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5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요한복음은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부터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이유가 왜 중요한 것일까요?
첫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셔야 그분의 말씀이 온전한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위대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일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셔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고대의 무신론자는 소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제각각 원하는 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바다의 신, 산의 신 등 자기가 원하는 신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유대인조차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 분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한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셔야만 하는 마지막이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셔야 예수님을 통해 구원이 완성됩니다. 구원은 인간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온전한 자가 죽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어떤 인간이 대신 죽는다고 구원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온전하신 하나님이셔야지만 구원이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신 증거를 설명하십니다.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1장에서도 보았지만, 증거와 증언이라는 단어가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합니다.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사람의 증언으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확실하게 했다고 증언해도 아주 희박하게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내가 말하는 것이 진짜인가를 증언하는 다른 증거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인가요?
1. 인간들 중에 가장 큰 자의 증언입니다. vv.33-35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지금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사람을 보내 진리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1장에 나왔던 사건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요 1:19)
왜 예루살렘 사람들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그가 누군지 물어본 것일까요?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인가 생각할 정도로 세례요한의 영향력이 이스라엘 전역에 가득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어떻게 증언하였나요?
“[29]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 1:29, 34)
이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자, 심지어는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만 세례 요한을 위대하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세례 요한은 예수님도 여자가 낳은 자,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위대한 세례 요한이 증언하였는데, 예수님이 그 증언에 의존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을 증거로 제시한 것일까요? 사람들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의 권위를 덧입지 않고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권위를 통해 하늘의 권위를 전하시고자 세례 요한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35]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요한을 등불로 표현합니다. 등불은 무엇의 대체물인가요? 태양 빛의 대체물입니다. 환한 낮에는 등불이 소용없습니다. 밤에 아주 밝게 비추이는 자동차 헤드라이터도 낮에 켜면 아주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둠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고대의 이스라엘에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어디나 복음이 전파되는 모든 곳에는 이런 과정이 항상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 때,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목사님들, 능력이 많은 부흥사들, 이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6-70년대에는 이분들이 일으키신 신기한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한국 교회를 이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영웅과 같은 분이 많이 일어났는데, 사람들이 그분들이 가르치는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한 사람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가 잠실 운동장을 빌려 체육대회를 한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플랜카드가 두 개 걸려 있었는데,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플랜카드 옆에 목사님 사랑합니다라는 플랜카드가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10만 명이 모여, 목사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주신 능력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연약하여 참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하고, 자신이 영광을 받고 주목을 받는 부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사람을 통해 인도하셨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고, 위대한 분이 영향을 미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눈을 돌려 직접 예수님을 만나,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며 깊은 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유명한 사람을 보며 그분들을 닮고자 하였습니다. 유명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에 그들을 따라 하고자 했던 것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위대한 분들을 통해 저 역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유명한 분들이라고 가지만, 흠이 많고 무엇인가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신 것 뿐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말씀 가운데 예수님을 직접 깊이 알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입니다. v.36
[36a]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합니다.
[36b]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 역사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을 통해 일이 지시하는 실체를 보여주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기에 넉넉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증거로 예수님의 사역이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니고데모가 표적을 보고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일을 보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요 7:31)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보고 믿음을 가진 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제자들에게 어떤 반응이 필요한가요?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 14:32-33)
폭풍으로 거의 죽게 된 상황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폭풍을 향해 명령하지도 않으셨는데 폭풍이 그쳤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도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시는 진짜 목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에는 어떤 약점이 있나요? 인간의 이기심으로 그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길 간절히 열망하며 기적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적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과정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기복적인 가짜 믿음만 커져 갑니다.
한국 교회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면 몰려가는 늪에 빠져 있습니다. 문제는 수 천 명이 모여도 소수의 사람만 병이 낫고, 나았다고 해도 확실치 않습니다. 미국에는 베니 힌이라는 가짜 목사가 기적이 일어난다고 성도들을 유혹하며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을 위해 기적을 사용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적에만 매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기적을 중심으로 한 신앙에서 예수님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함으로 폭풍우를 통제하시고 다스리는 예수님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막 8:11)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병자가 낫는데도 하늘로부터 내려온 표적을 구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 16:4)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장 놀라운 표적은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건질 유일한 분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죽을 자라는 것을 알고 영생을 사모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암에 걸렸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심각한 사람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치유를 빨리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상태에서 구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죽음의 영향력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나타나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게 합니다. 시체가 썩어가듯 우리의 영이 죽어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힘든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물질적 수준에서 밥을 잘 먹는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의 영향력입니다. 한 번에 기도했다고 우리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개입을 하실 수도 있지만, 이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스리는 주인이심을 발견하는 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증거는 무엇인가요?
3.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vv.37-40
[37a]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
하나님이 직접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증언하시면, 문제가 생깁니다.
[37b] …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을 직접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대언자를 통해 성경에서 그들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언하십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 전체가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모든 성경에 예수님에 관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을 설교하듯, 예수님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원래 성경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꼭 필요한 사건이 필요합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필요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남 탓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구 중 강력한 욕구가 자신이 온전한 존재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으면 분노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예수님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셔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여서,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황, 그런 존재를 깨닫게 되어 삶의 매순간마다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 땅에서 예수를 닮은 모습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지배하는 곳에 사는 고통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눈이 열리게 되고 어두움이 빛이 비추게 될 때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여기서는 어둡게 살다가 천국에 가서 괜찮겠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시고 은혜를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다스림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미쳐 이 땅 가운데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배워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을 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을 보아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사모하지 않고, 예수께 다가가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예수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리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눈을 열어 그것을 보게 해 달라는 간구를 해야 합니다.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영생을 알며, 영생을 얻는 자리에 서게 해 달라는 간구를 해야 합니다. 예수를 통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