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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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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강해 14 8.9-17 새 언약의 특징 2

2026년 2월 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9] 그 때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할새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쓰되

[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2]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13]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여러분들은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고 기쁨과 평안을 얻는다는데, 왜 내 삶은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힘들고 짜증나는 일들이 많을까?' 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분들은 믿고 나서 더 힘들어졌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저희는 기쁨이나 평안이라고 하면, 나를 힘들게 하던 문제들이 해결되서 큰 문제가 인생을 괴롭히지 않는 '평온한 상태'를 상상합니다. 평소에 힘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길 기도하다보면, 사실 그런 구원, 그런 기쁨을 바라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요, 오늘 하나님은 에스더서를 통해 저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새 언약을 통해 너를 구원했다. 그러니... 이제 영적 전쟁에 참여해라!' 아니, 구원해 주셨으면 편안하게 해주셔야지 왜 힘들게 전쟁을 하라고 하실까요?


여기에 저희가 오해하고 있었던 '생명과 기쁨'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새 언약을 통해 얻는 생명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새언약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1. 참 생명을 얻게 합니다.(9-14)


에스더는 자기 생명을 위협하던 하만을 제거했고, 하만의 남은 세력보다 더 높은 권세를 얻게 됐고, 왕의 반지까지 얻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멈추지 않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만이 남긴 ‘죽음의 조서’가 여전히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자기 유익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목숨 걸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죠. 이런 에스더의 소원을 들은 왕은 지체없이 백성들을 구원할 ‘새 조서’를 내려줬습니다. 그런데 이 새 조서가 전달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본문 10절과 14절입니다.


[10]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부쳐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14]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하매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왕의 일에 쓰이는 가장 빠른 ‘준마’를 내어준다는 표현이 2번이나 반복됩니다. 그리고 역졸들은 그 말을 타고 "매우 급하게" 달립니다. 사실 이 8장의 짝꿍인 3장에서는요, 첫 번째 조서가 반포될 때도 역졸들이 급하게 달린다는 표현이 2번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냥 말을 탔습니다. 그리고 그 때도 급하다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지금은 매우 급하다고 표현됩니다. 죽음의 조서가 퍼질 때보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생명의 소식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마치 새 언약의 은혜가 옛 언약의 저주를 맹렬히 쫓아가서 예수님의 피로 덮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저희에게 새 언약, 복음을 보내주신 마음입니다. "내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그 다급하고 뜨거운 사랑이 담긴 복음을, 선교사님들이 꼭꼭 싸매서, 왕의 준마를 타고 달려오는 것처럼, 이 동방의 끝자락에 있는 저희에게까지 급하게 달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참 신기하게도 왕의 준마를 타고 간다는 이 10절과 14절의 말씀 사이에 생명의 조서의 내용이 담긴 말씀이 감싸여 있습니다. 이게 저희에게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만큼이나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소식이라는거에요. 그런데요, 이렇게 중요한 새 조서의 내용이 약간 이상합니다. 11절과 13절입니다.


[11]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13]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너희가 직접 무기를 들고 싸워서 너희 생명을 보호하라!"는거에요. 아니, 그 강력한 왕권으로 깔끔하게 해결해 주시면 되는데, 왜 힘없는 포로들에게 직접 싸우라고 할까요? 이방 민족끼리 싸움 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을텐데요. 저희는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진짜 생명’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은요, 치열하고 역동적인 영적 전투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몸이 죽어서 생명을 잃게 되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싸우지 못하고 몸은 썩어갑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몸은 다릅니다. 병균이 침투하면 열을 내며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잘못된 것이 영향을 미치거나, 내 안에 잘못된 것이 생겼을 때 몸이 싸우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저희가 이 믿음의 삶을 살고자 할 때에도 밖에서는 마귀가 세상을 통해 영향을 미치고, 안에서는 저희의 죄가 바이러스처럼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저희의 행위에 기반한 옛 언약 아래에서는 그 영적 싸움에서 백전백패했습니다. 죄를 죄라고 인식도 못하고,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죄와 싸우다가 져서 결국 죽음이라는 심판을 받게 됐다는 것이 옛 언약의 비극입니다.


하지만 새 언약은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와 죄의 권세로부터 이기셨다! 그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는 존재다! 그리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함께하시며 도우신다. 그러니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그 귀한 생명을 더욱 누리기 위해 이제 죄와 싸워라!"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생명이 있는 삶은요, 욕심, 미움, 정죄와 판단, 분노, 두려움, 게으름, 우울함과 매일 싸우는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영적 전쟁을 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과 내 안의 죄에 휘둘리며 사는 사람들을, 살아있어도 죽은 자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저희가 신앙생활을 하는걸 방해하는 외부 세력과 싸우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교회 못 다니게 하는 남편, 교회를 박해하는 정치 세력이나 나라와 싸워서, 어떤 신앙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 것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따르고자하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만 보더라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게 칼을 겨누거나, 싸움에서 승리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철저하게 졌습니다. 예수님은 정치 반역자로 십자가형을 받았고, 그 제자들은 평생 노동형을 받거나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영적 전쟁이라고 할 때 영적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과의 싸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영적 전쟁을 보고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나는 교회 잘 나오고, 십일조 하고, 봉사하고, 세상의 세력들과 대적하고 있으니까 영적 전쟁 잘하고 있다'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그런걸 잘 해도, 집에 가서 배우자를 미워하고, 자녀에게 화를 내고, 혼자 있을 때 음란과 게으름과 세상 즐거움에 빠져 있다면... 영적 전쟁에서 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는 병들고 가난하고 인생의 여러 상황들이 실패한 것 같아도, 그 속에서 불평 대신 감사를 선택하고, 절망 대신 기도를 선택하며 내 마음을 지키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예수님처럼 승리하고 있는 위대한 용사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런 사람을 보고 생명이 있다. 영생을 누리고 있다, 오늘도 승리 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승리의 삶은 저희의 유한한 힘과 능력과 지혜로 힘들게 쟁취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입니다.


그 귀하고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희생해서, 그 귀한 생명을 영원히 저희의 소유가 되게 해주셨다는 그 감사와 은혜의 능력으로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 새 언약이 주는 생명의 삶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그 헌신과 사랑을 통해 영적 전쟁에서 이미 승리했음을 굳게 믿으심으로, 생명의 삶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언약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2. 참 기쁨을 얻게 합니다.(15-17)


앞서 저희는 하나님이 왕의 준마를 태워 급하게 보내주신 ‘새 언약’의 생명력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너희는 이미 승리했으니 싸워서 생명을 누리라!"는 이 말씀은 정말 은혜로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희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있습니다.


"새언약? 행위가 아니라 믿음? 다 좋은데... 현실은 여전히 지치고, 계속 지기만 하는 것 같고, 인생 감당하기 참 힘들다..." 맞습니다. 에스더서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조서가 내려왔지만,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유다인들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하만의 남은 세력들은 여전히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렇죠. '예수님이 이기셨다'고 하는데, 내 경제상황은 그대로고,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는 내일도 출근하고, 내 몸은 여전히 아픕니다. 그리고 생명이 충만한 것 같지도 않고, 여전히 짜증날 일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새 언약의 효력이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저희를 덮는거 같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그때, 성경은 여전히 어둡고 두려운 현실과 나의 연약한 상태를 바라보던 저희의 시선을, 왕궁 문을 열고 나오는 ‘한 사람’에게로 확 돌려버립니다. 15절입니다.


[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여전히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던 수산 성이, 모르드개가 나오는 순간 함성과 축제로 뒤집어집니다. 백성들이 왜 환호하며 기뻐했을까요? 바로 이 새조서가 정말 자신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을 보증하는 '권세'의 실체와 영광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의 옷이 화려해질수록, 금관이 빛날수록, 더 높은 권세를 가질수록 백성들은 손에 쥔 새 조서의 효력이 더 강력하다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수산 성 전체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영혼 안에서 다른 무엇보다 높아질수록 오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저희의 어떤 소원을 들어주셔서 기쁜게 아닌거에요. 세상 사람들의 기쁨은 '조건'에서 옵니다. 돈을 많이 벌면 기쁘고, 자식이 잘되면 기쁩니다. 하지만 그 조건이 사라지면 기쁨도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쁨은 예수님이 마귀와 죄에 대해 승리하셨다는 소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 복음이에요. 그리고 그 복음을 들고 인생을 살면서 더욱더 경험하게 되는거죠. 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정말 가장 귀하고 높으신 분이시구나..


저희가 이 험한 세상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또 몸이 아플지라도 기쁘게 찬송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희의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져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왕 예수님이 승리하셨다! 그렇기에 내 인생의 결말은 이미 '생명'으로 확정되었다!" 이 확실한 '새 언약'의 복음이 저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여서 함께 찬송할 수록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행하신 분이신지 확신하게 되고, 그런 예수님이 더욱 높여지게 되면서, 세상의 고난, 걱정, 근심이 가득한던 저희의 마음에 참된 기쁨이 차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힐링되는게 아닌거에요.


사실 그 복음과 찬양으로 말미암는 기쁨이,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성도가 자동차라면, 그 자동차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이 기쁨입니다. 사람은 기쁘고 즐거운걸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주일마다 모여서 그 복음을 함께 확인하고, 함께 그 복음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높여드리며 함께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나누는거에요. 그런데 저희가 그렇게 기쁨과 생명과 사랑이 삶에 가득해지면, 더 놀랍고 기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16절입니다.


[16]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모르드개만 영광스러워지는게 아닌 것입니다. 그 초라했던 포로들이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로 바뀝니다. 사실 이들의 상황은 아직 변한게 없습니다. 첫 번째 조서의 칼날은 여전히 유다인들을 겨누고 있고, 아직 제대로 전쟁도 한 번 못치뤄서 승리를 경험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고난 중에도 기뻐하고, 낮아진 자리와,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누리는 그 모습 자체가 저희를 세상이 감당 못 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렇게 되니까, 또 더 기쁜 일들이 생깁니다. 17절입니다.


[17]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들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불신자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저 사람들은 다 죽게 생겼는데 왜 웃고 있지? 도대체 저 사람들이 믿는 구석이 뭐길래 저렇게 당당하고 기뻐하지?" 저희가 누리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기쁨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왕 예수님이 높여지셔서 기쁘고! 둘째는 그 기쁨 때문에 저희가 생명력 넘치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어서 기쁘고! 셋째는 그 모습을 보고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 돌아와서 또다시 기쁜 것입니다! 이게 새 언약으로 얻게 되는 기쁨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거기에 참 기쁨이 보였습니다. 그 영화는 북한에서 활동한 어떤 찬양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가 어떤 국제단체에서 돈을 받아야 하는데, 그 단체가 북한 내의 교회에서 진짜 성도들이 하는 집회를 보여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 잡아 죽이는 북한 보위부에서 가짜 찬양단을 만들어서 진짜 같은 찬양 집회를 준비하면서 가짜였던 사람들이 진짜가 되어간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영화라서 보는 내내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요, 거기 등장하는 진짜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저희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에 기뻐합니다.


찬양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기뻐하고, 성경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기뻐하고, 기도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기뻐합니다. 그런데요 그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라서요, 그렇게 북한에서 찬양하고, 성경 읽고, 기도 하다가 자기들이 죽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합니다.


저희는 맨날 찬양 듣고, 말씀 읽고, 기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살수 있을까요? 오히려 계속 뭔가 내가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하기 위해 그걸 방해하는 배우자와 싸우고, 더 바빠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그 영화 마지막에 자신을 희생하며 여러 사람들을 구원한 인물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 이제 가짜 아니지요?, 저 잘한 것 맞지요?" 그 분도 실제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그 대사를 하는데요, 제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드는거에요. 정말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으로 인해 정말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진짜입니다.'


사실 저 역시도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찬양을 통해 참된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저는 25살까지 불신자였습니다. 그것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정말 인류를 썩게 만드는 독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경멸하던 불신자요.


그런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대학생 때 대학 교회 찬양대 총무로 섬기던 친구가 저를 찬양대에 초대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원래 찬양하고 그런거 정말 싫어하는걸 넘어서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공부 뿐만 아니라 이웃을 돕는 일까지 모든 것을 성실하고 열심히 하던 그 친구가 찬양대 식사 나르는걸 도와주러 갔는데, 그 친구가 제가 오늘부터 찬양대 한다고 소개 했고, 다 박수치면서 환영한거에요. 그 친구는 제가 노래방 가는걸 좋아하니까, 거기 음대 교수님인 지휘자분한테 노래 배우라고 넣은거에요.


그래서 그 찬양대에서 하는 성경공부나 기도모임 그런거는 다 도망다니고 찬양대 연습 때 노래하고, 수요 예배 때 노래 했어요. 진짜로 그냥 노래 부른거죠.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 나서 뒤 돌아 보니까, 그 때 그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말씀으로 이루어진 가사들이 제 안에 씨앗처럼 심겨졌던거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신의 악단 영화를 보면서 진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맞다.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이 찬양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진짜 우리가 기뻐해야할 것을 알게 됐을 때 사람은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과 예수님이 제가 그렇게 구원을 얻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리고 저도 이렇게 매일 말씀을 연구하고, 저의 아이들이나 유초등부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정말정말 기쁩니다. 저는 진짜 성경 연구할 노트북 하나랑, 책상 한 개 놓을 공간이랑,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밥만 있으면 됩니다. 좀 더 필요하다면 공부하면서 먹을 약간의 과자랑 라면 몇 봉지 정도요? 예수님의 기쁨이 저의 기쁨이 된거죠.


제가 초중고 대학교를 다 다니면서 이런 일을 하면서 이렇게 기뻐할줄 몰랐는데요, 지금은요, 제 어머니랑도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제가 가장 기뻐하는 일을 시켜주고 계시니까 그저 감사하며 살자는 얘기 합니다.


그런데요, 오히려 저는 목사니까, 이런 일을 하는 환경에 있으니까 이게 더 쉽습니다. 성도님들은 세상의 영향력이 더욱 강력한 세상 속에서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로 나도 기뻐하며 산다는게 더욱 어려운 일인거죠.


그래서요,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마귀와 세상과 죄의 유혹이나, 광야 같은 환경이나, 그 상황에 버거워하는 나를 바라보면 안됩니다. 그것이 좌절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이미 승리하시고, 권세를 회복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높여드려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참된 생명과 기쁨이 회복되구요, 바로 그 생명과 기쁨이 영광스러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구요, 또 그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쁨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 언약을 통해 이미 얻은 생명을 더욱 풍성히 누리시고, 삶이 참된 기쁨으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계속해서 즐겁고 기쁜 것들을 찾습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기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영원한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저희의 시선을 계속 세상의 기쁨, 내 주위의 환경, 나의 괴로움, 연약함으로 돌립니다. 오늘 말씀처럼 저희의 시선을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로 돌릴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몸은 살아있을지라도 세상의 영향력과 죄와 싸우지 못하고 휩쓸려 산다면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저희 이웃 가운데 생명력을 잃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나요? 그 이웃들에게 참된 생명, 참된 기쁨이 회복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욕하거나 관심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진짜 생명과 기쁨을 내뿜는 교회 앞에서 당해낼 세상 없습니다. 저 역시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 그렇게나 싫어했는데요, 결국 그 영향력 앞에 교회 끌려가서 찬양의 가사와 말씀으로 씨앗이 심겼습니다. 제가 생활이 어렵다고 그 친구가 저에게 무슨 돈을 주거나, 저 잘되라고 공부 비법을 알려준 것이 아닙니다. 저희 하늘사랑교회 역시 참 생명과 참 기쁨을 주위에 흘려보서 많은 자들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며 돌아올 수 있기를


저희가 후원하는 모든 선교사님들 역시 사역하는 가운데 매일 같이 기쁨의 열매가 맺히기를, 예수의 생명이 없이 살아가는 선교지 가운데 생명의 삶이 충만해지기를. 그래서 모두가 함께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그 날이 오기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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