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56 28.1-10 복음 전파를 위해 나타나는 표적들
2025년 8월 1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1장부터 말씀드렸듯이 사도행전을 개인의 영웅담이나 기적의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사도행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는지를 특정한 사람과 사건을 통해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바울 역시 이 목적을 위해 선택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바울을 불러내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선봉에 서게 하신 뒤 그가 하는 일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생생하게 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본질은 복음이 전파되고, 마귀의 세력이 무너지고, 구원받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예수님은 마가복음 16장 17, 1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구절에는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는 말씀하시지 않은 특이한 내용이 있어서 성경 학자들 중에는 이 내용이 원래 성경에는 없었고 후대에 덧붙여진 것 같으니 빼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이 부분이 없는 버전을 훨씬 선호합니다.
귀신 축사나 병 치료는 많이 들어봤지만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의 내용은 해석하기도 애매해서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성경에 반드시 있어야 할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과 16절을 보시면
막 16:15-16 [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즉 이런 놀라운 일들은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 일어나는 난다고 쓰여있고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들은 왜 ‘기적’이 아닌 ‘표적’일까요? 기적은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신비한 일을 통칭하지만, 표적은 싸인입니다.
싸인은 실체가 아니고 실체가 어디 있는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독을 마셔도 멀쩡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어떤 표적이 나타나나요?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어떤 표적이 나타나요?
1. 사탄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vv.1-6
첫 번째로 사탄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멜리데 섬은 지금의 몰타공화국으로 강화도보다 약간 작고, 이탈리아 남부에서 약 90km 정도 떨어진 휴양지입니다. 2절에 보면 이들은 바울 일행을 잘 영접하였습니다.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이 섬은 로마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던 지역이라, 난파한 로마의 배에 있던 무리에게 동정을 베풀어 불도 피워 주었습니다. 그때 바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3절 말씀입니다.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섬에 내린 사람이 276명이나 되는데 독사가 하필 바울의 손을 한 번 문 것도 아니고 계속 물고 있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목격한 이들이 4절에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이들은 모두 바울이 죄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각한 폭풍은 지났지만 독사를 만나 물리다니 신비로운 신의 형벌인가 추론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독사에게 물리면 천천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혈관 속으로 피가 주입되기 때문에 몇 초에서 몇 분 내로 사람이 쓰러지고 심장이 멎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독사를 떨어내고는 멀쩡합니다. 6절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이 본문의 핵심은 바울에게 재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거나 뱀에 물려도 낫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표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8절 상반절 다시 보시면
막 16:18a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뱀을 만나고 독을 마시는 일을 맞닥뜨릴 수 있지만 이것들은 너희에게 영향 미칠 수 없다’라는 약속입니다. 우리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뱀을 만나거나 독을 마실 기회가 있나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볼 책이 아닙니다. 문맥과 상징을 파악하여 찾아낸 그 의미를 받아들여야 됩니다. 특별히 근본주의가 기복이나 신비주의와 합쳐지면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미국의 조지 헨릭스 목사는 ‘믿음이 있으면 뱀을 집어도 괜찮다’고 설교하며 뱀이 가득 들어있는 통에서 뱀을 집어 올리곤 했습니다. 몇 번은 괜찮다가 결국 1955년에 독사에게 물려 예배 중 즉사했습니다. 한 명이 미련하게 죽으면 깨달아야 하는데 그 뒤에도 여럿이 죽었고 이런 무식하고 변태적인 가장 최근의 죽음은 200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이야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그림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뱀은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끊임없이 사탄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실제 뱀에 물려 죽을 확률은 거의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다 사탄의 공격을 받을 확률은 100%입니다.
뱀 독 말고도 바울이 사탄의 공격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났는지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돌로 맞고, 강도를 만났고, 채찍에 맞았고, 밤과 낮을 분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폭풍을 지난 모든 순간의 배후에 사탄이 공격한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성도의 인생에 반드시 마귀의 공격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특별한 항체가 있어서 독에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사탄이 죽이려 하고 끊임없이 무너뜨리려 해도 예수 안에서 안전합니다.
사탄은 창세기에서부터 끊임없이 하나님 백성을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뱀이 가장 처음 나온 곳은 창세기 3장 1절입니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아담과 하와에게 원죄를 짓게 만든 이 뱀은 그냥 뱀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입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
옛 뱀, 즉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를 꼬셨던 마귀입니다. 이 뱀에게 넘어가 범죄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심판하셨나요? 민수기 21장 6절 말씀입니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하나님이 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십니다. 이 뱀에게 물리면 몸이 불타듯이 뜨거워지다가 죽는다고 하여 불뱀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독성 코브라나 방울뱀이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신 이유는 이들의 죄를 보여주고자 하심입니다. 민수기 21장 5절입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이들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원망할 뿐 아니라 인도자이자 중보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애굽에 남았다면 계속 노예 상태로 고통하며 울부짖다 죽을까봐 구원하여 주었더니 왜 우리를 구원했나며 패악질을 벌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만나를 천사들의 음식이라고 부릅니다. 한 음식에 모든 영양소가 충만해서 광야에서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음식을 주었는데 이들은 ‘하찮은 음식을 우리는 싫어하노라’라고 답합니다. 인간의 무서운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할 뿐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여 원망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배은망덕한 죄악은 바로 옛 뱀에게 깨물려 인간의 몸에 독이 주입되어 생긴 죄입니다. 그래서 죄는 뱀에게 깨물린 인간 안에 흘러 다니는 독과 같은 요소입니다.
인간은 창조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뱀처럼 변해 끊임없이 독을 토해냅니다. 실제 독은 아니어도 누군가 원망, 불평, 지적, 비난, 공격, 분노를 쏟아내면 그것을 듣는 사람은 뱀에게 물린 것처럼 고통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 백성들입니다. 우리 역시 자주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게 놔두지 않으세요?’ 내가 원하는 내 인생을 달라고, 나를 하나님처럼 만들어 달라고 분노와 원망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민수기 21장 8절입니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불뱀을 왜 매달아야 할까요? 너희가 불뱀이다, 너희가 뱀의 자리에 매달려 죽을 자들이다, 하나님을 깨물고 독을 주입하여 이웃을 파괴한 너희가 불뱀이다, 이것을 알려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뱀을 본 자마다 살아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과 15절을 보시면
요 3:14-15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가 바로 뱀이 되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불뱀이고, 우리가 남을 깨물어서 불타서 죽게 만드는 더러운 존재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매달지 않으시고 죄 없는 예수를 매다심으로 그를 보고 믿는 자마다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살 길이 열렸습니다.
내가 매달려 죽었어야 할 자리에 예수가 매달리셨음을 보고 믿는 자들을 죽음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여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뱀 독에 면역이 생겼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백 번, 천 번 깨물어 우리는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 성도 중에는 더러운 귀신과 마귀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것을 이용해 장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시큰둥하고 귀신 얘기하면 즉각 반응을 보입니다. 기독교계에도 귀신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는 감기, 부부싸움, 두통 등 세상 모든 것을 귀신으로 해석하며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영향을 많이 미쳐서 성도가 15만 명에 달한 적도 있습니다. 예수가 세상에 오신 목적도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함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귀신 쫓아내어 부자되고 건강해지려고 몰려들었으니 이것으로 당시 한국 교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해서 설교 시간에 뱀을 집어 올리는 무식한 인간이나 귀신 쫓아내어 부자 되고 건강해지라고 수십만 명을 속여 사기친 인간이나 똑같습니다. 아직도 2만 명이 그 교회를 다닌다니 한탄할 노릇입니다. 예수를 믿는 여러분은 더러운 마귀나 귀신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약속하나요? 마귀가 무서우니 잘 피하라고 하나요?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을 보시면
롬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울이 특별히 ‘천사들 권세자들’을 언급한 것은 이 안에 마귀의 권세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공격으로 하나님 사랑이 끊어진다면 마귀가 더 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인생 가운데 마귀의 공격을 알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세상 모든 곳에 병균이 붙어 있지만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더러운 영을 인지한다면 편히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지나보면 마귀의 공격이었다고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가족 예배를 매일 드렸는데 여동생은 영적으로 민감해서 영적인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한 날은 예배드리다가 파란 눈을 가진 귀신이 쳐다보고 있다고 울고 무서워해서 가족이 한 시간 넘게 보혈 찬양을 하고 집중해서 기도한 뒤 우리가 이겼다는 느낌이 들 때에야 멈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2시쯤에 전화가 울려서 아버지가 무거운 얼굴로 급히 회사에 가셨는데 알고 보니 밤 타임 직원이 안전망을 매번 설치하는 것이 귀찮아서 잘라 버리고 자동으로 바꾼 뒤 일을 하다가 그만 새벽에 졸려서 잠에 취해 안전망 없이 기계 안으로 손을 넣다 양팔이 잘려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아버지 회사가 망하고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마귀가 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했는데 당시 저는 ‘왜 하나님이 막아주시지 않았을까?’ 고민하며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의 계략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진짜 구원받도록 은혜의 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도나고 감옥가고 지하 방에 사는 것이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히려 새로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최악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믿음을 져버리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람인데 어떻게 평생 안 아플 수 있나요? 문제가 없을 수 있나요? 문제는 늘 생기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활의 하나님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는 우리 가정을 망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오히려 부도와 감옥과 병과 가난과 갈등을 통해 저희 가족은 믿음을 배웠고 복음을 배웠고 저는 목사가 되었고 각자가 꼭 가야 할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누군가 나쁜 이야기를 한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어떤 표적이 나타나요?
2. 병든 자들이 치유됩니다. vv.7-10
두 번째로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어떤 표적이 나타나나요? 병든 자들이 치유됩니다. 7절 말씀입니다.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이 섬에 아주 높은 사람 또한 영접했는데 마침 그의 부친이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8절입니다.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환대를 받았는데 또 마침 치유의 능력도 있으니 기도해서 낫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옛날에는 병치료의 수단이 없으니 삽시간에 치료의 소문이 퍼졌을 것입니다. 9절입니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많은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더니 또 넘치게 답례를 합니다. 10절을 보시면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해피 엔딩이지만 이 이야기도 사실은 바울처럼 은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에 병 치료의 능력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희 할아버지도 그렇게 병이 나으셔서 저희 가정에도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렸듯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 병 치료이기 때문에, 치유의 은사는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 병 치료가 많았던 시기는 늘 복음이 들어오고 교회가 시작되는 때와 겹쳐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서 네팔,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프리카 등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된 곳에 기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을 통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듭니다. 그런데 육체의 질병은 영적 질병의 그림입니다. 암에 걸린 순간에 암을 눈치챌 수 있지는 않습니다. 체중, 피로감, 통증 등 외적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야 병이 있음을 유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보이지도 않고 경험할 수도 없고 실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영적 공허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사라져 버린 공허. 이 공허에서 죄인은 증상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간암에 걸리면 배가 아프고 황달이 나타나듯 영혼의 깊은 공허로 갈망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가지고 성취해도 늘 더 가지고 싶은 성취하고 싶은 갈망입니다.
이 갈망은 또 중독을 만들어냅니다. 쇼핑, 게임, 운동, 소유, 끝이 없습니다. 특히 이 공허가 사람에게 옮겨가면 타인을 나의 도구로 삼고자 하기 때문에 관계적 갈등이 생깁니다. 인간은 원래 사랑하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친밀한 관계에서 깊은 사랑을 느껴야 되는데 사랑을 느끼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이기성이 충돌하면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고 그래서 더 갈증이 납니다.
또한 이 공허가 해결되지 않을 때마다 인간은 부정적 감정을 경험합니다. 우울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두렵고 슬픈데 해결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죄가 만들어낸 병리적 증상들입니다.
한 번 화내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분노의 뿌리에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무서운 영적 죄성이 사로잡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분노한 이유는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서 미워한 것입니다.
이 병리적 증상이 가장 가득한 관계가 가족입니다. 인간은 공허해서 사랑할 사람을 찾았는데 결국 그 사람 때문에 가장 많이 화가 나고 가장 밉고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인가요? 사랑하고 싶다는 그 사랑의 시작도 근본적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외롭지 않게 해 줄 대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 타인의 필요를 채워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깊은 영적 갈망을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사람에게서 채움받고자 하니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남자는 여자를 섹스 파트너로 보고, 여자는 남자를 안정의 도구로 보고, 자녀는 부모를 돈주머니로 보고, 부모는 자녀를 성취를 도구로 보는 이 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인 역할을 위해 가족을 만드셨습니다. 연약한 존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의 틀이 되고 사랑하라고 만드셨는데 죄가 들어와 버려서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갈등하고 고통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님이 의도하셨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정을 만들지만 또한 가정 안에서 인간의 무서운 죄성이 드러나 자신이 얼만큼 죄인인지를 현저하게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계시다면 죄의 굴레에 머물러 계시면 안 됩니다.
집에서 화내고 가족을 도구로 삼는 것이 죄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머물지 않고 성장하길 원하십니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가림막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에 흔들리며 몸부림치게 됩니다. 자녀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은 모두 죄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나요?
복음의 본질은 인간은 사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도 아무리 착하고 공부 잘하는 자녀를 만나도 여러분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은혜로 죄의 무서운 병리적 현상에서 자유를 얻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