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55 27.27-44 폭풍을 지난 성도의 영향력
2025년 8월 3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때의 본성은 아름답고 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하고 이기적이며 또한 분노하거나 불안에 가득 찬 모습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본성은 바로 이기적 욕심입니다. 왜 그럴까요?
누구나 평소에는 체면이나 사회적 관계 때문에 이기적 본성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부부 상담하는 한 교수님에 의하면 부부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연기’를 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화가 나도 화를 다 내지 않고, 불만이 있어도 유하게 표현하는 등 우리는 본성을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교수님의 남편은 교수님께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고 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썩 여성스럽거나 예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사랑한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면 행복하고 그래서 좋은 부부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말인가요? 거짓말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는 행위인데,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거짓이 아니라 연기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가식과 체면을 붙잡은 힘이 없어서 연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중에도 이기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27절 말씀 보시면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주간의 어둠과 폭풍우를 지내고 사공들은 물을 측정하며 자신들이 육지에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사를 오간 사람들에게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요? 그러나 30절입니다.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거룻배는 구명 보트로 몇 명밖에 타지 못합니다. 마치 닻을 내려 배가 흔들리지 않게 도우려는 것처럼 행세한 뒤 자신들만 도망가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 배는 선원들의 힘으로 돛도 올리고 배를 운행해야 하는데 이들이 가버리면 남은 이들은 살아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한 육지가 가까웠다는 것은 주변에 암초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무 배는 암초에 한 번 부딪히면 바로 침몰하게 되는 실정이니 선원들이 도망가면 전원 사망하게 됩니다. 때마침 바울이 이 사실을 발견합니다. 31절 말씀입니다.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전에는 죄수인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아서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32절입니다.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바울 덕분에 거룻배와 연결될 줄을 잘라서 사공들이 남고 결국 모두 살게 됩니다. 사공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자 그 행동을 제지한 군인들은 의로운가요? 낮이 되어 멀리 섬이 보이고 모두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겼을 때 군인들이 한 행동이 42절에 나와 있습니다.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배에 있던 276명 중 죄수가 일부 있었을 것입니다. 고대에는 죄수가 도망가면 그 책임을 맡은 군인이나 간수가 대신 죄를 덮어쓰게 되어있었습니다.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가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차라리 죽이려고 하는 군인들은 사실 선원의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폭풍을 통해 이기성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도 역시 나쁜 일을 경험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죄악을 벗어버리나요? 아닙니다. 폭풍 속에 은혜가 임해야 하나님이 목적하신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의 인생에 폭풍우를 보내실 때에는 목적이 있고, 그 가장 중요한 목적이 바로 본질적 이기성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으로 인해 완벽하게 만족한 상태였으나 죄가 들어와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사라져 인간 영혼이 공허하게 되었고 이 상태를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공허하니까 공허를 채우려고 이기적 욕망을 발휘됩니다.
내가 충만하면 그 사랑이 흘러서 주변에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근원적 공허로 인해 내가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조차 자꾸 나의 이기성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보이는 죄가 아닌 죄의 뿌리가 되는 이기성을 다루십니다.
결국 은혜와 함께 폭풍우를 여러 번 지난 사람은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이기적 본성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 공동체는 한 사람의 욕망을 위해 모두가 노예처럼 살고 공동체는 붕괴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폭풍우를 통해 성도의 본질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입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출항 전에 바울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일개 죄수였으나 폭풍우를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폭풍을 지난 성도는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폭풍을 지난 성도는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나요?
1.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vv.27-37
첫 번째로 폭풍을 지난 성도는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33절과 34절 상반절입니다.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a]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
배에 음식은 있었지만 공포가 이들을 잠식해서 마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 너무 심한 폭풍우를 지나며 배멀미로 먹지 못했던 것도 같습니다. 아마 기간이 조금만 길어졌으면 약한 사람들부터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바울이 음식을 권하나요? 34절 하반절과 35절입니다.
[34b] …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상황은 똑같습니다. 여전히 깜깜하고 배가 요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너희는 구원받을 수 있고, 머리카락 하나 잃지 않고 반드시 살게 될 것이니 음식을 먹고 그 일을 준비하자’고 이야기하고는 떡을 축사하고 떼어 먹습니다. 36절은 마치 성찬식 같은 장면이 이어집니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여전한 어둠과 폭풍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안심하고 그동안 못 먹던 떡을 먹었나요? 바로 276명 가운데 바울 한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울은 신뢰했고 이들은 그 견고함을 신뢰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인생에서 폭풍우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이기적 본성을 점점 내려놓게 됩니다. 돈과 건강과 인간관계가 내 미래를 보장할 줄 알고 매달렸는데 폭풍 속에서 그런 것 따위로는 내 본질을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축복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폭풍 속의 배처럼 요동하고 내 생명조차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자주 경험하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점점 커집니다. 평소에 눈에 보이는 것을 의존하던 무지를 내려놓을 때가 옵니다.
내가 움켜쥐었던 것이 좌절되는 순간 세상 사람들은 완벽하게 좌절하고 고꾸라지지만 성도는 거기서 내가 진짜 의존해야 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안심시킬 수 있는 도구로 변하길 원하십니다.
폭풍 속에서 두려워 떠는 사람한테 아무나 가서 ‘조금만 참아’라고 하면 위로가 될까요? 생존을 걱정하며 풍전등화같은 사람에게 ‘잘 될 거야’라는 말이 힘이 될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경험한 사람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고 구원하시는지를 믿음으로 전달할 때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폭풍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세 번이나 파선하고 일주일을 깊음 가운데 지내고, 그 외에 더 많은 인생의 폭풍우를 통해 그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기를 배우기 원하십니다. 눈을 뜨기 원하십니다.
지금 당장 벌어지는 한두 개의 사건으로 우리 인생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 보이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시며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장님들처럼 눈을 뜨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자만 눈을 떠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자주 두려움에 사로잡히시나요? 눈으로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미래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시나요? 기도하셔야 됩니다. 제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며 눈에 보는 것에 한정된 인생이 아니라 그 이후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또한 귀가 열려야 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한 귀머거리 귀에 손을 집어넣으셔서 귀를 뚫는 제스처를 취하신 다음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병을 치유하시는 분이 왜 손가락을 귀에 넣으셨나요? 그림입니다. 밖의 소리가 들리지 않던 막힌 귀가 예수님을 통해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면 기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귀를 뚫어주세요’ 기도하셔야 합니다. 폭풍우를 지나면 우리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눈을 여시고 귀를 여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제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마치 벙어리의 입이 열린 것 같은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들은 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선포합니다. 자기 인생을 보면서도 ‘내가 이 정도지 뭐. 내 인생 별 게 있겠어.’ 자녀를 향해서도 ‘너라도 별 수 있겠어.’ 별 생각 없이 내뱉곤 합니다. 악한 부모들은 저주를 퍼붓기도 합니다. 눈이 감기고 귀가 막혀서 그렇습니다.
공부 못하면 바보 되고 좋은 학교 못가면 망할 것처럼 믿다 보니 대여섯살 아이들에게 시험 치게 해서 합격, 불합격, 경쟁, 선행, 과외 그런 것들로 많은 아이들을 불안장애 공황장애로 내몰고 있습니다. 폭풍우의 사공처럼 내 이기성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다 같이 죽어나갑니다.
폭풍 속에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본질을 바꾸셔서 하나님이 참 주인이심을 제가 믿어 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사람들에게 참된 위로와 구원을 선포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하늘사랑교회라는 배를 함께 타고 있습니다. 당시 예배당이 80석 정도였는데 첫 해 크리스마스에 120명 정도가 오셔서 복도까지 의자를 깔고 북적북적 예배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배가 너무 작아 보였는지 먼저 탈출하신 분도 있고, 건물에서 나가라고 할 때 배가 침몰하는 줄 알고 두려움에 식음을 전폐했던 때도 있고, 하나님이 더 좋은 배로 갈아타게 하셔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인원은 줄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함께 항해하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의 항해에서도 풍랑을 지나게 됩니다. 기도 많이 하면 풍랑을 비켜간다는 목사들도 있지만 그것은 비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랑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시기보다, 풍랑 속에서 근원적 죄성이 폭로되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않고 구원을 선포하고 주변에 참된 복음의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통로로 성장하기를 훨씬 바라십니다.
저도 젊어서 풍랑을 많이 지났던 이야기를 지난주에 해드렸습니다. 제가 풍랑을 지났기에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풍랑이 안 오는 것도 아니고, 물론 박살나고 파선하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풍랑의 결과는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사업 망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병들고 고통하고 아팠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과정을 통해 제 이기성이 깨지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하늘사랑교회도 우리 이기성을 충족하지 말고 작은 교회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섬기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폭풍을 지나보니 나만을 위해 사는 존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로 가족과 회사를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흘려보내서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살아나고 구원의 소망을 품게 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그 사명을 주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저는 다 만나지 못 합니다. 그들이 풍랑을 만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 여러분의 말 한마디, 여러분의 기도, 여러분의 섬김으로 그들이 풍랑 가운데 위로와 안위를 얻고 음식을 먹을 힘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요?
폭풍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폭풍을 통해 여러분은 더 성장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여러분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과 소망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폭풍을 지난 성도는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나요?
2.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짐을 증거합니다. vv.38-44
두 번째로 폭풍을 지난 성도는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나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짐을 증거합니다. 39절과 40절 말씀입니다.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날이 새자 해안이 보여서 닻을 끊고 돛을 달고 해안을 향해 출발합니다. 41절을 보시면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배의 앞부분은 암초에 걸려 멈췄는데 뒤에서 파도가 계속 치니까 뒷부분이 깨져서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바울이 예측했던 이야기입니다. 22절 보시면
[22] …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어떤 해안에 닿을지도 몰랐던 시점에서 배에는 손상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대로 배의 뒷부분이 깨져 나갑니다. 이때 군인들이 무엇을 제안하나요? 42절입니다.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힘들게 폭풍우를 같이 이겨내고 칼로 죽이다니 너무 이기적입니다. 작은 섬이라 도망갈 데도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본인들에게 피해가 돌아올까봐 쉽게 결정합니다. 다행히 43절 상반절에
[43a]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
백부장은 바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살리고자 했고 결국 사람들에게 헤엄쳐 가게 합니다. 43절 하반절부터 44절입니다.
[43b]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파도가 많이 치고 있었지만 수영할 수 있는 사람은 수영으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배의 물건을 붙들어서 다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24절과 25절 말씀입니다.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바울은 믿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선포했었나요? 34절입니다.
[34] …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하나님 약속의 성취가 바울을 통해 확실하게 증거된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약속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이 그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쉽게 한 위로가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안할 때 바울처럼 천사를 만나기를 원하면 안 되고 불안한 마음을 하나님을 믿는 신뢰로 바꾸라고 성경은 권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여러분의 미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하게 붙들림 받는다는 것은 천사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성경이 이미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신비한 음성을 듣고 싶었고 특히 나뿐 아니라 남 얘기를 들어서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을 통제하려는 무서운 죄라 하나님은 그 마음을 끊어내셨습니다.
유학 후 귀국한 뒤 3개월쯤 되었을 때 인생이 비참한데 탈출구도 없고 해서 응답을 받을 때까지 나오지 않으려고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큰 교회 목사님이 만나자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여러 날짜를 제안하시면서 급히 만나자고 하셨지만 저는 어제 막 들어왔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는 못 돌아갈 절박할 마음이라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해서 화가 난 상태로 일단 기도원을 나왔습니다.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 일이 취소되어서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궁금했지만 알겠다고 하고 막막한 상태로 지내기를 2년이 된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비슷한 2년을 보내다가 매튜 헨리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매튜 헨리는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에 주석을 쓰신 분인데 최초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권 주석을 내신 굉장히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이 분 아버지가 목사님이신데 여러 사정으로 목회를 더 이상 못하게 되자 아들에게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가르치고 철학 신학을 함께 공부해서 주석을 쓰게 만든 조력자였습니다. 그 때 저도, 혹시 평생 목회를 못 하게 되어서 내 자식 둘만 교육하고 끝나더라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하겠다고 고백하면서 목회를 내려놓는 자리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주에 하나님이 개척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며 개척이 맞구나 동의하게 되어서 이제까지 저를 긍휼히 보아주셨던 목사님들한테 메일로 그 결정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돈, 장소, 사람 아무것도 없으니 6개월 정도 개척 기도회를 해야겠다 싶어서 후배 목사님한테 장소도 빌렸습니다.
그런데 메일을 받으신 목사님 중 한 분이 전화를 주셔서 통화하다 개척 기도회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안 돼!’ 강하게 말씀하시며 ‘개척 기도회를 하면 넌 도둑놈이야’라고 덧붙이셨습니다. 화가 났지만 아닌 척 연기하며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이미 교회 다니는 사람들 개척 기도회에 초대하면 도적질이야. 도적질 하나 안하나 두고 볼 거야’ 하시고는 집에서 아내랑 손잡고 기도로 시작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시면 교회가 시작된다는 말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10년 전부터 아내랑 손잡고 기도했는데 그건 개척이 아닌데 생각하며 기도회를 할 수도 없고 개척을 할 수도 없고 고민하던 중, 일단 이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네이버 지도를 펼쳐놓고 서울에서 제일 집값 싼 데를 찾은 것이 봉천동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부자 부동산에 들어가서 월세 싼 곳을 물었더니 마침 비어 있다고 해서 같이 산 꼭대기를 올라갔습니다. 집은 괜찮았고 월세도 저렴했지만 보증금 5천이 없으니 돌아나왔습니다. 터덜터덜 걸으며 봉천역에 도착했는데 한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개척하려고 집을 알아봤는데 돈이 없어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대뜸 보증금을 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도 유학 후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슨 돈이 있으신가 물었더니 아버지께서 개척 자금을 주셨는데 지금은 부목사로 가게 되어서 돈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봉천역에 선 채로 돈을 받고 그 길로 부자부동산으로 돌아가 계약을 하고, 교회 이름을 정하고, 다음 주에 교회를 시작하여 백일 된 아기까지 열 다섯명이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시작했는데 2년 전에 기도원 있을 때 전화하셨던 목사님이 또 전화를 주셔서 찾아갔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분립 개척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때 너가 안 오길래 너는 아닌가보다 생각했는데 2년 동안 사람을 못 찾았다고 하시며 돈, 장소, 사람을 준비했으니 시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첫 예배를 드렸다고 하니 그 사람들 오래 못 버티고 나갈테니까 그 자리로 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지난번도 이번도 막아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기도원도 안 가고 할 일이 없을 때 분립 개척 제안을 받았으면 두 손 들고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목회의 영광과 화려함을 내려놓으며 깨졌어야되는 마지막 폭풍의 근원적인 변화를 겪지 못하고 목회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한테 도둑놈이라고 한 목사님이 미웠었는데 그분 덕에 6개월의 기도회를 건너뛰고 바로 하늘사랑교회를 시작했으니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도둑놈이라고 해주신 것 감사해서 창립 예배 때 그 목사님께 창립 예배 설교를 부탁드렸더니 목사님이 설교해 주시고는 천만 원을 헌금하셨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과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사랑 교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두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듯 하나는 이사야 35장 2절입니다.
사 35:2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메마른 땅과 광야가 변하여 샘이 되고 눈먼 자들이 보게 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저는 자들이 뛰게 되는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너무 감동해서 주보 일면 제일 위에 적어놓았고 복도 벽에도 크게 새겼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여러분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던 분들이 눈을 뜨고 복음을 듣지 못하던 자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놀라운 영광스러운 일들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두 번째로 주셨던 구절은 누가복음 5장 38절이었습니다.
눅 5: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한국에 교회가 5만 개나 있는데 왜 교회를 새로 시작해야 되나요? 질문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새 부대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공급된 복음이 하늘 사랑 교회를 충만하게 채우고 이 교회에서 흘러넘쳐 여러분이 만나는 세상에까지 흘러갈 수 있는, 그 새 부대가 바로 여러분입니다.
저는 지난 11년간 이 교회를 목회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더 현저하고 더 많이 보면 좋겠고, 본당에 사람이 꽉 차고 보조 의자 놔 봤으면 좋겠지만 그건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제 애 둘만 목회해도 좋겠다고 전부 내려놓았던 것에 비하면 몇백 퍼센트 부흥한 거라 감사하고, 간판도 없는 하늘사랑교회에 사람들을 보내주시니 감사하고, 복음으로 변하게 해주시니 감사하고, 그 복음을 제가 매주 기쁘고 감격해서 선포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되시길 원합니다.
한 명 한 명이 새 부대가 되어 복음의 영광스러운 새 포도주를 흘려보내 주변 사람들에게 구원의 영광을 맛보게 해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