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25 20.31-43 우상숭배자의 구원에 대한 반응
2026년 8월 2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아주 유명한 고전 중에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선장이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뒤에 복수를 하고자 선원들에게 황금 주화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모비딕을 찾아 헤매는 소설인데 결말은 아주 비참합니다. 모든 선원들이 죽고 이 소설의 화자인 주인공만 살아남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이스마엘이어서 이 소설은 "Call me Ishmael"이라는 명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선장의 이름은 (한글로 에이하브라고 번역해서 잘 모르셨겠지만) 아합입니다. 이스마엘이 배를 타기 전에 엘리야라는 부랑자를 만나는데 그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네 영혼은 저당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야. 에이하브 선장과 함께 항해를 떠나면 반드시 망하게 될 거야."
허먼 멜빌은 열왕기상의 아합과 엘리야 이야기를 모비딕에 차용한 것입니다. 아합 선장은 복수라는 개인적 열망에 사로잡혀서 사람들을 이용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열왕기상에 나오는 아합과 똑같은 인물입니다. 이런 인생을 성경은 우상 숭배자라고 부릅니다.
우상 숭배를 부처나 돌이나 나무를 숭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은 명확하게 우상 숭배는 욕심이라고 말합니다. 욕심은 자기 욕망을 이루어 줄 어떤 대상을 의존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변 사람이든 물건이든 자신까지 파멸에 이르게 만듭니다.
아합이 그렇습니다. 아합은 철저한 바알 숭배자였고 결국 그와 함께하던 모든 사람들을 멸망과 불행으로 끌고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런 우상 숭배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베풀어 주십니다. 나라가 망할 상황인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구원해 주십니다.
성경은 계속되는 구원의 기회에도 우상 숭배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를 그냥 버리시고 세상의 고통과 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들을 계속 열어주시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절대 구원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 구원에 대한 우상 숭배자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상 숭배자의 구원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요?
1. 완전한 구원의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첫 번째로 완전한 구원의 기회를 날려버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런 약속을 하십니다. 28절입니다.
[28]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
아합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아람 군대가 수십만의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직접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29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요?
[29] …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고대의 전쟁은 사람 수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소수의 군대가 큰 군대를 한 번에 이기는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의기양양하게 찾아왔던 아람 왕이 패전을 인지하고 생명을 구걸하기 시작합니다. 32절 상반절에
[32a]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기회가 왔습니다. 아람은 지금 처음 찾아온 게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고통으로 몰아넣은 악의 원흉입니다. 지금도 북쪽에서부터 많은 성들을 함락시키고 죽이고 이제 사마리아 성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지금 아람 왕을 죽여야 이스라엘이 비로소 평안을 얻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32절 하반절에,
[32b] …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아람 왕이 "너와 네 신하들의 집의 모든 좋은 것 내가 다 가져갈 거야"라고 엄포를 놓았을 때 거부했더니 다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지자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 누가 봐도 교활하고 얄팍한 수인데 아합은 난데없이 긍휼을 발휘합니다. 원래 긍휼이 많은 사람인가요?
아합은 경제적 이익을 따져서 인간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큰 나라의 왕을 살려주면 체면도 살고, 은혜를 베풀었으니 경제적 이익이 받을 것이라는 논리로 조약을 맺습니다. 34절입니다.
[34] …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아람 왕도 단번에 눈치를 챘습니다. 아합의 명예를 높여주고 경제적 이익을 조금 주면 풀어주겠다는 것을 알고 “내가 이전에 빼앗은 성읍들을 돌려주겠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당신의 이름으로 도로를 만들어서 기념하겠다" 약속했더니 "그렇게 하시라"며 풀어주어 버립니다.
지금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 주셔도 그 기회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육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는 욕심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은 육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기반해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적으로 그들을 지배하는 힘이 끊임없이 명예와 돈을 위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 중에도 말로는 예수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삶의 모든 결정에는 육신이 주장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영적인 것,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구원을 베풀어주신 이유는 아합이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또한 아합이 아닌 언약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아합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전쟁은 끝나고, 이스라엘은 완전한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분명 예수를 믿지만 깊은 욕망 때문에 우상 숭배로 끌려가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구원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결과로 어떤 은혜를 누리고 있으신가요?
예수를 믿으면 먼저 우리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죽음에 매여 있는 인생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요? 나라를 통일하고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졌던 진시황은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 행동 때문에 결국 일찍 죽게 됩니다. 수온을 신비한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여겼던 당시의 무지 때문에 궁궐에 연못을 파고 수은을 채워서 종종 목욕을 하곤 해서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에게 죽음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공포의 비참함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왜 우리는 놀라운 복을 누리지 못하나요? 육신의 욕망에 너무 매여 눈에 보이는 쾌락과 이 세상의 삶을 너무 열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믿으면 그뿐 아니라 죄책감과 정죄감으로부터도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행위로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또 동시에 늘 실수하고 잘못하기에 이 자책감으로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죄책감과 정죄감에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셨다는 은혜보다 복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찾게 됩니다. 자기 안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 사람은 반드시 허무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학만 가면, 자격증만 따면, 결혼만 하면, 그런 목표들은 이루자마자 허무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목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께 조건 없는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사랑 받는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목마른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무리 좋은 부모도 자녀에게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도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인간은 끊임없이 영혼을 채울 대상을 찾아 헤매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위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주셨는데, 우리는 이것을 선물로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합과 같이 당장의 이익과 명예와 이 땅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아합과 같은 태도는 어떻게 나타나나요? 모든 것을 세상적 계산과 이익으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예수 믿는 척하다가 세상에서는 이익이 우선이고 모든 삶의 결정들의 이유가 돈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예전에 아버지 회사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망했고 하나는 재기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알짜 회사였습니다. 한쪽이 망하니까 명의 문제가 생겨서, 두 번째 회사를 친한 장로님의 명의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걱정 말라고 위로하던 그 장로님이 회사를 꿀꺽해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하셔서 제가 목사가 된 것이긴 합니다. 하나님이 아합도 사용하셨듯이 장로님을 사용하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아합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기회를 주셨고, 아람 왕만 죽이면 이스라엘은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는데 아합은 타협합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다시 쳐들어올 때 포위된 사마리아 성 안에서 먹을 것이 없어지자 아이들을 잡아먹습니다. 오늘 이 집 아이 먹고 내일 저 집 아이 먹기로 해서 한 집 아이를 먼저 먹었는데 다음 날 옆집은 아이를 숨겼습니다. 그래서 재판해 달라고 왕에게 나오는 비참한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지금 악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은 우리 인생에 큰 은혜를 주셨는데 사람들은 죄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고 타협합니다. 은혜가 어떻게 더 풍성할 수 있습니까? 사실 여러분은 스스로 유혹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허용합니다.
술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이 집에 술 담배를 쟁여 놓고 보기만 하고 먹진 않겠다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들은 야금야금 우리의 영적 뿌리를 파괴합니다. 처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시작하지만 자꾸 악으로 이끕니다. ‘이것은 소소하니까 하나님이 이것은 건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바꾸고 싶지 않다는 태도입니다. 그 악이 나를 침범하고 지배해 내 가족과 내 인생을 파괴해도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쾌락이 너무 좋아." 여러분, 이것은 아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복을 더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큰 자유가 임해 우리가 사랑하고, 기쁨이 풍성해지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아합처럼 반응한다면 열매는 커녕 중간에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의 구원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요?
2. 근심하지만 회개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우상 숭배자의 구원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가요? 근심하지만 회개하지 않습니다. 읽지는 않았지만 본문 후반부에 이상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합에게 경고하시고자 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선지자가 친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나를 때리라"고 하는데 친구가 거부했더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고 사자를 보내서 죽게 됩니다.
또 다른 친구에게 때리라고 하자 이번에는 때려서 선지자가 심하게 상합니다. 이 상처를 가린 뒤 왕에게 찾아 가서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전쟁 중에 포로를 맡게 되었는데 제가 딴 일 하는 동안에 포로가 도망을 갔습니다. 생명을 대신하거나 은 한 달란트를 내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자 왕이 “네가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그대로 당해야 한다”고 정답을 말합니다.
[42] …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나님이 전쟁을 이기게 하셨고 아람 왕만 죽이면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지는데, 아합이 얄팍한 계산으로 아람 왕을 놓아줌으로 그 생명을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43절입니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근심하고 답답하고 걱정하고 끝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신약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7:5에 가룟 유다가 어떻게 되었나요?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근심하고 답답하다가 스스로 대가를 치렀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용서할 만한 죄, 용서하지 못할 죄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였다면 예수를 팔고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모르고 그랬습니다" 회개했으면 구원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태도가 존재합니다. 한 가지는 우상 숭배자들의 종교적인 태도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며 결과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감시하고 징벌하는 신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 벌주는 신으로 여깁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은혜는 세상 어떤 종교에도 없는 단어입니다. 기독교에만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의 어떤 행위에도 관계없이 하나님이 일정하게 보이시는 반응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종교인들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용서를 조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받을 만한 충분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만약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가 성실하게 살고 있지 않아서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생각하는 것은 아합과 같은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나쁜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합처럼 근심하다 끝나는 것입니다. 조건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룟 유다처럼 심한 죄를 저지른다면 그 죄책감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죄도 십자가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용납과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위기가 임하면 근심하고 절망합니다. 자기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적 은혜를 받은 사람은 회개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계신가요? 십자가는 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금석입니다. 십자가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십자가로 용서하셨느냐 하면,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연약하다는 것은 남보다 조금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능력하다는 뜻입니다. 불가능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용납이나 은혜를 받을 아무런 조건이 없는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불가능한 자들을 위해 예수를 죽이셨습니다. 한 단계 높은 단계는 무엇인가요?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죄인을 위하여 의인을 죽이셨습니다. 그 다음 높은 단계는 무엇인가 하면,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이 원수된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죽이심으로 하나님과 화목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5장이 보여주는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자격을 잘 갖추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주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기도 많이 했으니까, 성실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겠지"라는 생각은 십자가를 완전히 반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불가능하고 죄인이고 원수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합과 같은 태도를 가진 자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혼내고 야단치고 죄에 대해 벌주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본인의 잘못과 죄악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우상 숭배자는 절대로 회개하지 못하지만, 여러분이 회개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인 분입니다.
우리는 파멸로 이끄는 우상 숭배로부터 벗어나 십자가의 은혜에 반응하여 참된 회개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 안의 아합적인 모습이 나를 우상 숭배로 이끌 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나의 쾌락과 세상의 이익을 포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