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강해 09 6.10-14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 3
2025년 9월 21일 주일예배 설교문/ 장우현 목사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감동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슈퍼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질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영화는 패턴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주인공은 필요한 때에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그런 슈퍼맨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악당들이 높은 계곡 철길을 끊어 놨습니다. 기차는 그것도 모르고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슈퍼맨은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계곡 밑에서 끊어진 철길을 주워서 한쪽을 먼저 맞추고 눈에서 빨간 레이저를 쏴서 용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를 용접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슈퍼맨은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에 그 철길을 밑에서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기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편안하게 지나갔습니다. 이런 영화에서 단골로 나오는 소재이죠.
그런데 이 구원에는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곡 위 아래를 날아다니고, 순간 용접 가능한 레이져가 눈에서 나와야하고, 무거운 철길과 기차까지 감당할 힘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차가 떨어지기 전에 이 위기 상황을 알아차려서 가장 적절한 때에 구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끔 좀 늦어서 열차 몇 칸이 떨어져도 되지만, 사람들이 모두 죽으면 안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고통스러운 상태로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아무도 그 영화 안볼껍니다. 왜냐하면 그런 영화가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악당에 대한 심판과 선하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구원을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희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 그 기차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섭리해 주시질 않으십니다. 아마 그래서 하나님이 슈퍼맨이나 아이언맨만큼 인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가장 좋은 때에 하나님의 가장 좋은 방식으로 섭리하시는 이유가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특히 에스더 6장은 하나님의 섭리가 잘 드러나는데요, 오늘 본문인 6장 후반부에는 하나님의 때와 방식에 대한 특징이 잘 담겨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의 때에 역전을 이루십니다.(10-11)
하만은 에스더의 첫번째 잔치가 끝나고 정말 기분 좋게 나왔습니다. 왕이 자신을 높여줄 뿐 아니라 왕이 나라의 반이라도 줄듯이 총애하는 왕비가 두 번 연속으로 잔치를 베풀어 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르드개가 또 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건물 8층 높이의 처형대를 바로 세우고 왕이 잠이 들 시간인데도 처형을 허락 받기 위해 바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8층 높이의 롤러 코스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감정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그럴 때마다, 그 영향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은요, 죽음과 생명이 역전되는 롤러 코스터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고향 땅의 모든 것을 잃으며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 올 때도 곧 죽을 것 같았는데, 힘들게 적응해서 숨 좀 돌리고 살게 되었나 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안했다고 하루 아침에 전멸될 위기에 처하게 됐죠. 그러다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희생을 통해 왕이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하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 때문에 하만이 기분도 좋아지면서 숨통이 좀 트이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갑자기 처형대를 세우더니 왕이 잠이라도 자고 있었으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당장 모르드개를 죽일 기세가 되면서, 이제 누가 어떻게 해볼 시간 조차 없는 위기에 다시 빠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6장에서 그 밤에 하나님이 우연을 통해 섭리해 주시면서 본격적인 역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은 나무에 매달아 모르드개를 수치스럽게 죽여서,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온 백성에게 자신의 존귀함을 과시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성을 돌아다니면서까지 온 백성들 앞에서 모르드개를 존귀하게 높이면서, 자신의 존귀함이 꺾여 수치를 당하는 역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요동치는 하만이든, 그 요동에 영향을 받는 백성들이든, 오르락 내리락, 죽느냐 사느냐 하는 모습은 저희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요동치는 삶도 경험하고, 거기서 역전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신데 꼭 이렇게 간당간당하게 역전승을 하셔야 할까요? 마귀 정도는 뭘 시작도 하기 전에 한 마디 말씀만으로 짜부라트리실 수 있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아무리 역전승을 좋아한다고 하실지라도, 마치 9회말 2아웃에 끝내기 역전을 하듯이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다 가서 힘들게 역전을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니, 축구나 야구 같은 운동경기는 역전승이 재미 있고, 여운도 오래 남습니다. 아무리 내가 응원하는 팀이라도 너무 잘해서 쉽게 계속 이기면요, 재미 없어서 다른 팀 경기 보면서 응원해줍니다. 얼마 전에 어떤 청년이 응원하는 야구 팀이 6대 0으로 지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6대 6이 됐는데도 이긴 것처럼 기뻤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요, 이게 누군가의 생사가 달린 전쟁이라면, 막 낙동강 끝자락까지 밀려서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고, 또 점령당한 곳에서 민간인들이 참사를 겪는다면. 아무리 거기서 인천상륙작전으로 통쾌한 역전을 해도, 그 상륙 과정에서도 많은 희생이 있구요.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 역전이 저희의 삶에서 일어난다고 하면요, 모든 과정이 지나서 내 믿음이 성장하고, '역전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지라도, 아.. 그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고통스러웠던 현장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슈퍼맨 보다도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신데도, 이렇게 거의 죽을 것 같은 때가 되서야 개입하셔서, 꼭 역전을 이루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인생 역전을 즐기시는 분이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저희의 죄가 그걸 거부하고 하만과 같은 마귀의 뜻과 세상의 삶의 방식을 움켜쥐려하니까, 세상이 요동칠 때마다 함께 요동치고, 세상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걸 붙들고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오르락 내리락 하다 결국 추락했는데요,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저희가 뭐라고,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귀한 독생자를 보내주셨는데 십자가에 못 박으며 이 롤러 코스터가 땅을 뚫고 지하에까지 내려갑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땅 속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하늘 보좌로 올리시고, 그럴 자격 없는 저희 역시도 영적 죽음의 삶에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역전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결국 그 세상을 붙들고 요동치는 하나님과 관계 없는 영적 죽음의 삶을 사는 저희 때문에 하나님은 역전을 이루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나 그 역전이 이루어지는 때 역시도 저희가 그 죄와 욕망을 따라 땅 속 끝까지 다 파고 들어가서, 혼자서는 헤어나올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며, 움켜쥐고 있던 내가 옳다고 여기는 내 뜻과 고집과 우상을 내려 놓는 때가 바로 하나님의 역전의 때입니다. 저희가 그런 때가 되어야만 하나님만을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만 붙들고 기도하는데 왜 안도와주세요?' 그런데요, 사실 그게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존하는게 아니라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내려놓을 때를 기다리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에스더서의 시간대는요, 이미 1차 예루살렘 귀환이 있은 후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망할 것 같지 않던 바벨론이 망해서 페르시아가 세워지고, 또 이 페르시아의 이방인에 대한 억압 정책이 유화 정책으로 바뀌면서 모든 유다인들의 귀환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에서 눌러 사는게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남아있다가 이 일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 이 하나님의 역전을 경험을 하고, 믿음이 심겨졌던 사람들이 2차. 3차 귀환 때 돌아와서, 이 역전의 은혜를 기억하는 부림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1차 때 돌아왔던 사람들보다 간증이 더 생긴거긴 하죠.
결국 저희가 얼마나 죄인 중의 괴수인지를 인정하게 될수록, 그래서 내가 붙들던 세상의 것들과 내가 옳다고 여기던 것들을 내려놓게 될수록 하나님이 왜 하나님의 때에 역전을 이루시는지에 대한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아, 하나님의 문제도 아니고 상대방의 문제도 아니고 내가 문제였구나.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역전에 대한 중요한 오해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전을 하시면 내가 처했던 어려운 상황이 해결되서 상황이 나아진다는 오해입니다. 물론 성경에 그런 상황들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삶의 상황을 더 좋게 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그런 역전의 그림들은 그저 어려웠던 삶이 나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의 역전이란 마귀의 뜻과 세상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존귀하게 여기며 움켜쥐고 살던 백성들에게, 그런 삶이 오히려 수치스러운 삶이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삶이 존귀한 삶이라는 진리를 드러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황이 내가 원하는대로 바뀌지 않더라도, 영광과 존귀와 예배와 믿음의 대상이 바뀌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의 역전이고 그것이 바로 죄로부터 구원입니다.
저도 바로 그 경험 덕분에 이렇게 목회자의 삶을 감당할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역기능이라는게 바로 건강한 가정에서 역전된,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이라는 의미이죠. 제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박중독에 빠지셨다가, 단도박 모임을 통해 제가 고등학생쯤 되서야 끊셨습니다. 제가 지금 애들을 키워보니까, 그 시기가 정말 중요한 시기인데, 두 분 모두 그 단도박 모임을 정기적으로 다니시느라 바쁘셨고, 도박빚을 갚아야 해서 두 분이 회사택시 한 대로 낮과 밤을 교대로 일하시느라 집을 비우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일하셔도 돈이 부족해서 항상 반지하 빌라를 여러번 이사 다녔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어머니는 아무리 빚이 많아도 아이들 기본적인 교육은 시켜야 한다고 카드빚을 내서 교육을 시켜주셨고, 아버지는 빨리 회복하려면 그런 추가적인 학원 교육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두 분이 돈 문제로 많이 싸우셨습니다.제가 기억에 남는 하루가 있는데요,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부모님이 집에서 싸우고 나가셨는데 집안에 온갖 물건들이 다 쏟아지고 부서지고, 쌀포대가 터져서 쌀알이 바닥에 다 쏟아졌는데, 울거나 무서워할 겨를 없이 동생이랑 둘이서 그걸 다 주워 담고 청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그런게 역기능 가정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생 때 연변과기대에 교환학생을 가 있을 때 두 분의 관계는 더 심하게 나빠지셔서 아이들 대학 졸업만 하면 이혼하신다고 이제는 끝이라고 하고 계셨는데, 제가 그 때 하나님을 믿고, 몇 개월 차이로 부모님도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서로를 용서하면서 가족 관계가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전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최근까지 30년 동안 그 때 빚을 갚으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 계신거죠. 게다가 부모님의 관계가 어느정도 회복이 되나 싶었는데 제가 결혼하면서 부부관계에서 부침을 겪고, 제 동생도 마찬가지이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나몰라라 너희가 알아서 해라 하실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제가 다녔던 총신 대학원은 1학년 때 기숙사 생활이 의무였습니다. 그 때 이미 첫째를 낳은 상태였고, 아내는 장모님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애기 키우면서 출근하는게 힘들어지게 된거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부관계에 긴장이 높아지면서 싸움이 일어나기 쉬워지잖아요. 그러니까 제 어머니가 그 연세에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셔서 교사도 해주시고, 애들 급식도 만들어 주시면서 주인처럼 관리해주셨어요. 그리고 제 동생, 카페를 차리면 빵 만들 여러가지 가루들 다 소분해 주시고, 쌀국수집을 차리면 야채 손질에 국수 다 말아주시고, 주말에 아버지가 애들 봐주시고, 택시로 어머니랑 동생 가게로 출퇴근 시켜주시고..
인생이 조금 풀리나 싶으면 또 다른 일들이 생기고, 오르락 내리락, 엎치락 뒤치락. 그런데 어머니가 체력이 저랑 똑같아서 엄청 약하시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버티고 계시냐고 물으면 항상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살 수 있다고 답해주십니다.그리고 어머니가 저희를 위해서만도 그렇게 바쁘신데, 시댁, 친정 가족들 전도 위해서 어려움 있을 때마다 섬기러 가시고, 주변에 불신자 친구 뿐 아니라 어머니보다 훨씬 먼저 믿고 교회 다니던 친구들 전화 상담해주고, 같이 성경 통독하시고.. 거의 선교사님 부모님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믿었는데요.
여러분, 제가 이렇게 목회를 하고, 제 가정에서 안정을 지키는데 있어서 부모님의 그 모습이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아마 부모님 두 분이 그 대 믿지 못하시고, 아직까지도 그 관계가 불안정했다면 저 역시도 거기에 신경쓰고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제 부부관계와 가정, 그리고 목회에까지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목회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때 저희 부모님이 몇 달 차이로 하나님을 믿고, 서로가 회복되고, 그 인생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예수님 덕분에 내가 산다'라는 고백이 있는 선교자적 삶이 바로 저를 목회자로 세워주시는 기도 그 자체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역전입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됐던 때에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고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 그래서 내 인생의 상황이 그닥 나아진 것이 없고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하고, 내 노후도 불안하지만 믿음으로 그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모습. 내 삶의 목적과, 예배의 대상, 내 정체성과 삶의 모습이 뒤집어지는 그것. 저는 부모님의 그 고된 삶을 보면서 '하나님 저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제 부모님 이제 좀 편하게 해주시지 않으시는거에요?'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서 역전을 이루시며 부모님 뿐 아니라 제 믿음도 성장시켜주시고 공고히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할 뿐입니다. 그덕분에 저는 역기능 가정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역전을 경험한 자녀가 됐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그 중학생 아이가 그런 어려움 경험하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되실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역전의 경험 덕분에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살아있는 진리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요, 지금 저는 제 부모님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요, 여기 계신 자녀들을 다 키워내신 부모님들과 이제 자녀를 키워내고 계신 모든 부모님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고생하셨고, 지금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역전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은요, 나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고생좀 고만하고 내가 원하는 가장 빠른 때에, 편하게 쉬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거기에 요동하지 않고, 내가 영광스럽게 여기던 세상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내 인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려드리는 삶을 살고 계신다면요,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의 가장 적절한 때에 역전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의 지나간 인생 가운데 그런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해서 그 은혜를 놓치셨던 때가 있다면 그 때를 회상하시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때를 예언하십니다.(12-14)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예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을 맞닥뜨린 하만은 깊은 고민을 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말하자 한 지혜자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3절입니다.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역전의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도래했다면 이건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다시 역전할 수 없다, 이제 오히려 너와 네 집안이 반드시 멸망당할 것이라고,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언제 결혼을 하게 될지, 어떤 사람과 하게 될지, 앞으로 어떤 직장에서 일해야 급변하는 시대에서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자녀가 내가 원하는 학교나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언제 어디서 전쟁이 날지에 대한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몇 번에 걸쳐 살펴본 6장 말씀처럼, 구원과 심판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반드시, 속히 올 것이라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방금 읽은 13절이요, 속히, 빨리라는 말씀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앞뒤절인 12절과 14절입니다.
[12]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하만의 모습들 가운데 '급히', '빨리'라는 단어가 나오며 그렇게 왕과 나란히 앉아서 여유롭게 술 마시며 잔치 벌이던 하만의 인생이 급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때가 속히 임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장 1절에도 이렇게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계시록 1장 1절은 계시록 전체 내용을 요약해서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으실 것 같아 보여도 속히 오셔서 구원과 심판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때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예언도요, 하만에 대한 심판만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확장해서 보면 하만의 심판은 곧 백성들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언은 동전의 양면처럼 구원과 심판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구요, 그래서 성경이라는 예언의 말씀 전체를 요약해도 구원과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이 백성들에게 먼저 보내셔서 너네 그러다 반드시 심판 당한다고 오늘 본문의 지혜자와 같이 예언을 해주셨었습니다. 사실 그 예언도 구원을 위한 심판 선포였죠. 마찬가지로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는 앗수르와 같은 불신자들에게까지도 구원을 위한 심판을 선포 하신 것입니다. 요나는 그런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거길 가기도 싫었던거에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앗수르가 심판 예언을 듣고 회개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이란 단순히 심판 받아 끝장 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라 온 열방의 귀 있는 자들에게 회개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만에게 선포되는 이 예언도 성경 전체 맥락에서 보면 단순한 심판 선포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이 예언이 에스더가 하만에게 베푼 두 번의 잔치 중심에 선포되면서 이 잔치가 단순히 하만을 속이고 교만하게 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하만이 대표하고 있는 세상을 붙들고 요동치며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베푸는 잔치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열방에 회개의 기회를 담은 이 예언을 선포하는 삶이 잔치를 베푸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만의 심판을 앞둔 마지막 잔치가 시작되는 이 시점이 바로 마지막 회개의 때, 바로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말세를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에 계시록 1장 1절과 같이 속히, 빨리라는 단어들을 통해서 구원과 심판이 속히 올 것임을 예언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렇게나 잘 알려주는데도, 한국 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때와 예언에 대한 오해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저와 신대원 동기 목사 중에 정말 똑똑하고 성실하고 믿음도 좋고 성품도 좋고, 키도 크고, 잘생기고 옷빨도 잘 받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랑 달라요. 그냥 엘리트이고 담임목사감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와 신대원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는데요, 학기가 다 마치지 않았는데 갑자기 처가 가족들과 미국에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교수님께 부탁까지 해서 기말고사 시험과 과제도 미리 보고 제출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큰 교회에서 주말에 사역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목사가 주일에 사역을 빠지면서까지 미국에 가면서 저에게 너무 급하고 아직 말하기 그런 상황이라고 하면서 주일 오후에 있는 중등부 설교를 부탁한 것입니다. 다행히 그 때는 제가 오전에 초등부를 하고 나면 오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어서 목사님께 부탁을 드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특별한 일이 없었더라도 주일 사역하는 날에 허락 받고 가기가 마음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급히 도움을 청하는거라 가서 설교를 해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몇 년이 지나고 난 후에 그 때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줬습니다.
그 때 당시에 어떤 여자 전도사가 그 해 12월에 한국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시아나 미국으로 도피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게 크게 이슈가 되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나왔어요. 거기 인터뷰를 보면요, 자신들이 그렇게 피신해 있는게 노아의 방주를 타고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동기 목사가 그걸 믿은건 아니구요, 권사님이셨던 장모님이 그 말에 휘둘리신거에요. 그래서 그 동기 목사가 열심히 설득을 했는데도 되지가 않았던거에요. 그렇다고 미국에 따라가지 않으면 가족들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그 때 그렇게 급하게 다녀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혹할 수 밖에 없는게, 그 여자 전도사라는 사람이, 평소에 기도도 뜨겁게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말도 잘해서 설교도 진정성 있고, 성실하고 바른 이미지였거든요. 그러니까 성도님들 뿐 아니라 여러 목회자들도 혹해서 사회에 이슈가 될만큼 많이들 피신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10년 정도 밖에 안된 일이니까 21세기의 이 최첨단의 한국에서 여전히 그런 일들이 생기는거에요.
이런 오해가 여전히 생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때와 예언을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보지 않거나,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오해해서 보는거죠. 그래서 일상에 일어나는 정치, 경제, 국제관계와 같은 상황과 변화에만 관심을 두고, 그걸 자기 생각대로 추측하면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처럼 말을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는 것입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 너무 많잖아요.
저도 정치, 경제, 국제 관계에 대해 관심이 정말 많고 하루종일 성경이랑 뉴스만 봅니다. 진보 보수 골고루 다 봅니다. 저는 그 당사자의 말을 직접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 상담을 하든, 논쟁이 되는 주제를 공부하든. 그래서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원전과 신학책도 종종 읽습니다. 얼마 전에는 관상이랑 손금 책을 주문해서 왔는데 그 책 표지만 보고도 애들이랑 아내가 깜짝 놀라더라구요. 다음 설교에 점술에 대해 나오는데 관상이랑 손금 본지 오래되서 까먹어서 그 느낌을 좀 살리려고 샀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린 결론은요, 정치, 경제, 국제관계를 잘 파악하고 예측하는 전문가는 있을 수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그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지 당장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조심스럽게 되돌아 보며 하나님이 일하셨구나, 함께 해주셨구나 하는 손길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독일의 기독교가 히틀러와 나치당을 암묵적으로나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고 합니다. 무너진 국격을 일으키고, 경제를 살리고, 기독교를 무시하는 유대인들과, 또 독일을 힘들게 하는 유럽 국가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히틀러와 나치에 저항하는 기독교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고 합니다. 독일 신학자들 진짜 똑똑하거든요. 그런데도 동시대에는 그걸 판단하기가 어려웠던 거에요. 그 똑똑한 사람들도 그런데, 저희가 뭘 안다고 확신에 차서 하나님이 하고 계신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어요. 교인들이 싸우고 떠날까봐 얘기를 못하는게 아닙니다. 겸손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병히 일상 생활들 속의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정세의 우연한 상황들을 통해 섭리하십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섭리인지 아닌지 바르게 분간할 수 없고, 그 목적과 방법과 때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저희에게 이미 주어진 이 말씀으로 저희 삶을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비추어 볼 때 저희는 저희의 삶 가운데 우연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때와 예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보셨듯이 하나님의 때에 대한 예언은 몇 날 몇 시가 아니라 반드시, 속히 두 가지 뿐이구요, 이 예언의 내용도 3차 세계대전이 언제 어떻게 어떤 나라들 때문에 일어날 것인가 같은게 아니라 구원과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요즘 온 세상이 싱숭생숭합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이후로 잠시 있었던 평화의 시기가 흔들리고 있고, 3차 세계 대전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특히 이것이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라고 하는 저희와 가까운 곳에서 불안이 싹트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하는 무리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것입니다. 거기에 휘둘리면 나와 이웃의 삶이 요동을 칩니다. 성도 여러분들께서는 '반드시, 속히' 외에는 다른 하나님의 때에 대한 예언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런 때일수록 이 예언의 말씀을 나에게 비춰 회개와 구원을 소망하시길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견고한 하늘의 것을 붙들지 못하고, 이렇게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을 붙들고 요동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예언을 선포하며 잔치를 베푸시며 선교자적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