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8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초대교회의 놀라운 점은 성도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교회가 세워지자 성도들이 하나 된 것은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죄가 없는 거룩한 모습과 또 하나님처럼 사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장 32절부터 35절에는 2장에서도 나왔던 대로 서로를 위해 자기 재물을 희생하고 섬기는 모습이 반복되어 기록됩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남을 위해 자기 재산을 팔아 나눠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왜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나요? 이들이 이제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대학 보내고 삶의 기반을 만들어 준 뒤 그동안 들어간 돈이 3억 5,200만 원이라면 그것을 돌려받기를 기대하는 부모가 있나요? 혹은 갚아야 되는 부담에 시달리는 어린 자녀가 있나요?
물론 최근에는 젊은 부부들이 각자 통장을 관리하는 등 달라지기도 했지만 온전한 가족이라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한테 나누어 돕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더 모범이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6절과 37절을 보시면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요셉은 사도행전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후에는 요셉이라고 하지 않고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인 바나바로 불립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많이 지었는데, 이것은 그 대상을 인격화한 모습이었습니다. 즉 ‘위로’가 사람의 형태를 가진다면 요셉일 정도로 그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받고 회복되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이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했을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로하고 은혜를 끼칠 뿐 아니라 재산까지도 팔아 나누어주니 사람들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었던 공동체를 뒤흔드는 위험이 발생합니다.
무엇이 교회를 위협하는 요소인가요?
1.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vv.1-6
그렇다면 교회를 위협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재산을 파는 것이 의무나 강요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존경받는 일이 되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았습니다. 그 중에는 돈으로 명예를 사고 싶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근원적으로 욕심이 많아서 손해를 최소화하며 존경도 얻고자, 일부를 마치 전부인 것처럼 가져왔습니다. 구약에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입니다.
수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온전히 바친 물건’이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온전히’ 받으시기 원하셨는데 아간은 자기 욕심을 위해 탈취하고는 사람과 하나님을 속이려 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욕심으로 명예도 얻고 돈도 챙기기 위해서 하나님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인생 내내 우리가 가장 쉽게 자주 접하는 욕심이 사람의 인정과 돈 욕심입니다. 자기를 돌아보십시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얼마나 거짓말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거짓말은 안 했더라도 진실을 숨기고 있나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고 피곤하게 만듭니다.
모든 사람에게 본질을 다 감출 수 없기에 밖에서 상냥하고 깔끔한 사람이 집에서는 소리 지르거나 지저분한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질이어서 그렇습니다. 또한 돈과 관련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늘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사탄은 이 인간의 욕심을 통해 교회의 본질을 흔들고자 합니다. 교회 공동체의 본질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높으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끌어내고 사람을 세우고 돈 위에 교회를 세우려고 하니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명예와 돈에 대한 욕심은 우리도 다 있지만 왜 교회에서 심판이 임하지 않나요? 하나님이 한 번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이것으로 붕괴되고 무너질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의미로, 하나님이 교회에 대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하나님이 교회의 본질을 가르쳐주시는 이 현장에서 베드로는 ‘왜 욕심을 냈냐’고 묻지 않고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결국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특별히 마귀적 영향력이 교회를 무너뜨리는데 욕심이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인가요? 요한복음 8장 44절에 말씀하신 마귀의 본질 때문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본질 자체가 욕심인 마귀의 모습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오버랩 됩니다. 욕심 때문에 다른 존재를 누르고 싶고, 나는 괜찮은 존재인양 거짓말하게 됩니다. 즉 겉모습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지만 이런 인간을 통해 마귀가 초대교회에 침투하고 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고 돈을 기반한 욕망이 자리잡으면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은 한 사람의 영광과 능력을 강조하고 부족함은 감추면서 마치 예수님처럼 가장합니다. 제가 왜 저의 실패와 연약함을 자주 말씀드리나요? 저나 여러분이나 죄의 본질 안에 고통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함께 누리는 여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제가 과거에 실패했던 간증을 했는데 어떤 성도가 왜 실패 많이 한 사람에게 설교를 시켰냐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목사는 완전해야 되고, 예수 잘 믿으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돈 때문에 두려워하는 욕망으로부터 하나님께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회개하고 은혜로 나가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가지고 있던 땅이 원래 하나님 것입니까? 아닙니다. 4절 상반절을 보시면
[4a]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원래 자기 것이고, 팔고 쓰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는데, 무엇이 문제였나요?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 사람들의 인정을 얻고 욕심도 채우려고 했던 것이 문제입니다. 4절 하반절에
[4b] …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의 삽비라는 사실 불신자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교회도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미국 교회에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 정착하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한인 목사님들이 첫 공항 라이드부터 시작해서 집, 학교 등록, 장 보기 등 세심하게 섬기십니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과, 한국 사람들 만나고 한국 음식 먹으러 교회 오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내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라는 본질이 흐려지고 인간이 힘을 가지면 세상 모임보다 더 못한 모임이 되어버립니다. 5절과 6절에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본질을 가르치시기 위해 즉각적 심판을 행하십니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인간이 힘을 가지고 인간이 드러나고 인간이 높아지는 등 잘못된 기반에 서면 교회는 계속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에 계속되기 위해서 우리가 바라야 될 것은 하나님 한 분만의 영광,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돈이 많아서 망하기도 합니다. 한 교회는 돈이 너무 많아서 목사님이 펀드 투자하고 땅 사다가 날려서 재판이 붙어서 쫓겨났습니다. 몇 백 명이던 교인 중 10명이 남았는데 이들은 절대 떠나지 않습니다.
남은 15억을 야금야금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회에서 계속 목사를 파견하는데 교회는 목사를 쫓아내면서 오히려 노회에 10년째 재판을 걸고 있습니다. 돈이 없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교회입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쌓아둘 것이 아니라 내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나를 자랑하는 인생이 되고자 한다면 인생은 늘 피곤합니다. 돈으로 안정을 찾고자 하면 늘 부족하고 불만입니다. 성도는 교회에서뿐 아니라 인생의 근원 자체가 바뀌어야 되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그것을 확인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더니 초대교회 성도 개인의 목표가 다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의 근거가 돈이었다면 어떻게 재산을 팔 수 있었을까요? 우리 역시 그 자리로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한 번에 재산을 팔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한 번 있던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을 드러내고, 인생의 근거를 돈으로 삼은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 ‘제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 원하고, 돈이 아닌 하나님을 근거로 삼기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무엇이 교회를 위협하는 요소인가요?
2.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vv.7-11
두 번째로 무엇이 교회를 위협하는 요소인가요?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7절과 8절 말씀입니다.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남편이 욕심을 냈더라도 아내가 정신을 차리고 안 된다고 했으면 되었을 텐데 유유상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욕심을 채우는 일에 마음이 잘 맞았던 것입니다. 9절 상반절입니다.
[9a]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
앞에서도 ‘성령을 속이려 했다’고 하고 여기서도 ‘주의 영을 시험하려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시험했고 그 하나님은 성령으로 교회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교회에 임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교회에 성령이 와 계신 것입니다.
이들은 신앙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지식이 없으니까 이렇게 행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부족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알 때 갖게 되는 태도를 ‘경외’라고 합니다. 경외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출애굽기 14장 31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경외’는 원어로 ‘두려워하다’이고 영어로는 주로 loving-fear라고 번역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어떠한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될 때 보이는 마땅한 반응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게 되자, 그 놀랍고 대단한 분을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없어서 느껴지는 두려움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면 복종하게 됩니다. 신명기 10장 12절을 보시면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가 어렵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니까 내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대부분 자기 욕심과 관계된 영역입니다. 어디로 이사할지, 집을 살지, 투자할지, 이것들은 기도로 알아낼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인생은 안전하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니까 시험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도와주셨나? 나쁜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나? 아닙니다. 의심될 때마다 십자가를 보셔야 됩니다. 나 같은 자를 위해 예수를 처참하게 죽이신 놀라운 은혜가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까 자꾸 하나님 뜻을 알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 땅의 인생은 제한된 인생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두려움과 마주합니다. 그러나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모든 게 다 잘 될까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게 됩니다. 이거 도와주시면 좋은 하나님, 문제 해결해 주시면 능력 있는 하나님, 이것은 불신자의 반응입니다. 여러분이 테스트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역사를 하나님이 뜻대로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믿음 없는 자들을 역사의 끝에 온전한 자로 만드실 약속대로 하나님은 개입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거짓말에 유혹당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야만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불안정할까요? 많은 혼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흔들리지 않음을 믿어야 우리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던 이들의 결국이 무엇인가요? 9절 하반절과 10절을 보시면
[9b] …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무엇이 증명되었나요? 하나님이 권능자이심을 시험하던 이들이 심판받습니다. 이 일이 왜 일어났다고 했나요? 초대교회의 순수성과 본질을 가르쳐주시고자입니다. 11절입니다.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것이 경외감의 근거입니다. 지금은 교회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욕심으로 거짓된 근거에 기반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 근거로 삼아 온전한 믿음을 가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