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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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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 08 7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방법.4304.19368

2026년 2월 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왕상 07: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왕상 7:1)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인간이란 존재는 이중적입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우리 안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이중적 모습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을 더 멋있게 만들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세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새로운 사람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어쩌면 이중성의 간극은 더 명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도 많이 착각합니다. 자신은 심각한 죄를 짓지 않아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를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가 아닙니다. 그 행위를 만들어내는 본질적인 영적인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죄의 힘에 사로잡힌 옛 사람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새롭게 만드시는 새 사람의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옛 사람은 죄의 영향력이 강력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부정적 감정들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미움, 슬픔, 불안, 무력감, 열등감, 분노, 짜증, 억울함 등을 경험합니다.


기질에 따라 특정 감정이 지배적인 경우는 있지만 이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주도하는 감정은 두려움과 분노입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뿌리입니다. 감정은 영혼의 창문입니다. 폭풍우가 치면 창문을 통해 밖의 상황을 알 수 있듯 영적 영향력도 감정이라는 분출구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래서 어떤 주요 감정이 사람을 사로잡으면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두려움이 주요 영향력인 경우 그의 모든 반응은 두려움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분노하는 행위도 분노의 뿌리에 기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적 감정의 큰 폐해는 관계 파괴입니다.


관계는 우리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바로미터입니다. 인간이 영적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특정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영적이기 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도 눈에 보이는 차원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 있고, 자기 자신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온전하다는 것은 관계가 온전한 것입니다. 화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화내지 않고, 기뻐하겠다고 결심하면 기뻐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용서하고 섬겨야겠다고 생각하는 등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부정적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시기하고 질투하고 화를 내며 관계가 망치게 됩니다.


관계의 문제는 사랑해야 할 존재와 끊임없는 갈등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관계의 파괴로 상처입히는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부, 자식, 부모, 시간을 많이 보내는 직장 동료 등이 문제의 대상입니다. 영적 존재는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전 존재가 고통합니다.


결국 나는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는지, 또한 이 감정들로 관계가 어떻게 영향 받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는 사람은 옛 사람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고 끝난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옛 사람 말고 새 사람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 역시 보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새 사람이 존재한다면 첫째 영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새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도, 기도하지도 않을 텐데 하나님이 말씀을 읽고 그것을 진짜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 반응은 새 사람이 시작되었다는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새 사람이 시작되었다면 갈등 역시 시작됩니다. 새 사람이 강력해서 옛 사람을 단번에 때려 눕히고 하나님의 뜻대로만 우리를 인도하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이 갈등의 과정을 통해 옛 사람이 얼마나 못됐고 집요하고 죽기 싫어하며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는가를 우리가 깨달아 ‘이 비참하고 더러운 상태에서 나를 제발 구원하여 주세요’라고 간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옛 사람은 조금씩 약해지고 새 사람은 조금씩 강해집니다.


새 사람이 존재하기에 세 번째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곳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착하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죽음 앞에서 오히려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둘의 힘이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과정을 일부러 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단번에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내 안에 미치는 죄악의 영향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한지 깨닫지 않고서는 구원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은 완벽한 존재였나요? 자기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로 함으로 열왕기상에 멋지게 등장하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6:38 …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성전 건축은 출애굽의 클라이막스로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과 함께하게 되셨습니다. 솔로몬은 가장 선봉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새 사람이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읽었던 6장 마지막 절이 끝나자마자 7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한글 성경에는 빠져 있지만 원어와 영어 성경에는 두 문장을 잇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두 구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솔로몬이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그러나” 자기 왕궁을 13년 동안 건축하였더라.


성경은 숫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세대를 의미하는 “40년” 동안 광야를 돌았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는 5의 의미 때문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하나님 나라를 묘사할 때에는 모든 백성들을 포함하는 “십사만사천”명이라고 표현합니다.


13은 7과 6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7은 완전함을 뜻하고, 6은 완전함에서 하나가 모자라기 때문에 불완전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마치 엘리베이터에 숫자 4를 쓰지 않고 F로 표기하듯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불완전성이 세 번 연속 반복된 곳이 구약에 한번, 신약에 한 번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고 불완전하다, 즉,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선언입니다.


10:14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솔로몬은 잘 나가게 되자 솔로몬 안의 옛 사람이 커지며 ‘내 것은 더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666의 마음은 요한계시록 13:18에서 마귀의 마음이 됩니다.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왜 마귀의 숫자가 사람의 숫자일까요? 마귀가 가지는 생각을 사람에게 그대로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666 이야기 바로 뒤인 14:1에 하나님 백성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즉 666이 무엇인가요? 모든 인간은 솔로몬처럼 힘을 통해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하나님의 완전함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돈도 많고, 인기 있고, 명예를 가지기 원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지만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강력한 힘을 주셨더니 그 힘과 함께 옛사람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성전을 완공하자마자 솔로몬이 한 일이 무엇인가요?


[8] …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


아내를 위해 집을 지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어긴 것입니다.


11: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직접적 반역은 이 달부터 시작됐습니다. 자기 나라에 예쁜 여자가 없었나요? 세상 힘에 대한 열망 때문입니다. 천 명의 부인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 주변 나라의 모든 왕들과 협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 중 제일 힘이 강했던 것이 이집트의 바로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힘없고 예쁜 한국 여자와 결혼하는 것보다 미국의 사위가 되어 힘을 얻기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으로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요즘 두쫀쿠가 인기라고 하지만 이런 유행은 길어야 1년입니다. 내가 괜찮고 특별한 존재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신 트렌드를 따라 가야 하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많은 여인들은 이방의 문화를 가지고 왔고 그래서 성전 주변에 바알과 모압의 더러운 신상들을 세웠습니다. 결국 세상의 힘을 한번 맛보자 그것을 더욱 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명령하셨나요?


사 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인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옛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존하게 되면 아무리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고 시작한 일도 옛 사람 쪽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모두 약속하셨나요?


3: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솔로몬처럼 강력한 왕이 없었지만 그래도 더 갖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것을 받고도 왜 배반했냐고 솔로몬을 버리시나요?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를 한 번 믿었다가 열심을 부리지 않으면 폐기될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목사님들도 있고, 아예 그러한 교단이 있습니다. 성결교는 한국에서 자생으로 만들어진 교단으로 이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장로교 신학을 반대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믿고도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목사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을 보며 성결교에서 성도들을 위협할 무기를 만든 것입니다. 구원이 취소되지 않도록 새벽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이것은 잘못된 신학입니다. 솔로몬 정도 나쁜 짓을 했으면 하나님이 구원 취소하셨어야 되고 그러면 성경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자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어디까지 타락했는지 열왕기상 11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왕상 11:4-5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솔로몬의 옛 사람의 모습이고, 이것이 우리입니다. 그런데 왜 솔로몬이 남들보다 훨씬 더 타락한 것처럼 나타났나요? 남들보다 더 강력한 힘이 주어져서 그렇습니다. 타락의 정도는 그 사람이 가진 힘의 정도와 비례합니다.


70년대부터 큰 교회를 이루시고 존경받던 목사님이 최근에 은퇴하시면서 아들이랑 개척하게 400억을 달라고 해서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 점차 알려지고 이슈가 되자 100억으로 40억으로 줄다가 안 받고 나가겠다고 해서 제가 몇 주 동안 그 분 때문에 상심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안타까울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하나님이 큰 힘을 주셨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솔로몬과 같은 말년으로 치달아 가실지 모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이길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남에게 안 들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도 깊은 타락으로 비참하게 끌려갈 것입니다. 그런 우리조차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죄악에서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악에서 어떻게 구원하시나요?

1. 강력한 주권으로 구원하십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강력한 주권으로 구원하십니다. 열왕기상 6장에 성전을 지었다고 마무리하고 7장 앞부분에 솔로몬이 타락하여 왕궁을 지은 이야기를 하고는 다시 성전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특별히 성전의 두 가지 기물인 기둥과 물두멍인데, 왜 성전 이야기로 돌아온 걸까요?


솔로몬이 타락해서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여전히 구원하심을 보여주시는 장치입니다. 13절은 성전의 두 기둥을 설명합니다.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8 규빗은 10미터 조금 넘는 높이로 3층 건물 정도입니다.


대하 3:17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야긴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받치는 기둥은 아니고 장식입니다. 두 기둥의 이름의 뜻을 합쳐 보면 ‘하나님이 강력한 능력으로 통치하여 너희를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기둥 꼭대기에 바둑판 모양의 그물은 하나님의 통치가 촘촘하게 우리 인생 가운데 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이 촘촘한 그물처럼 우리 인생을 두르며 이끌어가고 계시다는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로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성경에서 백합화는 순결한 하나님의 통치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순결하게 만들어 가실 것임을 보여줍니다. 솔로몬도 하나님 뜻대로만 통치하겠다고 시작했지만 하나님이 부와 영광을 주시자 성전 앞에다가 몰렉 신전까지 세웁니다. 몰렉은 아이들을 불에 태워 죽임으로 부와 건강과 힘을 원하는, 성경에 나오는 우상 중 가장 악랄한 우상입니다. 그렇게 더러워진 솔로몬을 하나님이 순결하게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성경에서 석류는 하나님의 풍요한 열매를 상징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통치로 우리 인생이 풍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타락하는 자리에서도 성경은 보아스와 야긴 두 기둥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어떻게 통치해 가실지를 계속 가르치며 포기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요? 우리 안에 있는 솔로몬의 마음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악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은혜를 구하는 자들의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해 오십니다. 성전 앞의 이 기둥들을 바라볼 때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시기를 간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죄악에서 어떻게 구원하시나요?

2. 생명과 질서로 구원하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죄악에서 어떻게 구원하시나요? 바다를 통해 생명과 질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지름이 4.5m, 높이가 2.2m로 엄청 큰 놋그릇에 물을 채워놓고 아래는 열 두 마리 황소가 받치고 있습니다. 물론 정결 예식을 할 때 물을 사용한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특히 상징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다의 첫 번째 의미는 정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맑은 물로 깨끗하게 씻어주시는데 그 본질은 겉모습이 아닙니다.


겔 36: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하나님이 보실 때 제일 더러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 다 주셨는데 하나님 말고 다른 것 의존하는 우상숭배. 우리 안에도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자꾸 잊어버리고 돈과 지위를 우러러보는 것이 우상숭배고 하나님은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깨끗이 해 주시나요?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두 번째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것을 물로 비유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나오는 이 물이 어떤 생명의 작용을 하는지를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겔 47: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성전에는 바다를 통해 이 물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라고 그림처럼 세워놓은 것입니다. 이 물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에스겔서 47장 8,9절입니다.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죽었던 것을 살리는 생명수는 성령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에 성령이 오셔서 죽었던 것을 살리실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다의 제일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커다란 놋그릇을 12마리 황소가 받치고 있었는데 성경에서 황소는 강력한 힘을 상징합니다. 바다는 성경에서 늘 혼돈과 무질서와 불안의 상징입니다. 지금은 비, 바람, 폭풍우를 예측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미신을 엄청나게 많이 섬깁니다. 성경도 바다를 무질서와 혼돈과 악의 상징으로 묘사합니다. 시편 74편 13절입니다.


시 74: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미국에는 전쟁이나 좀비를 대비해서 식료품 몇 달치 사놓고 집에다 땅굴 파서 벙커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안할수록 그 평안을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전쟁 같은 큰 일이 아니어도 우리의 일상은 늘 예측 불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용들의 머리를 다 깨뜨리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구역을 나누십니다. 욥기입니다.


욥 38:8, 10-11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바닷가의 물이 꼭 거기까지만 오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물론 달의 중력에 의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혼돈을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사실 우리를 불안케 하고 두렵게 하는 일들 너무 많습니다. 언제 무슨 병에 걸릴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 부정적 감정들이 몰려오고 옛 사람의 힘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무질서를 통치하여 온전하게 보호하는 하나님임을 믿어라”라고 성전에 바다를 놓게 하신 것입니다. 성전에 있는 그림들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혼돈 가운데 있는 우리를 통치하실 것임을 믿고, 우리가 솔로몬처럼 헤매다가도 결국에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 되기를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전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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