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강해 06 왕하 4.8-37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2026년 10월 1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지난 시간에는 열왕기하 4장의 세 가지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과부의 기름을 채우셔서 노예가 될 상태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이야기, 국에 들어간 독을 해독하심으로 치유하시는 이야기, 또 보리떡 몇 개로 백 명을 배불리셔서 예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 사이에 있는 수넴 여인에게 일어난 기적으로, 아이가 없던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고, 또 그 아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입니다. 다른 기적들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빚에 팔려 가는 것, 오염된 국을 해독하는 것, 무리가 빵을 배불리 먹은 것은 돈이나 해독제 등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 일들이 모두 의미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이 기적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신 것이긴 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의 두 가지 기적은 흉내 낼 수 없는, 생명과 관계있는 기적입니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게 갑자기 아이가 생깁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기적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1.영적 생명을 주시는 일입니다. vv.8-17
그렇다면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영적 생명을 주시는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올 때마다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보고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쉬시라고 자기 집 한 칸을 휴식 장소로 제공합니다.
이런 호의에 엘리사도 왕과 권력자들에게 청탁을 해서라도 여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나는 지금 평안하고, 권력이나 관직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여인의 필요를 찾아냅니다. 14절입니다.
[14] …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늙었다는 것은 가임 가능성이 없는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이 대가 끊긴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여인에게 수치스럽고 비참한 상황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임이 저주라고까지 여길 정도였지만 이들은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16절 상반절에 엘리사가 약속합니다.
[16a]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
이 놀라운 약속에 대해 여인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16b] …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당연한 반응입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겠습니까? “올해는 생기려나? 건강을 더 잘 지키면 생기려나? 뭘 더 노력해야 하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10년 정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 가정은 엄청난 기대와 실망을 지나갑니다.
예전에 어떤 교회에 설교를 하고 나서 어떤 자매가 찾아와 잠시 상담을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결혼한 지 십몇 년이 되었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으면서 주변에서 자꾸 “더 열심히 기도해라. 네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불임으로 인해 신앙까지 무너지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복음에 대해 설교하자, 자기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는 확답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여인도 얼마나 그런 과정을 지나갔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은 포기하고 놀리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에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성경에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늙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도 천사가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선포했고 사라는 비웃었지만 정말로 1년 후에 아이가 생깁니다. 이삭도 2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게 하십니다. 야곱도 라헬과의 관계에서는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이가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씨로 말미암아 내가 복을 주겠다.”고 약속한 중요한 사람들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막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이들을 통해 생명을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생명을 얻게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그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이야기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영적 생명이 없이는 잉태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시자 잉태하게 됩니다. 자녀가 궁극적 선물이 아닙니다. 구약은 모두 모형입니다.
죄는 우리가 하는 나쁜 행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생명이 없는 상태가 죄입니다. 생명이 없으므로 우리는 생명을 잉태할 수도, 재생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약 내내 이렇게 약속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생명 없는 자들을 죽음 가운데서 살려 내어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생명을 주고 어둠이 물러가게 하겠다.”
이 영적 상태를 보여 주려고 구약의 주요 인물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린 것입니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이사야 54장 1절입니다.
사 54: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실제로는 아이를 낳아서 민족이 유지되었지만 구약은 “너는 잉태하지도 못했고 출산하지도 못했다.”라고 말씀합니다. 왜인가요? 영적으로 죽은 자들, 생명의 씨를 받을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소위 ‘좀비’같은 상태입니다. 팔다리를 움직이며 걷기는 하지만 살아 있다거나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성경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생명이 없어 잉태하지도 못하고 생명을 생산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 가져온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속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체가 더러운 냄새를 풍기듯이 인간의 악취를 죄악이라고 부릅니다.
죄는 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죄가 있으면 반드시 악이 풍겨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만 악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선하고 아름다운가요?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악취를 풍깁니다. 이것은 특히 가까운 사람들만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시나요? 생명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생명 없던 자들이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되는지 요한복음 3장 5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 3:5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은 쉽게 이야기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born again’입니다. 그것을 육적으로 바라본 니고데모는 “제가 이미 성인이 되었고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육적으로 바라보면 불가능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왜 ‘물과 성령’이라고 했나요? 여기서 물은 성령의 역할을 보여 줍니다. 즉 ‘물과 같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36장 25, 26절입니다.
겔 36:25-26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
물은 더러운 것과 우상 숭배를 씻어 냅니다. 이 두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원인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모든 인간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입니다. 영혼이 죄 때문에 공허하고 생명이 없으므로,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늘 공허를 채워 줄 우상을 섬깁니다. ‘더러운 것’은 주변 사람들을 내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이 내 원함을 채워 주지 않으면 분노하고 미워하며 비난하는 인간의 죽음의 냄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너무나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물로 씻어 주시는데, 이 물의 실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셔야 이 죽음에서부터 생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좀비입니다. 말도 하고 밥도 먹고 기뻐하며 일도 하지만, 영적인 시각에서 보면 좀비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진 자들과 관계 맺게 하셔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과 3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막 10: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식이 없으면 어떻게 삽니까? 집은 안정의 근거이며 전토는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인데 이 모든 것들을 복음을 위해 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리고 끝이 아니라 현세에 이것을 다시 백 배나 받는다고 합니다. 중요한 단어는 ‘현세’입니다.
예수를 위해 집을 버리고 백 채를 받은 사람이 있나요? 아닙니다. 여기에서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눈에 보이는 집을 버려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여 우리에게 더 견고하고 안정된 기반을 주신는 것입니다. 직업을 잃어버릴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을 가르치시고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형제 자매 부모 자녀인데, 이들이 백 명인 것은 과연 축복인가요? 이것은 영적 생명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나누어 주시고, 그 생명을 아는 자들끼리 관계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에게 생명을 넣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예수님을 통해, 성령을 통해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이 생명이 풍성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면 각성하셔야 합니다.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데려오니까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으로 아이들이 예수님 기반 위에서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엄청난 방해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이라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하루에 다섯 시간, 여섯 시간씩 무엇을 보는지, 누구를 따라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영적 생명이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기도하며 노력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이 생명을 가진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20대 가운데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옛날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다른 영향력들이 너무나 강력하고, 젊은이들은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제가 2주 뒤에 캄보디아에 가서 목회자 세미나를 합니다. 그곳에 가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들이 수백 명 있습니다. 선물 주면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빠지고 교회에 옵니다. 한국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20년 전에 전도 차원에서 야구단을 만드셨는데 무려 맥도날드 햄버거를 준비하셨고 아이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작년에 아이들에게는 과자와 학용품, 어른들에게는 비누와 간장 등을 준비했더니 어른들도 한 시간 이상 찬양하고 설교 듣고 선물을 받아갔습니다. 비록 한국에서는 은혜의 때가 끝나가지만, 은혜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맡기셔서 그 은혜를 세계로 확산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고통받고 가난한 그들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작년에 감동받아 “3년 동안 부활절과 성탄절 헌금을 보내 아이들을 위한 센터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계획은 3년 동안 여섯 번의 절기 헌금으로 1억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두 번의 헌금과 외부 헌금만으로 올해만 1억 원이 들어왔습니다.
기적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1억 원이 1년 만에 채워졌습니다. 제가 가서 이틀은 목회자 세미나를 하고, 하루는 땅을 보러 다니기로 했습니다. 아직 건물은 못 세우지만 지금 종잣돈이 있으므로 선교사님이 알아보신 몇 군데를 살펴보고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캄보디아에도 우리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의 일부만 보내도 그 아이들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방에 초등학교는 있지만 중학교가 없어서 선교사님이 도시 시엠립 지역에 선교관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그곳에 머물게 하며 학교에 다니게 돕고 계십니다. 3, 4만 원이 학생 한 명의 한 달 학비입니다.
밥 한 두 끼 값으로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가진 자들이고 이 생명이 확산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돈과 관심과 기도를 흘려 보내야 할 것입니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모은 힘으로 생명이 탄생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저희가 함께 헌금한 뒤 3년이 되면 함께 방문하려고 합니다.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나 생명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도 드리고 운동회도 해 주고 선물도 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날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우리 자녀들을 만나고 오는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이 생명이 여러분을 통해 계속 재생산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2. 영적 생명을 지키시는 일입니다. vv.18-37
두 번째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영적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렇게 놀랍게 태어난 아이가 추수하는 날에 아버지를 따라나갔다가 아마 열사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추수 때에 햇볕이 가장 뜨겁다고 합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엄마한테 데려가라고 사환에게 말했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20절입니다.
[20]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여인은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그를 데려옵니다. 중간 과정이 길지만 그 내용은 다음 주에 살펴보려고 합니다. 33절입니다.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엘리사가 여러 과정을 거쳐 이 아이를 살려 냅니다. 처음에는 문을 모두 닫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자기 눈을 아이의 눈에, 입을 아이의 입에, 손을 아이의 손에 대며 엎드렸습니다. 자기 체온으로 아이를 따뜻하게 한 뒤에 다시 일어나 이리저리 걷다가 또 그 일을 반복합니다.
그러자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깨어납니다. 말씀으로 “일어나라.”라고 명령하면 좋을 텐데, 왜 반복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나요? 엘리사에게는 사람을 살려 내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기도하고, 자기 안에 주신 하나님의 생명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엎드리는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왜 이 기적이 기록되었나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일을 여러 번 하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누가복음 7장 11-12절 나인성 과부의 아들입니다.
눅 7:11-12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 [12] …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에 들어가시다가 한 장례 행렬을 보십니다. 이스라엘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당일에 장사합니다. 죽은 지 몇 시간 되지 않아도 죽은 것이 확실하면 메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는 하필 독자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어지는 14-15절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시나요?
눅 7:14-15 [14] …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을 읽는데 “역시 예수님은 강하시다.”라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엘리사는 아이를 살려 내겠다고 기도하고 엎드렸습니다. 살아나지 않으니 다시 엎드렸습니다. 몇 시간 동안 얼마나 애가 탔겠습니까? 아이가 살아날지 아닐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자마자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하시고 죽었던 자가 벌떡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주이십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멈출 수 없습니다. 이 놀라운 비밀과 능력은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육체가 죽은 모든 사람을 다 살려 내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 주나요? 예수님께서 영적 생명의 보존자가 되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는
요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예수님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삽니다. 육신은 죽지만 영으로 살아납니다. 살아서 예수님을 믿으면 그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도 이런 생명의 능력을 보이는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일어나나요? 우리 안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가능해집니다. 예수님도 육체적으로는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영이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그 성령께서 거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시나요? 로마서 8장 11절입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에게 계시는 성령은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성령이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려 주시겠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 차례로 모두 죽게 되지만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영혼은 영적인 것이고 영원하며 썩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나중에 죽은 육체와 다시 하나 되는 날이 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과 52절을 보겠습니다.
고전 15:51-52 [51] …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잠잔다’는 표현은 죽은 상태라는 뜻입니다. 죽었던 자들이 어떻게 되나요?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됩니다. 지금은 모두 썩어서 먼지처럼 변하지만,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썩어진 육체를 예수님의 육체처럼 부활시켜서 온전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썩어질 육체가 완전한 예수님과 같은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보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이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합니다. 그 중에서도 죽음,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를 두렵게 하고 낙심하게 하며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의 암 소식이 있을 때마다 머리로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하실 일이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겨우 한 숨 돌렸나 했더니 이번에도 또 불안하지만 다시 말씀을 봅니다. 약속을 붙듭니다. 영적인 눈을 열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생명을 주신 그 생명이 이 죽음을 이기고 드러나게 될 줄 믿습니다.”
죽음의 그림자에 휘둘릴 때마다 선포하셔야 합니다. “사망의 어두운 권세야,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 앞에서 떠나가라.” 암보다 무서운 두려움과 먼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육체가 죽으면 사그라지고 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영적 생명이 시작된 자는 죽음을 넘어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이 약속은 기독교 역사 내내 있었습니다.
1700년대 중반에 황일광이라는 분은 예수님을 믿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믿는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이긴 했지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본인이 백정이라 동네 아이들도 모두 반말하고 멸시했으며 사람들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자기 손을 잡아 주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존댓말을 사용하자 이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인 이곳이 천당이다. 이곳이 천당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황일광도 체포되었고 고문 중에 주리를 얼마나 세게 틀었는지 황일광의 두 다리가 모두 부서졌습니다. “네가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라는 주문과 다리를 부러뜨리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양반들도 버리지 않는 이 진리를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던 내가 어찌 배반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나 같은 백정에게도 천당이 있고, 그곳에서는 나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는 목이 잘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죽음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물론 우리는 순교의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가끔 몰려옵니다. 가까운 사람이 병에 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어둠의 그림자 앞에서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수여자이시며 생명의 보존자이심을 가르칩니다.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 땅에서 우리는 생명을 재생산해야 합니다. 또한 생명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