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부활절은 매년 반복되는 절기입니다. 만약 성탄절만 있고 부활절이 없다면 아마 지금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신 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버리시고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붙잡혀 가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마가복음 14장 50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막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들은 예수님이 얼마나 강력한 분이신지 경험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말씀으로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고 떡 두 조각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군병이 무서워서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일곱 귀신에 들렸다가 자유하게 되어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의존하던 막달라 마리아는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 왔다가 시신을 찾지 못하자 어떤 태도를 보였나요? 요한복음 20장 11절을 보시면
요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 부활하시지 않았으면 제자들 역시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울며 좌절했거나 세상이 무서워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우리는 예수라는 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주에 설교를 준비하다가 문득 ‘내 인생에 예수가 없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제가 목사라서가 아닙니다. 목사이기 전에 경험했던 깊은 어두움과 절망에서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지나고 있던 제자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살아나셔서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50절과 5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전까지 울고 도망가고 낙담했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어떻게 변했나요? 52절과 53절입니다.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들의 예배에 극적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들은 예전에도 늘 성전에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뒤의 예배는 아마 그들이 인생 내내 드렸던 어떤 예배보다 가장 기쁨의 절정을 경험하는 예배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는데 또한 그 분이 다시 나타나시고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으니 극적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진짜 하나님으로 경배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부활이 예배의 절정인가요?
왜 예수님의 부활이 예배의 절정인가요?
1.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vv.44-48
첫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44절 말씀입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은 구약 성경 전체입니다. 구약 전체가 ‘나’를 가리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즉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실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예수님은 살아서 제자들에게, 심지어 십자가 전날까지도 본인이 핍박을 받고 죽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모든 일이 일어났는데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나요? 낙담하고 절망하고 도망가고 울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아무리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무기력하게 죽는다는 것을 인간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신이 강력하고 완전해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이기를 원합니다. 특히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한계인 죽음을 극복한 존재이기를 원하기에 예수님의 죽음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써진 구약 전체가 이야기해도 인간이 절대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요? 45절을 보시면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됩니다. 성경을 읽고 스스로 마음을 열어서 예수님이 나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자연물이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을 강렬하게 경험한 제자들도 성경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부라서 성경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해서 그랬을까요?
그렇다면 성경을 통째로 암기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히브리어에는 운율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구약 성경을 노래처럼 반복하면서 외우게 합니다. 무엇이 생각날 때 찾아보는 수준이 아니라 암송보다 성경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무엇을 했나요? 예수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확신 가운데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열리지 않은 마음의 틀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성경을 만 번 읽고 전체를 암송해도 예수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처음 하신 것이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같은 것을 설교했습니다. 구약을 더 많이 설교했는데 구약 설교에 예수님 이야기를 안 한 적이 없습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의 구원을 설교하는 설교가 너무 희귀해서, 창세기도 예수님, 사무엘 상하도 예수님, 사사기도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성경 전체가 예수님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여러분이 깨달으시도록 한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듣던 구약 설교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보면, ‘이렇게 살면 안 돼.’ 믿음을 발휘한 사람들을 보면, ‘이렇게 살아야 돼’하며 너희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훌륭하게 만드신다며 자주 인용되던 것이 다윗의 물매로 골리앗을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물매를 정확히 꽂을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물매를 열심히 연습하라는 말에 학생들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영웅이 되고 싶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높아지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날 예수님께 오른편과 왼편에 서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러분도 제자들과 같은 요청을 하고 있다면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눈을 떠서 성경이 진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전에는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가 하나님을 알고 신학교에 가기로 하고 나서는 훌륭한 목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방향만 살짝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보다 열심히 기도해도 신학대학원 등록금이 없어서 입학이 취소될 뻔 하고, 능력은 없는 깊은 괴리감에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깊고 어두운 고민의 시간조차 하나님이 제 안에 있던 잘못된 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깨뜨리시기 위해 일하신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배웠던 하나님과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왜 이렇게 다른지에 대한 갈증은 성경을 알고 싶은 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 도와주고 나를 성공하게 해주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니까 성경도 그런 부분만 찾아보면서 잘못된 확신을 키워가고, 그러나 ‘이게 아닌데’라는 마음이 한켠에 계속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누구신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 들어가서 아침마다 시편으로 큐티를 하다 시편 119편 18절을 발견하고는 전율이 일어서 이것으로 매일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제가 당시 읽은 개역판에는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앉아서, 누워서, 길을 가면서, 잠들면서, 모든 순간에 이 구절을 100번, 200번씩 되뇌이며 기도하고 한국말로만 하기가 힘들면 영어로도 외웠습니다.
(NIV) Open my eyes that I may see wonderful things in your law.
이렇게 단순하게 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때는 단순하지만 힘이 놀랍습니다. 다른 생각이 안 나고 생각이 한 곳으로 모이면서 은혜가 임합니다.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이 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알지 못하던 것을 눈이 열려서 보기 시작하자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구원의 이야기라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예수 앞에 선 내 영혼이 얼마나 어둡고 죄로 망가졌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제가 어떤 것을 궁금해 하며 길이 막혔을 때 하나님이 어떤 책을 만나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어떤 상황으로 인도하시고, 하나의 단서를 발견하게 하시며 길을 여셨던 것입니다. 그 중 가장 강렬한 계기가 바로 ‘구약의 모든 말씀이 나에 대해 증거하고 있으며 이것이 이루어졌다’는 본문 말씀입니다.
시드니 그레이누스라는 미국 교수님의 책을 읽다가 큰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구약의 모든 말씀이 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지금의 기독교는 구약을 설교하면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예수님 이야기가 빠지면 안식일에 유대교 회당에서 하는 설교나 주일에 교회에서 하는 설교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직접 말씀하셔도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자들 눈이 열렸더니 그제야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46절과 47절입니다.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이것이 구약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제자들이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48절에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제야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기적도 봤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음이 열려 십자가에 죽었다 살아나신 분이 진짜 하늘의 하나님이시며, 이 분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서 믿게 되면 이제야 그들이 증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기도하셔야 됩니다. 제가 20년 전에 했던 기도, ‘내 눈을 열어 예수를 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시며, 죄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지 깨달아 예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고 누웠는데 잠이 안 오면서 20대 때 했던 기도들이 하나씩 생각났습니다. 어느 예배당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했던 기도도 생각나고, 지하철을 타고 가며 했던 기도도 생각나고, 잊혀졌던 기억들 가운데 ‘해 주세요 해 주세요’의 기도가 아닌, 성경 구절로 했던 기도들이 떠오르면서 이 기도들이 다 응답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학기부터 칼빈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 중에 한 전도사님이 연신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감동이 주를 이루는 간증회도 아니고, 강의인데 왜 우시나 나중에 여쭤 보았더니 원래 주간반을 신청했는데 막판에 일이 생겨서 야간으로 전과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일이 틀어져서 힘들게 되었는지 불평했는데, 제 수업을 들으려고 전과하게 되었나보다고 그것이 감사해서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고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이런 내용을 처음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예수님 이야기를 해놨는데 아직도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똑똑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예수를 못 믿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신학과 교수님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교가 하버드 옆이라 하버드에서 과목을 들을 수 있었어서 아는 목사님께서 수업을 들으시고는 전해 준 이야기입니다. 천재적으로 똑똑하고, 모든 책, 모든 자료, 성경 어떤 구절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는데 예수만 안 믿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를 만나고 계신가요?
부활절 때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나의 죄를 해결하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감동의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다면 오늘부터 기도하셔야 합니다. 잘 때나 깰 때나 ‘내 눈을 열어주세요!’ 기도하실 때 반드시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 성경 전체가 보여주는 wonderful things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이 예배의 절정인가요?
2. 예수님의 부활로 성령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v.49
두 번째로 왜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이 예배의 절정인가요? 예수님의 부활로 성령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49절 말씀입니다.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성령은 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만 오실 수 있나요? 인간의 죄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이시고, 거룩한 하나님은 죄인과 함께하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와 속성이 다른 존재에 대해 하나님은 소멸시키시는 심판주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달라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죄 있는 우리가 태워 없어지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존재가 보존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해서 죄를 해결하시는 방법으로 예수를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죄를 해결하고, 그 죄가 완전히 해결되었음이 부활로 증명된 다음에야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성도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단순히 죄를 해결하고 끝이 아니라 죄가 해결된 존재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성도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 흙 즉, 먼지입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하나님이 생령, 성령을 넣으셔서 살아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다시 먼지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 흙먼지에다 금칠을 하고 꾸미면서 살고 있지만 누구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거룩하신 성령이 다시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질 그릇 가운데 보배를 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오신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재탄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5절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한 번 태어난 것은 육체적 탄생인데 이것은 숨 쉬는 흙 덩이일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안에 하나님이 새로운 탄생을 시작하십니다. 흙덩이에 성령으로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새 창조’라고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물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다고 해서 예전 사람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흙인 옛사람의 존재 위에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어 이중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창조물’로 바라보십니다. 죄가 해결되어 새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이 세상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은 사람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설교 대신 인간관계 시리즈, 심리학, 경제학 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성공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라고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해결하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정말 성령이 우리의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면 관계가 새롭게 됩니다.
인간관계는 너무 어렵고, 말실수하고, 억울한 일이 많은데 몇 가지 법칙을 배운다고 해결될까요? 이것은 영적 원인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고통하고 절망합니다. 심리학을 아는 것보다 죄에서 벗어나야 진짜 만족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어떤 싸움이 있나요? 옛 사람이 여전히 너무 강력하다는 사실입니다. 옛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에베소서 4장 22절을 보시면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쉬운 성경은 조금 쉽게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쉬운성경) 옛 사람은 한없는 욕망으로 점점 더 눈이 어두워져 더 악하고 더러운 모습이 될 뿐입니다
‘한없는 욕망’이 바로 인간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재밌는 것을 보고, 좋은 데를 가도 금방 싫증이 나서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은 우리 눈을 점점 어둡게 만듭니다. 나중에는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성령으로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저 이렇게 살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입니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는 ‘하나님처럼’입니다. 즉 하나님과 똑같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는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미움과 불만이 없이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의 90%는 사라질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은 영적이라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얼마나 새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성령의 열매’로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입니다.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영적으로 우리를 다스리셔서 의롭고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가시면 결과가 열매로 나타납니다. 아홉 가지 열매는 세 개씩 묶어서 하나님, 이웃,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이를 어떻게 점수화할 수 있는지 마지막 세 열매인 충성, 온유, 절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충성은 말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본인이 말을 다스릴 수 있는지, 말실수 안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온유는 분노를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실제로 화를 내는 것과, 짜증, 삐짐, 불평도 다 포함해서 스스로를 점수 매겨 볼 수 있습니다. 절제는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모두의 고민일 것입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유튜브 보는 것. 우리에게 과연 이런 욕망들을 이길 소망이 있나요?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의 인생을 지배하시며 새 사람을 성장시켜 주시고 또 자연스럽게 그 결과로 열매를 맺어 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소망적인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분노를 조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여러분을 온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기도하셔야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부활로 제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셔서 제가 새 사람으로 살고 제 주변 사람들도 열매를 함께 맛보는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 열매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