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우리는 왜 매년 부활절을 기념해야 하나요?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심리적, 관계적 문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죄라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표면적 문제들은 부차적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영적인 문제인 죄가 해결되었고 인간이 영원한 죽음에서 자유를 얻었기에 우리는 그것을 매년 기념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부활이 가져오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1.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v.11
그렇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첫 번째로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마리아는 예수님으로 인해 인생이 변한 인물입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너무나 슬펐는데 지금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하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왜 무덤까지 와서 예수님을 기억했을까요? 마가복음 16장 9절입니다.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달라는 동네 이름이고 마리아는 당시에 흔한 여성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것은 귀신이 일곱 마리라는 뜻이 아니라 완벽하게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마귀적인 영적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아마 자해하고 고통 속에 잠도 자지 못하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 여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이 여인은 예수님이 만나 자유케 되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한 귀신 들린 여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마리아같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헬라어 마리아는 히브리어 미리암과 동일한 이름이며 이 어원은 구약 성경의 ‘마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샘물을 마시려고 할 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자 그 물을 ‘마라의 샘물’이라 불렀습니다. ‘기쁨’이라는 뜻의 나오미가 남편과 자식들을 잃어버리고 고향에 돌아올 때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하자 자신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고통, 또 고통이 가져오는 쓰디 쓴 슬픔을 뜻합니다. 이상하게도 예수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이 마리아들은 모두 죄로 인해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을 보여줍니다.
마리아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였으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적 어둠으로부터 자유를 주실 때만 우리는 더 이상 슬프지 않고 참된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2.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vv.12-16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지금 무덤 주변에 천사 두 명이 서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어디 계시냐고 울며 이들에게 물어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또 다른 사람을 보게 됩니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영적 어둠을 보여줍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전과는 다른 몸을 가지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통해 우리는 은혜로만 영적 눈을 뜨게 됨을 보여주고자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을 무엇으로 착각하나요? 15절을 보시면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한 것도 구약의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자 의도적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구약의 어떤 동산에서 사람들이 영적인 눈을 잃어버리고 어둡게 된 사건이 무엇인가요? 바로 에덴동산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잃어버리고, 육적인 눈만 가진 비참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입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귀는 너희 눈이 밝아진다고 유혹했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육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추구하는 눈만 밝아지고 영적으로는 장님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이 밝아지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결과는 창세기 3장 7절에 나와 있습니다.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인간은 그때부터 육적인 것으로 자기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능력이 많은지, 키가 큰지, 예쁜지, 끊임없이 육적인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니까 인간은 늘 수치를 느끼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도 무화과 잎을 엮어 수치를 가리고자 했듯 모든 인간은 자기를 부풀리고 치장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살도록 만드셨는데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자 아무것도 아닌 육체만 남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끊임없이 육적인 것으로 자신을 비교해서, 남이 갖지 못한 것을 조금이라도 가지면 교만해지고, 가지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낍니다.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직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변화가 나타납니다. 16절을 보시면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주실 때에야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아들을 죽이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의 육적인 가치로 자신을 재단하며 실망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 하나님이 저를 바라보시듯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며 그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3.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vv.17-18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1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17a]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부활체에 손을 대면 안 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에 보면 예수님을 만진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마 28: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렇듯 예수님을 붙들고 경배한 자들도 있었던 것을 보면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은 만지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돌아가셨던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마음이 어땠을까요? 다시는 예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들은 Do not hold onto me. 즉 ‘꼭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하지 마라’의 뉘앙스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하늘로 승천하셔야 됩니다. 17절 중반절입니다.
[17b]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이 올라가셔야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시며, 무엇보다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또 무엇을 당부하시나요? 17절 하반절을 보시면
[17c]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이전에는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부자 관계였고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죄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예수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활로 인해 죄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활로 인해 영적인 눈이 열려 육적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