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01 9.4-9 열왕기 개요
2025년 11월 3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에는 여러분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두 창기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할 때 솔로몬이 어떻게 판결했는지 다 알고 계시지요? 아기를 반으로 자르라고 명령했을 때 진짜 엄마만 그 아기를 다른 여인에게 양보해서 온 이스라엘이 놀랐습니다. 아프리카 시바 여왕이 엄청난 양의 황금과 보물을 들고 솔로몬의 지혜를 보기 위해 찾아왔고 또한 열왕기는 성전 건축과 그 곳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도 기록합니다.
또한 열왕기에는 아주 유명한 두 사람, 엘리야와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엘리야는 8가지 기적을 행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사르밧 과부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과 또한 이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아들을 살린 기적입니다. 또 갈멜산에서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의 제사장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모든 제물을 사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죽음이 아닌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그의 인생의 끝마저 화려하고 멋있었습니다.
이 엘리야의 뒤를 이은 엘리사 또한 16가지의 기적을 행했습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던 수넴 여인이 아기를 낳았고, 그 아들이 죽자 살아나게 도왔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을 치료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람 군대 군사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왜 이 이야기들을 기록하였나요? 이것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인간 본성인 기복적 성향 때문에 이것을 종교적으로 오해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저도 많이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천번제의 정성을 들이다가 언젠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시면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될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열심히 공덕을 쌓아야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원하는 것을 주신다고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너무 많아서 성도들도 쉽게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우리는 열왕기를 잘 공부해야 합니다.
성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멋진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요? 다 허물어지고 벽 한 쪽만 남아 있기에 그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성전의 자리에는 ‘황금 돔’이라는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메시아가 오시면’ 황금돔을 쓸어버리고 그 곳에 제4의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황금돔 건너편에 이스라엘 성전 박물관을 세우고 성경에 나오는 황금 집기들로 채워놓았습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도 그곳에 성전이 재건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이를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라고 부르며 인터콥이라는 단체에서 이것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성전이 세워지면 성경의 모든 약속이 무효가 됩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모델이자 모형이었고 진짜인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진짜를 믿고 진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라고 모형이 주어졌던 것인데 진짜를 내팽개치고 다시 가짜를 붙들라는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이 주장들은 성경을 몰라서 시작된 비진리입니다. 열왕기서는 무엇을 보여주는 책인가요?
열왕기는 무엇을 보여주나요?
1. 인간 왕권의 불완전함과 부패함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로 인간 왕권의 불완전함과 부패함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 이어 바로 나라가 두 개로 갈라져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됩니다. 북이스라엘에는 19명, 남유다에는 20명의 왕이 세워지는데 이 왕들의 이야기가 열왕기서 안에 담겨 있습니다.
다윗 시절 이야기는 우리가 사무엘 상하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무엘 상권과 하권은 초점이 다릅니다. 사무엘상에서는 사울과 다윗을 계속 대조하며 왕 되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죄가 들어오면서 인간은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왕이라는 단어 대신 부자 되고 싶다, 능력이 많고 싶다 등을 대체해도 같습니다. 그 안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본질이 있습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죄이고 하나님이 이 죄성을 사울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울처럼 살고 싶습니다. 인간 모두에게 사울과 같은 힘이 있었다면 우리는 미운 사람들을 제거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모두가 죽고 죽이게 될 테니 나라에서 법을 만들어서 욕망대로 살 수 없도록 제한을 둔 것입니다.
사울은 물론 다윗을 미워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미워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여 다음 왕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알자 분노로 다윗을 숨겨준 제사장들과 그 가족들을 한 번에 죽여 버렸습니다. 사울이 너무한가요? 아닙니다. 악한 사울과 같은 본성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으니 늘 경계하라고 모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제약과 체면 때문에 밖에서는 사울처럼 살지 않더라도 가족 안에서는 내 맘대로 안 되면 말로 공격하고 깨뜨리고 파괴하면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배우자가 너무 밉고, 치워버리고 싶고, 그 때문에 매일 화가 난다면 여러분이 바로 사울이라는 증거입니다. 나는 의로운 다윗이고 옆에 있는 사람이 사울이라고 생각하는 무서운 죄성.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자신의 무서운 왕 노릇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여기까지가 사무엘상입니다.
사무엘하에는 인간 왕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언젠가 온전한 왕이 오셔서 자유와 안식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왕의 모형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구원자는 아니었기에 사무에하에는 강간, 살인 등 다윗의 치명적 실수와 죄악 역시 기록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왕이 올 것이라는 약속을 강조하는 사무엘하 이후에 열왕기는 어떻게 시작하나요?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통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40명의 왕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하나도 없습니다. 북이스라엘의 19명은 모두 악하고, 남유다에는 가끔씩 다윗의 길을 따랐던 왕들이 있지만 이들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왕은 솔로몬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즉 이스라엘은 4절처럼 ‘순종하여 법도와 율례를 지키’거나 6절처럼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하나님은 잘 섬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원어로 ‘들을 수 있는 귀’입니다. 모든 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이 바로 지혜입니다.
모든 것을 통찰하는 능력으로 여느 왕보다 멋지고 화려하고 강력한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나라인데 솔로몬 때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고 그 주변국들이 모두 조공을 바치고 공주를 아내로 바쳤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솔로몬의 결국이 무엇인가요?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고 멸망하여 나라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고 쪼개지고 결국 멸망했습니다. 이것을 언약 저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왕기하 전체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 17장 7절과 8절입니다.
왕하 17:7-8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우리는 좋은 것을 많이 가지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영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은 지금 영적 능력이 다 상실되어 지금 육적 존재로 살고 있는데 은혜가 임하면 그때야 조금 하나님을 발견도 하고 믿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육적 존재를 충족시키면 그 영향력이 너무 강해져서 약하게 들어오려고 하는 영적 영향력을 무시해버리고 자기를 하나님처럼 만들 수 있는 길을 계속 추구하며 점점 타락해 갑니다. 성경은 그 타락을 저주라고 부릅니다. 저주는 하나님과 완전한 분리이며 이것은 신명기에 나와 있습니다. 먼저 28장 15절입니다.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구약에서 임한 가장 무서운 저주는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닌 전쟁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에는 나라가 망했다고 국민들을 비참하게 노예로 삼지는 않기에 우리가 체감할 수는 없지만 고대에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망하는 경우를 신명기 28장 32-34절이 설명합니다.
신 28:32-34 [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34]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죽어 버리면 끝이지만 살아서 아내가 강간당하고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사람이 미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무서운 저주가 어떻게 일어났나요? 다윗의 길로 갔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셨는데 솔로몬과 솔로몬처럼 되고 싶었던 많은 왕들이 저주의 길로 행해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합니다.
역사상 나라가 사라지고 소수만이 남았습니다. 이 비참한 결국을 기록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물이 되어 녹아내렸다고 예레미야애가에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를 왜 보여주셨을까요? 인간 왕에겐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16장 5절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 16:5 다윗의 장막에 인자함으로 왕위가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정의를 구하며 공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공의와 정의를 행할 다윗 왕의 후손이 나타나셔야 구원이 임합니다. 그래서 열왕기에서 두 번째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열왕기는 무엇을 보여주나요?
2. 그리스도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줍니다.
앞으로 임할 그리스도의 임재와 통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지고 잘난 인간에게도 소망이 없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보내실 이, 구약에서는 메시아라고 불렀고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그 분만이 구원을 이루십니다.
구약의 성전은 무엇의 모형인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심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성전 자체는 의미가 없기에 허물어져도 사라져도 관계없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부패하고 더러운 인간과 함께하신다는 그림이었고 이제는 진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통치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고통하지 않고 울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이 끝이 납니다. 그 날은 꼭 온다고 성경이 성전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시면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거하다’는 구약에 ‘여호와의 영광이 장막에 거하시다, 영광이 성전에 거하시다’에서 사용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장 19절과 21절에서 자신을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요 2:19-21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중 가장 생생한 모습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즉 우리가 드러내야 할 하나님의 생생한 모습은 누군가 나를 해하려고 할 때 그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울처럼 상대를 벌주고 죽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만 그것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을 통해 드러난 공의와 정의의 가장 생생한 모습으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셨고, 이것으로 사랑의 통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힘으로 압제하고 뺏고 내 원하는 대로 살지만 하늘나라의 왕은 나를 희생하여 남을 살립니다. 그 통치가 우리에게 임했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또한 그 통치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셨던 일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해서 배우자나 자녀와 싸운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과로는 저주가 나타날 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가 밉다고 때리고 소리 지르고 야단치면 아이가 언젠가 다른 대상에게 사로잡혀 떠나버립니다. 그 대상은 술, 친구, 게임, 다른 종교, 뭐든 될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아이들을 찾아다니는 적군들이 우글우글합니다. 어려서 진정한 사랑과 섬김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은 나를 진정 사랑하고 좋아해 줄 대상이 있나 끊임없이 찾아 헤매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와 싸우며 우위를 점하려는 것은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사울을 자극해서 상대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악한 방법입니다. 힘으로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나 존경을 얻어낼 수 있나요?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면 죽은 자를 살리는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어가던 자들을 하늘의 생명으로 이끌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행할 수 있습니다.
너무 미워서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만 말씀을 듣다가 그 마음이 죄였고 내가 바로 사울과 같은 저주스러운 모습이었고, 솔로몬처럼 힘을 가져서 통치하고 싶은 마음이 악이었구나 깨달아서 ‘내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원합니다’라고 왕 노릇을 내려놓으실 때 그때 여러분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는 말씀에 복종하기보다는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비참한 결국을 매일 목도합니다. 그 저주스러운 상태를 경험해야 무슨 기도를 할 수 있나요? ‘하나님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필요합니다. 저를 다스리셔서 내 힘으로 다른 사람과 환경을 지배하여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아름다운 열매가 열리게 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겸손한 자리로 우리를 세우시고자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비참한 과정들을 맛보도록 하십니다. 열왕기 상하 공부를 통해 왕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를 맛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