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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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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짝단어 02 룻 2.1-23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성도

2026년 7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지 안하시는지, 왜 존재하시는지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포하면서 그런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시는가에 대한 삼위일체는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런데 저희는 여기서도 어떻게 한 분이 세분이시고, 세 분이 한 분이 되실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성경은 그런 의문을 갖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삼위 하나님 한 분 한 분이 거룩하셔서 서로 참된 사랑을 하실 수 있고, 그 사랑으로 선한 결과들을 내시며, 그 선한 결과들의 최종 목적이 연합, 그러니까 하나됨이기 때문에 삼위 하나님으로 연합해 계신다는 사실을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결국 저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데 있어서 중요한 주제가 '거룩'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이 거룩의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구별되다입니다. 이 빨간색 선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딱 나뉘듯이 무엇인가로부터 구별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구별된 것일까요? 죄입니다. 죄가 거룩의 반대 단어입니다. 이 죄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과녁을 벗어나다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과녁을 벗어났다는 것일까요? 저희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벗어나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살아가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자기 중심성. 이기적인 태도. 그래서 거룩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구별된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죄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참된 사랑할 수 있게 되는거에요. 그리고 죄인은 이웃 뿐 아니라 하나님까지도 자기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어떤 욕망을 이루는 도구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의 반댓말을 미움이나 무관심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사랑의 욕구의 반댓말은 자기 중심적 욕망입니다.그래서 사랑하려는 것도 욕구에요. 하나님 중심적이냐, 자기 중심적이냐는 방향이 다른 욕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욕구로 인해서 관계 속에서 선한 결과들이 나오고, 또 그 욕망으로 인해 악한 결과들이 나옵니다. 사실 미움이나 무관심은 사랑의 반댓말이 아니라 바로 욕망의 결과인 악한 모습이고, 선의 반댓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 속에서 선한 결과들이 계속 쌓이면요 아, 저 사람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선한 결과들이 나오는구나 하면서 함께하고 싶으니까 연합할 수 있구요, 악한 결과들이 쌓이고 쌓이면, 아 저 사람은 나와 공동체를 자기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구나라고 하면서 결국 분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 무엇으로부터 구별되었는지, 그리고 그 거룩과 죄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런데요, 이 거룩과 죄, 사랑과 욕망은 선악과 연합과 분열과 어떤 기준으로 나뉩니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의 영역이냐,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의 모습이냐입니다. 그래서 거룩, 죄, 사랑, 욕망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기준이 모호합니다. 제가 목사이고 이렇게 거룩한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전한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보다 거룩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일지라도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있으면서 다 성도들을 위한거야, 우리 가족과 교회를 위한거야 라고 하면서 가족과 공동체와 국가를 고통과 분열 속에 빠뜨리는 경우가 역사 내내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거룩과 죄 대한 구분을, 사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요, 이 율법이 그 중요한 거룩과 함께 이렇게나 중요하게 여겨지다 보니까 저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율법을 잘 지키면 거룩해지고, 잘 지키지 않으면 죄악된다는 율법주의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요, 이 율법은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드러내고, 그 반대되는 죄악이 무엇인지 구별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드러내줄 뿐이지, 그걸 잘 지킨다고 죄인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저희가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깨끗한지 지저분한지를 구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그 지저분한걸 닦기 위해서 거울에 얼굴을 문지르지는 않잖아요. 거울을 보면서 물과 비누, 수건 같은걸로 닦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저희가 죄인이라는걸 인식하고 뭐가 거룩이고 죄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드러내는 거울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거룩해져서 사랑과 선으로 연합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는 죄가 0.000001도 없는 거룩한 존재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에 저희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저희 안에 함께 해주실 때 하나님은 저희를 거룩하다고 여겨주십니다. 저희가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100% 거룩하게 바뀐 것도 아니고, 내가 율법이나 말씀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삶의 질서가 와르르 무너져 있을지라도, 그 거룩한 영이 저희 안에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나의 거룩한 아들이고 거룩한 딸이다고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김을 받는 것에서 끝나는게 아니라요, 그 거룩한 영이 저희 안에서 삶을 인도해주시면, 그 때 성령의 열매가 조금씩 맺히기 시작하는데요, 그게 율법에 합당한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거룩해지는게 아니라요.


거룩이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게 거룩이라는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사용되는 모습을 보고도 알 수 있습니다. 거룩은 한자로 '성'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거룩은 따로 사용되기 보다는 성전, 성전 안에 성소, 지성소, 그리고 성전에서 사용되는 물건들인 성물에 사용되고, 그리고 저희도 성도라고 부릅니다. 이 건물들도 그렇고 이 물건들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그냥 그 존재만으로는 거룩한게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올리브유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드러낼 때 거 물건이 거룩하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저희도 저희가 거룩한 존재가 되서 성도라고 불리는게 아니라 여전히 죄악되지만 거룩한 영, 성령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게 해주는 거룩과 죄와 율법의 관계입니다. 그런데요 오늘 룻기 2장 말씀에 바로 이 관계가 아주 잘 나타납니다. 이 거룩과 죄와 율법에 대한 말씀이 어떻게 말씀과 저희 삶 속에 나타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인은 어떻게 거룩이 여김을 받게 되나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먼저 룻을 보겠습니다. 룻은 내가 죽더라도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베들레헴에 함께 왔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 문화 속에서 남자들이 없는 과부가 경제활동을 하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추수할 때가 되서 베들레헴에 곡식은 많았지만,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사먹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해코지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들은 다 쉬고 있는 땡볕이 내리쬐는 남의 밭에 가서, 추수하며 떨어진 이삭을 주워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요, 사실 룻이 나오미를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남편도 죽었고, 이 집안에서 함께 키워야 할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고향이 다른 나라인 이방인이고, 무엇보다도 지금보다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오미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아, 내가 잠깐 생각을 잘못했구나 하면서 돌아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요, 이 룻은 한 번 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하나님이 된 것 처럼 그 하나님을 알게 해준 나오미를 나의 참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이 있으니까,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자신이 섬기겠다고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자기 한 몸도 간수하기 힘든 과부인데두요. 이런 룻과 관련된 율법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고, 하나는 과부를 보호하고 도우라는 여러 말씀들입니다. 그런데요, 이 룻이 구원을 받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이 율법을 지키려고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들이 이 율법에 부합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네, 자기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은혜와 사랑이 가득해서 그것에 감사한 삶을 살다 보니까 그 거룩한 율법에 부합하고, 오히려 그 율법을 뛰어 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보아스는 어떨까요? 룻이 우연히 이 보아스의 밭에 와서 이삭을 줍게 됐습니다. 그런 룻을 본 보아스는 밭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이 보호받을 곳 없는 룻을 혹시라도 괴롭힐까봐 주의를 줬습니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 자신의 식솔들과 함께 배불리 먹게 했구요, 곡식 베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곡식을 뽑아버려서 주워 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아스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베푸니까 룻이 놀라서 '저는 이방 여인인데, 왜 이렇게 잘해주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보아스의 대답이 보아스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보아스는 룻이 자기 밭에 오기 전부터 룻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지금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는지, 그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베들레헴을 다스리는 유력한 자였던 보아스는 이게 꼭 룻이 아니라 누구의 일이더라도 먼저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보아스와 관련된 율법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곡식을 벨 때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그 떨어진 이삭을 주워갈 수 있게 남겨 두라는 것과, 고아와 과부가 보호받지 못할 때 변호해주라는 것과,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보아스는 구원을 얻기 위해, 죽어서 천국에 가야되니까 이 율법을 지키고 있던 것일까요, 마음의 중심에서 이웃을 사랑하다 보니까 이 율법에 부합한 것일까요? 네, 저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이 두 사람 모두 내가 구원받기 위해, 천국 가기 위해, 하나님께 칭찬 받기 위해, 그래서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운 자리에 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하면 그러니까, 아니면 누가 하라고 시키니까 하는게 아닌 것입니다. 이 룻과 보아스야말로 자기 중심적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중심에 둔 거룩한 자들이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니까 그것에 딱 부합한 거룩한 모습이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룻기 2장은요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던 이 사사 시대에 이 율법에 부합하고 있는 거룩한 사람들의 모습을 반짝반짝 비춰주는 정말 아름다운 보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거룩한 사람들이 될 수 있었을까요? 남들보다 율법을 잘 지켜서 거룩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하늘이 뚝 떨어뜨려 주신 천사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려고 없던 일을 지어서 만든 소설도 아니구요. 여기 2장의 보아스의 말에 그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보아스는 베들레헴 성읍에서 일을 마치고 자기 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보아스가 자기 밭에서 일하는 소년, 소녀들을 만나면서 인사를 하는데요, 그게 보아스의 첫 등장이자, 첫 대사였습니다.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건 그냥 성도들끼리 의례 하는 인사 치례가 아닙니다. 보아스가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다스리는 이 베들레헴의 백성들에게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거나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 원하는게 바로 욕구입니다. 싫은건 안해요. 그런데 아까 보셨듯이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가 원하는걸 하고자하는 욕구를 욕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뭐죠?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도 내가 원하는 욕구에 기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 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중심적인거에요. 지금 보아스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원하는게 뭐냐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자기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복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우리 집안이 원래 돈과 땅이 많아서, 내가 베들레헴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서 권력이 많아서 이웃을 돌볼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있다는거에요. 그런데요 보아스가 이렇게 인사 했더니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복이란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며 이런 사랑의 열매들이 맺히고, 하나님과 이웃들이 이렇게 한 공동체로 연합하는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복을 누리고 있는거에요. 그걸 이런 인삿말로 표현하고 있는거에요..


저희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이웃을 자기 욕망의 도구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죄악된 인간들입니다. 다 너와 가족과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해서 내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위선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저희 안에 오셔서 저희를 거룩하다라고 여겨주시니까,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한거에요. 그런데요, 그 거룩하신 성령님이 그 이기적인 죄가 가득한 저희와 그냥 함께하실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저희의 죄를 닦아주신 것입니다. 저희가 죄인이라는걸 알 수 있도록 율법이라는 거울을 준비해주셨는데, 그 거울을 보면서 죄를 닦을 물과, 비누까지 준비해주신거에요.


바로 이렇게 죄악된 저희를 위해 이런 구원 계획하고 준비하신 하나님과, 그 피로 저희의 죄를 닦아주신 예수님과 그 크신 은혜로 성도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죄악된 저희 안에서 오래 참으심으로 저희를 거룩의 길로 인도해주 주시는 성령님이 충만할 때 저희는 구원 받으려고, 천국 가려고, 복 받으려고 율법을 지키려는게 아니라, 감사함으로 율법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런 삼위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은혜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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