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교 009 고난 04 눅 22.39-46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하는 이유
2025년 10월 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고난 중에 가장 힘든 일은 어쩌면 기도일지도 모릅니다. 고난을 겪다 보면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싹 트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힘들기 때문에 더욱 힘써야 할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기도를 온전히 배우고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기도로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우리의 생각과 뜻대로 살아가는데, 평소대로 살 수 없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래서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가 깊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또한 그 뜻대로 사는 자가 되도록 빚으십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고난 중에 왜 기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난 중에 왜 기도해야 하나요?
1.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vv.39-40, 45-46
첫 번째로 시험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39절과 40절 말씀입니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이 땅에 계실 때 습관적으로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감람산은 올리브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곳인데 예수님은 그곳에 자주 제자들과 기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대제사장들의 군병에게 사로잡혀 재판을 받고 다음 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날의 직전 밤입니다. 예수님은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을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뒤에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기도하러 감람산에 가신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특별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든 제자들이 잠에 들자 예수님은 이들을 깨우시면서 4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앞에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여기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즉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에 빠지고 시험에 드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도대체 무슨 유혹과 무슨 시험에 든 것일까요? 우리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유혹과 그로 인한 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가장 큰 유혹은 세상의 강력한 힘입니다. 강력한 힘이란 세상적으로 더 능력이 많고 부자가 되고 똑똑하고 높은 위치에서 원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내가 강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도 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정반대의 죄성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힘이 강력한 두려움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계속 힘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근원적 이유는,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시면 자신들이 예수님 옆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그 강력한 통치권을 나눠 가지려는 열망이었습니다. 힘을 가지면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보복할 수 있는 것이 권력의 힘입니다.
돈이나 권력이 있다면 나와 내 집단이 안전을 보장받을 방법도 만들 수 있고, 즉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과의 죄악이 우리 안에 여전히 영향을 미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유혹에 넘어지고 시험에 빠집니다. 제자들에게도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마친 바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마가복음 14장 43절 보시면
막 14: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기도를 마치자 군대가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 바로 몇 시간 전 만찬에서 너희가 나를 다 버릴 것이라는 예언에 제자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었나요? 아니, 모두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사랑한다는 고백은 늘 진심입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가면 우리는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두려움에 위축됩니다. 제자들도 군병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나요? 마가복음 14장 50절입니다.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것이 우리의 실체를 드러내는 세상의 강력한 힘입니다. 우리는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생각보다 ‘능력이 많다면, 돈이 많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제자 중 특히 베드로에게 집중합니다. 베드로가 더 나쁘고 연약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열정 많고 강력한 사람의 실패를 보여준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실패를 적었다면, ‘더 강력하게 의지를 발휘하고 더 열정적이었다면 시험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31절에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막 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자기 생명을 내걸고 고백합니다. 심지어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 열정 많은 베드로도 일단 무엇에서 실패했나요? 마태복음 26장 40절입니다.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다른 성경에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자꾸 대표로 선택됩니다. 깨어 기도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실체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태도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언제 진실하게 기도하나요? 하나님 외에 다른 의존의 대상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뼈저리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즉 기도는 결국 세상의 유혹을 벗어나 하나님 외에는 나를 도우실 분이 없다는 반응이기에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제자가 실패했지만 성경은 특히 베드로의 실패를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70, 71절에
막 14:70-71 “[70]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얼마나 두려움이 많았던지 저주하고 맹세합니다. 우리도 1년 전쯤 한 맹세를 잊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바로 전날 밤에 맹세하고 몇 시간 뒤 새벽에 정체가 들통나자 저주하며 맹세했습니다. 이어지는 마가복음 14장 72절에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막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몇 분 전에는 왜 생각이 안 났나요?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 안에서 어떤 강력한 감정이 올라오면 이성적 생각이 마비됩니다. 감정이란 그만큼 강력해서 분노에 사로잡히면 하지 말아야 될 말과 행동을 합니다. 두려움이나 우울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힘이 한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닭 우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와 웁니다. 베드로처럼 강력하고 열정 많은 사람도 의지로는 하나님을 붙들 수 없습니다. 의지대로라면 기도했어야 되지만, 기도에 실패했더니 결국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예수님이 의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가장 방해되는 인물이 자기 의지로 성취하고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나 선교사님들 중에도 마음먹은 것은 다 이룬다는 철학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주변 사람들이 다 나가 떨어지고 상처받는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해본 적이 없으니 모두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조금이라도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을 보면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러 베드로가 시험에 실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국 기도란 강력한 힘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의지, 능력,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며 그 손길에 내 인생을 맡겨드리는 과정입니다.
인생에는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난 중에는 두려움과 불안에 쉽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암에 걸리면 암 자체가 그 사람을 파괴하는 것보다 암에 걸렸다는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약 70% 환자의 건강이 악화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필요한 것이 나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차단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함으로 내 영혼이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힌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존재가 되도록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제 인생에도 두려움과 불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도 불안이 매일 저를 덮쳤습니다. 깊은 기도와 성경공부로 준비되었다고 생각해서 금의환향 할 줄 알았는데 갈 데도 없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도대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또 하나님은 유학 8년 동안 꾸준히 돈을 주셨는데 귀국 전 3개월 정도는 돈을 거의 안 주셔서 불안이 증폭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때 신학교 바로 옆에 있던 신학생들이 많이 다니던 ‘한마음 교회’에서 특별 새벽 기도 설교를 요청 받아서 설교를 했습니다. 불이 꺼지고 5분 정도 기도하다 학생들은 아침 수업도 있고 해서 모두 떠나고 저 혼자 예배실에 앉아 기도를 하는데 깜깜한 그 상황이 제 마음 같고 사실 유학 전의 상황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도 돈이 없는데 자꾸 유학을 가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불안함에 새벽 기도를 가서 사람들이 나가고 깜깜한 곳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계속 걱정하는 마음에 한 가지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승아 나와 함께 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니?’ 그 때, 하나님이 함께 가자고 하시니까 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불안감을 이겨내고 미국에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처럼 8년 유학에 필요한 모든 돈을 주셨고, 저와 아내는 수없이 아팠지만 죽지 않고 옛날보다 건강해졌고, 단편적으로만 알던 복음의 깊이와 넓이를 풍성히 알게 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은혜가 기억이 났습니다. 나는 한국을 떠날 때도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지난 8년간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은혜를 베푸셨다는 생각이 깨달아지면서 갑자기 깜깜하던 교회 예배실이 빛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솟구치면서 ‘이번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이 두려움을 벗어나도록 은혜로 붙들어 주세요’ 기도하며 교회를 나왔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이 두려움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보험을 많이 들고 자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소용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이 약속대로 내 인생을 함께하셨구나,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주인이시구나, 은혜가 감사하다고 반응하게 됩니다.
고난 중에 왜 기도해야 하나요?
2.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vv.41-42
두 번째로 고난 중에 왜 기도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1절과 42절 상반절입니다.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a]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
하나님이신 예수님마저도 지금은 사명을 감당하기가 힘드셔서 잔을 옮겨달라고 하십니다. 이 잔은 구약이 계속해서 말한 하나님이 심판 받을 자들에게 쏟으실 ‘진노의 잔’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잔에 담긴 진노의 포도주를 피처럼 마시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얼마나 두려워하셨는지 마태복음 26장 37절과 38절을 보시면
마 26:37-38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도 ‘무서워 죽겠’는 상태이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이셨던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심판을 받아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간절히 세 번 기도하셨고 42절 하반절에
[42b] …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결국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고난은 사실 내 뜻대로 안 되어서 고난입니다. 예전에 제가 설교하러 갔는데 어떤 여자분이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와서 고민을 얘기하셨습니다. 결혼하고 10년째 아기를 못 낳는데 교회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오래 아기를 못 갖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제 설교를 듣다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확답을 받고 싶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면 상주고 불순종하면 벌주는 못된 하나님이 아니시니 그런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했더니 그분이 우셨습니다. 아기를 너무 원하는데 가지지 못하는 상황도 고난입니다.
꼭 주변에 하나님을 잘못 알고 훈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면 내가 원하는 길이 좌절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좋다고 하시는 것과 우리가 좋다는 것 사이의 간격을 인지하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때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유학을 가는 것이 옵션은 아니었습니다. 20대에는 막연하게 유학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결혼하고 애기 낳고 큰 교회 사역하며 삶이 안정이 되자 유학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드시 유학을 갔어야 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에 성경을 아는 수준으로 지금 설교한다면 저도 힘들고 여러분도 힘들 것입니다. 그 때도 그랬습니다. 성경을 봐도 무슨 설교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절대로 안 움직이려고 하니까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화장실에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누가 허리를 친 것처럼 통증이 몰려오면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서 일단 다른 부서 목사님께 대신 설교해 달라고 하고 종일 누워 있었습니다.
유명한 한방병원에서 엑스레이와 MRI를 찍어도 이유가 없다 하고, 디스크도 아니고, 수술도 할 수 없는 채로 몇 주가 지나갔습니다. 당시 대학부는 방학에 수련회나 해외 선교를 연합으로 진행했었는데 제가 제 몫을 할 수 없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필 그때 저랑 사이가 안 좋은 목사가 팀장이 되자 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것도 속이 뒤틀렸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수원에 용한 침놓는 분을 소개받아서 쓰러져가는 판잣집을 가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가 배도 만져보고 짧은 침을 허리에 몇 개 놔보시더니 이것은 허리 문제가 아니라면서 밖에 있던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네 명이 제 팔다리를 붙잡고, 어머니는 제 머리를 누르고 그 분이 기다란 장침을 꺼내어 제 배에다 꽂았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허리가 아니라 배 안에 기력이 다 쇠해서 척추뼈가 앞으로 밀려서 그렇다는 진단을 내렸는데, 배 안의 기력이 쇠했다는 말이 저에게는 시편 32편 4절의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 영혼의 진액이 새는데 주께서 나를 눌러서 내가 말라버렸구나 생각하며 다음 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영혼이 다 말라버렸습니다. 큰 교회에서 사역하니 좋다고 안주하고 있었지만 영혼이 마르고 제가 다 무너지고 마른 뼈처럼 되어버렸는데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울었습니다.
사실 그 교회 사역하면서 별로 울지를 않았었는데 매일 울기 시작하고 얼마 후 하나님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유학 가라고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들으셨겠지만 부서별로 기도회를 하는데 친구 목사가, 기도회 중 갑자기 생각이 나서 학생들에게 기도하라고 제목을 준 뒤 저한테 급히 와서는, 하나님이 김일승 유학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하고, 미국에 연수 가셨던 목사님이 김일승 유학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하고, 그리고 새벽 기도에서 일승아 먼 여행을 함께 떠날 준비가 되었니? 음성을 듣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미국에 간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갔을 테고 몰랐으니까 갔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저는 고난을 꼭 겪었어야만 했습니다. 유학 가기 전에 저는 욕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유학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옛 사람의 힘이 많이 약해져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온전하신 분이신가를 믿게 된 사람으로 바뀌어 돌아오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길이 아닐지라도 때로는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방향을 바꾸실 때 기도로 순종하심으로 인생의 주인이며 인도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