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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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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강해 13 8.1-8 새 언약의 특징 1

2026년 1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장우현 목사


[1]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4]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 규를 내미는지라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5]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며 나를 좋게 보실진대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6] 내가 어찌 내 민족이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제가 중학생 때 정말 감동적인 책을 한 권 읽었는데요,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액자식 구성은 액자 프레임 안에 사진이 있듯이,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거나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그 책은 전체 이야기의 결말이 맨 앞과 맨 뒤에 있고, 그 안에 과거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앞쪽을 다시 읽게 됐습니다. 전체 스토리는 평범했지만, 잘 모르고 지나갔던 앞 부분의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더 깊이 이해가 되면서 더 감동이 밀려왔고, 중학생 때 읽은 책이 아직도 기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감동이 더해지거나, 주제가 강조되고, 오래 기억됩니다. 에스더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장과 10장, 2장과 9장 이런식으로 샌드위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메시지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내 주시고, 오래 기억되서 은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오늘 함께 보실 8장은 구약성경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저희에게 주어진 새언약의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짝꿍인 3장의 옛언약의 특징과 대조가 되면서, 지금 저희가 누리는 새 언약이 무엇인지를 더욱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옛언약과 새언약에 대해 들어보시긴 했지만 설명을 해달라고 하면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이건 저희가 구약성경, 신약성경이라고 할 때 구약과 신약이 옛언약과 새언약입니다. 성경을 둘로 나눠서 책 제목으로 붙일 정도로 아주 중요한 약속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제 8장을 살펴보며 알게 되시겠지만, 옛언약과 새언약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바르게 알고, 또 그 둘의 관계를 바르게 알아야만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저희를 행위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그 복음을 담는 그릇이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새언약의 특징이 8장에서 크게 3가지가 있는데요, 오늘은 3장과 대조를 하면서 새언약과 옛언약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구요, 새언약의 특징 1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1절과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a]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2]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하만이 나무에 달려 죽은 이후에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하만의 집을 관리할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게 하만이 남기고 간 집이나 건물들을 관리한다는게 아니라요, 하만의 남은 세력들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권세 아래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모습은요, 3장에서 그 하만이 제국의 2인자로 올라서게 되고, 온 세상과 하나님 백성들이 그 권세 아래 있게 된 것과 대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들은 이런 하만 뿐 아니라, 위쪽엔 앗수르, 오른쪽엔 바벨론, 아래쪽엔 이집트의 권세자들과, 그 이방신들의 권세 아래 굴복하고 말씀에는 불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바로 그 결과로 이렇게 페르시아에 유배와서 이 마귀 같은 하만의 권세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요, 하나님 백성들이 눈으로 보기에는 세상의 권세 아래 굴복하며 살았지만, 영적으로는 마귀의 권세 아래서 영원한 죽음을 목전에 둔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내주는 모습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 속에서 첫 번째 조서가 반포되면서 죽음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조서로 인해 죽음 앞에 서게 된 이면에는 영적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이유를 풀어가는 첫 번째 실마리가 바로 이 조서라는 것이 나라의 법을 의미한다는 것입입니다. 이게 백성들이 불순종했던 하나님 나라의 율법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세상 왕이 선포한 세상의 법 앞에서 죽게 됐다는걸 보여주는게 아닙니다. 율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로 약속했던 옛언약을 파기하고 자기를 왕으로 높이기 위해 마귀의 권세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 언약을 따라 영원한 심판과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맥락 속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희생과 중보로 하만이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나무에 달려 죽은 것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의 모형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모형인 하만이 나무에 달려야 할 뿐 아니라, 그 마귀를 따르던 저희도 달렸어야할 그 나무에 예수님이 대신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만이 나무에 달려 죽은 후에, 그 남은 세력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권세 아래 있게 된 모습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마귀와 그 잔존 세력이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게 된 것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권세가 회복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왕을 통해 두 번째 조서를 선포하자,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저희가 율법에 순종해야 하는 옛언약 아래에서는 죽음만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새언약 아래에서는 생명을 얻게 된 것 처럼요.


이렇게 옛언약이란 율법에 순종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면 복과 생명이 있고, 그렇지 않고 마귀와 자신을 왕으로 섬기면 저주와 죽음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새언약이란, 저희가 그 율법에 순종하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저희를 대신해 죽기까지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복과 생명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의 3장과 8장에서 대조되는 두 개의 조서는요, 성경의 옛언약과 새 언약이 대조되는 것과 닮은 점이 정말 세밀하게 많습니다. 첫 번째 닮은점은요, 성도(백성)들은 스스로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중보자의 공로로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다 어디 가고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해서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모습이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구약 백성들이나 지금의 성도들이나 옛언약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두 번째 유사점은요, 이 첫 번째 조서와 두 번째 조서, 옛언약과 새언약이라는 법 앞에서 백성들이 죽음과 생명이 갈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유사점은요, 그 법을 바꾸거나 취소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세상의 법도 함부로 바꿀 수 없지만, 율법은 변치않는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 있는 법이기 때문에 일점 일획도 바뀌지 않고 영원합니다. 그런데 에스더 1장과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구절이,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왕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19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8:8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그래서 하만이 선포한 첫 번째 조서도 취소된게 아닙니다. 하만의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일 수 있다는 그 효력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오히려 하만의 민족을 진멸할 수 있다는 두 번째 조서의 효력이 덮고 가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옛언약 역시 지금도 취소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인류는 죽음과 영원한 심판 앞에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저희보다 더 나쁘게 살아서가 아닌거에요. 그렇게 행위로 비교하면도 저희도 그들과 다를바가 습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봉사와 후원 더 많이 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그저 예수님이 그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셔서 옛언약을 완성해주셨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새언약으로 덮여져서 구원과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도 저희가 믿고 싶어서 믿은게 아니라 창세 전부터 계획을 해놓으셨고, 그 계획이 변치 않도록 예수님의 피로 인을 쳐 놓으셨기 때문에 믿게 된거에요.


거기서 나오는 네 번째 유사점이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와 예수님의 피로 인친 언약 개념입니다. 정말 비슷하죠? 그래서 이것은 참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주셔서, 구약 역사 가운데 이런 하나님의 신학과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담아주신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제가 아내와의 갈등으로 부산으로 가출하고, 이혼 위기를 겪고, 신학대학원도 그만 둘 정도로 과부하를 오게 한 주제가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입니다. 제가 하늘사랑교회 전 교회에서 초등부를 맡고 얼마 안됐을 때 이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자의 새언약 본문을 맞딱드린거에요.


물론, 초등부 설교는 이보다 더 쉽게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하기 위해서는 그 핵심을 더욱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거 아시잖아요. 그런데 그 때는 제가 신학대학원을 다닌지도 얼마 안됐지만, 하나님을 믿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이 관계에 대해 전혀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 주일에 초등부설교를 준비하려고 본문을 연구하려는 순간, 제가 이 중요한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거에요. 그러니까 아무리 초등부 아이들에게 맞게 쉽고 가볍게 준비를 하려고 해도, 모르니까 진행이 안되는거에요.


그래서 월요일에 신대원에 가자마자 도서관에 가서 책을 20권씩 쌓아놓고, 하필 그 때가 학교 과제 제출 기간이었는데 다 미뤄두고 초등부 설교 준비만 했던거에요. 와.. 그런데도 이게 단순히 옛언약과 새언약의 개념만 알아야 하는게 아니라 성경 전체 스토리에서 흐르며 완성을 향해 가는 그 관계를 알아야 했던거에요.


이 에스더서의 3장과 8장에서 나타나는 언약 관계만 보더라도, 에스더를 이렇게 구조적으로 연구해보지 않으면 여기에 이런 개념이 있는지 모르는거에요. 저도 에스더서 설교하려고 처음에 구조 분석 할 때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구조만 알았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 한 장 한장 복음적으로 깊이 고민하며 오다 보니까, 이 관계의 깊이를 더 알게 되는거에요. 그런데 이런게 에스더 뿐만이 아니라 성경의 이곳 저곳에 분산되어 있으니까요, 이게게 책 몇 권 읽는다고 쉽게 파악할 수 있는게 아닌거에요.


결국 그 주일 새벽까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채 초등부 설교를 하게 됐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강단에서 설교했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한겁니다. 그러니까 우울감이 가득한 상태에서 아내와 몇 가지 갈등이 겹치다 보니까 '나 목사 못하겠다'하고 다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와 관계가 회복되고 하늘사랑교회 오고 나서 아직 신대원에 복학하기 전에 이 관계는 제대로 이해해야겠다고 죽자살자 매달렸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요, 이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복음 담는 그릇이라는걸 알게 됐습니다. 이 그릇이 없으면 복음을 제대로 떠 먹질 못하는거에요.


저희는 복음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죄에서 구원을 얻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한다'라는 요약된 내용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죄가 단순히 누구의 물건을 훔치거나, 말을 함부로 한다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것 정도로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의 말과 행동이 남들 보다는 좀 선해 보이고, 또 주변 사람들과 그리 큰 갈등 없이 지내면요, 내가 죄인이라는 인식이 약해집니다. 그런데 이 복음에서 말하는 죄는 율법에 온전히 순종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기로 약속한 옛언약을 파기하고, 내가 왕노릇 하기 위해 마귀를 섬기는 대역죄를 말합니다.


고대의 주종관계에서 언약파기는 그 친척, 민족까지 파멸하게 되는 심각한 반역이었습니다. 결국 이 옛언약 안에서 죄인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할수록, 저희는 단순히 일상 생활에서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잘못이 아니라, 매일 같이 왕노릇 하려는 대역죄인이라는 죄에 대한 큰 무게감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대역죄를 대신 담당하셨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또 성령으로 함께 해주시고, 다스려주셔서,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로 만들어가 주시겠다는 약속, 새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식이 그렇게 기쁠 수 밖에 없는 복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인 복음을 담는 그릇, 새언약과 옛언약의 관계입니다. 이제 그러면, 이 복음을 담는 그릇을 제대로 장착 하셨을까요? 그렇다면 8장에 나타나는 새언약의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새언약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십니다.(1-8)


[3]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울며 구하니


에스더는 또다시 왕 앞에 나가서 자기 백성들을 구해달라고 울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생명을 위협하던 하만도 죽었고, 하만의 모든 잔존 세력을 자기 밑에 둘 정도로 큰 권세를 얻었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절대반지, 바로 왕의 반지까지 얻은 상태입니다.


부러울게 없고, 아쉬울게 없어서 무릎 꿇고 울만한 지위와 재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울며 간구했다는 것은요, 권세, 재력, 체면, 심지어 자신의 생명보다도 이 백성들의 구원을 더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백성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도 알 수 있고, 그 백성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떤 결과를 얻었나요?


[8]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하니라


철회할 수 없는 새 조서가 철회할 수 없었던 옛 조서를 덮어 씌웠습니다. 이것은 결국 새 언약이 옛 언약을 덮어 씌웠음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보여주고, 결국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내어 주셔서 인간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요. 그정도로 저희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모형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저희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시는지 창세 전부터 예수님을 보내실 계획을 하셨는데요, 그 말은 저희가 반역하고 타락할 것을 아시면서도 저희를 창조하셨고, 그 때부터 이미 저희의 구원을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저희들도 삶에서 갖길 원하는 것, 이루길 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원하는게 없어지면 사는 의미가 없을 정도이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전자제품들, 좋은 가구, 좋은 옷, 좋은 화장품, 좋은 약, 좋은 음식..와, 많죠. 또 내가 이루고 싶은 꿈, 내 자녀들이 이루었으면 하는 꿈.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저희는 그 원하는 것들을 이루고, 갖고, 가고,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그 모든걸 다 할 수 있게 됐는데, 한 민족이지만 얼굴도 한 번 못 본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의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울며 간구하는게 쉬울까요? 나와 별 관계 없어보이는 저 밖에 있는 사람들이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벌레 같은 저희들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바치셨나요. 그래서 저희가 이 새 언약 안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믿게 되었을 때,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저희도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을 때 원하는대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새 언약을 믿어 예수님이 성령으로 저희 안에 들어오시게 되면요, 하나님이 그렇게 이루시길 원하는 것을 저희도 온 마음과 힘과 생명을 다해 원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이루어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이니까요.


저희가 예수님을 믿고 이 새언약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가장 큰 오해가 은혜 받았으니까 믿는 자로써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바로 점핑을 해서 내가 이루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을 읽다보면 저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모습으로서 저 멀리에 있는 성화가 완성된 목표를 그려주고,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갈 삶의 방향을 지시해 주는 것이지, 너 은혜 받았으니까 너의 의지를 풀로 발동해서 지금 당장 그렇게 살아라!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의 구원과 성화와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은요,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변치 않으시는 의지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일하시며 열매 맺어주시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맺어주신 성령의 열매들을 맛봐야지만, 아 이게 내가 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거구나 고백할 수 있구요, 이웃을 정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은혜 받았으니까 이제 좀 믿는자 답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이웃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이웃 역시도 나처럼, 당장 그렇게 살고 싶어도 못사는게 맞구나. 하나님이 다 때에 따라 열매 맺어 주시겠구나. 그 때를 함께 소망하며, 기다릴 수 있게 되는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생애 내내 갈등한 집단이 그 옛언약 속에서 율법에 온전히 순종해서 구원을 얻고자하고 이웃을 정죄한 바리새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죄와, 구원과, 기쁨과 복음의 개념이 옛언약과 새언약 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실 그렇게 큰 기쁨이 없는, 밋밋한 종교인이 되어버립니다. 아니면 구약, 신약 그 개념을 못잡아서 아직도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이단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도 아니고, 보통의 교회들에서 조차도, 여전히 율법을 지키듯이 교회 다니며 다음 세대도 그렇게 키워내는, 율법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게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보는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게 성경 전반에 걸친 본문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복음적이고 구속사적이고, 통합적으로 봐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한 분야에만 전문적 지식을 가진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해지는 것이구요, 교단이 갈리고, 이단이 생기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구요, 이건 신학자나 목회자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맛있는 복음을 떠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성경의 이야기 가운데 그 신학적 메시지를 보물처럼 담아서 찾게 하시고, 오래 기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에스더서 말씀을 통해 옛언약과 새언약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기억하시고, 그 언약의 관계 안에서 복음이 진짜 매일 기쁜 소식이 되셔서, 하나님이 저희를 위해 간절이 원하시는 생명과 기쁨과 평안의 열매가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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