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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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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44 18.18-9.7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2025년 5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본문에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있고 또한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기도 하지만 불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이 나옵니다. 문제는 조금 부족해도 예수 믿은 부분이 인정되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상태로는 절대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100점이어야 합니다. 예수가 100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단들도 예수님에 대해 알고 전도하지만 그들의 불완전함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불완전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하게 된다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들이 어떻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지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vv.24-28


그렇다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 번째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특별히 아볼로가 알렉산드리아 출신임을 이야기한 것은 알렉산드리아가 고대에 학문적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고대에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고 사람들의 학문적 열정이 뛰어났기에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번역의 학자들은 모두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특히 아볼로를 언변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단순히 말을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등 교육을 받아 당시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수사학과 웅변술에 탁월한 학식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구약 성경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25절입니다.


[25a]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일반 학문과 구약 성경에 능통한 사람인데 예수님에 대해서 전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단서가 달려 있습니다. 25절 하반절을 보시면


[25b]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가 구약적인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요한은 죄 지은 자들이 물에 와서 씻을 때 죄가 사해지는 죄 사함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세례가 아닙니다. 마치 천주교 고해성사처럼 죄를 지을 때마다 고백하고 죄책감을 덜어내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또 회개하고 또 사함 받는 일시적인 종교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실 완전한 영적 세례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완벽하게 주어진 영적 세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구약적 사고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아볼로가 열심히 예수를 전했지만 ‘훌륭한 분이 계시고, 이 분이 기적을 행하셨다’ 즉 ‘우리도 예수처럼 열심히 살자’는 식의 말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요한의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했던 참된 영적 세례는 바로 십자가로 말미암는 세례입니다.


십자가는 죽어야 될 자들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을 때 거기에서 성령으로 다시 살아나는 완전한 죄 사함의 자유를 보여줍니다. 세례 받을 때 왜 물에 들어가야 하나요? 지금 장로교는 이것을 너무 간소화해서 물을 머리에 뿌리기 때문에 죽음이 연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 지은 모든 자들을 노아의 물 심판으로 쓸어버리셨듯이 물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자기가 심판받아 마땅한 자임을 인정하는 자만 물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를 짓지 않으셨음에도 물에 들어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바로 죄인처럼 되신 것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습니다. 왜 하필 비둘기인가요?


홍수로 온 세상이 물로 덮여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아가 언제 방주의 문을 열고 밖에 나오나요? 바로 비둘기가 감람 잎사귀를 물고 와 세상에 생명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노아가 방주 문을 엽니다. 비둘기와 감람 잎사귀는 바로 생명이신 성령을 상징합니다.


죽음으로 멸망당한 곳에 하나님이 새로운 생명을 성령으로 시작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세례 받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다 물에 들어가 죽어야 될 자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이 그것을 인정하면 성령으로 새 생명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 일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자들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로 인해 죄 사함 받아, 구원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에 달린 것이고, 죽은 자가 살아난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생명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교회 내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마치 아볼로처럼 예수에 대해 얘기하고 전도도 하지만 예수로 말미암는 온전한 구원을 믿지 못한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 사람은 종교관이 있는데 가끔 대화에서 그들의 천국관을 엿볼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연예인은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도 화목하시고, 누구도 자기에게 화낸 적도 없고, 모든 것이 평화로워서 이 땅이 곧 천국 같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평화롭다가 천국 가서도 평화를 누려도 되나?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하도 남편이 속을 썩이고 지난 30년간 고생을 해서 이제는 당당히 천국 갈 자격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여러 교회에서 간증을 하시길래 그리스도인인 줄 알았는데 방송에서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남편이 너무 좋은 분이었기 때문에 천국에 가셨을 텐데 본인은 성품이 착하지가 못해서 사후에 어디를 갈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원이 천국 문까지 남편을 한 번 보고 꼭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시지만 이것은 구약적이며 종교적 사고입니다. 착해서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다 약하고 악하지만 오직 예수님의 완벽한 은혜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한국 교회에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2023년에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종교 인식 조사를 하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질문 했습니다. 성도의 4분의 1이 예수님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문제는 4분의 3중에도 더 착해지고 공덕을 더 베풀어 된다고 생각하는 아볼로의 수준인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끔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집니다. 지난주 부처님 오신 날 행사에 한 연예인이 자랑스러운 불자상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작년까지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아내를 따라 불교로 개종하고, 스님 역할을 맡은 영화도 찍고, 받은 개런티로 조계종에 1억을 보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혼하고 재혼하면 종교를 또 바꿀 수 있나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영혼 자체의 방향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다 불교로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종교 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를 믿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사랑하고 여러분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 안에 완벽하게 보장됨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완전하다고 인정하셔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볼로가 누구를 만났나요? 26절입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바울에게 제자 훈련을 받았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게 복음을 가르칩니다.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었던 구약적 사고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참 죄 사함과 완전한 구원이 주어졌음을 가르칩니다. 이들이 가르쳤다는 것보다 놀라운 사실은 아볼로가 이것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수사학과 고전 등의 학문에 뛰어났고 구약 성경에 능한 아볼로가 텐트 만드는 노동자의 가르침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은혜인가요?


저도 많은 목사님들과 신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마음이 겸손한 분도 있고 강퍅한 분도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공부를 해서 그런지 자기 틀이 이미 있고 오히려 신학을 안 한 분들이 겸손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학기도 열심히 가르치고 중간고사 문제를 냈습니다. 세세하게 지도해서 거의 답을 따라 쓸 수 있을 만큼 해 드렸는데도 절반 이상은 수업 내용과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씁니다.


한 분은 문제도 안 읽었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썼습니다. 이분은 전광훈 목사파라서 하나님이 한국을 살리기 위해 보낸 전광훈을 믿지 않는 목사들 때문에 한국 교회가 타락했다고 써 냈습니다. 시편 1편을 정리해 내는 과제에 왜 전광훈 얘기를 쓰나요. 저는 준비했던 강의를 다 취소하고 하나하나 숙제를 피드백 해 드렸습니다. 그분께는 고쳐서 내지 않으면 F라고 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너무 꽉 차 있어서 목회를 안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유익된 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어떤가요? 평생 수사학과 웅변술,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고전, 구약을 다 배운 사람이 별 것 아닌 장사치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복음을 듣습니다. 27절을 보면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아가야는 고린도 지역인데 믿는 사람들이 추천서를 써 주었습니다. 바울이 씨를 뿌리고 떠나자 자기들끼리 좌충우돌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아볼로가 와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을 복음 안에 견고하게 세운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28절을 보시면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이제까지는 예수를 그저 훌륭한 분, 모범으로 따라갈 분으로 여겼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생명이며 예수로만 말미암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담대하게 구약 성경을 통해 증거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에 계신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대충 70점쯤 맞아서 과락만 면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탈락입니다. 완벽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품이 얼마나 훌륭하신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심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vv.1-7


두 번째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1] …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바울은 이전에 씨를 뿌렸던 곳들을 돌아보고 교회를 개척했던 에베소로 돌아와서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제자들과 대화를 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2절입니다.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성령을 들어본 적도 없다면 이들은 어떤 상태인가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능력과 생명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3절입니다.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이들도 예수에 대해 알았기에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스승이나 모범적 위인 정도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4절에서 바울이 어떻게 하나요?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잘못할 때마다 고해 성사하듯하는 회개로는 안 되고 완벽한 용서, 완벽한 죄 사함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가능해서 이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준 것입니다. 5절 보시면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이것은 단순히 행위가 아닙니다. 죽어야 될 죄인이 물에 들어가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인해 예수와 함께 살아남을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자리가 바로 세례입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6절과 7절 말씀에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지금도 세례 때마다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춤도 추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지금도 순복음 교회에서는 세례 받기 전에 방언을 연습하고, 방언 받지 않으면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사도행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도록 그림으로 보여주신 책입니다. 역사 중에 성령이 처음 오시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알 수 없으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을 명확한 차이가 나는 현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방언과 예언일까요? ‘방언’이라는 번역 때문에 오해를 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영어의 tongue, 헬라어 글로싸, 즉 ‘혀’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 말씀을 보시면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말실수하고 통쾌하고 시원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후회하지만 또 계속 실수합니다. 혀는 영혼의 통로이기에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면 혀를 사로잡으셔서 ‘너는 독을 쏟아내는 존재지만 내가 네 영혼의 근원을 붙잡아 구원으로 이끌어가겠다’라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로봇처럼 조종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 혀는 여전히 실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의 죄악을 보고 나서, 하나님 저 같은 자를 어떻게 구원하시나요? 여쭐 수밖에 없는 은혜 의식을 경험하며 이 땅에서 이중적 존재로 살아갑니다. 물론 성령으로 인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유익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입니다.


고전 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


덕을 세운다는 것은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방언의 은사가 있으시다면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목조목 말로 아뢴다고 응답이 되는 것은 아니고 꼭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과 27절을 보시면


롬 8:26-27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가 더 많고, 미래를 알지 못하니까 욕망을 기도로 투영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탄식이 아니라 나를 붙들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기도와 간구를 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드리는 과정이 방언 기도이기 때문에 은사를 받으셨으면 혼자 계실 때 방언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예언은 미래를 알려주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으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일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안하지만 성령은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셔. 걱정하지 마. 너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어. 네가 연약하고 불안하고 실패해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실 거야’ 말씀해 주십니다.


미래가 불안하고 초조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실까? 의심이 들 때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나를 사랑하시지’하며 자신을 향해 예언하셔야 됩니다. 주변 사람을 볼 때 걱정이 되면 음성을 못 듣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걱정하지 마. 그 아이 인생 내가 책임질 거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질책과 거부와 판단과 정죄의 말을 듣습니다. 성령의 예언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남을 향해서도 계속 정죄하고 판단하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방언이나 예언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어도 특별한 변화가 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을 보시면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이것은 당장 나타나는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도 성령이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몇 년 동안 진리를 가르쳤는데 그 진리를 잘 따라오신 분들을 보면 성령께서 지혜를 주셨음을 저도 알고 여러분 자신도 아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8장 15절을 보시면


롬 8:15 너희는 …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구약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땅을 열어 수백 명씩 죽이는 심판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두려움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친밀한 대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시면


고전 12:3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아볼로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선포했던 것처럼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며 내 인생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라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에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 내 증인이 되리라


또한 예수를 전하고 싶다면, 저 사람은 예수가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간절함이 든다면, 성령이 여러분에게 오신 증거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감추고 혼자만 몰래 알고 싶다면 성령이 계신지 의심해야 합니다. 또 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한 가지만 더 한다면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부터 23절을 보시면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계시면 반드시 열매가 맺어집니다. 물론 열매가 아주 작을 수도 있고, 드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약한 증거도 증거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누리는 사랑입니다. 특히 사랑이 없으면 끊임없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인지, 부모마저 나를 조건적으로 대하고,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두려움이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힘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오면 이런 감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희락은 즐거운 일이 왔을 때 기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이 기쁘고, 찬양이 기쁘고, 하나님 사랑 받는 것이 기쁘고, 심지어 성공해도 기쁘고 실패해도 기쁜, 상황을 초월하는 기쁨이 바로 증거입니다. 화평은 하나님과 화목한 사이가 되어 벌 받지 않는 확신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은 사우나에서 뜨거움을 참는 것과 같은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없으면 끊임없이 닦달합니다.


저도 너무 일찍 닦달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방황하지 않도록 일찍 복음으로 인도해야 된다는 생각에 초등학생 때부터 ‘오늘 네 죄가 뭐야?’ 짚어주었는데 이것이 역효과가 나서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눈이 없었습니다.


딸이 고3이 되었는데 이 아이가 예수를 안 믿을까봐 제 불안이 극에 달했습니다. 마침 딸이 친구 따라 수련회를 갔는데 교회 어른들이 학생들을 둘러싸고 기도를 해 주어서 은혜도 받았지만 무섭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많아서 엄마 아빠랑 함께 기도하고 싶어 했습니다.


같이 기도를 하고 며칠 지나자 이제 안 해도 되겠다고 발을 빼길래, 시작은 네가 했지만 대학 갈 때까지 기도하자고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밤 10시마다 같이 앉긴 했지만 눈도 안 감고 불만에 가득 찬 눈으로 째려보면 저는 더 서운하고 힘들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기도했습니다.


그러기를 수개월째, 어느 날 불안을 못 이겨서 기도하다 우는데 그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승아, 너는 고3 때 어땠니? 네가 예수를 알고 죄를 고백한 것이 언제니, 아이 인생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지 마라. 내가 그 아이 인생을 책임질 것이다’ 그제야 들렸습니다. 저는 딸이 변하기를 기도하며 몇 개월을 지나왔는데, 오래 참지 못 했던 제가 변했습니다.


그렇게 딸이 한동 대학을 가고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거의 모두 교회 다니는 선배들 동기들 사이에서 유혹이 적고, 섬길 기회, 기도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피아노를 조금 쳤지만 잘 치진 못했는데 그 정도 칠 사람이라도 꼭 필요한 기도회가 있어서 반주를 하게 되었는데 곡이 어렵자 강의실을 빌려서 매일 두 시간씩 연습을 하고, 북한 중보기도 모임 스탭 제안을 받고 스탭으로 섬기면서 한 주 내내 10시간씩 예배드리고 기도회 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매일 저녁 있는 기도회에 가서 울면서 믿음이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계획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성령의 열매를 맺고 계신가요? 우리가 방언이나 예언을 하지 않더라도 성령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안해하는 그 대상 또한 하나님이 구원하시며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벌이실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놀라운 구원과 은혜를 보이실 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하셨군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라는 찬양의 고백을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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