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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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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 07 6.11-13 성전이 상징하는 것

2026년 1월 2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성전은 구약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별히 1절에 보면 출애굽한지 480년에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480년은 무슨 의미이며 성전 건축 이야기에 왜 과거의 출애굽 사건부터 언급하는 것일까요? 출애굽부터 성전까지가 하나의 과정이며 출애굽의 목적이 성전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신 것은 사실 과거에 어떤 나라에 어떤 왕이 다스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이 무엇인지 그림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영적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여러분의 삶이 눈에 보이게 달라지거나 특별한 표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고는 우리는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출애굽부터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는 구원의 생생한 시청각 자료입니다.

     

한자로 애굽이라고 표기한 이 이집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이유는 애굽이 세상을 비유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자유롭고 편안하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곳인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애굽의 바로는 나라를 지배하고 하나님 백성을 박해하여 노예 삼았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세상 사람들을 노예로 삼은 것의 그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최소한의 생존 식량과 도구만 받고 애굽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고, ‘나와 같은 선지자가 와서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한대로 모세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노예에게 주어지던 부추, 파, 양파는 일시적 흥분과 힘을 주는 자극적인 재료들입니다. 마귀가 세상에 사는 자들을 자극적인 도구로 노예 상태로 사로잡고 있는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결정적으로 홍해를 통해 궁극적 자유를 주십니다. 이집트 쪽에서 보면 이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죽는 것과 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반대쪽에서 보면 이들은 새로 태어난 듯 올라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이 홍해를 지나간 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이들은 세례 후 시내산에 가서 율법을 받고 언약을 맺습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했지만 새 언약에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언약의 내용이 바뀝니다. 그 다음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는데 40년은 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즉 광야를 통해 첫 세대가 다 죽고 새로 태어난 세대만 살아나가는 것은 인생의 여정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었지만 인생을 통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광야 여정에서 옛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얼마나 끝없이 반역하고 악을 쏟아내는지를 우리는 민수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10번 반역했다고 하는데 이는 셀 수 없다는 표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을 경험하고도 원망과 불평 뿐이지만 이 과정을 지나며 옛 사람은 점점 죽습니다. 그러다 요단강 앞에 서서 강이 갈라지고 생긴 마른 땅을 여호수아의 인도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부터 성전까지의 과정인데 왜 마지막이 성전인가요? 천국이 좋은 이유는 금과 은과 보석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이고 그것이 성전이며 출애굽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왜 480년일까요?

     

한 세대가 완전히 죽게 되는 기간 40일이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12이기 때문에 이 둘의 곱하기인 480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단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세대를 거쳐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되는 시간을 480년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결국 출애굽부터 성전 건축의 긴 과정에는 우리가 어떤 영적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예배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성전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1.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상징합니다. vv.12b-13


그렇다면 성전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첫 번째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하심을 상징합니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2b] …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이 성전의 가장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임시 장막이었지만 좀 더 영구적인 형태의 성전을 지어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계속 같이 있으려면 그 사람이 좋아야 합니다. 연애하다가 연인과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각자 자기 욕망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함께할수록 피곤합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기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40년 광야가 필요합니다. 결혼에서도 한 사람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면 갈등이 생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과 의견이 안 맞다면 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다윗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제가 20대 때 가장 좋아했던 구절입니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 방문했는데 예배 시간보다 1시간 반 전에 도착해서 빈 예배당에 혼자 있는데 기도하면서 갑자기 천국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행복합니다. 하나님 품에 점점 가까이 가는 것 같고, 천사들이 노래하는 것 같은데 그 순간 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데 제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면서 창피함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그 때부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도 사람들이 와서 자리에 앉았고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느데 혼자서 계속 울다가 예배가 끝났습니다. 그때 그 느낌을 아직도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가까이 가고 싶은데 사실 하나님 앞에 가면 얼마나 부끄럽고 추한지 알게 되어 두렵고 무서운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황홀하리만큼 좋았던 경험했기 때문에 이 말씀처럼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전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으신지를 가르치기 위해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주는 많은 기물들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림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과연 좋은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까봐입니다.

     

솔로몬의 건축 이야기는 6장과 7장에 나오는데 처음 건물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2]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솔로몬 성전이 엄청 웅장하고 화려하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요즘 건축물에 비하면 별로 크지 않습니다. 한 규빗은 45cm 정도로 솔로몬 성전은 가로 세로 높이가 9m x 27m x 13.5m로 유치부까지 포함한 우리 예배당 넓이 정도입니다.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바깥에는 번제단이 있어서 숯불 고기를 굽듯 짐승을 잘라 펼쳐 놓고 밑에서 불을 피웁니다. 죄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가 없는데 이 번제단을 통해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놓으신 것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알 수 있습니다.

     

밖에는 또 물을 담는 물두멍이 있었고 대표적으로 사람들이 손과 발을 씻어 더러움을 깨끗게 하는 용도로 썼습니다. 이것 또한, 더러워서 하나님께 갈 수 없는 인간에게 정결케 될 수 있는 방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즉 번제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수 그리스도와, 물로 정결케 죄를 씻는 성령의 그림입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된 자들은 성전 안 성소를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은 아니고 제사장들이 들어갔는데 성소에는 7개의 등불이 자리하여 어둠 속에 살아가는 자에게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빛을 보여줍니다. 이 안의 모든 장식들은 살구나무 꽃으로 이것은 생명을 가져오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뿐 아니라 분향단이 있습니다. 향단에는 향을 피워서 향이 하늘로 올라가도록 했는데 향은 성도의 기도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필요가 있고 이는 하나님만이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분향단의 향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다 듣고 계심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 다음에 12개의 떡을 담은 진설병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여기의 12 역시 이스라엘 12지파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공급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떡을 통해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참떡이 되셔서 우리에게 생명이 되셨습니다.

     

성소와 또 지성소 사이에는 엄청나게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 있습니다. 성소까지는 일반 제사장들도 올 수 있지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딱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성경의 설명대로라면 두 천사가 날개로 법궤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성전의 모든 기물들은 다 황금으로 되어서 영원하고 왕권을 상징하던 황금으로 하나님이 어떠신 분인가를 보여주고자 했으며 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고 향기가 나는 백향목을 써서 하나님은 향기로우심과 영원하심을 보여줍니다. 법궤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나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를 시은좌라고 하는데, 대제사장은 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피를 묻히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 복을 간구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주시는 자리입니다.

     

법궤에는 우리가 알듯이 십계명이 담긴 돌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가 있습니다. 십계명 돌판은 사실 두 번째 돌판입니다. 모세가 첫 번째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인간들이 우상숭배하고 있어서 던져서 깨뜨려버려서 하나님이 다시 쓰신 것입니다. 인간의 우상숭배적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말씀으로 이끄심을 보여줍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고라, 다단, 아비람이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반역을 일으켰는데, 그들의 지도자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 중 어디에 싹이 나는지를 테스트한 뒤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나서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자가 됨을 보여준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인도를 거역하고 반역하지만 하나님만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징표입니다. 만나의 뜻은 ‘what is this?,’ 의역하자면 ‘이까짓 게 뭐야’ 정도인데 우리의 진정한 생명을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법궤 안의 세 가지 물건은 다 인간의 죄악을 보여줍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고 싶고 하나님 말씀 듣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옳은 길을 보여주시고, 생명의 양식의 은혜를 끊임없이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전을 볼 때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기쁨인가를 기억하도록 모든 것들을 담아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이 없는 지금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엉뚱한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참 생명을 가르쳐 주시며, 참 생명으로 이끄시며, 참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신다면, 그래서 이 생을 마칠 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고 하나님만 예배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성전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성전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2. 하나님 백성들의 완전한 순종을 상징합니다. vv.11-12a

     

두 번째로 성전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하나님 백성들의 완전한 순종을 상징합니다. 아까 13절에서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계시고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런 조건이 있습니다.

     

[11]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a]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

     

인간이 언제나 항상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나요? 다음 장부터 벌써 솔로몬의 타락이 시작됩니다. 듣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통치하겠다고 약속하고 성전을 짓는데 시작 과정에서 벌써 타락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왜인가요?

     

우리 안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불순종합니다. 그런데 성전은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 기물들은 우리의 죄악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로는 하나님께 갈 수 없어서 번제단이 있고, 우리의 더러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어서 물두멍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려는 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가를 경험하여 결국 ‘순종하며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고백하도록 광야 인생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잘 마친 분들은 이 땅의 삶을 어떻게 마치게 될까요?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게 해 주세요’라는 매일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입니다.

     

롬 12:1-2 [1]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죽으면 자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난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어요. 난 더 건강하고 싶어요.’ 말할 수 있나요? 죽으면 말이 없습니다. 죽으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이것이 성전입니다. 예배드리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 갈등을 겪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건너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요? 계시록 7장 9절, 10절입니다.

     

계 7:9-10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여기도 일부러 비슷한 단어를 4개 쓴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이고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에 대해 소망하셔야 하고, 또한 나의 불순종과 죄악이 벗겨져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인도하심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 때 여러분은 하나님 가르치고자 하시는 복음의 은혜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성전을 통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할 날을 소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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