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24 20.1-30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위기
2026년 7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2]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3]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4]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5] 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벤하닷이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유혹과 환란의 연속입니다. 보지 않았으면 원하지 않았을텐데 세상은 끊임없이 유혹거리를 던져주고 또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환란을 줍니다. 마치 우리는 길 중간에 서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유혹이, 반대 편에서는 환란이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유혹과 환란이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꼭 세상 속에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상황 역시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들입니다. 유혹과 환란은 우리에게 위기로 닥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나한테 왜 우연히 불운이 닥쳤나?' 생각하며 그 위기를 실패로 여기거나 또는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위기는 쉽게 극복하지 못하니까 위기입니다. 그런 위기를 내 힘으로 이기고 운명과 싸워야 된다고 생각하면 대부분 실패하기에 세상 사람들은 자주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위기를 사용하셔서 특별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적 위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하나님은 세상적 위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1.성도를 위한 징계로 사용하십니다. vv.1-12
첫 번째 성도를 위한 징계로 사용하십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나라가 사라질 수 있는 큰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1절입니다.
[1]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사마리아 성 안에는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약 7천 명이었는데 벤하닷의 지휘 아래 연합한 32개 부족의 군대는 수십만 명입니다. 3절에 벤하닷의 첫 번째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3] 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네 통장에 있는 돈과 네 가족도 다 내 거야.' 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요? 그런데 저항할 수 없이 복종해야 하는 비참한 상태입니다. 4절에
[4]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
예쁜 딸, 아내, 돈도 다 가져가겠다는데 거기에다 '다 가지세요' 말합니다. 저항하면 죽음 뿐이기에 순순히 포기하면 물러날 줄 알았는데 6절에 더 심한 요구를 합니다.
[6]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고대에 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한 나라는 당연히 모든 집을 다 뒤져 좋은 것들을 챙겼습니다. 지금처럼 많은 물건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보니 이것이 사실 전쟁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문제는 물건만 뺏어가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여자도 뺏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적군 수십만이 성의 집집을 다 뒤져 모든 것을 뺏어가면 나라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왕궁 물건뿐이라면 허용하려고 했지만 두 번째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장로들도 백성들과 상의한 결과 거절합니다. 그래서 9절에 벤하닷에게 알립니다.
[9] 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당연히 전쟁이 시작되고 12절에 벤하닷이 명령합니다.
[12] 그 때에 벤하닷이 ...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매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
이스라엘은 독 안에 든 쥐입니다. 곧 성은 무너지고 남겨진 남자들은 죽임 당하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좋은 것들을 빼앗겨 사마리아 성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람 왕이 강력한 군대를 끌고 와서 이스라엘의 존망을 위협하는 이 상황이 역사 내내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었습니다. 사무엘하 8장 6절입니다.
삼하 8:6 …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아람은 솔로몬 초기까지도 노예와 곡물의 조공을 바치던 변방의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상황이 역전된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약하던 나라가 강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나라들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아람이 강성해진 이면에 사실은 아합이 다윗과 반대의 영적 태도를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6장 30절과 31절입니다.
16:30-31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다윗은 하나님을 끝까지 의존했습니다. 물론 다윗도 실패했고 악한 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뺏어 강간하고 부하를 죽이고자 살인 교사한 것은 일반적인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이유는 그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가 죄를 지었을 때도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의지합니다.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때 나라가 번성하는 것을 보며 '바알을 섬겨야 번성한다'는 물질의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풍요로운 시대를 경험하다가 4,5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더우면 에어컨 나오고, 추우면 온풍이 나오는 좋은 환경에서 맛있는 거 앱으로 주문해 먹다가 아궁이에 불 떼면서 살 수 있을까요? 물질적 풍요는 한 번 맛보면, 기본 수준이 올라갑니다. 아합이 오므리 때 나라가 번성하면서 바알의 힘을 맛본 후부터 바알을 열심히 섬기며 충성했는데 그 결과가 비참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열왕기하 13장 3절은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합니다.
왕하 13: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한 주변국이 강성해져서 공격한 줄 알았는데 영적 배경을 보니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써놓은 것입니다. 아합은 끝까지 볼 수 없었지만 우리를 위해 기록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삶보다 중요한 영역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며,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무너지면 그 여파가 보이는 영역까지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느닷없이 이런 일을 행하셨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약 내내 언약의 저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신명기 28장은 구약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본문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도 복을 받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앞부분만 좋아하지만, 15절까지의 복의 내용보다 4배나 더 많이 저주의 내용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합니다. 앞에 나온 복을 누리려면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킬 수 없고, 그러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 15절과 52절의 핵심 구절만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신 28:15, 52 네가 만일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
언약 저주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나라가 망하고 적이 쳐들어와 나라를 초토화시키는 것입니다. 차라리 전염병으로 다 죽으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면 가족 중 제일 제일 좋은 것을 빼앗깁니다. 앗수르 같은 나라는 사람들을 그냥 노예로 잡아간 것도 아니고, 코를 베고 코뚜레를 꿰어 소처럼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언약의 저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면 저주가 임해 나라가 침공당하나요? 예전에 한 아프리카 목사가 ‘한국 성도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셔서 곧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다, 기도하다 미사일을 봤다’며 예언하고 돈을 많이 챙겨서 떠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가장 오해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언약적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조금 열심을 낸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정해주고, 용돈 올려주듯 축복을 많이 주는 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마음이 만들어낸 바알과 거짓 우상 숭배입니다. 세상의 모든 우상들은 '더 충성해, 헌신해, 헌금해. 그럼 복 줄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를 죽이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우리는 예수로 인해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기도 더 하고 헌금한다고 축복을 더 주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예배 한 번 빠졌다고 저주가 내리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예수님이 죽으셨고 그 예수만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언약과 율법, 축복과 저주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잘못된 종교적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약이 성경의 가장 중심 주제이기에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 것입니다.
옛날 언약은 아까 말씀드렸던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뭘 해야 되고 하지 말아야 되는 율법이 617개이고, 이것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그것을 또 두 개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즉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17개의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뭔가를 하거나 하지 말아야 될 사항들을 잘게 쪼개놓은 것이고, 십계명도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율법,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과의 관계를 위한 율법으로 하나로 요약하면 사랑입니다. 사랑.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축복을 받으려면 존재 자체가 사랑이어야 가능합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지, 하루에 10시간 공부해야지' 다짐한다고 매일 평생 그것을 계속할 수 있나요? 뭔가를 꾸준히 하려면 존재 자체가 그렇게 변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배가 고파지는 것은 존재 자체가 먹어야 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늘 밥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 존재가 바뀌면 그렇게 될 수 있는데 우리는 사랑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 안에서 사랑이 없는 상태, 생명이 없는 고갈된 상태가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욕심을 만들어냅니다.
죄는 영적인 상태이고, 생명과 사랑이 없는 영적 상태가 끊임없는 욕망으로 표출되다 보니 죄가 있으면 욕심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구약대로라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킬 수 없는 존재이기에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새 언약에서는 우리가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고 나무에 달리셔서 십자가로 모든 일을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다 안 지켜도 괜찮아. 예수님이 지키신 언약의 축복을 믿는 자에게 줄게’라고 새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축복이 임하고 예수를 안 믿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저주와 축복은 세상에서 부자 되고 병 안 걸리는 것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늘의 생명을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를 믿습니다. 믿으셨으니까 예배를 드리러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한가요? 바로 성장입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성장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 살 때가 제일 예쁘고 커가면서 반항도 하고 갈등을 겪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십년동안 한 살처럼 살고 있다면 그것은 병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바로 사랑이 온전한 존재가 되지는 않기에 우리는 성장해야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7절 말씀처럼 우리에게 훈육의 징계가 필요합니다.
히 12:7 …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하다’의 원어인 파이데우오는 ‘아이를 어른 되게 양육하다’라는 뜻입니다. ‘징계’는 잘못해서 혼낸다는 의미보다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양육’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아이처럼 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통해 우리를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징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도 있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 11장 32절에 나오는 심판으로서의 징계입니다.
고전 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판단’은 ‘분별’이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되지만 헬라어 원어는 심판(judgment)과 같은 단어를 씁니다. 즉 위의 구절을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심판과 판단이 같나요? 하나님에게는 같습니다. 인간은 판단만 할 뿐 심판할 수 없습니다. 심판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심판할 수 있었다면 아마 아무 인간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판단합니다. 상대방 잘못이라고 판단했는데 심판을 못하니까 그게 화나고 힘든 것입니다. 심판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은 판단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이라는 기준으로 우리를 보신 뒤 악을 심판하십니다. 심판은 제거하고 잘라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모습 중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만 남겨놓고 자르는 심판의 징계를 하십니다.
우리는 다 내가 괜찮다고 살고 있지만 하나님 기준에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겹쳐 보았을 때 없어져야 될 부분들을 하나님이 판단하신 후, 하나님은 세상의 환란과 유혹을 통해 고통스럽게 건드리십니다. 유혹이 없었다면 내가 유혹에 취약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유혹과 환란이 없어야 내가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혹과 환란을 통해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고 잘려나가고 드러나고 잘려나가고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판단하실 뿐 아니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요?
“세상과 함께 정죄받지 않도록”입니다. 이것은 마지막에 일어날 일입니다. 정죄받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가서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징계를 통해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시는 부분만 남겨야 합니다. 아직 유혹과 환란을 겪지 않았다면 믿음이 없어서일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달리기 시키고 수영시키지 않습니다. 적정 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반드시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 욕망을 취하는 선택을 하는 자이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제가 유학가기 전에 큰 교회에 있었는데 제가 맡은 부서는 그 때에 제 능력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200명으로 시작했다 4년 후에 400명이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는 월급을 100만 원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좋다고 눌러앉았다면 저는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화장실 턱을 넘으려고 다리를 올렸다가 허리가 빠삭 부러졌습니다. 그때도 이해가 안 됐고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다리 올리다가 허리가 부러진다는 것이. 그 때 누워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개입이며 징계였습니다.
고통 중에 또한 너무 수치스러웠습니다. 당시 대학부 팀장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연합 수련회를 진행하는 그 팀장이 저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회의 중에도 '김일승 아프니까 빠져' 하거나 제가 뭐라도 해 보려고 하면 '피해주지 말고 빠져' 제가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나요?' 기도하다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면 그곳이 좋아서 떠나지 않았을텐데 하나님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것 외에도 여러 일들이 벌어지며 결국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여시나 보다'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반드시 유학을 갔어야 됐고, 허리보다 훨씬 큰 고통을 당했어야 됐고, 거기서 복음의 비밀을 발견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방향으로 제 인생을 끌어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징계의 훈육을 통해 성장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세상적 위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2.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vv.13-30
두 번째로 하나님은 세상적 위기를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13절입니다.
[13]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은 악인인데 왜 하나님이 도와주시나요? 아합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이유는 아합 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떠신 분이신가를 드러내며, 언약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위기를 통해 드러내길 원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구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청년 겨우 232명에, 전체 7천 명 정도 모여 있고 아람은 온 땅에 가득합니다. 미사일과 총이 아닌 육탄전인데 100%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요? 20절입니다.
[20] 각각 적군을 쳐죽이매 아람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한 번이 아니라 아람이 후퇴했다가 다시 공격했을 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26절과 27절입니다.
[26] 해가 바뀌니 벤하닷이 아람 사람을 소집하고 아벡으로 올라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매 [27] ...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이시고자 하십니다. 아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28a] ...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신관입니다. 내가 잘하고 성공하고 능력 있는 영역에 대해선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은 내가 잘하니까 내가 신이지, 나는 공부의 신이지.'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본문에서도 산이든 골짜기든 바다든 어디서나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28b] ...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위기가 이런 역할을 합니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다 자기가 다 잘하는 줄 압니다. 애 키워보기 전에는 부모들이 왜 애들을 통제하지 못 하지? 흉 봅니다. 하지만 해 보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리치는 아이들을 봐도 절대 부모 탓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 집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임했구나' 생각합니다. 그 아이로 인해 여러분이 변하게 됩니다.
예전에 한 목사님이 자기 부부는 예배 시간 내내 아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껴안고 예배 드리는 법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분은 다른 영역에서도 그렇게 주장하십니다. 인간은 노력하고 애써서 하나님께 선한 모습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한 것은 우리 안에 없습니다. 부모한테 묶여 있었다고 그 아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배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하나님 사랑을 알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 저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고백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 보여주게 됩니다. 만약 위기를 지나면서 이 일을 안 하면 여러분이 당한 고난은 쓸모없는 고난입니다.
아합 왕은 놀라운 구원과 은혜를 두 번이나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뼛속까지 우상숭배자였기 때문입니다. 29절에 하나님이 큰 승리를 주시는 장면입니다.
[29] ...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30] ... 아벡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
전쟁에서 10만 명 죽였고 성벽이 무너지며 또 2만 7천 명이 깔렸고 나머지 소수만 도망갑니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징계를 통해 하나님께 반응하며 하나님만이 구원자임을 고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요약하자면 언약 망각 - 하나님의 징계 - 완전한 항복 – 기적/구원/은혜 -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라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저도 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이것을 반복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 '나랑 결혼할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라며 잘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져 있다가 징계를 받아 '하나님 저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고백했더니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셔서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내가 잘 사랑하니까 10명쯤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받아 아이와 몇개월간 말도 안 하게 되기도 하고 완전히 포기하고 회복했더니 요즘엔 기적적으로 구원하셔서 가끔 통화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런 게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저는 목회도 잘할 줄 알았습니다. 저보다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본 사람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귀국했는데 남의 교회 지하실에 2년 찌그러져 살면서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울고 포기했더니 하나님이 하늘사랑교회를 기적으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이 이 과정의 반복입니다. 지금 혹시 어떤 영역에서 착각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일은 내가 잘 하지, 나는 인간관계가 탁월해, 자녀들은 내 뜻대로 되고 있어.' 언약의 망각입니다. 세상과 동화되어 하나님 자리에 선 것입니다. 곧 사랑의 징계가 임할 것입니다. 위기를 통해 여러분이 완전히 항복하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여러분을 건져내시고 그 때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위기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은혜의 사이클입니다. 이 큰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