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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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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강해 15 9.1-32 구원 계획의 목적

2026년 3월 15일 주일예배 설교문/ 장우현 목사

제목: 구원 계획의 목적

본문: 에 9:1-32

말씀봉독: 에 9:15-19


예전에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영화 '기생충'에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입니다. 어떤 한 가족이 부잣집에 기생해서 편하게 돈을 벌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계획을 짜던 중에 아빠가 아들과 딸에게 했던 말입니다.


계획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습니다. 사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계획을 짠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죠. 에스더서에도 저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는데요, 그게 바로 오늘 말씀인 9장과 그 짝꿍인 2장입니다.


1장에서 왕은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다스릴 수 있었던 자신의 위대함과 부유함을 자랑했고, 아내도 자랑의 도구로 사용하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여성들을 남성 밑에 두게 하는 법까지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을 도구화하고, 말 안들으면 뭉개버리는 세상의 모습이죠.


2장에서는 그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구원 계획이 시작됩니다. 왕은 새로운 왕비를 뽑기 위해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전국에서 모았고, 에스더도 끌려갔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느니 죽는게 더 나은 일이었지만, 에스더는 이방인 왕과 결혼하게 됩니다.


게다가 왕은 그 참에 더 많은 여자들을 뽑았고, 그래서 에스더는 왕 앞에 오랫동안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건 미인대회에 1등해서 왕비가 됐다는 인생 역전 스토리가 아니라, 이런 세상 속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비밀스러운 구원 계획일까요? 아무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던 때부터 준비하셨고,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희생하시는 방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저희를 구원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그렇게 준비하신 것처럼요.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계획이 담긴 2장의 짝꿍이 바로 오늘의 9장입니다. 그래서 이 9장에는 그 구원 계획이 완성되면서 그 목적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그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왜 그런 계획을 세우시면서까지 저희를 구원 하셨는가입니다. 과연 그 구원 계획의 목적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1.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1-16)


9장이 시작되면서 하만이 하나님 백성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던 첫 번째 조서가 실행되는 날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그 조서를 따라 하나님 백성들을 죽이려는 하만의 민족을 대적해서 생명을 지키라는 두 번째 조서도 효력이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 조서가 같은 파워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 조서로 백성들을 위협하던 대장인 하만은 죽었고, 두 번째 조서로 백성들을 살리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왕 다음으로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승리한 전쟁이고 상대가 안되는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과는 이렇게 납니다.


[5]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6]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10]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하만의 아들들까지 다 죽이는 확실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쉽게 얻은 승리는 아닙니다. 하만이 죽었다고 해도 제국의 2인자였고, 아들이 10명이나 있었습니다. 하만으로 인해 높은 자리에 올랐던 고관대신들, 막대한 부를 쌓은 지주들, 군대의 요직에 있던 친위대들이 있었습니다.


승리는 확정되어 있었지만, 처절한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저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죄와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의 현실은 정말 쉽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도 에스더는 왕에게 또 이런 요청을 합니다. 13절입니다.


[13]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하루로는 모자라니까 하루 더 주시면 완전히 다 죽이겠다는거에요. 게다가 이미 죽은 하만의 열 아들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달라고 합니다. 아마 왕이 보기에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이렇게 무서운 여자였단 말인가?' 할 수 있고, 모르드개가 보기에도, '내가 키운 딸이 이런... 자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서운 애였나..‘


사실 성경의 이런 모습들 때문에 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사랑이 없는 무자비한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도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전부 죽이라고 하셨죠.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냐는거에요.


그래서 아얘 구약성경과 구약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단들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거봐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멸망시키기를 원하신다라고 하면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이슬람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94년에는 유대인 극우파 의사였던 골드스타인이라는 사람이 팔레스타인 무슬림을 현대판 아말렉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총을 쏴서 29명이 죽고 125명이 다쳤습니다. 무자비하다고 구약성경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똑같이 따르려는 것 모두 성경을 해석하는데 큰 문제가 있는 모습들입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오해가 아브라함처럼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땅도 많아지고, 재산도 많아진 것은 믿음이 성장할수록 영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영적 전쟁을 통해 죄를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그 전쟁이 하나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배우고, 총과 칼이 아닌, 말씀과, 성령과 기도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과 같이 완전하게 진멸하는 모습을 통해서는 저희의 죄가 그렇게 깨끗하게 제거되어야 거룩한 성도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제 저희가 죽여야 할 대상이 이나 저희를 놀리고 위협하고 괴롭히는 어떤 사람이나 나라가 아니라 저희 안에 있는 죄라는거에요. 그런데요, 오늘 말씀이 이런 죄와의 영적 전쟁을 보여준다는 것이 오늘 말씀에도 그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10절, 15절, 16절입니다.


[10b]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15b]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16b]...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유다인들이 하만 족속을 진멸할 때 그들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쪽이 패배한 쪽의 전리품과 노예를 가져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게다가 왕이 조서를 내려줄 때 재산을 빼앗아도 된다고 콕 찝어서 허락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재산을 빼앗지 않았다는 것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거에요. 이것은요, 과거에 사울 왕이 이 하만의 조상들인 아말렉 족속과 전쟁했을 때 실패했던 것을 이제 성공했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아말렉 족속과 그 재산, 동물들까지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그 왕도 살려주고, 그들의 재산을 챙기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재물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교만. 그 왕노릇 하고자 하는 죄를 드러내준 사건이었습니다. 말씀을 함부로 여기는 왕은 백성들을 말씀으로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건 이후로 왕 자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그런데요 신기하게도, 모르드개가 바로 이 사울의 후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진정한 왕의 모습을 가진 사울의 후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백성들을 다스려서 죄가 깨끗하게 제거된 거룩한 자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재산에는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님이 함께하시며 저희의 죄를 다스려주시고, 깨끗하게 제거해 주셔서 저희가 거룩한 자로 만들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그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 비밀스러운 구원 계획을 가지고 저희를 창조하시고,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을 해 주시고, 이미 구원 받았는데 지금 당장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 매일매일을 허락하셨습니다. 저희가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가는 구원의 목적, 그 완성을 위해서요.


여러분들은 그 구원의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기쁘게 참여하고 계신가요? 거룩하게 되어간다는 것은 어떤 고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서 1장에서 보여주었던 자기 자랑과, 이웃을 짓눌러버리는 세상으로부터 깨끗하게 구별된 거룩한 자로 성장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걸 비교해 주려고 에스더 1장도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저희 안의 죄를 진멸하시는 영적 전쟁에 함께 기쁘게 참여함으로,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자들이 되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원 계획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2.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17-32)


이제 하만도 죽고, 백성들을 위협하던 남은 세력도 모두 제거되고, 첫 번째 조서가 효력을 미치는 날도 모두 지나갔습니다. 온 가족과 민족이 죽다 살아났는데,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백성들은 그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이웃과 그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잔치를 벌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법으로 정해진 날이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감사과 섬김이라는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이 날을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만들어서 지켜 행하게 합니다. 21절입니다.


[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아 그런데, 사람들이 다 기쁨과 감사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잘 하고 있는데, 왜 그걸 또 율법이라는 틀을 만들어서 억지로 시킬까요? 그렇게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다들 그 기쁨과 감사함으로 알아서 잘 할텐데요. 다 죽을뻔 했다가 살아났는데, 설마 그 은혜를 잊을까요?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죄인들은 받은 은혜는 쉽게 잊고, 불만족한 것들은 계속 불평하는 존재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셨는데도, 먹지 말라고 했던 그 선악과 하나 때문에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죄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림절을 만들어서 지키게 한 것은 억지로 어떤 틀에 넣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생생한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성도들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 은혜와 기쁨을 영원히 풍성하게 누리라구요.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이 에스더서가 기록된 목적이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생겼는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남겨서, 부림절마다 읽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림절의 기원이 기록된 9장은 에스더서가 기록된 목적이 기록된 장입니다.


그런데 이 9장의 짝꿍인 2장은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를 기억하는 일은요, 단순히 페르시아에서 구원 받았던 날을 기억하는게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실패했던 자리로부터 구원하는, 성경 전체의 구원의 목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저희를 구원해주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저희를 더러운 세상에서 건져내서 거룩한 성도로 살게 하시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신 구원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것. 그게 구원의 목적이고, 저희가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아담과 하와처럼 저희 모든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들을 무궁무진하게 허락하셨다는 것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 그걸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고, 불만이 쌓이다가, 분노가 쌓이다가, 마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주일에 모여서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 은혜가 더욱더 사모되는 분들은 매일매일 그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저희가 얼마나 은혜를 쉽게 잊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경험한적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여름에 파주에 있는 설마리 계곡에 자주 갑니다. 가깝기도 하고, 물도 깨끗하고, 화장실도 가깝고 깨끗하고, 주차도 잘되고, 그게 다 나라 소유라서 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제 동생이 몇 년 전에 소개시켜줘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찬양팀 현섭 형제도 같이 다녀왔어요. 애들 놀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설마리 계곡이라는 곳인데요, 여러분들 혹시 625 전쟁 때 설마리 전투라고 아시나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 끝까지 올라갔다가 중국군이 밀려와서 많은 피해를 보며 후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1.4 후퇴죠.


그 때 영군에서 온 글로스터 대대원들 700명 정도가 설마리 고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군의 압도적인 병력에 완전히 고립이 됐어요. 총알, 식량 다 바닥났는데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거에요. 결국 700명 대부분이 전멸을 했습니다.


그런데요, 이들의 희생 덕분에 이 파주에서 중국군의 진격 속도가 꺾여버렸고, 유엔군이 서울 북쪽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해서요, 서울이 다시 함락되는 걸 막아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전투를 이렇게 잘 아느냐구요?


사실 그 계곡의 그 좋은 화장실, 주차장, 휴식공간이 영군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으로 만들어진거에요. 정말 잘 만들어 놨습니다. 이들이 쓰던 베레모 동상과 영원히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비석. 전사자들의 이름과 이 전투의 의미. 그리고 글로스터 대대원들의 동상까지.


저도 거기 놀러 갔다가 이런 전투가 있었고, 이런 희생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걸 기억할 수 있었어요. 정말 잘 해놓은거죠. 억지로 공부하고 기억하는게 아니라 가족들과 놀러 왔다가,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이 땅과 자유가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기억하게 했으니까요.


시간이 갈 수록, 세대가 지나갈 수록 625 전쟁에 참여한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고의 은혜는 점점 잊혀갑니다. 저희가 어떤 희생과 피 위에 서 있는지 잊어갑니다. 625날이 되든, 국군의 날이 되든, 그 날의 국가 행사는 티비에서 공허하게 울려퍼질 뿐이고, 저희는 그냥 노는 날이에요. 아, 올해는 빨간 날이 정말 없네 하면서요.


그런데요, 예수님에 대한 은혜를 기억하는 일에 있어서도 저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일은 그냥 가야 되는 날이니까 가고, 안가면 혼나니까 가고, 와서도 끝나고 어디 놀러갈까, 오늘은 무슨 음식이 나올까. 주일을 몇 번 빠지고 여행 갈 수 있을까.


저희가 누구의 희생과 피 위에 지금 서 있는 것인지, 그 감사와 은혜가 점점 잊혀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처럼 저희가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바로 이 은혜를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청소년부가 새로 생기고, 제가 그 부서를 맡게 되면서,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1순위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매주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은 능력으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실 제가 지난 10여년간 유초등부를 해오면서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 말씀들은 다 까먹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 내가 지난 십년 동안 말씀을 들었는데 맨날 끝에는 십자가 그림, 예수님 그림으로 끝났어. 그것만 기억해도 되는거에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이유, 구원하신 목적이, 날 막 부려먹으시고, 내가 가진걸 다 내놓게 하고, 나만 참고 나만 희생하게 하시려는게 아니구나. 그저 은혜를 기억하며 살기를 바라시는거구나. 내가 느끼는 그 은혜의 크기만큼만 나누고, 사랑하고 섬기면 되는구나를 기억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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