다. 만약 제가 2,30대의 고난을 겪지 않은 채 여기서 만났다면 서로 갈리고 상처 입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목사 쫓아내고 교인 출교하고 분쟁하고 소송하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도 똑같은 존재였는데 하나님이 20년의 고난을 통해 은혜를 베푸셨고 이것이 형통입니다. 물론 제가 생각했던 형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지만 결과를 보니 너무 아름답고 감사한 결과입니다.


저는 요즘 지난 10년을 자주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자격이 없는데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주 웁니다. 말씀 준비하다 울고, 찬양 듣다 울고, 하나님이 나같은 자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웁니다. 돈 때문에 벌벌 떨고, 교만하고, 내 마음대로 안 되면 화내다가 다른 사람 미워하다 지옥처럼 살 뻔 한 인생이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함께 하셔서 이렇게 형통케 하셨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장 큰 고난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여러분의 인생을 형통케 만드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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