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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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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01: 위기에 처한 우상숭배자의 반응(왕하 1:1-18)

2026년 9월 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열왕기상 마지막 부분에서 아합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아합의 삶을 포괄하는 하나의 단어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영적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에 그 공허를 채우고자 탐욕을 부리며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탐욕을 채워 주시지 않기에 인간은 영혼의 공허함을 채워 줄 우상을 찾아 다닙니다.

     

아합은 탐욕이 깊었던 만큼 우상 숭배에도 깊이 빠졌습니다. 우상 숭배에 빠지면 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파괴합니다. 힘과 지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사람을 파괴합니다. 아합은 왕이었기에 남의 생명까지 빼앗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웠고 그 결과는 심판과 멸망이었습니다.

     

아합 본문은 과거의 한 나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공허한 인간이 겉으로는 아무리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적을 경험해도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으면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 줍니다. 게다 이 탐욕과 우상 숭배는 가족 안에서 전이됩니다. 열왕기상 22장 52절입니다.

     

왕상 22:52 아하시야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의 길과 그의 어머니의 ... 길로 행하며

     

아하시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길을 걸어갔다고 써있습니다. 한국에 ‘부전자전’이라는 속담이 있듯, 미국에는 “Like father, like son”, 일본에는 “개구리의 새끼는 개구리다”, 중국에는 “호랑이에게서는 강아지가 나오지 않는다” 등의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모습을 자녀가 닮는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나쁜데 아들이 착하게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부모가 탐욕으로 가득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공허를 채워 줄 세상 것을 끊임없이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왕이었기에 돈과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고, 아하시야도 “힘과 돈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했을 것입니다. 아합이 아들에게 “반드시 우상을 섬겨야 한다. 강력한 힘만이 살 길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려서부터 물질을 사랑하고 힘으로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그 자녀도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DNA 때문에 닮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들이 다 자녀들의 영혼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해놓고 집에서는 “돈이 최고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매일 말한다고 해 보십시오. 그 영향력이 결국 우상 숭배적인 본질을 자녀에게 영적으로 전이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력한 힘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우상 숭배와 복음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다녔던 교회에서도 좋은 학교, 사업 성공이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병들면 잘못을 했나 돌아보고, 대학에 떨어지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지 않은 것을 나무랐습니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모두 무엇을 열망했나요? “내가 주일 성수를 잘하고. 십일조를 잘 했으니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자녀가 잘 되고, 가족이 건강하고, 사업도 성공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열망하며 교회에 다녔습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아합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합을 나쁜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합도 하나님 백성입니다. 북이스라엘 왕이었고, 그 나라에는 선지자와 예배와 기도가 있었습니다. 아합이 열심히 섬겼던 바알의 뜻이 ‘주님’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듯 이들도 바알을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유익을 얻으려는 기본적인 우상 숭배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요? 이것은 아합처럼 사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자기 욕망을 이뤄 줄 신으로 바라보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모습을 따라가게 됩니다.

     

겉으로 아무리 “예수님을 믿어라. 교회 열심히 다녀라” 얘기해도 그 본질에서는 우상 숭배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위기를 경험합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되자마자 국가적인 위기가 닥칩니다. 1절입니다.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왜 이것이 국가적 위기일까요? 아합 시대에는 국력이 강력했습니다. 그 시대와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시대에 우상 숭배가 강력했던 이유도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흥했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부강하고 힘이 셌고 주변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며 이들을 보조했습니다.

     

모압이 매년 새끼 양 십만 마리와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이라는 엄청난 경제적인 부를 제공한 덕에 북이스라엘은 부강해지고 궁궐을 세우고 군대를 유지하며 사치스럽게 지냈는데 그 경제적 부가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도 심각한데 더 큰 위기가 닥칩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2a]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

     

서서히 나이가 들어 질병이 온 것이 아니라 왕이 된 지 2년이 된 시점에 난간에서 떨어져 다쳐 온몸에 구더기가 생기고 몸이 썩어 들어가, 죽을지 살지 모를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오고, 준비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병이 닥칩니다. 심각한 상황들은 우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위기는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평화 시에는 사람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얼마든지 옆 사람과 잘 지내고 하나님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서 일상이 파괴되면 그 본질이 튀어나옵니다. 위기 시의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통해 그 본질을 폭로하십니다.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우상 숭배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위기에 처한 우상숭배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1.부질없는 우상에게 의존합니다. vv.2-8

     

부질없는 우상에게 의존합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2b] …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아합과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겼는데 왜 아하시야는 그들이 아닌 바알세붑에게 물어보았나요? 고대인들은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고 영역별로 특화된 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에 특화된 신이기에 부자가 되고 싶고, 더 많은 쾌락을 누리고 싶을 때는 도움이 되지만 질병 상황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질병의 신이 바로 바알세붑입니다.

     

‘바알’은 ‘주인’ 그리고 ‘세붑’은 ‘파리’라는 뜻으로 바알세붑은 곧 ‘파리들의 주인’입니다. 왜 파리의 주인을 찾나요? 사람이 병들면 몸이 썩고 고름이 생기고 그러면 어디에서인지 파리들이 날아옵니다. 길거리에 죽어 있는 동물 같은 것에는 하루만 지나도 구더기가 생깁니다.

     

지금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다쳐서 상처가 곪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파리와 구더기가 병자를 뒤덮는 것을 보며 파리를 보내는 주인이 질병을 관장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모두가 알 듯이 파리가 병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몸이 썩어 가서 파리가 온 것입니다. 즉 세균으로 말미암아 곪아 터진 상처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파리에게서 원인을 찾으려고 한 것이 바로 현상에 집착해서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상 숭배자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살아갑니다. 인생의 진짜 문제는 영혼이 공허하기 때문에 그 욕망으로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파괴되며, 사랑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도 사랑하면 단칸방에서도 행복할 수 있고 100평짜리 집에 살아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진짜 원인은 영적입니다.

     

그런데 마치 파리 떼가 원인이라고 착각하여 바알세붑에게 묻는 것처럼 현대인들도 진짜 영적인 원인을 발견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내가 힘든 것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내 탐욕 때문에 내가 이끌려 간다.”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내게 더 친절하지 않으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주변 사람과 환경을 계속해서 탓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바알세붑을 찾아가는 아하시야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스라엘 밖에서 신을 찾으려고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십니다. 3절입니다.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엘리야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하늘에서 불도 내리는 사람인데 여기는 특별히 여호와의 사자, 즉 육화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인 내가 여기에 있는데 도대체 누구를 찾느냐?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네 문제다.”

     

우리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고 탐욕에 사로잡히면 인생을 아하시야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하나님께서 가까운 곳에 계시는데,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나요? 심판이 선포됩니다. 아버지와 똑같습니다. 4절입니다.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네가 죽으리라”가 아닌 왜 “반드시”를 붙였을까요? ‘반드시’라는 히브리어 표현을 살펴보면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를 두 번 반복합니다. ‘죽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무트’를 두 번 사용하여 ‘무트 타무트’, 즉 ‘죽고 죽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에 똑같은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의 ‘반드시 죽으리라’도 히브리어로 읽으면 ‘무트 타무트’, 즉 ‘죽고 죽으리라’입니다. 영적 사망 선고입니다. 아하시야의 영적인 본질이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떠나갔기 때문에 육체적 죽음만이 아닌 영적인 사망이 선고된 것입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 가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그림입니다. 이것은 심판에 관한 무서운 경고이지만 동시에 이 심판의 경고를 깨닫고 받아들인 자에게는 무한한 긍휼이 있다는 것도 보여 주십니다. 엘리야를 만난 사자들은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5절입니다.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왜 돌아왔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아하시야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습니다. 8절에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몰랐을까요? 그는 아합의 시대에 일어난 일을 모두 보았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은 것, 다시 엘리야가 기도하자 비가 내리는 것을 다 보아서 인상착의만 듣고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엘리야의 이야기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탐욕이 깊어져 우상 숭배의 힘에 깊이 사로잡히면 말씀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게 되기에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큰 복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말씀을 듣고 “내가 잘못했구나. 이제 돌이켜서 하나님께 가야겠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복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영적인 위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진정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 시험도 함께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집사님이 전화하셨습니다. 이 분은 신앙이 좋으셨는데 시누이는 미신을 열심히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마침 돈도 많아서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찾아간다는 점집 단골이었습니다.

     

특히 연초마다 자기 것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이 집사님의 점까지 보고 오는데 그해에 점을 보니 큰일이 날 것이며 준비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전한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 안 믿는다고 단호히 전화를 끊었는데 그해에 정말로 일이 생겼습니다.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잘못하면 모든 재산과 지위를 잃어버려서 인생이 파괴될 만큼 큰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자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내 말이 맞았지? 지금이라도 점쟁이한테 가면 살 길이 있대. 이번에도 찾아오지 않으면 끝이래.” 집사님이 얼마나 고민이 되셨는지 저에게 전화하셨습니다. 이럴 때 목사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집사님, 저에게 전화하신 것은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전화하신 것 아닌가요? 찾아갈 마음이 더 컸다면 전화 안하셨을텐데 안 되는 것 알지만 답답해서 전화하셨지요? 집사님이 그곳을 가시면 이제 집사님의 미래는 점쟁이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제 마귀의 영향력이 집사님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큰 위기이지만 기도로 믿음으로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실지 들으며 나아갑시다.”

     

집사님은 찾아가지 않으셨고 그때부터 정말 말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난에 들어갔고, 이런 일이 생기자 주변 사람들이 배신하고, 사람들의 본질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또 동시에 이때까지는 내본적 없는 열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셨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며 그렇게 7, 8년이 지나갔습니다. 결국 모든 소송에서 이기면서 모든 일이 다행스럽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믿었던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거짓되고 악한 사람이 많은지도 알게 되며 인간관계도 정리하였습니다. 그 과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시누이 말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찔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위기를 막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 위기를 통해 제가 우상 숭배의 영향력에 사로잡힌 자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로 드러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위기에 처한 우상숭배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vv.9-18

     

두 번째로, 위기에 처한 우상 숭배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의 선포를 듣고 9절 상반절에

     

[9a]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하고 회개할 생각이었다면 귀한 사신을 보내어 엘리야를 모셔 와야 합니다. 그런데 오십 명을 보낸 것은 엘리야를 제압해서 끌고 올 수 있는 규모를 보낸 것입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9b]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이들은 왕의 권위를 가지고 왔습니다. 10절에 엘리야가 어떻게 반응하나요?

     

[10] 엘리야가 …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이 군사들의 죽음처럼 성경에는 어이없이 심판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주 말씀드렸듯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는 그림입니다. 왕의 권위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위이지만 하나님의 불 심판의 권세 앞에서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군사들을 안타깝게 죽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군사들이 아니라 아하시야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네가 끝까지 반역하고 거역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게 될 것이다.” 또한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도 회개하라고 우리에게도 경고하십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섭고 신약의 예수님은 좋은 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데 그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시고, 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래 이렇게 무서우신 분이지만, 회개하여 나아오기만 하면 용서받는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11절에 두 번째 군대가 찾아옵니다.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이번에도 모두 불에 타 버리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13절에 오십부장이 엎드립니다.

     

[13]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왕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생명을 간구합니다. 왕의 힘과 권세와 명령을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유일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살려 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능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만 살아납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명령하십니다. 15절입니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

     

불의 선지자 엘리야도 사실 왕에게 가면 당장 죽을까 봐 두려워서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가라고 말씀하시니 그제야 일어나서 앞에서 했던 말씀을 16절에 선포합니다.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고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기회를 계속해서 주었는데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아하시야는 “죽고 죽게” 되었습니다. 17절입니다.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

     

우리는 모두 탐욕으로 고통합니다. 탐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탐욕이 무엇을 만드나요? 하나님을 향해서는 우상 숭배를 만들고 이웃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깨뜨립니다. 우리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옆 사람이 나에게 유익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상 숭배자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자기 힘으로 그 위기를 이겨 내려고 버티다가 심판에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평소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그 사람의 본질이 어떤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인지가 드러납니다.

     

저와 한 살 차이가 나는 사촌 형이 있습니다. 4년 전에 대장암으로 투병했는데 항암 치료도 수십 번 받으면서 잘 치료를 마쳤습니다. 지난 달에 연락을 받았는데 암이 다시 번진 것입니다. 선교를 갔는데 갑자기 다리가 아파 움직일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귀국했다고 합니다.

     

허리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척추뼈가 모두 뒤틀려 있어서 정형외과 수술을 잡았는데 암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하자, 의사가 원래 치료받은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다시 검사를 해 보니 암이 뼛속까지 전이되어서 그 결과로 척추가 뒤틀리게 된 것입니다.

     

8월에 멀쩡하게 선교를 갔다가 허리가 아파 휠체어를 탔을 뿐인데, 검사받는 동안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암이 뼛속을 채워서 수술도 항암도 소용이 없고 3개월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집에 병원용 침대와 몸을 들어 올리는 기중기 같은 것을 구입한 상태였습니다. 형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돌아왔는데 그저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육체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영은 은혜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누워서 주님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푸념이 섞인 기도를 해. 결국에는 나의 죄를 올려 드리며 회개해. 회개를 다 한 것 같으면 또 드러나고, 다시 회개하면 또 드러나는 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 나타나. 그것이 내 모습이기에 감히 주님께 내 요구를 말할 수 없어. 유일하게 구할 수 있는 긍휼을 구하며 나아가.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목사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며 버는 돈으로 평신도 선교사처럼 선교에 열심을 내었는데 이제 하반신이 마비되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보낸 것입니다. 이전에는 마음대로 살던 사람이 어느 때에 은혜를 받고 과거의 모습을 지운 듯이 변화되었습니다.

     

‘마음대로 살 때도 열정이 많았으니 선교에도 열정을 가지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위기가 찾아오자 그의 본질이 드러났습니다. 여러분은 위기에서 어떤 모습이 드러날까요?

     

우상 숭배자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현상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파리 주인을 찾는 것입니다. “돈의 위기가 왔으니 어디에서 돈을 더 구할까? 건강의 위기가 왔으니 어떻게 이 병을 치료할까? 가족의 위기가 왔으니 그 사람만 바꾸면 될까?” 이것은 우상에게 의존하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해결책도 찾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입니다. 우상 숭배를 하면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아하시야처럼 군대를 보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납작 엎드려 은혜와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결과가 무엇인가요? 우상 숭배자는 위기를 통해 자신이 무엇을 의존하는지가 폭로되고, 영원한 심판에 들어가게 됩니다. 참된 성도는 위기를 통해 구원과 회복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탐욕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신 그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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