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강해 13 12.13-16 우매한 자의 결과
2026년 3월 29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16]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솔로몬이 죽고 새 왕이 즉위했습니다. 솔로몬은 살아있을 때 심각한 고민을 했고 그것을 전도서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전도서 2장 18절과 19절을 보시면
전 2:18-19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9]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로 만든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솔로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당연히 솔로몬보다 못한 사람이 이어 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가 뻔할 것을 예상하였기에 자기가 이룬 모든 것을 미워하기까지 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뒤 르호보암이 그 뒤를 이었고, 우매한 르호보암 때문에 나라는 둘로 쪼개져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통치하게 되었는데 그 또한 우매한 자였습니다. 즉 두 명의 우매한 자들이 나타나, 솔로몬이 이룬 찬란한 통일 왕국을 한 세대만에 무너뜨린 것입니다.
'암'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백성이 번성하다,'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다투다'라는 뜻입니다. 두 사람 다 솔로몬과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이었지만 둘 다 우매하여 나라는 갈라졌고 르호보암은 17년, 여로보암은 22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우매'는 전도서에만 거의 나오고 비슷한 뜻인 '미련하다'는 잠언에 훨씬 더 많이 나오는데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의 반대말은 지혜 혹은 명철이라고 번역되며 잠언 9장 10절에 그 의미가 나옵니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는 것이 지혜이고 명철이라면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알지 못하면 미련하고 우매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미련하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 믿고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미련한 것입니다. 지혜의 속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1차원적인 세상인 ’땅’에서 감각(눈)으로 인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은 항상 하늘의 세계를 동시에 언급하는데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가끔 성령을 보았다거나 들었다거나 느꼈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성령은 하늘에 속한 영적인 분이시라 감각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하늘 세계는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이야기합니다. 3, 4월이 되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이 세상의 원리가 있듯이 하늘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4월에 갑자기 한파 걱정을 하며 코트를 마련하는 행동은 미련한 것입니다. 하늘에도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 원리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원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혜는 하늘의 원리가 세상에 적용되는 이치를 받아들이고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며, 주인이시라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존하고 그분의 말씀에 복종해야 된다는 것이 제일가는 원리입니다.
또한 인간 사이에도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랑의 행위를 함으로 다른 사람을 내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 이 원리가 바로 의 또는 공의입니다. 이 원리를 따르면 질서가 갖추어집니다.
보이지 않지만 이 질서를 받아들여서 '절대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존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사람을 불의하게 대우하지 않고 그가 받아야 할 가장 좋은 모습으로 반응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이 지혜는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나를 만드셨구나. 그분은 절대자이시고 하나님이 원리로 제공하신 것을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구나' 받아들이게 되고, 그 원리대로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가 될 욕심에 남을 이용하지 않고 반대로 말씀에 순종하며 주위에 공의를 베풀어 사랑하는 지혜를 선택하게 됩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어서 하늘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의 육적 논리에 따라 살아갑니다. 육적인 것에 사로잡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욕망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한 우상을 자꾸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나의 욕망의 대상으로 상대를 악하게 대하는 불의를 행합니다. 선지서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종합해 보면 ‘우상숭배와 불의’ 이 두 가지가 결국 이스라엘 멸망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영적 원리의 지혜와 그 반대인 우매의 정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우매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우매한 자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우매한 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1. 분열과 갈등을 가져옵니다.
첫 번째로 분열과 갈등을 가져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여로보암은 아직은 신하로서 백성들의 대표로 왕인 르호보암에게 찾아와서 고역을 가볍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영광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건축을 했고, 그것은 백성에게 고역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대답이 무엇이었나요?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르호보암이 노인들과도 상의하고 젊은 사람들과도 상의했습니다. 노인들은 40년 동안 솔로몬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해 고생한 백성들에게 평안을 주면 그들도 잘 섬길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으나 젊은이들은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갖지 못하도록 압제하라고 충고했고 르호보암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매함의 결과인 교만함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나는 불완전한 피조물이자 죄인이라는 근원적 인식이 없는 모든 인간은 다 교만합니다. 교만은 '나는 잘났어. 나는 모든 걸 잘 해' 이런 태도가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자기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판단의 근거이며 나를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고통과 아픔을 호소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채찍보다 더 강한 전갈로 벌을 내린다는 결정에는 르호보암 자신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고 남을 압제하여 자기의 욕망과 힘을 강화하는 데 사용합니다.
왕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나밖에 없으니까 공감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나의 압제와 욕망의 대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교만한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잘 알고 계신가요? 우리도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면 옛사람의 본질적 교만으로 나밖에 알지 못하고 남의 아픔과 연약함은 공감하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불의하게 대하게 됩니다. 우매한 모습입니다. 우매한 자의 또 다른 모습이 21절에 나와 있습니다.
[2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전갈과 채찍으로 때린다는데 어느 백성이 변함없이 충성하나요? 백성이 반역을 꾀하자 르호보암은 전쟁을 선포합니다. 10 대 2라는 객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매한 자는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폭력적으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들은 갈등과 다툼을 만들어냅니다. 교만하니까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따라 반응하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화내고 분열케 합니다. 우매함의 결과입니다. 우매하면 고통이 수반되기에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부 싸움도 사실 우매해서 생깁니다. 우매해서 나만 잘나서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분노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폭력적인 말을 사용합니다.
만약 이런 갈등과 다툼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회개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공동체가 나눠지나요? 더 심각한 사실은 갈등의 시발점이 된 사람들 스스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우매하다고 깨달으면 이미 우매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내가 우매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틀린 적이 한 번도 없고 늘 남이 틀리기 때문에 남을 지적하고 있다면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르호보암의 모습입니다. 한 나라를 맡겼는데 열 지파를 떼어내고 싸움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다행히 전쟁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솔로몬의 우상숭배의 결과입니다. 우상숭배로 공동체가 분열되고 파괴되었습니다. 르호보암만 미련하고 우매한 자가 아니라 솔로몬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지만 힘이 강력해지자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세상의 것을 의존하다가 결국 말년에는 지혜를 잃어버리고 우매한 자가 되어버렸고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우매함은 무엇을 만들어내나요?
잠 18:6-7 [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 [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우매한 자들은 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나요? 잠언에 여러 이유가 나오는데 첫 번째 이유는 교만함입니다. 잠언 24장 9절을 보면
잠 24: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교만하게 나만 잘났다고 외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고 결국 분열이 생기게 됩니다.
두 번째로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매한 자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으면 이미 지혜자의 자리에 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매한 자는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잠 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백 번 천 번 말해서 안 바뀌는 자도 미련한 자이지만, 안 바뀌는데도 계속 백 번 천 번 말하는 자도 미련한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피우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 상대를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매한 자들은 왜 갈등을 일으키나요? 갈등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 29장 9절입니다.
잠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은 그침이 없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기가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갑니다. 왜 다툼을 그치지 못하나요? 교만으로 인한 결과가 자기 잘못인지 모르고 싸움을 이기는 것으로 승리와 영광을 얻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매한 자와 함께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지혜로우신가요? 여러분이 우매하다고 깨달으셨다면 ‘우매함으로부터 벗어나 저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전달될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그 은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우매한 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2. 사람들을 우상 숭배로 이끕니다.
두 번째로 우매한 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이끕니다.
[17]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리지만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다스리게 됩니다. 능력이 강해서였나요? 열왕기상 11장 31절을 보시면
왕상 11: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열 지파를 받았는데도 우매함으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당시는 지금 한국처럼 휴전선으로 남북이 갈라진 상태가 아니었기에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1년에 세 번씩 남유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이스라엘 북단끝 단, 남단끝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워서 예배드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출 32:3-4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몇 백 년 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어서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된 이 일을 알고 있던 자들이 왜 똑같은 짓을 했나요? 우매한 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은밀한 욕망을 해결 받기를 열망하기 때문입니다. 고대나 현대나 금은 엄청나게 좋은 겁니다. 금광을 파면 온통 금 천지인 것이 아니라, 1톤의 흙을 파내어 그 안에 10g만 금이 있어도 금광입니다. 그 정도로 희귀합니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낸 것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열망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지 못하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열망하며 의존합니다. 즉 믿음은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눈에 안 보이지만 마귀는 세상에 강력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보시면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
마지막으로 이 세상의 강력한 풍조 때문입니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
세상 풍조는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문화, 유행 등으로 다른 말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입니다. 이를 통해 마귀가 우상숭배에 빠지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세상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유튜브는 너무 영향력이 강력한데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이 유튜브 사랑이 세계 1등입니다. 한국인 월평균 시청 시간이 70시간이고 2등인 태국은 약 40시간에서 45시간입니다. 틱톡, 인스타, 다른 매체들의 연관도 따져 봐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10대들의 월평균 시청 시간은 100시간 이상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사람이 1등을 하는 또 다른 컨텐츠는 쇼츠입니다. 쇼츠는 긴 영상이 지루해서 못 보는 사람들에게 자극적 도파민을 분비하는 짧은 영상입니다. 이런 심리를 아는 한국 사람이 쇼츠 콘텐츠로 세계 1위 구독률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김프로' 채널에는 긴 동영상이 하나도 없고 10초 내지 15초짜리 쇼츠만 있는데 구독자 수는 1억 3천만 명으로 1년 수익이 2천억원 이상입니다.
이 외에도 모든 쇼츠 시청의 30% 이상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이런 춤과 노래를 보는 것은 어떤 우상 숭배일까요? 눈으로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은 심미욕이고 성욕입니다. 또한 자아 이상의 투사 욕구입니다. 나는 저렇게 아름답고 멋지지 않지만 욕망을 투여해서 마치 내가 그들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트렌드를 못 따라갔다가 소외될까 봐 두려워하는 소속감에 대한 욕구입니다.
두 번째로 25% 정도를 차지하는 유튜브는 먹방 크리에이터입니다. 사실 이것도 식욕 대리 배설의 욕망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먹방이 코로나 시기에 엄청 늘어난 것으로 보아 사회적 고립감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라고도 합니다. 혼자 밥 먹기 외로우니까 켜놓고 마치 같이 밥 먹는 느낌을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많이 시청하는 쇼츠는 유머나 코미디입니다. 우울하고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가는 현실 도피적 욕망입니다. 또 하나는 남이 실수하거나 부족한 것을 보며 안도감을 얻는 우월감이라는 욕망입니다. 현실에서는 실패하면 고통스럽고 불안하지만 남이 실수하는 것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 소속감의 욕구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용어 같은 것을 사용함으로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았다고 증명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사실 쇼츠를 보면서도 우상숭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우상이 투영되는 방식이 다르기에 개인마다 알고리즘이 다른 것입니다. 쇼츠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쇼츠를 보는 순간에도 '내가 우상 숭배 할 수밖에 없는 자구나. 나는 미련하고 우매한 자구나' 인정하며 기도하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이 우상숭배에 매여 비참하게 살다 끝나지 아니하고, 우매함에서 벗어나 참 지혜를 가져 아름다운 은혜로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자 되게 해 주세요" 기도하심으로 지혜의 길에 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