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6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설교의 후반부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전반부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예수님이심을 증거했고 후반부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1.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을 의미합니다. vv.32-37
첫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임을 의미합니다. 32절 말씀입니다.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바울 자신도 유대인이고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설교 전반부에서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바울을 구약 성경을 부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지금껏 이야기한 것은 구약의 약속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약속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것, 그 메시아를 통해 유대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백성 되게 만드시고, 또 그들에게 자유와 안식과 평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33절 상반절입니다.
[33a]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구약 성경 전체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약속의 성취인가요? 죽음 가운데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지 바울이 또 이야기를 합니다. 33절 하반절을 보시면
[33b] …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시편 2편 7절은 대표적인 메시아 시편으로 앞으로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의 악한 군왕들을 다 무릎 꿇게 하시고 메시아가 온 세상을 통치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자유와 은혜의 날이 임하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하시나요? 내 아들이 와서 이 일을 하신다고 약속합니다.
왜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메시아의 역할을 하게 하시나요? 인간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4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다윗에게 주셨던 약속의 핵심이 바로 앞으로 너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를 보낼 것이고, 그 메시아가 너희를 통치하는 날 너희에게 놀라운 은사와 축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과 이 은사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축복과 모든 좋은 것이 영원히 성취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통치자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핵심이 바로 다윗 언약입니다. 구약에서 다윗 언약은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사무엘하 7장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핵심적인 구절이 사무엘하 7장 13절과 16절입니다.
삼하 7:13, 16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영원, 영원, 영원입니다. 영원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즉 다윗을 통해 주어진 약속은 한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에게 약속을 주셨지만 이 영원한 통치를 완성하실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나셔서 영원한 통치자가 되신 것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5절에서 또 시편을 인용합니다.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시편 16편 10절도 메시아 시편입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는 절대로 죽어서 썩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메시아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우리는 영원한 저주와 죄악에서 벗어나 안식에 이를 수 있으며 예수님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통치자가 되시기 때문에 이제 이 약속들은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지금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과 같은 통치자를 기대했지만 이후에 다윗과 같은 통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어떻게 되었나요?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인간적인 최선의 기준이었습니다. 다윗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이나 이방 민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고 내적으로는 예배하는 백성이 되고 은혜를 누리는 자들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것도 모형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멋진 통치를 이루었어도 연약한 인간에 불과했고 결국 죽어서 썩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온전한 통치를 가져올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래서 37절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아닌 다른 구원자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정치 지도자를 구원자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좋은 통치자가 되어 일시적이며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통치가 임하는지 성경에 다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죄의 강력한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더라도 예수님이 반드시 구원해내실 것이며, 이 땅에서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식으로 인도하시며, 아무리 연약하고 답이 없는 자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품에 안아주실 것이 성경에 약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것이 확정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개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완전한 통치자이며 그 통치가 영원함을 받아들인 사람은 인생 가운데 어떠한 실패나 두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살아가며 우리를 두렵게 하고 낙심케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멀리 보지 않아도 나 자신을 바라보아도 실수가 많고 허점 많은 모습에 늘 절망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깨뜨리거나 훼방할 것이 없음을 성경이 약속하고 있고 이 약속을 확증하는 말씀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특별히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의 약속 중 35절과 38절, 그리고 39절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롬 8:35, 38-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위 나열된 상황들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경험했을 것입니다 환란, 곤고, 박해를 당하고, 기근에 처하고 옷이 없어서 벌거벗겨지는 적신의 고통을 당하고 위험과 칼을 맞닥뜨리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 앞에 처하고 권세자들과 마귀의 영적 영향력에 끊임없이 두려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약속하나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즉 ‘예수의 부활을 통해 내가 너를 영원히 다스리겠다. 어떤 것도 나의 통치를 훼방하지 못하고 내가 너를 약속대로 나의 백성 만들어 완성하겠다’는 약속의 확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으심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2.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됨을 의미합니다. vv.38-41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됨을 의미합니다. 38절 말씀입니다.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죄를 다 해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죄는 반드시 사망을 가져옵니다. 육적 사망뿐 아니라 영적 사망까지도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육적 사망도 치명적이고 고통스럽지만 가장 비참한 것은 영적 사망입니다. 영적 사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존재가 된 비참한 상황을 말합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 안에 생기를 넣으셨는데 그 생기가 바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생기가 떠나버린 인생은 흙입니다. 고급 황토가 아닙니다. ‘아파르’는 먼지로 후 불면 사라지는 의미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는 흙에 있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생명에 있습니다. 죄가 들어와 생명이 떠나버리자 인간의 가치는 흙과 같이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가치 없음을 인지하는 행위가 바로 수치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광스럽던 존재가 흙덩이가 되자 우리는 본질 안에서 자기 자신을 향한 지극한 수치를 가지게 되겠고 사람들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근원적 수치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시고자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죄와 관계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뭐라고 얘기하나요?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죄는 결국 인간의 가장 근원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의 영향력이 강력하고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표면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죄의 영향력이 나타낸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가 고통하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을 파고들면 근원의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진짜 중요한 목적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9절입니다.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의로운 상태는 죄가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의롭게 만들고자 하시나요? 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한 기본적 조건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전염병에 걸렸다면 여러분과 관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순간 한 공간에 있는 여러분들이 같은 병에 걸리실 것이고 가까울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깊이 맺고 싶으시지만 우리가 불의하고 죄가 있으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불일치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불태워버리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꼭 우리 죄를 사하신 뒤에 의롭게 만드셔서 온전한 관계를 맺고자 하십니다. 로마서 5장 1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의롭게 되어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인 화평의 관계를 맺고 그때서부터 다시 하나님이 생명이신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목적대로 인간이 충만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은 했지만 사실 이것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40절과 41절입니다.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은 구약에서 메시아를 통해 내가 너에게 생명을 줄 것이고 그를 믿어야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오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너희는 멸망할 것이라고 얘기하셨는데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거부할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약속하신 예수가 오셨으니 그를 믿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풍성한 온전한 관계로 들어오라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대단하게 예수의 이름을 드러내고 축구하면서 골을 넣고 상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부터 벌써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은 심지어 신앙을 통해서도 자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증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SNS에 비싼 차나 명품을 자랑하는 행위와 똑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성도의 인생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신 일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목적을 다 이루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것은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충만하면 두려움, 욕심, 죄악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않아도 되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신앙을 통해 뭔가를 증명하고 결과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 추구하는 가장 대표적인 목적은 행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있습니다.
물론 어린아이 신앙 때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여서 교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근원적 문제는 죄 때문입니다. 죄는 생명을 고갈되게 만들면서 우리 안에 끊임없는 갈망을 만들고 이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가져도 계속 목마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수단들, 돈, 성공, 결혼, 학교, 직장들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종종 수단 자체가 강력하게 우리 인생을 지배하기 때문에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이 그렇습니다. 돈은 마치 비누나 치약 같은 수단입니다.
모두들 몸과 치아를 깨끗케 하는 수단으로 비누나 치약이 있으실 것입니다. 돈도 그런 수단입니다. 그러나 집에 비누나 치약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사시는 분이 계신가요? 온 벽을 덮게 비누를 쌓은 뒤 하나 쓰면 다시 채워놓는다거나 치약 10만 개 모으기를 삶의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비정상입니다. 치료받아야 하는 병입니다. 이것은 수단이기에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돈도 수단이기에 비누나 치약처럼 꼭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돈은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을 강력하게 사로잡기 때문에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10억 원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독하게 절약해서 십원, 백원을 아끼고자 집에 불을 켜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사기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람들이 결혼을 왜 하나요? 배우자를 통해 나의 행복을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결국 결혼하고 나면 불만족이 더 커집니다. 결혼을 행복으로 바라보는 열망이 강할수록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를 살게 하신 목적은 우리가 돈 걱정 없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영적 결과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마음, 빈궁이나 부함에 관계없이 내면에서 밀려나오는 기쁨, 평안, 만족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서만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왜 이 땅에서 우리를 살게 만드시나요? 눈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내면 안에 있는 잘못된 의존을 드러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존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혼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결혼을 통해 우리의 죄악이 폭로되고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다른 사람을 나의 욕망의 도구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인정함으로, 인간이 나를 채울 수 없고, 하나님만이 내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만이 나를 다스리셔야 내가 온전해질 수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져 있는 수단인 돈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우리가 잘못된 의존을 고백하며 생명의 근원이 눈에 보이는 비누나 치약과 같은 수단인 돈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하는 것 같은 결혼, 평생토록 다뤄야 하는 돈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다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과 두려움을 가장 자극하는 수단을 찾아 영적 본질을 폭로하고 다스리시는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돈의 시험을 겪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진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의 본질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본질을 폭로하고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존하여 나의 행복만 추구하는 자인지 돈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존경스럽고 좋은 목회를 잘 하시다가 은퇴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교회를 분란에 빠뜨리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타락했나 보다 생각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이 들어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본질에서부터 예수를 믿는 믿음의 훈련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나중에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지자마자 감춰져 있던 두려움이 폭로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제가 믿음의 본질을 삶에서 살아내기까지 집요하게 개입하셨습니다. 24살에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고 44에 교회를 개척하기까지 20년 동안 제대로 된 수입이 없이 기적 같은 과정으로 살면서 믿음 하나만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과정을 주셨나 돌아보면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 안에 숨겨진 가장 깊은 두려움과 욕망을 돈만큼 자극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시절은 다른 말로 하면 비참한 거지 같은 삶이었습니다. 언제 얼마를 어떻게 누구를 통해 주실지 모른 채 기다려야 하는 불안과 고통을 십수년간 견뎠기 때문입니다.
매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불안하고, 기숙사에서 쫓겨날 뻔하고, 전기 끊어진다고 빨간색 경고장을 받고,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찢어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하나님이 돈을 주셨습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또 욕망이 튀어나옵니다.
유학을 하면서 제가 가장 원하던 것은 서재를 책으로 가득 채우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때 제가 원하던 만큼 책을 샀다면 지금 모두 애물단지일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한 것이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제가 주석마다 비교해서 마태복음이 좋은 주석, 창세기가 좋은 주석 등 성경 전체에 좋은 주석을 평가해서 파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웃집 목사님이 하나씩이 아닌 전집을 사서 서재를 쫙 채웠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은 통해 제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셨고, 어떤 때는 책이었지만 어떤 때는 다른 것으로 노출하셨습니다.
죄는 영적이라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욕망과 두려움은 보입니다. 내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욕망하는지, 내가 은혜와 생명이 없이 얼마나 모든 더러운 것들이 내 인생을 주도하고 있는지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하나님은 돈을 통해 세심하고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무도 저를 도울 사람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기적과 같이 은혜를 주셨습니다. 제가 받은 돈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 놓은 것이 있어서 횟수를 세 보았습니다. 8년 동안 받은 돈을 세어 보니 491번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버는 것도 조금 있지만 그것은 전체 받은 돈의 10%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미국에서 사람 까마귀들을 통해 계속 돈을 주셨습니다. 물론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도 이사 갈 수 있는 만큼은 안 주시고 남의 교회 지하실에 살 만큼 생활비만 주셨습니다.
그 지하실에 살기 바로 전주에 부흥회를 하고 은혜를 끼쳤는데 교인들이 저를 어떻게 볼까가 두려워서 주일에 집 밖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통해 하나님이 제 영혼의 가장 깊은 욕망을 드러내셨고 그 자유를 얻고 나니까 이제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관계없는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돈을 통해 제 영혼을 세심하게 다듬어 오셨습니다. 돈은 너무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었습니다. 사실 제 인생은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1절과 32절을 증거하는 인생입니다.
마 6:31-32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물론 저처럼 여러분도 망하고 일도 못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만 먹고 사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대표로 했으니까 그 경험을 알려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월급 잘 받으시고 사업을 하시면 돈도 많이 버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돈을 통한 시험을 겪고 계시다면 ‘돈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욕망과 두려움을 드러내어 내가 본질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하시는구나’를 깨달으시고, 또한 하나님이 돈을 통해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며 은혜로우신 분이신가를 경험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