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1일 주일예배 설교문/ 김일승 목사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반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성도 또한 세상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소리에 강력하게 영향을 받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는 대표적인 예가 오늘 본문의 빌라도입니다.
빌라도가 당시 유대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였다는 것을 통해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능력이 많았습니다. 한 지역의 집정관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는 군사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정치적 능력도 검증받았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도 출생 가문 역시 중요했습니다. 정치적 암투가 많은 로마사회에서 이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 갔다는 것은 이 사람의 판단력을 보여줍니다.
즉,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고, 좋은 집안에 태어나 많은 경험을 하고,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세상의 영향력에 좌우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빌라도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심문하고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4절 말씀입니다.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성경은 그가 단순히 죄가 없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시기해서 예수님을 모함하였다는 사실 또한 발견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마태복음 27장 18절입니다.
마 27: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즉 죄 없는 사람을 종교 지도자들이 모함해서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분위기상 예수를 그냥 풀어주면 사람들이 반발할 것을 예상하고 군사들에게 주어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것입니다. 조금 모욕만 주고 용서하고 풀어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십자가에 못 박자고 하니까 6절에서 빌라도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6] …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무죄한 사람과 연루되었다가 나중에 큰 일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확실시하고 있기에 책임을 떠넘기려고 합니다. 그의 개인적 판단은 명확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대화를 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11절, 12절입니다.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예수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까 더 확실해져서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애쓰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 아내를 통해 신비한 영적 개입까지 경험합니다. 마태복음 27장 19절입니다.
마 27: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고대 사람들은 꿈에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누가 신비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들으면 대부분 신이 점지해준 결과라고 믿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위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빌라도가 무죄한 사람을 방면하는 것이 맞지 않나요? 그런데 결국 16절입니다.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이 이유는 바로 본문에 반복해서 나오는 ‘소리’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는 먼저 그 소리를 시작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이런 큰 소리를 낼까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는 많은 소리에는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좋다, 이렇게 해야 한다, 누구를 지지해야 한다’ 이렇게 몇몇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더 큰 결과를 야기합니다. 12절입니다.
[12] …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처음에는 소수만이 이렇다라고 외치던 것이 나중에는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하는 소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15절이 되면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이제는 대제사장이나 하수인들, 거기 있던 모든 유대인들을 동참합니다. 세상이 소리가 가득하게 되면 결국 아무리 권력자이고 똑똑하며 자기 판단이 선 사람도 소리의 영향으로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이 세상의 소리가 강력한가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소리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소리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1.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vv.7-11
첫 번 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유대인들이 이제야 실체를 드러냅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고발할 때는 뭐 라고 고발했나요. 바로 앞장 18장 30절을 보시면
18: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처음에는 나쁜 놈이라고 고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예수와 대화를 해 본 뒤 무죄하다고 주장하자 이들은 정체를 드러냅니다.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고 고발한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이거나,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빌라도가 반응합니다. 8절입니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까지 나서서 이 자와 관계를 맺지 말라고 했고 좋게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추정해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빌라도가 두려워합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 9절에서 예수님께 다시 질문합니다.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앞에서는 답을 하신 예수님이 왜 대답을 하지 않으시나요? 어차피 빌라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더 많은 진리에 대해, 자신이 누구신가에 대해 드러내셔도 영적으로 열리지 않은 사람은 절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답을 하시지 않자 빌라도가 그 다음 사용한 방법이 무엇인가요? 10절입니다.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협박은 진실을 알고 싶을 때 쓰는 방법입니다. 진실을 알고 싶지 않으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거나 풀어주거나 둘 중 한 방법을 택하면 그만일 일입니다. 빌라도는 두려움 가운데 협박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11절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답을 하시나요?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빌라도는 자신의 힘이 센 줄 알지만 사실 빌라도보다 더 큰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시기에 빌라도는 꼭두각시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 즉 예수를 넘겨준 자의 죄가 크다고 말씀 하십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개인적 원한이나 질투가 없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로 인해 자기 지위와 이익을 뺏길까 두려워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이들의 죄가 더 큰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맙니다. 요한일서 4장 5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일 4: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끊임없이 듣고 말하는데 그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직접 보고도 그분을 믿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3절입니다.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
적그리스도는 신자들을 핍박하고 순교시키는 자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탐욕과 죄악으로 예수를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모든 영향력이 적그리스도적 영향력입니다. 예수에게 속하지 않은 자는 모든 결정과 판단을 본인이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의 소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9절에 예수님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여러분은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혹은 세상과의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고민하고 계신가요? 그것이 정상입니다. 이 세상이 나를 위해 맞춤으로 만들어진 것 같고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하나도 불편하지 않으며 안전하고 온전하다면 고민해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대로 살아가면 궁극적으로 빌라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빌라도의 이후 인생이 역사학자들과 전승에 의해 쓰여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빌라도는 집정관 자리에서 쫓겨나고 갈리아라고 하는 작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 엄청난 죄책감을 시달리며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손을 씻으며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요즘으로 치면 강박 장애에 걸려 끊임없이 손을 씻으며 자신의 깨끗함을 증명하려고 하며 정신적으로 불완전해진 것입니다.
자기도 알지 못한 채로 세상의 소리에 떠밀리듯 내린 결정이었지만 지난 2,000년간 사도신경에 예수를 죽인 가장 중요한 원수로 이름이 오르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으며 또한 예수를 반대함으로 인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되는 가장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듣고 계신가요?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소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참으로 들어야 할 소리를 분별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상의 소리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두려움 때문입니다. vv.12-16
두 번째로 세상의 소리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12] …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지금 빌라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무리는 빌라도의 마음을 돌이킬 결정타를 날립니다. ‘이 사람을 풀어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가이사는 당시 로마 황제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13절에서 빌라도가 반응합니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해 끌고 나와 버립니다. 아까 그 말이 어떤 말이었길래 빌라도의 이전의 모든 결정을 다 뒤집어엎은 것인가요? 세상의 소리는 빌라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자극했습니다. 권력이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권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욕망을 강렬하게 추구할수록 그 욕망하는 대상을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도 같이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쏟아 부은 바로 그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극되자마자 예수에 대한 모든 판단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의 소리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간 안에 있는 욕망과 두려움 때문이며 세상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자극하여 자기 노예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기에 돈의 노예가 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은 자녀가 잘못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으로 인해 인간은 세상의 영향에서 자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이 욕망과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인생은 결국 그의 인생의 욕망이 무엇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세상이 가치를 두는 것을 욕망하고 두려워한 사람의 결과는 어떠한가요? 돈을 사랑한 사람이 죽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고 생명을 나눠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돈에 찌들어 원망과 불평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 한 사람 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고통하게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리기가 십상입니다. 빌라도의 두려움을 자극했던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15절 상반 절입니다.
[15a]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
그들이 원했던 건 예수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이 빼앗긴다고 서슴없이 남을 죽이라는 사람들, 이것이 세상의 소리의 실체입니다. ‘나약한 존재를 의존하지 마. 네 능력을 키워. 네가 하나님처럼 돼.’라는 요즘의 흐름이 바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들의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소리의 결국입니다. 누가복음 23장 23절입니다.
눅 23: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겼다’는 것은 상대방은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패배한 자는 이긴 자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드는 무서운 인간의 반역에, 소리의 노예가 된 빌라도가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16절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나나요?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이것이 세상의 소리의 노예가 된 사람의 인생의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인생을 주도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의 노예가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의 노예인가요? ‘능력이 많았더라면, 박사학위가 있었더라면, 좋은 종목에 투자했더라면’과 같은 욕망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빌라도처럼,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예수를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소리보다 영혼 안에서 더 커져서 거짓을 몰아내고, 그래서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게 될 때,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