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설교문

공개·회원 1명

열왕기상 강해 04 3.4-9 지혜로운 왕, 솔로몬

2025년 12월 2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제가 고등학교 때 원종수 권사님이라는 분의 간증이 한국을 휩쓸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서 자라서 공부도 잘 못하고 거의 꼴찌였는데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분의 어머니께서 거지 할아버지를 집에 모셔 와서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돌보신지 얼마 안 되어 여느 때처럼 새벽 기도를 갔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마치 솔로몬에게 하셨듯이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이분은 솔로몬 생각이 나서 지혜를 달라는 답을 하셨는데 그 때부터 신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꼴등하던 아이가 갑자기 무슨 책을 읽던 사진을 찍은 듯이 모든 내용이 기억되는 포토메모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의대에 들어가고,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의사 고시에도 수석을 하고, 미국에 유학 가서도 수석으로 졸업해서 미국에서 암 전문의가 된 것입니다. 저도 그 때부터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만 하면 지혜를 달라고 말하려고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오시지 않자 거지 할아버지를 만나면 주려고 돈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집 앞에서 거지를 만났을 때 만원을 드렸습니다. 당시로 치면 저에게는 엄청 큰 돈이었는데 받으면서 그 분도 놀라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저는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했습니다. 아직도 솔로몬의 이야기를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예로 서울대 수석 졸업한 학생이 아침마다 성경 읽고 기도했더니 서울대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책을 낸 ‘다니엘 학습법’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교회에서 간증하면 수천 명씩 모여들고, 일 년 내내 교회 초청으로 전국을 돌았습니다. 당시 저도 중국 선교를 준비하며 선교사님께 필요한 것이 있으신지 연락을 드렸더니 중국에서 다 구할 수 있지만 딱 하나 못 구하는 것이 ‘다니엘 학습법’인데 최대한 많이 구해 달라고 하셔서 선교팀 15명이 각 10권씩 갖다 드렸을 때 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듯이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예수 믿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녀에게 놀라운 지혜를 주셔서 전국 1등하고 서울대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을까요? 그러나 본문의 지혜는 공부 잘하는 지혜가 아닙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을 모형하나요?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통치를 모형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을 모형하나요?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통치를 모형합니다. 4절입니다.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일천 번제를 하루 한 번씩 3년이라고들 오해해서 새벽 기도 3년을 작정하고 기도드리는 분들도 있지만 이것은 천 마리의 양과 염소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루였는지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많은 제사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5절입니다.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지금도 하나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사실 지혜를 달라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7절부터 9절을 다시 자세히 보겠습니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려고 보니 능력의 부족을 느껴서 ‘듣는 마음’을 간구했습니다. 이것은 제대로 판결을 내리기 위한 듣는 마음입니다. 열왕기상을 시작하면서 ‘통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고대에는 통치가 왕 한 사람의 권한이었으나 그 부작용이 많아서 지금은 한 사람에게 집중된 곳은 거의 없다고도 살펴보았습니다.


통치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됩니다. 먼저 ‘입법’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왕이 결정하면 자기 기분에 따라 주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여호와의 제사장들과 그 자녀들을 다 죽여 버린 사울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세워졌다면 두 번째로 ‘사법’ 즉 판결을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행정권’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통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9절을 보시면 솔로몬이 ‘누가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아마도 판결 과정에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모르겠는 혼란한 상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거짓말 탐지기, DNA 검사, CCTV 등의 도움으로 논쟁 자체가 줄어든 영역이 많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목소리 크고 우기는 사람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무엇이 옳은지 틀린지 구분이 되어야 판결을 할 수 있겠기에 하나님께 ‘듣는 마음’ 즉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따르겠다는 입법권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 엄청난 고백이자 순종입니다.


우리가 제일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남편, 자식, 사장, 직원이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방식이 있고 그들이 내 원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화가 나는 건데 그 틀 자체를 하나님께 넘기겠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을 드릴 때 하나님이 왜 기뻐하시나요? 이것은 인간의 죄성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창세기 3장 5절을 보겠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선악을 알게 된 것, 하나님처럼 되는 선악과의 결과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시면 ‘맞습니다. 그건 선입니다.’라고 순종했는데 선악과를 먹은 다음부터 인간은 선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이라고 결정은 했지만 선대로 살 수 없어서 인생이 힘든 것입니다.


선악의 기준이 없으면 인생이 훨씬 더 편해집니다. 솔로몬은 왕이고 입법, 사법, 행정을 마음대로 할 권한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고백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악을 기준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온유입니다. 헬라어 프라위스라는 단어는 야생마를 길들여서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된 상태를 뜻합니다. 소 두 마리가 밭을 함께 갈면서 배우는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상태 역시 같습니다. 이 온유의 근거는 내가 선과 악을 판단하지 말아야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몸에 심각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가시’라고 번역했지만 사실 헬라어 단어로는 ‘긴 꼬챙이’라는 뜻입니다. 몸에 큰 쇠꼬챙이가 박혀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줍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병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사역에까지 방해를 주었으니 간질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3이라는 숫자는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 약한 데서 내 능력이 온전하여짐이라’ 답하시자 바울은 몸을 아프게 해놓고 무슨 사역을 하겠냐고 반항하지 않고, 건강해야 선이라는 자기 기준을 없애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아파도 은혜다’라고 하시자 ‘예 맞습니다’ 받아들이고 내 판단을 버리고 병이 있음에도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나요? 사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교회에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통해 오히려 우리가 온유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이 통치를 받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일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땅은 마치 연극 무대와 같습니다. 연극 끝나면 분장 지우고 집에 가야 합니다. 우리도 인생이라는 연극이 끝나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영원한 집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얼마나 잘난 존재가 되느냐 문제를 해결 받느냐는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본질 자체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대답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10절입니다.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성의 본질을 포기하고 왕이지만 하나님의 선과 악의 기준을 들으며 그대로 살아가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약속하셨나요? 11절과 12절입니다.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과 악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 안에는 세상을 보는 모든 만물의 원리도 포함되고 인간관계의 원리도 포함됩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지혜 위에 하나님이 더하신 부귀와 명예를 더 좋아하지만 이것은 모형입니다. 지혜로운 통치로 인한 번영과 풍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3장 뒷 부분에 나오는 두 창기의 재판입니다.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우기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요?


이 때 솔로몬은 우리가 다 아는대로 아기를 반으로 잘라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며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반응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놀라운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28절입니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인간은 한계가 있어서 하지 못했던 판결,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하나님의 지혜로 판결했더니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성경은 왜 솔로몬의 판결을 기록하였나요? 솔로몬은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판결하는 왕,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판결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온유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예수의 통치를 안 받으면 우리는 욕심의 통치, 세상의 통치, 마귀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안 받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런 진공 상태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판단은 세상이 여러분에게 집어넣은 것입니다. ‘돈은 많은 게 좋은 거야, 서울대는 좋은 거야, 건강한 게 좋은 거야’ 우리 모두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생각의 이면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위해 남을 짓밟고 파괴하고 사기치고 미친 듯이 살아갑니다. 가족도 친구도 버리며 자기 욕심을 채우는 본질은 마귀의 통치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구약의 여러 구절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1절과 2절입니다.


사 11:1-2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어떤 영에 충만하여 오시나요?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모두 지혜와 관련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합한 채로 오실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자체가 지혜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과 3절입니다.


골 2:2-3 [2]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어떤 지혜의 통치를 받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지혜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 안에 나타나는 첫 번째 변화는 에베소서 1장 17절부터 19절에 있습니다.


엡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서에서도 나온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시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어둡던 눈이 밝혀지니까 하나님이 나를 왜 부르셨는지 알게 되고, 또한 하나님이 앞으로 우리에게 주실 그 놀라운 영광이 얼마나 큰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금 얼마나 강력한 능력으로 개입하고 계신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면 수능 1등하는 것 아닙니다. 육신적 세상을 넘어 영적 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에 왜 헌금하셨나요? 세상 사람은 보지 못하는 영적 세계를 봤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 아이들 먹을 거 사주려고 헌금한 것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예수를 만나 마귀에게 매여 있던 자리에서 구원받는데 사용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헌금하셨습니다.


영적 세계를 본 자들은 다르게 살아갑니다. 이 땅의 삶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는 마음이 생기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가 통치하게 된 변화의 증거입니다. 지혜가 임하면 나타나는 두 번째 변화를 골로새서 3장 16절부터 17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골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고 성령이 말씀을 가르치시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 지혜는 우리를 가르치고 권면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즉 우리 안에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언제 감사한가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도움을 받을 때 감사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내 인생에 계속 개입해 오신다는 걸 알게 되기에 목장에서도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하시는 일을 나누는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니라 올해 내내 하나님이 계속 개입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찬양하게 됩니다. priase는 높이다, 칭찬하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사귀는데 그 사람이 한 번 잘해주는 게 아니라 인격과 삶의 태도가 계속 선하면 감사를 넘어서 priase 즉,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고 반대로 여러분 안에 선과 악이 강력하면 감사하기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연봉 3억에, 아프면 안 되고, 자녀들은 다 하버드 다녀야 된다는 선의 기준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결혼한 것만 해도 감사하고, 자녀가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인생에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지금 삶에서 감사와 찬양이 없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다면 통치를 못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준이 너무 강해서 하나님 노릇하고 있는 중입니다.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없이 2025년을 마치실 수 있었나요? 받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삶을 살 때 나타나는 마지막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입니다.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 땅에 살지만 영적 눈을 떠서 하나님 나라를 보며 살아가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받아들이는 온유한 자가 되면 성경은 이를 ‘완전한 자’라고 말합니다. 2025년 한 해 우리는 물론 부족한 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새 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기도 제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 노릇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지혜의 통치를 받아 온유한 자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2026년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회 조회

© 2023 이 홈페이지의 모든 권리는 하늘사랑교회에 귀속됩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